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단편소설집, 두 번째 이야기 :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두 번째 이야기 :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야 진짜 조까라 그래.”
연주는 격해진 표정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속 시원하게 풀어냈다.
“너 들어가야 하는 날이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잠수 타는 게 말이 돼? 예술하는 게 꼭 벼슬인 줄 아는 양아치 새끼들이 있어. 나가 뒤져야 돼 그런 놈들은.”
보통은 잠자코 들어주기만 하는 편인 예리도 이 순간만큼은 조용히 있지는 않았다.
“나도 연주랑 동의해. 지금 이러는 건 만나는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네가 어떤 스트레스를 받을지, 앞으로 얼마나 괴로울지 조금도 신경을 안 쓴다는 거잖아.”
‘오 씨, 웬일이래 네가 동의를 다 해주고.’ ‘치욕스러우니까 손 치워’ 라며 옥신각신하는 두 오랜 친구들 앞에서 나는 잠시 닥쳐온 비참한 현실을 되돌아보았다. 이제 일주일 뒤인 월요일이면 나는 늦깎이로 생산소에 입소를 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십 대 초에 생산소 과정을 마치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 늦은 입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큰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는 이 순간을 앞두고 한 명뿐인 남자 친구는 며칠 째 연락두절인 상태였다.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내가 들은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게한 말은 이랬다.
“나 진짜 미안한데 다음 주까지는 연락 잘 안 될 수 있어. 최종본 다음 주 전에 제출해야지 출판되는 거거든. 진짜 미안해. 끝나고 바로 연락할게.”
내가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전화는 끊어졌고, 남자 친구에게서는 그 뒤로 문자 한 통이나 목소리 한토막조차도 전해져오질 않았다. 나로서는 친구들이 같이 역정을 내주는 이 상황이 고마우면서도 비참할 수밖에 없을 노릇이었다.
연주는 에스프레소를 소주 들이켜듯이 마시며 제안했다.
“야! 나가자! 오늘은 언니가 사줄게! 먹고 싶은 건 아주 다 말해 그냥! 소주건 보드카건 케익이건 마카롱이건 내가 다 구해다 줄 테니까!”
“이야 연주 멋지다! 연주가 남자 친구가 할 일 다 하네. 연주랑 사귀는 게 낫겠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말을 꺼내놓을 수 있었다.
“연주야 지금 오후 4시밖에 안되었는데... 우리 술 마셔도 괜찮아..? 너흰 내일 출근하지 않니..?”
연주는 에스프레소에 누가 이미 소주라도 타놓았던 것인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오후 4시니까 지금부터 마셔야 내일 출근하지! 지금쯤이면 마카롱 집 다 열었어! 대낮에 마카롱에다 과일 소주 마시면 아주 황홀한 기분이 든다고. 이 언니가 가르쳐줄 테니 따라오너라.”
그들은 거의 끌어올리다시피 나를 의자에서 일으켰고, 그렇게 스물여섯 살의 여름이 불안과 초조함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연주는 마카롱 칵테일집에 앉아 주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기 자신의 생산소 생활 무용담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도깨비 이야기보따리라도 주워왔던 것인지 연주의 생산소 이야기는 정말로 끝이 없었다.
“야 너 그래도 좀 나이 들어서 가니까 대우 좀 받을 거야. 나이랑 관계없이 무조건 입소 순서대로 선임 후임이라고는 해도 갓 스무 살 먹은 꼬맹이들이 이십 대 중반 넘은 언니들을 막대하기는 쉽지 않거든. 나중에는 사회경험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애들이 결국 승리자야. 나도 스물셋에 갔잖냐. 퇴소할 때 되니까 다들 내 앞에서 설설 기었대도?”
“연주야. 퇴소할 때 되면 다들 너보다 계급이 아래니까 당연히 설설 기겠지. 누가 너처럼 흉측하게 생긴 데다가 흉폭하기까지 한 말년한테 시비를 걸겠어.”
