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소유와 욕망 3편

봄 단편소설집 세 번째 이야기 : 마법 카메라

by 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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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 : 마법 카메라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께서는 이상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해안가 끝자락 동굴에는 요술을 부리는 도깨비가 산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풍차집 바닥 곡물창고에 빠지면 다른 세계로 끌려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까지 영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뒷산 너머의 붉은 조약돌 해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도 전혀 믿지 않았다.

“그 해변가에는 마법에 걸린 물건들이 자주 쓸려내려 온단다.”

“할배요, 마법 걸린 물건이 어딧담미꺼. 내 시간 날 때 해변가를 온통 쏘다니는데 그런 거 본적 읎다 아임꺼.”

“이 눔아, 귀찮다고 맨날 마을 코 앞에 있는 삼선녀 해변 쪽으로만 가지 않느냐.”

“그쪽도 할배가 작년에 선녀들이 달빛 아래서 춤추는 걸 보면 선녀 옷을 구할 수 있다고 해서 가는 거 아임미꺼. 날개옷 있다믄서예.”

“밤에 가야 줍는데 네눔이 밤에 나가는 걸 무서워하니까 그렇지. 하여튼 그 눔 참. 어쨌든 앞으로 좋은 거 줍고 싶으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붉은 해변으로 가보거라. 나도 네눔 만큼 어렸을 때 거기서 장기말들이 살아 움직이는 마법 장기판을 그곳에서 주웠었단다.”

“그 마법 장기판은 어디로 갔심미꺼?”

“당연히 팔아서 그 돈으로 대학 갔지 이눔아! 나뿐만이 아니다. 옆집 장씨네 코흘리개는 건드리기만 하면 황금을 토해내는 거위 조각상을 주웠단다. 그래서 지금은 시내에 삐까뻔쩍한 건물 지어놓고 사장님 행세를 하고 다니지 않더냐.”

“장씨아재 말임미꺼? 그 아재 팔 한 짝 하고 귀한 짝 없던디요. 황금 거위가 있는데 왜 그러고 산답 말입미꺼.”

“그야 나도 모르지. 큰돈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거라.”

“그거 영화에서 나온 대사 아임까. 할배 표절치 말라요.”

내 드센 트집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께서는 기어코 붉은 해변에 대한 마법 같은 이야기를 내 안에 심어 놓는 데에 성공하셨다. 마법사의 화물선이 어디쯤에 침몰했다는 둥, 그래서 파도가 거센 날이면 그 안에 실린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물건들이 하나씩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거라는 둥 놀라운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할아버지의 입담에 열두 살의 어린 나는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폭풍이 몰아친 다음날, 화창한 아침햇살을 따라 나는 북쪽 붉은 조약돌의 해변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말았다.





붉은 해변으로 가는 길가에는 이 계절에 메뚜기들이 가득했다. 손가락만 한 길이의 메뚜기들은 마치 햇살이라도 자양분 삼아 자라는 건지 들풀과도 같은 속도로 번식하고 커졌다. 손가락보다도 길고 발가락보다도 오동통한 이 외계인 같은 생명체들은 가을만 되면 온 마을과 근처 양지바른 벌판을 점령하다시피 뒤덮었다. 하는 짓이라곤 사람을 보면 놀라서 펄쩍 뛰는 것과 낯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대낮부터 교미를 나누는 것뿐임에도 이 짐승들은 공분과 혐오의 대상이었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메뚜기들을 싫어했다. 곡물을 기르거나 저장하는 마을이 아닌지라 사실 그렇게까지 싫어할 이유는 없음에도, 그 누구도 사람 손바닥보다도 커지는 이 흉측한 벌레들을 마냥 사랑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생김새가 징그럽다며 피하는 아낙네들도 많았고, 보이기만 하면 밟아 죽이거나 빗자루로 쳐내는 아저씨들, 뒷다리를 떼어내서 데리고 노는 동네 꼬마들 등 메뚜기와 동네 주민들 간의 관계는 전반적인 혐오와 잔인함으로 맺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어쩌면 그렇게 미워하도록 숙명 지워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되도록 증오와 폭력 의외의 것으로 메뚜기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애쓰셨다. 어느 날 무심결에 부뚜막 앞에 앉은 메뚜기를 밟아 죽이려고 했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엄한 눈초리로 나를 꾸짖으셨다.

“그러지 말거라.”

“왜 말라카심미꺼? 김 이장님께서는 얘네 보이면 다 밟아 죽이라고 카셨는디요.”

“피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함부로 죽이면 안 된다. 살아있는 건 살아있어서 예쁜 거야.”

“할배 지금 메뚜기가 예쁘다구 하셨심미꺼?”

“그럼.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거라. 저 똘망똘망한 눈망울이며 저 강인한 뒷다리까지 얼마나 귀엽고 아름답느냐. 살아있으니까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고, 네눔이 밟으면 그 아름다움이 모조리 즙이 될 뿐인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할아버지께서 농담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고기, 그중에서도 소고기를 상당히 좋아하셨고, 영화에 나오는 박쥐인간 같은 불살주의를 신념으로 가지고 계시지도, 도시의 가냘픈 여성들처럼 채식주의를 실천하시지도 않으셨다. (이 사실은 몇 달 전 여름에 할아버지께서 상추를 우적우적 드시다 말고 소리소리 지르며 모기를 학살하는 모습을 두 눈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확실하다) 매일 살아있는 것의 사체로 양분을 만드는 존재로서 살아있는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무언가 말도 안 되는 모순이나 농담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않으신 채로 메뚜기가 다시 부뚜막 너머로 날아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높은 도를 닦은 고승처럼 엄숙해 보이는 것이었는지라 나는 감히 트집을 잡을 생각도 못한 채로 동자승처럼 시립하고 있어야만 했을 뿐이다.

그 뒤로도 나는 할아버지가 마을의 다른 주민들과는 다르게 메뚜기과 비폭력적이고 편안한, 어찌 보면 우정이나 우애와도 비슷한 감정으로 관계를 이어나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비록 할아버지께서도 옷에 메뚜기가 들러붙거나 얼굴 쪽으로 날아들면 화를 내고 손을 내저으시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그들을 지켜보기만 하실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할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할배요. 내 물어보고 싶은 거이 있십니더.”

“무어냐 이눔아.”

