2014.9. 계간 <니> 36호 '나만 아프다?'
이번 글은 참 쓰기가 힘들다. 꼭 이 글 때문은 아니지만, 방학 중 신청한 교육과정을 들으면서 내 고질병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최대한 미루다가 포기하려는 생각을 먼저 하는 병, 의기소침해지고 침체돼 꼼짝도 하지 않는 병, 그러다가 난 지금도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구나 후회하는 병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내가 창피해 꽁꽁 숨어버리고 싶은 병까지. 꼭 해야 하는 과제의 마감을 앞두면 꼭 나타나는 패턴. 한껏 땅속에 있는 듯 있고 나면 봄에 언 땅 녹듯이 스르르 그래도 살아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걱정했던 일도 의외로 순조롭게 풀리고 말이다. 나의 이런 상태를 상처와 연관 짓기가 힘들었다.
듣는 교육과정 중에 고3 때 담임선생님이 강의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흔하지 않은 이름, 내가 졸업한 후 들어온 선생님의 행보로 보아 그분이 분명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반갑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난감했다. 인사를 할 것인가 모른 척할 것인가, 나를 기억하실까, 왜 네가 여기 있냐고 하실까 그런 생각 끝에 그분을 만나는 걸 피하고 싶어졌다. 강의가 있기 전 주말부터 난 아픈 사람 모드가 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먹기도 싫었다. 그리곤 강의가 있는 날은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결석을 했다.
내가 정치외교학과를 가고 싶다 했을 때 그분은 거기 나와서 나중에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라고 하셨다. 지금은 이해되지만 그 당시에는 무슨 그런 말이 있나 싶었다. 난 외교에 마음이 있어 가는데 웬 청와대? 웬 기자? 저분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니 저런 소리를 하시지 싶었다. 나중에 보니 덕담에 가까웠고 그러나 나랑은 거리가 멀었다. 정외과를 가겠다고 하고선 그런 말도 못 알아들었다는 게 부끄러웠고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되지 못했고, 또 못 할 거라는 생각에 대면이 겁났다.
만날 기회를 놓치고 나니 20년 가까이 지났는데 어떻게 변하셨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으니 날 기억 못 하실 거란 생각도 들었다. 또 만났다면 지금도 연락하는 고3 친구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였겠다 싶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대학 선택 이후의 내 삶은 좋다고 말할 수 없게 미진한 느낌이다가, 누가 물어보면 말하기 곤란하고, 사실대로 말하면 듣는 사람이 힘들어지고, 그러다 그냥 생각하기 싫은 것이 돼버렸다. 내 속에 있는 상처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 들키기 싫지만 그냥 스쳐서 들리는 말에도 그걸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서 가까스로 앉은 딱지를 또 떼어 피가 난다.
그런 나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내 상처를 들쑤시는 말은 “나이 값도 못 한다”는 말이다. 내 속에는 대학교 1학년 1학기 새내기 같음이 있기에, 언제까지나 졸업을 미루고 학교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그 얘기를 들은 맥락은 생각도 않고 내 생각의 중심은 그때로 돌아간다. 엄마 말대로 교대를 갔으면 대학생활 적응을 더 잘했을까? 싫었어도 선생님은 됐겠지란 생각도 들어 후회하는 감정, 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내가 지금 이렇게 나이 먹은 게 뭐 어떠냐고 무작정 억울해지는 감정. 내 동생은 저렇게 어른이 됐는데 난 이게 뭔가 싶은 숨고 싶은 감정 등등 마음은 복잡해진다. 머리는 멈추고 그런데 입은 저대로 움직인다. 그러는 너는 뭐가 그리 잘났냐며 니가 나한테 그런 소리 할 자격 없다고 하며 이성을 잃는다. 동생도 뭐 좀 달라진 줄 알았는데 어쩜 그리 똑같냐며 학을 떼고 한동안 서로 연락을 않게 된다.
내 상처를 건드렸다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나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한 말들이 그 사람한테는 하나도 들어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는 더 화가 나서 미친다. 하지만 그게 지나가면 내가 그렇게 미쳐 있었다는 점이, 내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점이 그 나이 값에 속하는 거구나 싶어 웅크려 들게 된다. 그러면 과거의 상처에 현재의 것까지 합쳐져 더 커지고 난 너무나도 부끄럽게 된다. 그 사실은 내 동생도 익히 알고 있는 거고 나를 조금만 주의 깊게 보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아차리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실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참 부끄럽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마다 다 다른 속도로 나이를 먹어가는 것 같다. 분명한 건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보다 많은 것을 경험했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동생의 기대치와는 다르게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내가 나이를 잘못 먹은 게 아닐 텐데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나를 작아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 자신이 내가 지내온 삶의 시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당시에 내가 한 행동이 최선이었나 생각하면 아니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말에 더 흔들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나를 상처 주는 건 나인 거다. 다른 사람이 던진 말의 씨앗이 나한테 뿌리를 내리게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씨앗들이 잘 자랄 토양이 풍부하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그동안 나는 나에게 오는 칭찬의 말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가 정말 그런가, 내 정말 모습을 알면 그런 소리 못 할 거야라고, 튕겨내고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말, 시선, 태도는 다 나를 향한 것으로 봤다. 그래서 내 안에는 부정적인 내 모습이 잔뜩 깔려 있다. 그러니 처음에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어느 순간 점점, 그래도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의심이 시작되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러면 나는 작은 씨앗도 튕겨낼 힘을 잃고 움츠러든다.
나를 그렇게 휘젓고 지나가는 계기는 누군가의 말이기도 하지만 그 말들이 모여 이뤄진 내 생각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넌 도대체 그동안 뭐를 하고 산 거니?’란 삐딱한 생각에 걸려들면 그동안 내가 소중하게 가꿔온 것들이 다 보잘것 없어지고 앞으로 남은 삶도 그럴 거란 생각의 늪에 빠진다. 삶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과연 돌아가신 엄마의, 언니를 대단하게 생각하던 동생만의 것인가? 잘은 모르지만 막연하게 이상적으로 가지고 있던 그 무엇에 내가 살아온 바가 맞지 않는다고 계속 쪼아대는 건 나 아닐까?
분명한 건 내가 상처라고 여기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될 때 내 주변 사람들에 상처를 주지 않으리라는 것. 그 상처가 건드려졌다고 거기에만 집중하면 내 안으로만 침잠해 다른 사람과 제대로 관계 맺을 수 없다. 쓸데없는 말이 나가고 필요한 말도 안 좋게 나갈 뿐만 아니라 내 관심이 필요한 아이에게도 날이 서고 내팽겨 두게 된다. 내 상처라 여기는 부분이 아주 없어지는 걸 바라는 게 아니라 흔적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나에겐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그로 인해 나는 커졌다. 나이테처럼 혹은 자국처럼 기억은 하지만 다 아물어서 더 이상 도지지는 않도록 내 마음에 건강함이 깃들기를 바란다.
정은선_알트루사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만 보다가 주변 사람, 이웃,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과 6살 세훈이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