“아 씨 그게 아니라! 어쨌든 지금 가서 지내도 잘 지낼 거라고. 거기도 사람 사는 데잖아. 막상 가보면 괜찮아. 약골들이나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거지.”
연주는 3년 전에 제3생산소에 입소해서 2년의 기간을 꽉 채워 두 명의 건강한 사내아이를 무사히 낳고 건강하게 퇴소했었다. 연주가 입소할 때에는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같이 우정여행 겸 송별 여행으로 생산소까지 데려다주었었는데, 연주는 눈물 이나 불안한 태도 한 방울 없이 씩씩하게 생산소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 친구들 사이에서 용기의 표본으로 두고두고 회자되었었다. 그때에는 미처 몰랐지만 그 모습은 실제로 대단한 것이었고, 나는 연주가 또다시 당당하게 퇴소한지도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두려움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만끽하고 있었다.
예리는 조용히 첨언했다.
“첫 아이 낳을 때까지만 조금 힘들어. 그때까지만 버티면 그 뒤에는 여태까지 해온 거 반복이니까 할만할 거야. 그때쯤 너 밑으로 아직 아이 한 명도 못 낳은 후임들이 즐비할 테니 직접 해야 하는 일들도 별로 없을 테고.”
“아 거기다가 너는 여름 입소니까 딱 봄 되면 첫 아이 낳는다고 생각하면 돼! 겨울만 어떻게든 견딘다고 생각해봐! 가을은 이래저래 임신 적응하고 태교 훈련하다 보면 후딱 지나가니까 겨울만 잘 견디면 된다 너 진짜.”
이미 생산소 시절을 거쳐 온 아이들은 모든 것이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이런저런 조언을 건네어 주었다. 하지만 정작 다음 주면 입소하는 내 안에는 무엇도 사소한 일일 수는 없었다. 여태껏 술자리에서 생산소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음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입소를 하게 된 기분은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글로도 적어낼 수 없을 만큼 두렵고 끔찍한 것이었다. 공포와 불안으로 머리가 텅 비는 것 같았지만 아이들은 내가 듣건 말건 계속 떠들었다.
“진짜 힘든 건 산후조리 훈련인데, 매년 봄에 있어. 보통 입소를 늦봄이나 초여름에 많이 하니까 딱 첫 애 낳고 휴가 좀 쓸라치면 훈련이 치고 들어오는 거지. 이때 훈련 잘 통과 못하면 몸 다 망가지니까 조심해야 해. 훈련이 개판이라 여기서 몸 버리면 남은 1년 진짜 고생하거든. 씻지도 못하고 생리대도 배급도 안 나오고 그래서 사후 조리 훈련이라고 농담할 정도야. 그때 몸 사리는 거 진짜 중요하다 너. 생산소에서 몸 다치면 대책이 없어.”
나는 겁을 가득 먹은 채로 물어보았다.
“그거 진짜야? 생산소에서 첫 애 낳거나 훈련받고 나면 몸 많이 망가져?”
예리는 애처롭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열심히 위로를 해주었다.
“다 그런 건 아니야. 관리 잘하면 첫째는 물론 둘째 출산할 때까지도 괜찮을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무사히 낳고 나온다고만 생각해.”
연주는 예리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야 우리 봐봐. 우리도 건강하게 잘 퇴소했잖아. 관리만 잘하면 안 망가져.”
“너네는 그래도 이십 대 초반에 갔잖아. 나보다 몸매도 원래 좋았고. 나처럼 늦게 가서 노산하거나 운동 안 하던 애들은 다 아줌마 되거나 폭삭 늙어서 나온다던데? 요즘엔 생산소 끝내고 복학한 사람들하고는 아줌마들이라고 안 놀아주는 게 대세라던데.. 같이 수업 듣는 복학생 언니도 나보다 한 살 밖에 안 많은데 과 애들이 다 아줌마라고 불러서 엄청 속상하다고 했었어. 나 진짜 어떡해 얘들아?”
연주는 몰상식한 과 아이들에 대해서 저주를 퍼부었고 예리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말했다.