“할배는 소고기도 잘 드시고 물고기도 잘 드시는데 메뚜기는 왜 안 죽이소? 송아지도 살아있어서 귀엽고 넙치나 꽁치, 아니다 걔네는 별로 안 귀여운 거 같은디... 어쨌든 송아지처럼 많은 것들이 귀여운데 콱 쥑이삐서 스테키 만들고, 뒤뜰 상추들도 귀엽고 똘망똘망하게 살아있었는데 잡수시다 말고 물 주는 거 깜빡해서 양피지 맹키롬 바싹 말려 쥑이삐고, 근디 왜 메뚜기만 안 죽이소?”

할아버지는 머쓱하게 웃으시면서 대답해주셨다.

“이 눔아. 상추를 죽인 건 실수고, 소는 먹는 것은 살기 위함인데 어찌 이유 없이 메뚜기를 죽이는 것과 비교가 되겠느냐. 메뚜기를 키우기를 하겠느냐 먹기를 하겠느냐? 죽임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어야 한단다. 아무 이유 없이 미운 것들은 미움이 이해될 때까지 어울려 살아야지.”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조금 더 알쏭달쏭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라믄 지난겨울에 모기와 갈따구들을 불살라버리셨던 것은 이유가 있으셨던 것임미꺼?”

“모기는 귀찮게 하지 않느냐. 앵앵거리면서 날아다니는 기생충들은 사회악이다. 마땅히 없어져야 하는 해충들이지.”

“할배 그거 좀 섬뜩하지 않슴미꺼. 기생충이나 사회악은 박멸해도 괜찮다니...”

내가 아연실색한 표정이 되자 할아버지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고놈 참. 농담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내가 무안하지 않느냐... 이제부터가 중요한 얘기이니 잘 들어보거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단다. 모기는 피를 빨고, 우리는 소를 먹고, 상어는 가오리를 씹으며 가오리는 물고기를, 물고기는 벌레를, 벌레는 먼지를 먹지. 그 관계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그리고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사는 것은 먹는 것이고 먹는 것은 폭력적인 관계이니 우리가 먹지 말라고, 살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할아버지께서는 잠시 말을 끊으시고 멀리서 철썩이는 바다를 바라보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바다를 보니 무언가 조금 이해가 가는 것도 같았다. 할아버지께서는 다시 천천히 말씀을 이으셨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가 서로 먹고 먹히는 업보의 굴레로 얽힌 것은 아니란다. 때때로 어떤 생명체들과는 업의 굴레로 얽히지 않고서도 공존할 수 있지. 그리고 그 관계 속의 생명체들과는 서로 괴롭히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옳겠거니 싶구나.”

할아버지께서는 하루의 마지막 햇살을 받는 세상을 바라보시며 말을 이으셨다.

“먹이와 업보의 사슬로 얽히지 않은 모든 것들은 평화롭게 공존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란다. 바다나, 석양이나, 꽃이나, 산과 들을 우리가 그저 평화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살아있는 동시에 우리와 먹이의 사슬로 매여 있지 않기 때문이지. 메뚜기도 마찬가지란다. 일부 지방에서야 메뚜기가 벼를 먹고 사람이 메뚜기를 먹으니 문제가 되겠지만 우린 서로 먹이로 얽혀있지 않지 않느냐. 서로 바라보며 평화로워도 좋으면 참 좋을 듯싶더구나.”

“알듯 말 듯 하소.”

할아버지는 그때 생명을 앗아가는 데 있어서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살아가기 위해서 이유가 필요한 만큼, 삶을 앗기 위해서도 이유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되도록 많은 살아가는 것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은 깊게 새겼다. 친구가 중요하던 어릴 적의 시기였다. 나뭇가지와 들새들과도 친구가 될 수만 있다면 되고 싶은 어린 나날들이었고, 더 많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던 섬의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먹지 않을 것이면 죽이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그 뒤로 나는 살아있는 모든 것과 선의의 관계를 맺으려고 애썼고 나 나름의 방식대로 성공했다. 그래서 나는 폭풍이 익어 아침으로 빚어진 그날에 메뚜기 들판을 걸으며 불쾌감이나 살의를 느끼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 짜증이 나거나 문득 눈을 돌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은 누구라도 친구가 들판에서 짝짓기를 하다가 날아다닌다면 들법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붉은 해변가는 조용했다. 아직 시간이 이르기도 했지만 이쪽 해변은 본디 사람들이 나올 일이 거의 없는 거친 해변이기도 했다. 마을에서 가까운 선녀 해변이나 목기미 해변은 물이 맑고 파도가 잔잔하여 산책을 하기 좋은 곳이었고, 각종 물고기나 조개를 주우러 주민들도 자주 방문했다. 하지만 붉은 해변은 앞바다에서 해류가 부딪히는지 파도도 거센 데다가 표류물이 많아서 드세고 황량한 느낌이 드는 곳이라 사람들이 찾을 이유가 없었다. 마을에서 가까운 두 해변은 수줍고 해맑은 아가씨 같았다면 붉은 해변은 나이가 많은 노파 같은 바다였던 셈이다. 하지만 마을에서도 깊이 있고 신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젊은 아가씨들이 아니라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었다. 화려하고 매력적인 아가씨들의 미소에 어울려 잡담과 시내에 대한 동경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붉은 해변에서 비밀과 마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 더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앞에 앉아서 전래동화를 듣는 심정으로 붉은 해변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다른 해변가와는 달리 붉은 해변은 양끝이 해안 절벽으로 막혀 있었다.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기암괴석들을 밟다 보면 발이 아픈 것은 물론이고 외로움과 두려움마저도 찾아들곤 했다. 나는 그 감정들을 잔류물이라고 여기며 그 사이에서 설렘을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잔류물은 바다가 퍼 나르는 것이라 퍼내도 퍼내도 끊임없이 쌓여만 가고 있었다.

다른 해변들보다 좁다고는 해도 붉은 해변은 열두 살 꼬마가 혼자 뒤지기엔 끔찍하게 넓은 곳이었다. 더군다나 어제의 폭풍은 기념비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산이 울리고 바다가 포효하는 괴수들의 다툼 속에서 그간 듣도 보도 못한 물건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해변에 가득히 밀려 나와 있었다. 산더미 같은 잡동사니들이 빚은 미로 속에는 물론 바닷속에서 끌려 나온 쓸 만한 보물 하나쯤은 잠자고 있을 테지만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영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죽은 물개 사체 앞에서 묵념하고 상어의 이빨을 주워 들었다. 오래된 잠수부 헬멧은 주워서 시내 골동품 상점에 팔면 그래도 돈이 좀 될 것 같기도 했지만 들고 마을로 돌아가기엔 너무 무거웠다. 바다 밑바닥을 구르며 맨질맨질해진 유리조각들은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났고, 거대한 소라와 고둥 껍질들은 웅웅 거리며 그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작은 해변가에는 이미 마법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와 있었다.

