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피는 꽃 7화

7화 사라지는 것, 그리고 태어나는 것

by 이원호


7화 : 사라지는 것, 그리고 태어나는 것






고등학교 여름방학이 곧 시작하려던 7월의 일이었다. 형동이와 은정이는 아침 일찍부터 등교해서 내 앞자리에서 떠들고 있었다. 형동이는 사탕을 가지고 은정이를 놀리고 있었고,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면 사탕을 2개나 주겠다고 제안했다. 은정이는 제안을 수락하며 입을 아- 하고 네모 모양으로 벌리고 눈을 네모난 모양으로 떴다. 도무지 사람이 가능한 표정이 아니었기에 나도 형동이도 잠시 할 말을 잊고 멍해졌다. 은정이는 활짝 웃으며 이제 사탕을 내놓으라고 그랬고 형동이는 그제야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 때, 교실 문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누군가 쓰러지는 듯한 발걸음으로 그 교실 문을 들어섰다. 창백한 얼굴로 들어온 것은 우리 반 반장이었다. 그 아이는 송장처럼 새하얘진 얼굴로 들어와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웅성거렸다. 복도를 지나가고 있던 성희가 그 모습을 보고 뛰어들어 왔다.

“야! 너 왜 그래?”

반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파르스름해진 입술을 바르르 떨며 자리에서 꼼짝을 하질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성희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가서 양호 선생님을 모셔오라고 그랬다. 반장의 손과 옷에는 피가 한가득 묻어있었다.

양호 선생님이 오셔서 반장을 데려갈 때 까지도 반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오후가 되어서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들을 수 있었다.


살인사건이었다.

우리 학교 뒤에는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맹모삼천지교의 고사를 직접 실천이라도 하려는 듯 수많은 부모님들이 너도나도 그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 아파트 10층에 살던 반장은 등교하기 위해서 아침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고,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는 시체가 담겨 있었다. 반장은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쓰러진 그 사람을 부축하러 갔다. 시체의 하복부의 갚은 자상에서 핏물이 꿀렁 새어나왔다. 반장은 심장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시체의 심장도 싸늘히 멎어 있었다.

피해자는 우리 학교 같은 학년 여학생이었다. 평소에 여러 남자아이들과의 관계로 영 소문이 좋지 못하던 아이이기도 했고 남자아이들을 홀리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이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영어특기자반 소속이었다. 그 아이가 3학년이 되어 처음 영어 특기자반에 내려왔을 때 앉아야 할 자리를 알려주고 기본적인 규칙들을 알려주었던 사람도 바로 나였다. 그 아이는 내게 묘한 눈웃음을 보냈고 그 모습을 보던 성희도 은정이도 그 아이와는 친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를 했었다. 그 뒤로 그 아이에 대해서 특별히 신경쓸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 아이가 죽은 채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발견되기 전 까지는 말이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소문들만이 바람을 타고 떠돌았다. 죽은 여자아이가 바람을 피운 것에 격분한 전 남자친구였다는 설도 있었고 그 아이에게 항상 비교당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사촌 오빠였다는 설도 있었다. 남자친구를 빼앗겨 질투심에 사로잡힌 몇 반의 어느 여자아이의 소행일거라는 소문도 있었고 이 동네를 배회하는 미치광이 살인마의 행각이라는 소문도 퍼졌다. 그 어느 것도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불과했지만 공기 중에 떠도는 공포감은 선명했다.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또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아무도 공부를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가 교정에 내려앉았다. 교장 선생님은 당분간 야간 자율학습을 중지한다는 지침을 내리셨다. 아이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해가 지기 전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다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는 길에 성희는 그랬다. 범인은 아마 여자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죽은 여자아이는 날카로운 흉기로 배와 얼굴을 여섯 일곱 번이나 찔렸었다. 성희는 그런 범죄가 깊은 원한 없이는 일어나기 어렵고 여자의 원한은 아무리 깊다고 한들 그런 식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여자의 원한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희는 갑자기 물어보았다. 자신이 죽으면 슬퍼할 것이냐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누구든 죽으면 슬프지 않을까?”

성희는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끝내 그 말을 던지지는 않았다. 손을 흔들고 등 돌리며 걸어가는 성희의 발걸음을 보며 여러 가지 의문들을 마음에 품었다.