“내 생산소에는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언니가 있었어. 세무사 시험인가 준비하다가 좀 늦게 들어왔는데, 그 언니가 고시생 뺨치게 독한 언니였거든. 진짜 이를 악물고 몸 관리하더라. 진짜 잘 때 빼고는 태교랑 운동만 할 정도였거든. 막 8개월 째에는 배가 산처럼 불렀는데도 맛동산이나 치킨 같은 것을 단 한 번도 안 먹을 정도 였다니까?”
“아니 그게 사람이 가능한 일이야? 30주 차에 야식을 안 먹는다고?”
“내 말이. 진짜 대단한 언니였어. 암튼 그 언니는 첫 아이는 우량아로 낳고, 둘째는 쌍둥이로 낳아서 조기 퇴소했어. 퇴소할 때 까지도 근육량이나 체지방 퍼센타일이 생산소 내에서 제일 좋았고. 배울 점이 많은 언니라 작년 연말에도 잠깐 만났었는데, 여전히 몸매 대단하시더라. 아직도 이십 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만할 정도였어”
우리는 잠시 한 위대한 여성에 대한 경의로 침묵을 형성했다. 하지만 신화는 신화일 뿐, 침묵이 가시자 그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예시로 느껴졌다. 연주도 그 사실을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하라는 건 아니야 쭁. 그냥 그렇게 되려 더 성공해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나중에 복학해서 생길 일들 걱정하지 말고 그냥 지금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해보라구.”
“그래. 복학생 언니 보고 아줌마라고 놀리는 너네 과 애들이 쳐 맞아야 하는 거지. 누구는 생산소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가나. 그리고 그렇게 아줌마니 뭐니 하면서 놀리는 인성 빠개진 년들이 꼭 훈련소 다녀와서 유세 부리더라,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조용히 자기 할 일 잘하는데 말야.”
“그러니까 쭁. 사실 우리가 키울 애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관리까지 해가면서 낳으면 되려 억울할걸.”
나는 예리의 말에 잠자코 동의했다. 예리네 생산소 언니처럼 독하게 할 자신도 없었을뿐더러, 굳이 국가에게 빼앗길 아이를 위해 처절하게 몸 관리를 하고 건강한 아이를 낳으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다. 국가에게 빼앗길 아이를 위해 기를 쓰는 건 비단 사육당하는 가축이나 노예로 전락하는 꼴일 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아기를 빼앗길 때에도 심적으로 가혹한 일이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 낳아낸 아이를 이름도 붙이지 못한 채 빼앗기는 고통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예리는 대충 내 생각을 눈치챈 것 같았다. 예리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적절한 말로 생각 사이에 끼어들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쭁. 되도록 그냥 흘려보내야 해. 이건 정말로 내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야. 조금이라도 괜히 아이에게 애착을 갖거나하면 그때부턴 너만 걷잡을 수 없이 힘들어. 막 ‘내가 왜 끌려와서 이런 짓을 당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질문 속에서 서서히 미쳐가거든. 해결책은 없고, 부당하고 억울한 건 계속 쌓이다 보면 사람이 미칠 수밖에 없어. 막 두 번째 아이까지 잘 출산하고도 탈영하거나, 아이를 나라에 안 주려고 숨기거나 죽이는 사람들까지 있어. 뉴스에 가끔 생산소 사고들 터지는 거 나오잖아. 깊게 생각하면 너도 그 사람들처럼 괴로워만 하다가 미쳐버리게 되는 거야.”
예리의 심각한 말들은 나뿐만이 아니라 연주의 표정도 덩달아 어둡게 만들었다. 연주는 아무래도 자신이 입소한 뒤에 겪었던 안 좋은 일들을 되돌아보는 것 같았다. 연주는 애써 표정을 밝게 만들고 어떻게든 나를 위로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의 밝은 얼굴 위로 잠시나마 드리웠던 흉측한 그림자를 지워낼 수가 없었다.
연주는 애써 표정을 수습하고 내 어깨를 대수롭지 않게 치며 말했다.