잠수함의 일부였을 작은 금속 조각들과 세월에 마모된 철 깡통 들을 걷어차면 그 밑에서 손톱만한 작은 소라게들이 꼼지락거리며 아침을 맞았다. 소라게들은 먹을 것을 찾아 각자의 보물더미 속으로 모험을 떠났고, 나는 그들을 보며 내 삶과 그들의 삶을 비교하여 반추했다. 나의 아침과 그들의 아침은 다를 바가 없었다. 소라게들이 그들만의 보물을 찾듯, 나 역시 나만의 보물을 찾아 한없는 쓰레기의 산을 헤매었다. 그곳은 매 순간 이야기가 바뀌는 장터였으며 잊힌 모든 것들의 역사가 되살아나는 박물관이었다. 나는 매 순간 이야기로 뛰어들 듯이 해변가의 고물 사이로 잠수해 들어갔다.

내가 찾던 것을 마침내 찾아낸 것은 주먹만한 소라 두 개의 빛깔을 비교하다가 내려놓았을 무렵이었다. 비록 내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나 자신도 확실히 몰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만났을 때 이것이야 말로 그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삐쭉빼쭉한 바위 밑동에 걸려서 옴싹 달싹도 못하고 있었다. 파도가 간지럽힐 때마다 발이라도 달린 마냥 덜썩이기는 했지만, 워낙 무거운지라 어디 도망가지는 못하는 듯했다. 아주 멀리서 보아도 그것은 이 해변에 쌓인 다른 물건들과는 태생적으로 달라 보였고,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나의 마법을 마주했다.

그것은 고풍스럽고 정교한 원목 상자였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금속 상감 무늬가 표면을 수놓았고, 조가비와 새끼 굴들이 표면에 다닥다닥 붙어있기는 했지만 꽉 물린 상자의 입은 내부의 물건은 무사할 것을 보증했다. 대합처럼 꽉 물린 상자의 입은 백색의 사자 모양의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는데, 이 자물쇠는 금속공예에 관해서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바다를 머금으며 풍파 된 상자의 다른 부분들과는 다르게 자물쇠는 녹이나 따개비의 흔적 하나 없이 은은한 우윳빛으로 빛났다. 나는 상자를 꼼꼼히 살펴본 뒤에 이 우윳빛 금속이 덩굴모양의 얇은 상감 무늬로 상자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그 덕분에 상자가 바닷속에서도 형태를 유지한 채 그대로 일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것은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고, 마법을 감추고 있는 상자였던 셈이다!

그동안 마을에 비싼 귀금속을 해변가에서 주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옆집 순이나 뒷집 장씨네 큰 딸이 금이나 은을 주운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게 바다 밑바닥에서 뒹굴다 해변으로 밀려 나온 귀금속들은 얼룩덜룩하고 누리끼리한 색깔이었다. 제아무리 영롱한 순은이나 불변한다는 순금마저도 바닷속에서 별빛이나 햇살 같은 광채를 유지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나는 해변가에서 발견되는 것들은 아무리 귀한 것일지라도 빛이 바래고 누리끼리해진다는 사실을 고이 마음에 새겨놓았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빛나는 우윳빛 금속은 상자 자체가 따개비와 굴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정도로 물속에 오래 잠겨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색이나 광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었다. 그 순간 나는 이것이 마법에 걸린 은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상자가 이 정도로 멋지다면 안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이 되었던지 더 대단할 것은 분명했다. 태풍을 잠재우는 피리나 투명해지게 해주는 요술 망토의 꿈을 꾸며 나는 설렘의 손길로 상자에 닿았다. 바위 아래서 상자를 꺼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어젯밤에 쓸려온 것이 분명했는지 상자는 모래에 깊게 묻혀있지도 않았고 아주 무겁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상자를 여는 것은 꽤나 까다로운 일이 되었다.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고, 애당초 자물쇠는 희한하게도 열쇠 구멍조차 나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짝이 맞는 열쇠가 가까이 있으면 사자가 입을 벌려서 열쇠 구멍을 보여주는 구조인 것 같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도통 도움이 안 되는 구조일 뿐이었다. 나는 작은 은빛 열쇠가 망망대해 그 어디쯤 가라앉아 있을지를 상상하다가 해일 같은 절망을 잠시 맛보아야만 했다.

하지만 열쇠로 여는 방법을 제외한다면 상자를 열 방법은 영 마뜩잖아 보였다. 힘으로 자물쇠를 따거나 원시인처럼 돌도끼를 휘둘러 이 아름다운 상자를 깨먹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초록색 괴물처럼 손으로 뜯어내거나 전설적인 도둑들처럼 옷핀으로 여는 것 역시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해법을 찾아서 해변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나는 아까 뒤적거리던 고물들 사이에서 오래된 광선검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야 말았다. 수명이 다한 광선검 따위야 일 년에 세네 개는 주워올 수 있을 만큼 흔한 것이기는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천금처럼 소중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상자를 끌어안고 한달음에 잠수함 조각들 사이로 잠수해 들어갔다. 아까 대충 지나치다가 집어던진 광선검만 해도 두세 개였는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단 한 개도 보이질 않았다. 나는 인내심을 시험한다고 생각하며 돌멩이 하나하나, 플라스틱 쓰레기 하나하나를 모두 들춰보았고, 결국 해가 중천에 뜰 때쯤 되어서야 오래된 페인트 통 안에서 녹슬고 있던 낡은 광선검 한 자루를 찾을 수 있었다.

“켜질까? 켜지겠지? 켜져라! 켜져라!”

낡은 광선검은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리더니 완전히 켜지지는 않고 1초 정도 깜빡거리다가 꺼져버렸다. 마치 오래된 트랙터에 시동이 걸리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었지만 내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좋았어!”