누가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일까. 한 달 전에도 사랑하던 무언가가 내 곁을 떠났었다. 집에서 기르던 2마리의 개중 수컷 개였다. 2년 쯤 전에 엄마는 두 마리의 강아지를 데려왔었다. 산딸기와 산포도의 이름을 따서 머루와 다래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던 그 두 마리의 강아지들은 어느덧 무럭무럭 자라서 성견이 되고 부부의 연을 맺었었다. 하지만 똑부러지고 영리한 다래에 비해 수컷인 머루는 영 똑똑하지 못했었다. 문이 열린 틈을 타 바깥으로 탈출했던 머루는 집 앞 대로에서 자유를 만끽하다가 급하게 달리던 검은 그랜저 승합차에 부딪히고 말았다. 피거품을 토해내던 머루를 보며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의 다래는 머루의 강아지를 밴 만삭 상태였었다.

머루가 숨을 거둔 그날,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상실의 아픔은 저미듯 끔찍하여 차마 다른 사람 앞에서 삭히며 감당할 수가 없었다. 어디로 나를 인도하는지조차 모르는 정처 없는 눈물들 속에서 뒷산 꼭대기로 올라갔었다. 그곳에서 나는 눈물로 강을 흘렸다. 격랑 같은 슬픔이 마음을 온통 덮쳐오며 흐느낌이 되어서 흐르는 그 느낌은 살며 다신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살아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게 그렇게 마음 아플 수가 없었다. 더 행복하게 살게 해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보살펴주고 사랑해주지 못했기에 다래에게서는 지아비를 빼앗았고 태어나지도 못한 강아지들에게서는 아버지를 뺐었다는 그 사실이 너무 서러워서 그날 가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토해내듯 울었었다. 은정이는 쉬는 시간마다 전화를 열통씩 해댔다. 하지만 그 전화를 받으면 위로받고 싶어질 것 같아서 받지 못했다. 기대고 위로받으면 미안한 마음도 죄책감도 희석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쉽게 머루를 잊을 수도 그렇게 쉽게 나를 용서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아픔 속에서 무언가를 떠나보냈던 적이 있었다.


죽는다면 서글플까. 물론 서글플 것이다. 강아지가 죽었는데도 그렇게 아팠는데 사람이 죽는다면 얼마나 아플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죽은 그 아이는 서글픔을 남겼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 서글픔은 사람의 마음에 파도치듯 밀려와 닿았을 것이다. 아마도 성희는 그 서글픔의 언저리에 서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슬프지 않겠느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빈 조각을 느꼈기에 세상을 채우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큰지, 그 모습이 사라졌을 때 그 빈자리에 무엇이 내려앉을지 가늠해봐야 했던 게 아닐까. 그 슬픈 질문에 나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네가 죽으면 나는 얼마만큼 슬퍼해야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너는 얼마만큼 서글플까. 우리는 과연 타인의 가슴에 담긴 아픔을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긴 한걸까.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너무 많아서 시린 하늘을 날갯짓 같은 손길로 공허하게 더듬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 다음 주 목요일에는 비가 왔다. 아침부터 하늘은 온통 시커멓게 변해서 아침이 찾아오지 않은 것만 같았다. 가라앉은 학교의 분위기는 시커먼 하늘과 장맛비 속에서 한 층 더 우중충해지고 있었다.

은정이는 교실에서 오전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하루 종일 졸고 있을 것 같아서 오후에는 깨워서 초코우유를 건네며 매점 앞에 데려와 앉았다. 은정이는 우유를 먹으면서도 횡설수설 했다. ‘나는 졸리다. 여기가 어딘고.’ 라고 쓰여 있는 그 표정이 재미있어서 웃으며 바라보았다. 내가 말을 건네지 않자 은정이는 이내 꾸벅꾸벅 꿈나라로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주머니에서 문자가 울렸다.


- 집으로 올 것. 급함.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이런 문자를 보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침 형동이가 피자빵을 우물거리며 매점에서 나오고 있었다.


“뭐하냐 여기서. 쩝쩝.”

“잘 왔어. 은정이 좀 데리고 교실로 가줘.”

“웃기는 놈일세. 왜 여자애를 재워놓고 책임을 안 지려고 하시나.”

“헛소리 사양. 나 바빠.”

“어디 가는데?”

“집!”


이상한 놈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면서도 형동이는 은정이를 쿡쿡 찔러서 교실로 올라갔다. 매점 근처에는 은정이 덕분에 알게 된 비밀통로가 있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몰랐지만 은정이와 헤매던 그 창고는 학교의 수많은 비밀스러운 장소들과 이어져 있었다. 그 중의 한 출구는 수위 아저씨의 눈에 띄지 않게 후문 밖으로 내보내주었다. 어차피 어학특기자반은 그 여자아이가 죽은 이후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무법지대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후 내내 밖에 있는다고 해도 특별히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학교를 탈출했다.