“예리 말이 맞아 쭁.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좆같지만 어떡하겠어. 인구절벽이 국가적인 위기라는데, 국민으로서 해야 할 건 해야지.”
그 말이 내 안에서 기폭제가 되었다.
“왜 그래야 하는 건데..”
“뭐라고..?”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거냐고! 이건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이잖아! 이십 대의 꽃다운 여자를 데려다가 2년 동안 강제로 두 명이나 출산시키는 나라가 어딨어! 여자가 개돼지야? 그것도 왜 여자만 잡혀가냐고!”
연주와 예리는 내 갑작스러운 분노와 격한 눈물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그들의 당혹을 보면서도 내 안의 분노와 설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쭁.. 좀만 진정해 봐.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싫어! 나는 가기 싫어! 진짜로 가기 싫다고! 애 둘 낳는 것도 싫고, 그 애를 국가에게 빼앗기는 것도 싫어! 내 몸인데! 내 아이인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이건 진짜로 비윤리적이야.. 비인간적이고 반인권적이고 비상식적이라고! 세상 어느 나라의 여성이 또 이런 일을!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으며 살겠어!”
연주는 합리적인 설득을 시도했으나 설득의 근거도 결과도 영 좋지 못했다.
“야 너무 그러지 마. 우리나라만 그런 거 아니잖아. 중동에 있는 나라들에서도 열여덟 살 넘으면 다들 생산소에 간다구. 일스라엘에서는 심지어 세 명을 낳아야 퇴소인데, 여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낳는다구. 심지어 남성들까지 산후 보조기사로 입소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대잖아. 우리 바로 옆 나라들에서도 애 낳는 거 봐봐. 한 사람이 적게는 다섯 명, 많으면 열두명까지도 낳아서 나라에 바친대잖아. 우리가 안 낳으면 십 년 뒤에는 북국에 인구에서, 경제에서 다 밀려서 흡수통일당하는 거야!”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린데! 그렇다고 해서 개돼지 취급받는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잖아!”
“아 진짜 왜 그래 쭁. 요샌 많이 나아졌다니까. 산후조리 훈련도 강도가 많이 약해졌고 태교도 예전처럼 강압적으로 정신교육당하는 게 아니라 태교 과정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대. 심지어 학점까지 주는 생산소도 있대잖아. 예전에 막 맞아가면서 강제로 임신했던 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거 아니야?”
“쭁, 입소하기 전에 얼마나 두렵고 화날지는 우리도 겪었으니까 잘 알아.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일인지는 우리도 다 헤쳐 나왔으니까 잘 알고 있고. 그래도 나는 네가 잘 견뎌낼 거라고 믿어. 지나고 보면 다 별일 아니야. 응? 울지 마 쭁.”
그래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마카롱 3개와 칵테일 두 잔을 들이켜 버리고 고주망태의 상태로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내 어깨에 숄을 둘러준 뒤, 예리와 연주는 둘이서 조용히 얘기를 나눴다.
술기운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오고 울분은 마음에 불을 지폈지만 눈물은 계속 현실만큼 무거웠다. 계속 눈물이 흘러서 나는 생산소도 의무복역도 없는 꿈의 세상으로 떠나가지 못하고 현실의 지박령이 되었다. 내 귀에 두런두런 얘기하는 연주와 예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불쌍한 쭁. 마음도 약해서 가면 고생 많이 할 텐데. 벌써 너무 힘들어하네.”
“야 근데 그 쳐 죽일 쭁 남자 친구 새끼는 어떻게 해야 하냐? 이럴 때 뒤통수 치는 놈들은 확 거세를 하거나 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애들이 꼭 고무신 거꾸로 신어서 임신 8개월 차에 자살하고 싶게 만들더라고.”
“그러게. 그런 놈이 생산소를 잡혀가야 하는데.”
“하... 진짜 남자 새끼들도 생산소를 가야 하는데. 맨날 이렇게 통수만 치면서 여자만 취업이 더 잘 되느니, 여자만 성적이 잘 나오느니, 여자들끼리만 생산소에서 인맥 쌓아와서 유리천장이 생기느니 갖은 지랄을 다하잖아. 성적 불평등은 무슨. 임신 체험 캠프만 가도 자지러질 쪼다 같은 것들이 말야.”