탄성을 내지르며 나는 조심스러운 각도로 광선검 손잡이를 자물쇠에 가져다 대었다. 혹시라도 광선검신이 상자를 꿰뚫어 내용물에 손상을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결정한 각도였다. 상자도, 내용물도, 내 발가락도 혹시나 다칠 일이 없는지 두 번 세 번 점검한 뒤에 나는 마침내 광선검의 시동 단추를 눌렀다. 곧 먼지 쌓인 구형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광선검이 부우우웅하며 켜졌다. 그리고 그 순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광선검에서 뻗어 나온 초록빛 광선은 은색 사자에 사정없이 부딪혔다. 하지만 내 의도대로 자물쇠를 꿰뚫는 대신 그것은 잠시 머뭇거리는 것만 같았다. 마치 과열이라도 되듯 사자가 달아오르는 순간, 사자는 녹색의 빛을 삼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사자가 입을 벌리는 모습에 놀라서 하마터면 간신히 켠 광선검을 떨어트릴 뻔했다.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마냥 사자는 크게 입을 벌리고 목구멍으로 빛을 빨아들였다. 초록색으로 일렁이며 움직이는 사자는 마치 이 세계의 생명체가 아닌 것만 같았다. 한순간 세상 모든 것이 밝은 빛으로 물들었고, 곧 광선검은 지지직하는 소리를 내며 수명을 다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고장나버린 광선검을 집어던지고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자물쇠는 잘린 것이 아니라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몹시 뜨거워 보였기 때문에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광선검의 검신을 흡수하는 재질이라니! 이 상자는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 분명했다. 사자의 갈기 사이로 아른거리는 초록빛 열기는 대단히 신비해 보였다. 바닷바람을 충분히 맞은 사자가 원래의 은빛으로 돌아왔을 때에서야 나는 상자에 손을 대볼 수 있었고, 놀랍게도 자물쇠는 전혀 고장 나지는 않았지만 열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원리에 큰 의문을 갖기보단 횡재에 감탄하며 상자를 열어젖혔다.

상자 안은 붉은 원단과 검은 목재로 고급스러운 마감이 되어있었고, 그 안에는 처음 보는 네모난 기계가 정성스럽게 담겨 있었다. 작고 투명한 눈알과 조심스럽게 각진 몸체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기계였다. 나는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이 기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고, 그래서 한달음에 내달려 내 모든 의문의 정답을 가지고 있는 현자에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할배요! 할배요!”

할아버지는 늘 앉아서 책을 읽으시던 평상에서 일어나셔서 꾸짖음과 언짢음으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이더냐!”

“이거 좀 보소. 할배 말이 맞았다 아임미꺼. 폭풍에 뭐가 쓸려 나왔는지 함 보시라요. 내는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좋은 거 같다 아임미까.”

할아버지께서는 안경을 올려 쓰시고 상자 안의 물건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셨다. 내 손길에는 조용하던 작은 네모난 기계는 할아버지께서 몇 가지 버튼을 누르시자 열리고, 닫히고, 늘어나고, 줄어들었다. 할아버지는 이 물건이 무엇인지 확실히 아시는 것 같았고, 나는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할아버지를 닦달하고 말았다.

“제 말 맞지예? 마법 물건 이지예? 근디 뭐하는 물건임미꺼?”

할아버지께서는 상자를 내게 돌려주시며 말했다.

“이건 카메라다 이눔아. 그것도 아주 비싸고 귀한 카메라인데 잘도 주워왔구나.”

“카메라예? 그게 뭐시당가?”

“카메라는.. 음.. 사진을 찍는 기계란다. 너 옆동네 조씨 아저씨가 그림 그리는 거 봤지? 사람 세워놓고 종이에다가 똑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느냐. 카메라는 그런 그림을 여기 버튼만 누르면 순식간에 그려준단다. 사진을 찍는다고도 하지.”

“오! 그럼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주는 마법 기계인 거구만요!”

“그래 이눔아. 정말 좋은 카메라들은 거장의 손에 들리면 사물의 영혼이나 본질,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운명마저도 찍어낸다고들 하더구나.”

“와. 영혼까지 그려내면 마법 맞네예. 그럼 찍힌 영혼은 제 소유가 되는 거 아님미꺼?”

나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해주셨다.

“어찌 보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구나. 보고 담은 것을 소유한다니 이 카메라와는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할배 그게 무슨 말임미꺼?”

“이건 카메라 중에서도 가장 희귀하고 비싸다는 ‘오스카 바르낙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카메라란다. 흔히들 ‘꿈의 카메라’라고도 부르지. 세상에 몇 대 남아있지 않다고 하던데 네놈이 큰 횡재를 한 셈이란다.”

“워매? 횡재 예? 비싼 거란 말입제요? 얼마맹키론 비싸다 말입니꺼?”

“글쎄다 엔간한 집 몇 채나 비행선보다는 비쌀 거라는 말 밖에는 나도 할 말이 없구나.”

그 말에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경악하고 말았다.

“아니 세상에 고깟 그림 그리는 기계가 뭐라고 그리 비싸단 말임미꺼!”

할아버지는 내 경악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들려주셨다. 이럴 때면 할아버지는 반지의 수호자나 흰색의 대마법사처럼 신비로워지는 경향이 있으셨다. 할아버지의 진지한 표정에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오스카 바르넋의 마지막 작품은 단순히 그림을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란다. 너는 혹시 꿈을 찍는 기계에 대한 전설을 들어본 적이 없느냐? 오스카 바르넋 카메라는 꿈을 찍고 소유하게 해주는 마법의 기계로 명성이 자자했단다. 카메라를 손에 쥔 사람이 꾸는 꿈과 추구하는 욕망을 화폭 위에 담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기계인 것이지. 부유선을 찍으면 부유선을 갖게 되고 황금 나침반을 찍으면 순금으로 이루어진 무거운 나침반이 기어코 주머니에 들어오는 놀라운 마법이 걸려있단다.”

나는 그 위대한 마법의 이야기를 들으며 되려 겁에 질리고 말았다.

“아니 세상에 그렇게 무서운 물건이 있단 말씀이십미꺼? 그라믄 그걸로 사람을 찍으면 워찌 된담 말임미꺼?”

영혼 없는 꼭두각시나 반송장이 나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는 상상을 하며 공포에 질린 나는 저 희귀한 마법의 기계를 어떻게 불태워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하고 말았다. 할아버지께서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시다가 말씀하셨다.

“글쎄다. 사람을 찍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워낙에 희귀한 기계이기도 하고, 가졌던 사람들은 꽁꽁 감춰놓기만 하는지라 알려진 바가 많이 없거든. 이 녀석도 보아하니 바다에 꽤 오래 가라앉아 있었던 모양인데, 이젠 아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게다.”

“워매 할배요 그럼 이 이 무시무시한 물건을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임미꺼.. 지가 자다가 툭 쳐서 사진이라도 찍히면 영혼이 사라지는 것 아임미까..”