집에 도착해보니 엄마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젓가락같이 두꺼운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다래는 강아지들을 낳고 있었다. 뿌연 장맛비 사이로 동산처럼 부른 배를 안고 누워 헥헥 거리는 다래의 모습은 안쓰러운 동시에 경이로움이었다. 그 작은 몸 안에서 어찌도 그리 강인한 생명력이 박동하는지 다래의 작은 호흡 하나하나가 빗속을 뚫는 경적소리처럼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미 손바닥만 한 작은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태어나서 다래 곁에서 꿈틀거렸다. 창백한 그것은 점액질과 피막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지만, 다래는 곧 그 모든 것을 핥고 또 핥아서 깨끗하게 만들었다.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없음에도 다래는 이미 능숙한 어머니였다.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는 다래의 정성어린 입맞춤 속에서 끙끙거리고 낑낑거리며 점차 강아지다운 형체를 찾아가고 있었다. 삶은 사랑 속에서 박동하며 소란스럽게 태어나고 있었다. 손을 꼭 쥔 상태로 그 신비를 지켜보았다.


다래는 땀에 흠뻑 젖어가며 계속 강아지를 낳았다. 한 마리 한 마리씩 강아지들은 눈도 못 뜬 채로 세상으로 나왔다. 다래는 무엇 하나 놓치는 것 없이 강아지들을 삶의 입맞춤으로 세례 시켜주었다. 처음 태어난 녀석은 어느새 털이 조금 말라서 우윳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그 사이에 둘째가 태어나고 있었다. 둘째는 덩치 큰 갈색이었다. 벌써부터 오동통한 다리 굵기가 심상치 않았다. 셋째는 낑낑거리며 말이 참 많은 채로 태어났고 넷째는 공주님처럼 다소곳하게 태어났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그 작은 배 안에 담았던 것인지 강아지들은 끊임없이 다래 안에서 박동하며 태어나고 있었다. 다섯째는 모든 게 다 끝난 줄 알았을 때 갑작스럽게 태어났다. 밤하늘처럼 새카맣고 작은 예쁜 아이였다. 다치거나 아픈 녀석 하나 없이, 강아지 다섯 남매는 그렇게 폭우 속에서 내 세상으로 들어왔다.


은정이는 저녁 6시쯤 되어서 문자를 보냈다.


-종례시간인데 어디 갔어?

-집이야. 혹시 담임선생님이 나 찾았어?

-응 ㅋㅋ 그래서 내가 특기자반에 있을 거라고 거짓말 해줬지. 고맙니?

-응! 완전 고마워! 좋은 저녁 보내고 내일봐!

-내일은 토요일이라 학교 안가지렁. 주말 잘 보내!


내일이 토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이라는 사실을 은정이에게 알려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내일 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사실인지라 굳이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 성희는 그로부터 1시간 뒤에 문자를 보냈다.


-찰스! 나 학원 토실건데 집 안가닝? 같이 가자♡

-나 집이야!

-왜? 벌써?! 나를 버리다니!!

-강아지 태어났어!

나는 문자의 끝에 갓 태어난 강아지들 사진을 첨부해서 보내주었다. 아직 채 눈도 못 뜬 기괴한 모습의 아이들이었지만 성희는 나보다도 더 뛸 듯이 기뻐했다.

-오와! 오와! 오와! 완전 예뻐! 아직 눈도 못 뜬 거봐!

-내일 사진 많이 찍어갈게!

-응! 꼭!


우중충한 세상이 조금 맑아져갔다. 비온 뒤 하늘은 언제나 맑다. 비가 언제 그치냐고야 반문할 수 있겠지만, 또 언젠가는 그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늘은 언제나 조금씩 맑아져갔다.