“걔네 논리가 맨날 그거잖아. 자기네들도 군대 가니까 평등한 거라고, 여자는 군대 안 가니까 생산소 가는 걸로 불평등이다 뭐다 할 자격 없다고 말야.”
“아니 미친 지랄하지 말라고 그래. 그게 말이 돼? 군대는 가고 싶은 사람만 자원해서 가는 거잖아. 생산소는 팔 한 짝이 없든 귀 한 짝이 병신이든 다 잡혀가는 거고. 그리고 군대가 뭐 고귀할 게 있다고 아이 낳는 거랑 동급이라고 비교를 해? 까놓고 말해서 총 들고 전쟁놀이하면서 나라 지킨다고 하는 거랑 사람을 낳아서 미래를 만드는 거랑 비교할 거리는 아니지. 그런 말 하는 새끼들 중 반은 군대 안 간다는 데에 내 자궁을 건다.”
“그딴 거 더러우니까 걸지 마. 근데 자궁 없으면 생산소 안 가지 않아? 내 친구 중에는 작년에 자궁적출 수술 몰래 받고 안 간 애 있는데, 신체검사할 때 축구하다가 파열되었다고 거짓말하고 결국 면제되었다고 하던데 쭁은 그런 거 안되려나.”
“아마 없을걸. 쭁 의외로 건강하기도 하고 겁이 많아서 불법적인 거 못하잖아. 아마 신검에서 이실직고할걸.”
“이라도 빼면 안 되려나. 내 친구 중에는 이빨 8개 뽑은 애도 있는데.”
“아. 나도 걔 알아. 근데 걔도 결국 생산소는 안 갔지만 공익근무요원으로 가지 않았어? 걔 막 3년 동안 임신한 애들 뒤치다꺼리 다하고 화풀이 다 받아주고 개고생 다 하고 전역했는데도 동기들 사이에서는 무시당하는 것 같던데. 생산소도 안 갔다 온 년이라고 말야. 그럴 바에야 나 같으면 그냥 2년 깔끔하게 생산소 하고 오겠다.”
“그래? 그것까진 몰랐네. 뭐 그래도 이 라도 발치해서 생산소 안 가는 게 이득이지. 아무리 무시당하고 욕먹어도 보조요원이 낫다고 생각해.”
“근데 생각해보면 남자들도 공익요원으로는 갈 수 있는 거 아냐? 그건 뭐 자궁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애는 못 낳아도 산후조리보조 같은 건 할 수 있잖아. 왜 여자는 잡혀가는데 남자 새끼들은 혜택만 받지?”
“덜 떨어진 생명체라서 그래. 우리 조상들도 옛말에 ‘남자랑 복어는 삼일에 한 번씩 몽둥이로 때려야 한다’고 했다잖아.”
“아니 미친 북어도 아니고 복어는 왜 때려. 걔네는 화나면 부풀어 오르는 독 있는 물고기 아냐?”
“맞아. 남자도 그 급이라는 거겠지 뭐.”
“어휴. 어떻게 보면 차라리 생산소 들어가서 애 두 명 후딱 낳고 나오거나 거기 눌러앉는 게 나을 수도 있는 것 같아. 거긴 차라리 멍청한 남자 새끼들은 없잖냐. 뒤통수도 안치고.”
그 말에 예리는 진저리가 쳐진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탁자의 진동을 따라 예리 특유의 혐오감을 담은 표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냐. 난 충분히 힘들었어. 그때도 태교 훈련할 때 얼마나 맞았는지 아직도 후유증이 있을 지경이야. 오죽하면 아직도 1년에 3일 가는 예비신부 훈련만 가면 정신병자가 되는 기분이라니까. 산부복 입고 거기만 가면 막 악몽이 되살아나. 머리채 잡고 끌려다니고.. 소리 크게 못 낸다고 기합 받고.. 애 순산 못했다고 휴가 잘리고.. 별의 별일을 다 겪었던 기억들.”