겁에 질린 내 투정에 할아버지께서는 쿡쿡 웃으시며 화답하셨다.

“뭐 그야 한 번 실험해보면 될 일이지 않느냐! 자, 어디 보자, 옳지. 저 메뚜기를 한 번 찍어 볼까나!”

“할배요! 안된다요! 메뚜기 귀신 붙는다요!”

할아버지께서는 내 비명을 가볍게 무시하고 놀랍도록 민첩한 동작으로 ‘찰칵’ 소리와 함께 눈 앞의 메뚜기를 찍어버리셨다. 나로선 만류할 새도 없었거니와, 사실 무얼 어떻게 만류해야 사진이 찍히지 않는지도 알 수가 없어서 (그리고 행여나 내 영혼이 사진에 갇힐까 봐 몸이 굳어서) 그대로 지켜보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태도로 햇살을 즐기던 그 메뚜기는 졸지에 봉변을 당한 셈이다. 나는 졸지에 할아버지의 소유가 된 이 마법 메뚜기에게 경어체를 써야 할지 반말을 써야 할지 고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자 할아버지께서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터트리셨다.

“이 눔아! 메뚜기 귀신이 어디 있더냐! 깜짝 놀랐지? 너무 겁먹지 말거라. 이 카메라는 처음 만들어질 때 넣어진 24장의 필름이 아니면 그 마법이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단다. 딱 스물네 번만 마법을 쓸 수 있는 셈이지. 여기를 보거라. 화살표가 0을 가리키고 있지?”

나는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따라 께름칙한 표정으로 사진기의 상단을 쳐다보았고, 화살표가 0과 1 사이의 0.3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숫자가 아마 필름을 카운팅 해주는 것일 게다. 0이니까 필름이 다 떨어졌다는 소리일 테지. 아마 마법이 다 떨어진지는 오래된 것 같구나. 아마 바다에 가라앉기 한 참 전부터 마법이 다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을 테지. 뭐 그래도 시내에 가지고 나가면 진귀한 골동품 취급하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값을 받기야 할 테지만, 사진을 찍어서 갖고 싶은 걸 갖지는 못할 게야. 옆집 순이 못 찍어서 아쉽지?”

나는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할배요! 순이라니예! 그 무슨 끔찍한 소리를 하소! 내가 뭔하러 순이를 찍는단 말입니꺼!”

“아니면 아닌 거지 뭘 또 그리 성을 내고 그러느냐? 안 그래도 내일쯤 시내에 나갈 생각이었으니 나간 김에 골동품 서 씨에게 팔아 치우자꾸나. 내년에 너 학비 낼 생각에 골치 아팠는데 그래도 지 복은 지가 주워오니 참으로 다행인 일 인지고.”

나로서도 비싸고 고풍스러운 장난감보다는 학교를 가는 것이 더 마법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시내를 나가는 것은 꽤 기대에 찬 일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우리 조손은 함께 바닷가에서 주운 횡재에 오후 내내 희희낙락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나도 그 뒤에 어떤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 식탁을 정리할 무렵, 바깥에서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가 배탈이라도 난 것처럼 낮게 꾸르릉거리고 산맥이 낮게 속삭이는 것 같은 그 소리에 할아버지께서는 창문을 살짝 열고 바람의 방향을 살피셨다. 작은 창문 틈새 사이로 새어오는 바람소리는 상고시대 거인들의 발자국 소리이자 나무정령들의 비명처럼 들렸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은 긴 밤이 될 것 같구나.”

그리고 할아버지의 예언은 어둠이 채 굳어져 밤으로 익기도 전에 무시무시한 형태로 실현되었다.

괴수들은 산등성이를 판자 삼아 널을 뛰었다. 어제의 전설적인 괴물들보다 더 위대해져야만 하는 숙명이라도 있다는 듯이, 그것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사납고 거칠게 성큼성큼 세상을 헤집어 놓았다. 바다는 집채만한 파도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어찌나 큰 비명인지 창틀을 너머 서까래와 대들보까지 진동을 해댈 지경이었다. 고래나 상어까지 뭍으로 튕겨져 나올 듯한 거센 용오름이 산맥의 뿌리까지 드러낼 폭우와 어울려 함께 춤을 추었다. 울부짖음과 할큄이 가득한 그 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내년의 학비가 되어줄 고귀한 골동품 상자를 품에 꼭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뇌신의 한숨이 박살난 하늘을 수놓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의 숨결이 연달아 내리쳤다. 창가에 걸어놓은 꿈그물은 뇌성의 숨결 속에서 악령의 그림자가 되어 천장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나는 두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섬멸의 빛 뒤에는 세상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날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손을 들어 귀를 막았기에 나는 품속에서 상자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하늘이 굉음으로 찢어지는 그 순간, 상자는 바닥으로 떨어져 맥없이 열렸다.

카메라가 입 벌린 상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구름 속에서 튀어나온 빛의 나무가 바다를 향해 거꾸로 내리 꽂혔다. 나는 눈이 멀 것 같은 밝은 빛 속에서 카메라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천천히 보았다. 느리게, 더 느리게 떨어지던 카메라는 바닥에 부딪혀, 튀겨서, 살짝 튀어올라, 다시 떨어지며, 바닥에 내려앉아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멈춰있던 심장박동처럼 카메라의 시곗바늘이 한 박자 움직였다. 딸깍. 움직인 시곗바늘은 0에서, 조금 옆으로, 무한대에 가깝게 이동하여, 1로 바뀌었다. 멈춰있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던 카메라는 한 번의 마법을 잉태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두 귀를 막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나는 바닥에 엉금엉금 기어가 카메라를 보았다. 카메라의 남은 장수는 이제 또렷하게 필름이 1장 남았다는 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서운 사실은 나를 온통 두려움 속에 가두어 놓았다. 바깥을 온통 파괴하는 천둥과 번개와 폭우보다도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을 것을 약속하는 그 숫자 1의 의미였다. 나는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아침에 되자 할아버지께서는 방문을 벌컥 여셨다.

“이눔아 일어나거라! 날 개었다! 시내 나가야지!”

비는 그쳤지만 폭폭 뒤의 싸늘함과 빗방울들은 아침의 의미와 함께 내 이마를 강타했다. 나는 모든 것이 혹여라도 꿈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상자부터 쳐다보았다. 그리고 카메라는 여전히 어젯밤과 똑같이 숫자 1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배요”

“이눔아 어서 일어나서 준비하래도! 30분 뒤에 차 들어온단 말이다!”

