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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Mar 21. 2022

콤플렉스에 감사하자!

2014.3. 계간<니> 34호 '자격지심! 아, 불편해!'

내가 눌러온 나를 만나 더 큰 내가 될 수 있는 기회     

<생의 절반에서 융을 만나다>, 대릴 샤프, 도서출판 북북서

<콤플렉스 카페>, 가와이 하야요, 파피에     


서평을 쓴다는 건 내게 꽤 신경 쓰이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도 그렇다. 더 심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 책을 이해한 정도, 그것을 기존의 내 앎과 연결시켜 쓰는 글이기에 내 부족한 이해와 그동안의 부족한 앎이 만천하에 드러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 동안 서평 비슷한 것을 숙제로라도 쓰게 되면 내가 이해한 것이란 뉘앙스를 빼려 노력해서 책의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요약하려 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책 내용을 제대로 전달한 건지, 누가 “그건 그게 아니지” 할까 봐 노심초사했었다. 책을 온전히 요약해서 전달한다는 건 내게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나 자신에, 그동안에 내가 알게 된 것, 지금 내가 이해한 것에 자신이 없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그게 내 자격지심이다. 내 콤플렉스 중 하나였다. 


 


이번에도 그동안 <니>  ‘정신건강을 읽어요’에 실렸던 글들을 몇몇 읽으며 내가 이렇게, 이 사람들처럼 이 책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흥미를 갖도록,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며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 건가 의심하면서 힘겹게 읽어나갔다.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책 이전에 읽었던 책을 말이다.


자격지심 말고 콤플렉스로 책을 검색했더니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학파에 속하는 저자가 전부였다. 융? 내가 1-2년부터 호감을 갖고 있던 융? 언제부턴가 난 그림자란 제목이 들어간 책을 찾아 읽었는데 그건 몇 해 전 ‘정신건강을 읽어요’에 실린 책 제목에서 그림자란 글자를 접하고 부터인 듯하다. ‘내 그림자가 울고 있다’는 책도 읽었었고… 거기에서 융을 만났다. 방송대 교육학과 수업을 들어서 익숙한 이름이기도 했다. ‘중년기’ ‘자기개별화 과정’이란 키워드로 외웠었다. 그 정도만 나왔었다. 


그래서 융 심리학을 소설로 풀어썼다는 <인생의 절반에서 융을 만나다>란 책을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이번 호 주제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빌렸다. 그러면서 콤플렉스를 다룬 다른 책도 있지 않을까 해서 검색해서 고른 책이 <콤플렉스 카페>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속도가 잘 안 붙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첫 번째 소설이 그랬다. 내가 들어는 봤으나 잘은 모른다 생각하는 아니마, 아니무스, 내향성/외향성, 사고/감각 등등의 용어가 나왔다. 주인공이 융을 연구한 정신분석 치료사이니 그래서 그가 만난 환자 이야기,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로 인해 풀어내는 그의 과거 이야기이니 당연했다. 


그런데 그런 말 내가 잘 모르는데 자꾸 나와서 처음에는 불편했다. 그러다가 초반이 지나고 나서는 이야기 흐름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걸 다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그걸 다 알 수도 없는 게 당연하다 마인드 컨트롤도 했다. 



융이 말하는 중년의 위기를 말하려는 소설이라 주인공을 찾아온 이도 30대 중반 이제 중년기에 접어든 사회적으로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남자. 아내와의 결혼에 만족한다면서 출장 갈 때마다 다른 여자들과 밤을 보내는 남자. 분석이 진행될수록 아내와의 결혼에 문제가 있고 어떻게 만났으며 어떻게 변했고 이 사람의 과거는 어땠고가 이어진다. 


마더 콤플렉스가 나오면서 콤플렉스란 말이 처음 나왔다. 설명이 충분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이해는 됐다. 아내에게 어머니를 바라고 어머니와는 성관계를 할 수 없고 뭐 그런 얘기. 