“어? 예비신부 훈련? 너 그거 아직도 가? 그거 퇴소하고 6년 가면 끝나는 거 아냐? 아직 6년 안 되었어 너?”
“올해 6년째이긴 한데, 결혼 안 했거나 연애 기록 없으면 8년까지도 가야 해. 애를 낳을 의지가 없어 보이면 기간이 최대 8년까지 늘어난대. 그런 고로 아직 한참 남았다 나.”
“와.. 여자가 무슨 애 낳는 기계야? 진짜 거지 같네.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어. 멍청하게 여자로 태어나가지고 별 험한 꼴을 다 보네. 남자 새끼들 쉽게 쉽게 가는 주제에 여자가 생산소에만 들어가면 뒤에서 양다리 걸치고 바람피우고 잠수 타고. 고무신은 무슨 고무신이야 고무로 목을 졸라버릴 것들 같으니라고. 생산소 기간에다가 예비신부 훈련받는 기간까지 합치면 진짜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그치.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남자애들은 열심히 돈 벌고 경력 쌓고 자기 계발할 수 있다는 거잖아. 진짜 불공평한 거야.”
“야. 안 되겠어. 듣다 보니까 너무 빡친다. 일단 우리 쭁이 배신자 남자 친구부터 조지자. 가만 둘 수가 없네.”
“그래 좋아. 내가 팔다리 붙잡을 테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그래도 쭁이 현직 남자 친구니까 아직은 네가 평소에 하는 너무 이상한 짓들은 하지 말고.”
“이상한 짓? 내가 하는 이상한 짓이 뭔데?”
“그거 있잖아 네가 혀로 막 -”
그 쯤 하야 나는 다음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라도 눈물의 무덤을 박차고 미약하게 남아있는 존재감을 피력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강한 의지를 담아 어른스러운 말을 꺼냈다.
“나 집 갈래.”
친구들은 마치 귀여운 여동생을 본다는 듯 애정과 안쓰러움을 담아 나를 바라보았다.
“일어났어 쭁? 아직 8시밖에 안됐는데?”
“머리 아파. 그만 생각하고 싶어. 그냥 죽어버리고 싶어.”
“누가 죽고 싶다고 하면 말리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하면 관종이니까 무시하랬는데!”
“연주야 넌 닥쳐 좀. 분위기 파악도 못하냐. 쭁, 이런 기분일 때는 누구 하고라도 같이 있어야 돼. 우리랑 같이 있자 오늘 밤은. 내가 자당께 전화드릴게.”
“아냐 됐어. 오늘 고맙고 미안해. 지금 전화 온다. 어머니가 전화하시나 봐. 늦기 전에 들어가야지.”
하지만 전화는 엄마한테서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엉겁결에 전화를 받아버렸고, 또다시 엉겁결에 우리가 있는 마카롱 칵테일바의 이름과 위치를 말해버렸다. 전화를 끊자 아이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자당께서 뭐라셨길래 시루떡 같은 쭁님 안색이 밀가루떡이 되셨을까?”
나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엄마가 아니었어.”
“그럼?”
“남자 친구?”
“뭐라고? 뭐래?”
“데리러 와준다는데?”
“뭐어? 진짜?”
아이들이 정말로 남자 친구가 올지 반신반의했고, 그 반신반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 친구는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조용이 남자 친구예요. 두 분에 대한 얘기 많이 들었어요.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예리는 조용히 인사했지만, 연주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쭁 다음 주에 입소인 건 아시죠? 이때가 제일 힘든 시기인데 이럴 때 잠수 타고, 연락도 안되고, 남자 친구라고 할 자격은 있으세요?”
남자 친구는 연주의 드셈에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지금이 제 인생에 중요한 시기라서요. 저도 미안한 마음에 급한 불만 겨우 끄고 이렇게 달려왔네요.”
연주는 그 말을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남자 친구의 다음 말은 연주를 구슬리는 직격타가 되었다.