그 말과 함께 할아버지는 부뚜막 너머로 사라져 버리셨다. 두 배로 울고 싶어지는 기분을 느끼며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속옷과 겉옷을 챙겨 입었을 때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 할아버지께서 다시 돌아오신 줄 알고 사진기 얘기를 털어놓으려던 나는 고개를 빼꼼 들이민 순이의 얼굴에 당혹을 느껴야만 했다. 순이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니 시내 간대매?”

“아이 씨 깜짝이야. 니는 뭔데 남의 방문을 막 그래 열어제끼고 그런디야.”

“할배야가 니 시내 간다고 부탁할 거 있으면 하라고 하셨데이. 나 뭐 좀 사다 줄 수 있나.”

순이는 그 뽀얀 얼굴을 방문 너머로 들이밀며 과장된 착한 표정을 지었다. 어릴 때만 해도 나랑 똑같이 주근깨가 가득한 말괄량이였던 옆집 귀염둥이 순이는 요 몇 년 새에 경천동지 할 변화를 겪고 있었다. 여드름이나 잡티 하나 없이 맑은 순이의 얼굴과 어느새 도담스러워진 가슴은 볼 때마다 내 기분을 참 이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로선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아직 특정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몇 년간 그래 왔듯 애써 감추며 대답했다.

“치운나. 예쁘지도 않은 얼굴 어딜 자꾸 들이밀고 그런디야. 못생긴 얼굴 갖다 치우면 사다 줄게. 뭐 필요하길래 그라는데.”

“까무죄죄한 니 얼굴보단 그래도 내 상판때기가 볼만하지 않나. 화장품 사주라 화장품. 진주로 만든 기초화장품이가 그렇게 인기랜다 요새. 하나만 갖다 주면 내가 니 좋아하는 마까롱 만들어주께.”

“시내 간 김에 마까롱 사먹으믄 되는디 마까롱은 뭔 마까롱이래. 글고 니는 피부도 하얀 게 뭔 화장품이고.”

“아 그라지 말구. 내 한 번만 부탁한다. 내 소원이다 소원.”

“에휴. 시끄럽다. 조개 구슬 들어간 거면 되는 거지? 뭐튼 내 보이면 사다 줄게 그럼.”

“와아! 최고다 니가! 근데 니 무슨 일 있나? 오늘은 왜 이리 고분고분하지.”

나는 순이에게 카메라 얘기를 털어놓을까 하다가 그것이 백해무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숨만 내쉬었다. 순이는 그 귀여운 눈을 빛내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나는 얼른 순이를 쫓아냈다.

“됐다! 맘 바뀌기 전에 언능 나간나. 자꾸 거깃음 진주 대신 달팽이 크림 사온다?”

순이는 앙증맞게 혀를 쏙 내밀더니 배시시 웃으며 사라졌다. 순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달큰한 향기만이 찔끔 남아있었다.

순이의 갑작스러운 침입은 밤새 무거웠던 기분을 조금 나아지게는 해주었지만 그렇다고 고민거리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나는 주섬주섬 카메라와 상자를 챙겨서 할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마당으로 나갔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마음은 편할 수 없었던 하루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내로 나가는 내내 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점은 할아버지께서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내가 조용하니 왜 그런지 물어보실 법도 한데 할아버지께서는 아무것도 묻지도, 말해주시지도 않으셨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수없이 많은 상상을 했다. 무엇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가져야 할까. 길가에는 새, 벼, 들판, 산, 시냇물, 괴물같이 끔찍한 물고기들, 자동차, 버스, 비행선, 같은 것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내가 갖고 싶은 것도 담고 싶은 것도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것들로 가득한 세상 속이었지만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묘한 외로움을 자극했다.

도시로 들어와서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도시에는 물건의 종류가 훨씬 많았고 마을이나 도로 위 보다 휘황찬란하기는 했다. 보석이나 최신형 전자기기는 진열장에 줄 세워져 그 영롱함과 자태를 뽐내었고, 신상의 옷이나 오래된 고서들, 값비싼 조립식 장난감과 군침 도는 먹거리들이 도처에서 유혹과 선망의 덫을 놓았다. 하지만 그토록 화려하고 잘 꾸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갖는 것은 행복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이상하리만큼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나는 그 모든 아름다운 물건들을 가져보는 상상을 했고, 매번 그것들이 불편하게 주렁주렁 달려있다는 느낌으로 상상을 끝내야만 했다. 이미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으며 어디든 쏘아 다닐 다리와 보고 느끼고 마음에 담아낼 눈이 있는데 그 어떤 물건이라도 가져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 물건들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란 비단 대단히 한정적일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정지 어버리는 것이기도 했다. 가지만 가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는 이 기묘한 상관성은 처음에는 신기했으나 곧 답답해졌고, 종국에는 숨이 턱 막히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물질의 풍요가 가져다주는 불안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막막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원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자 나는 되려 아무것도 원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던 셈이다. 답답함이 탑처럼 쌓여 발작 비슷한 것이 터져 나오기 직전쯤, 내 마음속에서는 과거의 욕망 하나와 그 욕망의 결과가 떠올랐다.