그래 뭐가 콤플렉스인지는 알았는데 어떻게 극복한다는 건데 하고 궁금하던 차에 주인공을 찾아왔던 이는 자기 집 지하실에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자기가 진정 원하는 바를 결정할 수 있는 자아를 지닌 사람이 되어 상담이 끝난다. 


상담사는 안내를 할 뿐이고 자신(의 내면)을 알고 찾아가는 건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 여러 고난이 닥치지만 용기 있고 지혜롭게 헤쳐 나가야 할 영웅. 그 영웅에 대략적 지도와 주의사항을 주는 상담사. 융 학파의 상담은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구나 대강은 알게 돼 만족했으나 콤플렉스에 집중된 이야기가 아니라 콤플렉스에 대한 더 친절한 이야기를 더 기대했던 점은 해결이 덜 됐었다.




반납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읽기 시작한 두 번째 책. 제목에도 콤플렉스가 들어간 만큼 콤플렉스란 말은 융이 가장 먼저 쓰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그 말은 잘 쓰지만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말로 시작된다. 콤플렉스는 감정으로 물든 복합체(gefühlsbetonter Komplex)를 줄인 말이라고 했다. 복잡한, 상반되기도 하는 감정이 섞여서 나타나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무의식 속에 있고 우리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방해한다는 것. 


 원래의 나, 내가 하려는 것이라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행동들, 학교에 가고 싶으나 갈 수 없고 발레를 할 수 없는 발레리나 등. 나에게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열심히 뭐든 해보고 싶은 마음과 상반되게 축 처지는 몸, 빠지게 되는 잠이 내 무의식에서 의식하고 사는 나에게 보내는 신호 같다. 내가 억누르거나 무시했던 무언가가 툭툭 치고 나와 이건 아니지 않아 하고 브레이크를 거는 느낌이다. 


책에는 이래저래 지금의 내 현상보다 심각한 이중인격, 자아분열 등의 모습도 나온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그 사람의 속에 있던 콤플렉스를 알아내고 갈등(자기 내부의, 외부 사람들과의)을 이겨낼 수 있도록 자아의 힘을 길러줘 대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감정 폭발도 일어나고 격렬한 갈등도 빚게 되지만 억눌러왔던, 몰랐던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아의 힘이 강해진다. 



책에서는 죽음과 재생 체험이라 이야기한다. 콤플렉스를 받아들일 수 없던 기존 자아(A)는 죽고 콤플렉스를 받아들이고 동화시킨 새로운 자아(A')로 태어난다는 것. 변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과 재생이란 표현을 쓴 것 같다. 이전의 관계를 끊어낸다는 점에서는 고통과 슬픔이 따르지만 새로운 관계 속에서도 이전의 관계는 살고 있다.   


지금 쓰는 글로는 미흡하여 잘 전달될 수 있나 의문도 들지만 글의 흐름에 따라 죽음과 재생 체험에 이르렀을 땐 가슴이 막 벅차왔다. 그 동안 내가 쓸모없고, 내 잠이 쓸모없고 그래서 난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해왔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내 속에, 내가 모르고 있는 내 속에 있다는 깨달음은 소중했다. 내 모든 것이 쓸모없지 않고 더 큰 내가 되기 위한 기회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트루사 정신건강연구소'에서 자신의 마음지도를 만들려는 것도 기억도 잘 안 나고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그 무언가(콤플렉스)를 끄집어내 갈등하고 변화하자는 것이니 그 맥은 통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새로운 나로 태어나게 되면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라는 죽음 체험을 해보고 싶다. 책에서는 지금 시대, 자기 상황에 맞는 통과의례, 죽음의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랬다가 저랬다가 돌아오는 시계추 같다고 생각했기에, 비슷한 상황이 되면 달라졌다 생각한 내가 예전의 내가 될 것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의식, 체험 같다. 언젠가는 꿈으로라도 나타나길…. 알트루사에서 갈등하면서 생각해봐야겠다.      



정은선_삶의 재미를 잘 모르다가 조금씩 느끼고 있는 니. 이제는 남편과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주변에서 하는 일에도, 공부에도 설렘을 갖게 됐다. 내일이 두렵지 않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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