다음날 아침, 성희는 특기자반 교실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찍어온 강아지 사진들을 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강아지들은 태어난 순서대로 흰색 수컷, 갈색 암컷, 갈색 수컷, 흰색 암컷 그리고 까망색 막내 암컷으로 다섯 마리였다. 같은 배에서 나온 형제자매들인데 어쩜 이리 색깔이 다양한지 신기하기만 했다. 덩치는 갈색 암컷이 가장 컸고 까망색 꼬마가 가장 작았다. 다래는 자식들에 대해서 무섭도록 보호적이었다. 아직 엄마도 나도 새끼들에게 손가락 하나 대어보질 못했다. 조금 다가설라치면 다래는 무섭게 으르렁댔다. 고생이 많았다고, 건강하게 낳아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다래를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그 마음은 눈빛으로만 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보며 쉬지 않고 감탄하는 성희에게 강아지들의 이름을 지어줄 수 있겠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나보다는 글을 잘 쓰는 이 소녀가 특별한 이름을 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성희는 펄쩍 뛰며 정말로 그래도 되느냐고 되물었고, 나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성희는 하루 종일 이것저것 끄적이며 고민하더니 저녁시간 쯤 되어서야 공책을 들고 왔다. 다섯 개의 이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성희는 앞 글자는 월화수목금토일의 요일에서 따오고 수컷 강아지에게는 동자 돌림을 암컷 강아지에게는 련자 돌림을 사용해서 이름을 지어왔다. 흰색 남자강아지는 일동이가 되었고 갈색 남자 강아지는 금동이가 되었다. 튼실한 갈색 여자 강아지는 목련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흰색 여자강아지는 수련이가 되었다. 막내 까망색 여자강아지는 화련, 토련, 월련이라는 이름 중에서 하나를 가질 수 있었지만, 워낙 작고 쪼꼬만 아이이기에 꼬맹이라고 불러도 꽤 어울릴 것 같다고 성희는 배시시 웃으면서 덧붙였다. 참 좋은 이름들이었다.


하루 빨리 강아지들이 눈뜨고 뛰어다니기를 소망했지만 강아지들은 내 조바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커갔다. 2주 뒤에는 일동이를 기점으로 한 마리씩 눈을 떴고 한 달 뒤에는 목련이가 처음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뛰어다니기 시작하며 강아지들이 주춧돌에서 마당으로 굴러 떨어져서 울어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럴 때면 자다가도 깨서 다시 집으로 올려줘야만 했다. 강아지들은 보금자리로 올려 보내주면 짧은 다리로 다래 품으로 엉금엉금 달려가 무서웠다는 듯 낑낑거리며 숨었다. 그러면 다래는 강아지들을 부드럽게 보듬어 주었다. 그 모습에는 마음에 닿는 따스함이 머물러 있었다. 다래는 강아지들이 젖을 찾을 때면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강아지들은 다래 위로 밟고 올라가고 서로 밀치고 으르렁거리면서 젖을 먹고 놀았다. 강아지들에게 다래의 품 속 만큼 안전하고 따뜻한 곳은 없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애틋하게 보고 있는 모든 이들의 입가에 흐뭇한 웃음을 걸어주었다.


성희가 처음으로 집 앞에 찾아왔을 때 강아지들은 막 마당을 정복하기 시작한 참 이었다. 성희는 벨을 띵똥 눌렀고, 다섯 마리의 강아지들은 왈왈거리며 일제히 짧은 다리로 대문을 향해 돌진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마당을 가로지르는 그 모습은 앙증맞은 장관이었다. 성희는 강아지들에게 둘러싸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성희에게 물어보았다. 다섯 마리 중 누가 제일 예쁜 것 같으냐고 말이다. 성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예상과는 달리 꼬맹이가 아닌 수련이를 골랐다. 졸린 듯 멍해 보이는 눈이 너무 예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것은 내가 수련이를 가장 좋아한 이유와도 같았다. 언니 오빠들의 밥을 뺏어먹고, 꼬마 동생을 쥐어박으며 괴롭히는 이 순백색의 꼬마 공주님은 졸려보이는 사랑스러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 해 겨울, 우리는 수련이를 제외한 나머지 강아지들을 다른 집으로 입양 보냈다. 마당이 넓다고 한들, 6마리나 되는 성견을 키울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강아지들이 더 크기 전에 입양을 보내는 것이 사람을 위해서도 강아지를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네 마리 강아지들이 다 같은 집으로 입양을 갔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알고 지내시던 어느 아저씨께서 마당이 넓은 시골집에서 자식처럼 키우시겠다며 아이들을 안고 가셨다. 언니 오빠한테 인사하라고 불러보아도 수련이는 툇마루 밑에 숨어서 나오질 않았다. 다래만 떠나는 아이들에게 꼬리를 분주히 흔들어 주었을 뿐이다. 강아지들이 떠나니 집이 갑자기 무척 허전해보였다. 사랑과 삶의 흔적들이 여전히 텅 빈 마당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배가 고팠는지 그제야 낑낑거리며 기어나온 수련이의 콧잔등에 코를 비비며 아쉬움과 그리움을 달랬을 뿐이다.





8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