몇 년쯤 어느 여름, 정말 단단한 나무 지팡이가 가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옆동네의 얄미운 훈이가 여름 내내 자신의 목검을 자랑하고 다녔던 탓에 생긴 욕망이었다. 훈이의 까맣게 반질거리는 흑단나무 목검은 바다를 잔뜩 머금은 유목으로 만들어진 멋진 물건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강도 역시 쇠몽둥이에 비견될만한 대단한 것이었다. 그 목검으로 멧돼지도 잡아보았다는 훈이의 허풍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목검의 자태만큼은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신병이기 취급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목검을 한 번 만져본 뒤로 나는 밤새도록 끙끙 앓아야만 했다. 그런 목검을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은 마치 배나무에 생긴 흰개미처럼 마음을 온통 갉아먹고 있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나무 몽둥이 좀 잡아본 말괄량이라면 누구나 꿈꿀법한 완벽한 몽둥이였고, 그런 멋진 것이 내가 아니라 얄미운 훈이의 손에 들려있다는 사실은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그런 전설의 무구는 자격이 있는 영웅에게만 주어져야 마땅했는데 훈이가 그런 자격이 없다는 것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불과 작년만 해도 훈이는 바지에 오줌을 싸서 소금을 얻으러 돌아다니던 겁쟁이였고, 나는 그 사실을 짓궂은 마을 아이들에게서부터 비밀로 감춰준 훈이의 은인이자 영웅이었다. 하지만 목검을 얻은 뒤의 훈이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기라도 했는지 자신을 위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전설의 용사 취급을 하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그 해 여름, 온갖 해변과 산속을 다 헤집고 돌아다녔다. 악을 무찌르고 해변의 괴물들을 퇴치하기 위해서, 산맥의 영웅들과 햇살 사이의 천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찾은 것뿐만이 아니라, 얄미운 훈이의 콧대를 눌러주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깎아지는 듯한 절벽들과 썰물 때만 드러나는 비밀스러운 물길들을 탐닉하며 나는 그 해 여름 수백수천 개의 나뭇가지들을 만나보았다. 나뭇가지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자태를 가지고 내게 다가왔지만, 나는 정말로 가장 뛰어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마주칠 때 까지는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햇살이 비치는 눈부신 오후에 나는 썰물 때에만 들어갈 수 있는 작고 비밀스러운 무인도 해변 위에서 마침내 훈이의 흑단 목검에 비견될만한 백색 유목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백색 유목은 파도와 거품을 머금고 미의 여신처럼 해변을 따라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나무를 발견한 순간 나는 갈매기들도 놀랄만한 거대한 탄성을 내질렀고, 그 뒤로 이틀 동안 침식을 잊고 그것을 다듬어 위대한 대현자의 지팡이로 빚어내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그 위대한 지팡이는 훈이의 목검과 부딪혔을 때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고 (되려 훈이의 목검이 자그마한 자국이 남았다) 철물점 고씨 아저씨가 손도끼로 찍어보았을 때에도 멀쩡하여 마을 아이들의 새로운 선망의 대상이 되어주었다. 물론 지금은 내 방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백색 유목을 발견하고 다듬던 순간은 내 삶에서도 손꼽힐만한 거대한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찰나의 감정일 뿐이었다. 욕망이 충족되는 짧은 순간에만 머무르는 환희는 허망함만을 잔열처럼 남겼다. 지팡이가 완성된 뒤에는 되려 별다른 즐거움이 남지 않았다. 훈이의 목검을 제압하여 그 얄미운 표정을 지워지게 만들었을 때에도, 마을 아이들이 한 번만 지팡이를 만져봐도 되냐고 사정하여 살짝 건네어줬을 때에도 즐거움이나 우월함이 샘솟지는 않았다. 다만 허망함만이 짙어져서 결국 방구석에 지팡이를 고이 모셔두게 되었을 뿐이다.

그 뒤로 나는 가진 뒤의 허망함을 알았다. 그것은 그 여름에 내게 건네어진 가장 귀중한 깨달음이었다. 갖고 싶어 하면 할수록 가진 뒤의 허망은 커지기만 했다. 비싼 자동차도, 최신형 광선검과 세월을 뛰어넘을 목검마저도, 갖기 전에는 선망이기에 불안이었던 그 모든 것들은 가지고 난 뒤에는 허망함이 될 뿐이었다. 마법 사진기로 무엇을 찍어도 그 사실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나는 끝없는 욕망과 물질의 나열 속에서 거추장스러워하며 한정지 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욕망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라 나는 차마 카메라를 들어 올릴 엄두조차도 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나는 할아버지와 잠시 헤어져 도시를 쏘아 다녔다. 그리고 돌아다니면 돌아다닐수록 회색빛 도시에는 찍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새삼 실감했다. 커다란 빌딩을 찍으면 대대손손 먹고 살 원천이 생기기야 할 테지만, 또 그것은 이 보기 싫은 도시와 빌딩에 내가 갇혀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값비싼 귀금속을 잔뜩 찍으면 평생 돈 걱정은 안 해도 될 테지만, 그것을 도둑맞을까 봐 두려워하고 관리하고 판매하기 위해서 노력에 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로선 돈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는 대신 도둑과 감가상각과 관리와 판매, 사기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해지는 것이 과연 올바른 교환이기는 할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화장품 가게 앞에서는 순이 생각이 나서 잠시 사진기를 꼼지락거리기는 했다. 정 찍을 것이 없으면 순이 줄 화장품이라도 아주 비싼 녀석으로 찍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순이의 미모는 요새 경천동지 할 지경으로 빼어나지고 있었고, 비싼 화장품을 구해다 주면 예쁜 순이에게 환심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 비싼 선물을 주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이 될지 알 수가 없기에 망설였다. 어차피 순이는 굳이 값비싼 화장품을 쓰지 않아도 예쁜 데다가 옥 덩어리처럼 빛이 났다. 굳이 고가의 화장품을 준다고 해서 순이의 피부가 확실히 더 좋아지거나 순이와 나의 관계가 더 비옥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반면, 순이의 소비력에 맞지 않는 화장품을 선물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여지는 다분했다. 나는 결국 순이 선물은 용돈을 털어서 구매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할아버지에게 되돌아왔다.

“할배요...”

“왜 그르냐 이눔아.”

“집에 가면 안되겠심까..? 사진기 팔기 싫다 아임까..”

“녀석 참. 그래서 그렇게 아침 고사리처럼 풀 죽어 있는게냐? 니가 팔기 싫으면 팔지 말아야지. 바다에서 온 것이니 바다로 되돌려주어도 이 할아버지는 아무말 않는다.”

“고래도 날 잡고 도시까지 오지 않았심니꺼..”

“거 여기 오는데 몇 시간이나 걸린다고 그러느냐. 내일 날 좋고 마음 바뀌면 내일 또 오면 되지. 무언갈 살지 말지, 팔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니 그걸 겪었다면 되었다. 집에 가자꾸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할아버지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하지만 그 주제는 카메라와 돈이나 마법과 일상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 대신 할아버지께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서 기묘하고 신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저기서 빙빙 도는 새가 보이느냐? 저게 바로 해동청이란다. 우리 마을 주변에서 가장 빠른 생명체이기도 하지만 온 세상에서도 손꼽히게 빠른 새지. 오래전에는 해동청을 연구해서 비행선을 만들기도 했는데, 소리 그 자체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고 한단다.
“워매, 해동청이란 새는 왜 그리 빠르답미꺼?”

“잘 보거라. 운이 좋으면 눈에 담을 수도 있을 게야.”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먼 하늘의 점이었던 해동청은 어느 순간 하늘을 수직으로 가르는 선이 되었다. 파란 하늘이 검은 실선으로 갈라지는 모습은 경탄스러운 것이라 나도 모르게 경탄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오아!”

“저것이 해동청이 사냥하는 방식이란다. 하늘 꼭대기에서 날벼락처럼 내리꽃히지. 해동청이 주로 사냥해서 먹이로 삼는 들쥐나 생쥐들은 영리하고 잽싸게 그지없는 녀석들이라 저렇게 먼 거리에서 빠르게 떨어지지 않으면 잡을 수가 없단다.”

“으마으마 하구만유.”

“저기 저쪽에는 연못에는 원앙이 있구나! 저것도 잘 보거라!”

“으데요! 으데요!”

할아버지께서는 원앙과 여우와 장수풍뎅이와 하늘을 먹고 산다는 붕새와 생에 딱 한 번만 결혼한다는 늑대들과 어른이 되면 뇌를 소화시켜버린다는 말미잘과 불가사리들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들은 마치 마법처럼 신비했고 불경처럼 엄숙했지만, 동시에 모두 사실인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반신반의하며 믿지 않으려고 하면 할아버지께서는 마치 해동청의 사냥을 보여주셨던 것과 같이 그들의 행동을 직접 보여주셨다. 나로서는 그 신비한 이야기에 매혹되고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문득, 사진기로 살아있는 생명체를 찍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사실 내가 진정으로 갖고 싶어 하는 것들은 물질이나 물건이 아닌 능력에 속해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이는 것의 성질이나 성향마저도 소유할 수 있다면 정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는 셈이다.

해동청의 사냥을 찍으면 해동청처럼 빠르게 날 수 있게 될까. 여우를 찍으면 나도 귀엽고 복슬복슬해지며 애교가 많아질까? 고래를 찍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사자를 찍으면 용기로 가득해지지는 않을까. 혹시라도 할아버지를 찍으면 나도 할아버지처럼 박학다식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때 문득 머릿속에서 순이의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순이를 사진기로 찍는 상상을 했다. 그러자 더 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나는 어느 정도까지의 순이를 갖게 되는 걸까? 입고 있는 옷이나 화장품 정도일까, 아니면 순이가 평생 내 것이 되어 곁에 머무르는 걸까. 사진에 담기는 것이 과연 정지된 그 순간의 겉모습뿐인지 아니면 껍데기 너머의 본질일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 둘이 분리가 가능한 것인지조차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날 밤, 나는 두렵고 기괴한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나는 기어코 순이를 사진기로 찍어내었고, 그 대가로 순이의 맑고 고운 피부를 받았다. 허연 살거죽이 창틀에 나부끼는 것을 본 나는 꿈에서 혼절할 때까지 비명을 질러대었다. 비명에 지쳐 잠에서 깨니 식은땀이 어찌나 많이 낫는지 속옷이고 잠옷이고 몽땅 다 젖어있었다. 창문은 살짝 열려서 하얀 커튼이 나부끼고 있었고, 나는 그 장면에 살거죽이 다시 나부끼기 시작한 줄만 알고 비명을 지를 뻔하고 말았다. 가까스로 비명을 참아낸 뒤에는 억울한 울먹임이 터져 나왔다. 대체 왜 내가 이런 수난을 겪어야 하는지 어린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창문가에서는 폭풍을 닮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지난밤의 여파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는지 밤은 조용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강렬함을 감추고 있었다. 나는 침대 밑에 꽁꽁 감춰놓았던 사진기를 꺼내어 들었다. 할아버지는 바다에서 온 것은 바다로 되돌아가도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이렇게 번뇌와 식은땀으로 가득한 밤들을 보낼 바에야 카메라를 다시 바다로 돌려주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마법의 사진기를 집어 든 채로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대문을 넘어 기어 나왔다.





어른들은 밤에 해변가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끔 놀러 온 관광객들이나 피서객들이 밤에 바닷가에서 술판을 벌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주민들 중에는 그런 정신 나간 행동을 할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밤의 바다는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오늘 밤처럼 비교적 조용하고 잔잔할 때마저도 확실한 일이었다.

밤과 바다가 구분이 가지 않는 암흑 속에서 나는 장송곡 같은 파도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진기를 어디쯤에다가 던져야 파도에 쓸려 내려갈지는 알 수 없었다. 상자는 견고한 만큼 무거웠고, 잘 보내주지 않으면 돌아와 업화를 끼칠 가능성도 충분했다. 나는 내 주변의 그 어떤 사람도 내가 겪은 것 같은 무거운 번뇌를 느끼지 않기를 바란만큼, 보내주는 것에 대해서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춘 채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아무런 빛도 없었기에 아무런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무언가를 가져야 할 필요도 없었다. 철썩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다는 끝없는 어둠과 미지로 땅의 안식에 부딪혀 갔다. 그 부딪힘 속에는 공존이 있고, 뒤섞임이 있으며, 그로 인한 생명과 삶이 있었다. 바다와 해변이 부딪히며 만들어진 포말 속에서는 삶과 죽음의 섞이며 생명의 거품이 잉태되었다. 마치 새끼 거북이 마냥 나는 그 바다를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끝없는 모험과 마법은 이미 내 앞에 펼쳐져있었다. 카메라를 주운 것이 복이라면 그것은 화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것도,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도 다 복이자 화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자체로 모험이자 마법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나는 복이 다가와 화로 변하여 나로 화하는 해변에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바다는 파도로 화하고, 파도는 해변으로 화하며, 땅은 울음소리로 화답하는 그 지점은 카메라와 썩 잘 어울리는 신비한 곳이었다. 철썩철썩 소리를 내는 해변은 끝없이 어둡고 신비한 미지와 부딪히며 엉겨 붙었다. 지금은 모래사장인 이 장소는 동이 트면 물이 들어와 바다로 잠길 것이 분명했다. 밤이 새벽이 되고 아침이 되며 카메라는 다시 무한의 여정을 파도의 결을 따라 시작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돌아올 길을 나아갔다. 발자국은 파랑새가 되고 그레텔의 과자 부스러기가 되었다. 어둠에 물든 마을로부터 나아와 나는 다가오는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그리곤 파도가 빚은 견고한 선 위에 나무로 된 사진기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들려온 철썩이는 소리가 카메라가 낸 마지막 셔터음이었을지 파도소리였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마법은 다시 상자 안에 담겼고, 우리는 모두 영원을 항해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빵가루 같은 발자국을 따라서 바다를 헤어 나왔다.

곧 동이 틀 것 같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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