“저도 이렇게 마지막에 조용히 혼자 두어서 걱정되었는데 두 분께서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어요. 괜찮으시면 다음 주에 조용이 입소식 갈 때 저도 가려고 하는데 맛있는 걸 대접해드릴 수 있을까요?
연주는 앞뒤 없이 신나서 좋다고 난리를 쳐댔지만 예리는 부드럽게 물어보았다.
“좋긴 한데, 입소식까지는 차로 가나요? 운전을 혹시 하시는지.”
“아.. 제가 운전면허도 없고 차도 없어서... 같이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는데 어떠세요?”
예리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제 차로 가죠. 제가 운전할게요. 대신 확실히 맛있는 걸로 준비해 오셔야 합니다.”
그 뒤의 분위기는 밤이 깊어 우리 모두가 집으로 향할 때까지 화기애애하고 화목하게 이어졌다.
남자 친구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문득 그에게 물어보았다.
“기다릴 거야?”
가로등 불빛이 애처롭게 떨리는 가운데 남자 친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뭘 걱정하고 그래. 당연히 기다리지. 불안해하지 마.”
“다들 말은 그렇게 하고 막상 입소하면 멀어진대잖아. 2년이 짧은 시간도 아니고.”
“길다 하면 길고 짧다 하면 짧은 시간이야. 나한테는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고.”
“누구 애인 지도 모르는 애를 두 명이나 낳고 돌아오는데 정말 기다릴 수 있어?”
남자 친구는 누구 애인지 모른다는 말이 웃겼는지 쿡쿡 웃으며 말했다.
“누구 애인지 모르긴. 나라의 애잖아. 바람 펴서 낳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 신경 쓰지는 않아. 나는 용이가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잘하고 올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릴 수 있어.”
“그렇지?”
“그럼.”
“정말 그런 거지?”
“그렇대도.”
가로등 불빛은 내 불안을 마치 잠식이라도 해오듯 깜빡거렸다. 다 안다는 듯 스미어든 그 불빛은 서럽고 억울한 마음을 진공관 램프처럼 부드러운 소리로 다독였다. 나는 남자 친구의 품에 안긴 채로 귀신처럼 조용히 지나가는 도둑고양이와 가로등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드는 나방들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참으로 부럽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살아온 환경. 부드러운 달빛과 시끄러운 도시. 사랑하는 가족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과 멀어질까 두려운 소중한 관계들.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어느덧 그리운 갈망인 반면, 고양이와 나방들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다가올 끔찍할 다음 주에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끊임없는 외침들이 메아리가 되어서 터져 나왔다. 내가 왜 가야 해. 내가 왜 아이를 낳아야 해. 내가 왜 내 것이 되지도 못할 아이를 나라를 위해 바쳐야 해. 나라가 나를 위해 해 준 것이 무어가 있다고. 나는 임신하기 싫어. 잡혀가기 싫어. 노예 되기 싫어. 잃기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남자 친구는 어른스러운 미소로 나를 올려다보며 볼에 입 맞추어 주었다. 내 침묵의 메아리들은 내 안에서만 맴돌았다. 나는 문득 애처롭고 억울한 채로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남자 친구는 말했다.
“넌 분명 임신한 모습도 예쁠 거야. 배가 뽈똑하면서도 눈은 땡그래서 사랑스럽겠지. 면회 갈게. 멋지게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
그 말에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것 같았지만 자존심을 추 삼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지금 울어버리면 영원히 울어버릴 것 같았다. 이 밤을 그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포옹이 끝난 뒤에 우리는 영원 같은 밤길을 함께 걸었다. 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의 밤이 끝날 것은 자명했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마지막 질문으로 발걸음과 시간을 이었다.
“근데 있잖아.”
“응.”
“내가 낳은 아이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응?”
“그동안 모든 여성들이 고귀하고 존엄한 시간을 바쳐서 나라에 두 명의 아이를 낳아주었잖아. 그럼 나라에선 그들을 데려다 기르고, 인구절벽과 생산인구 감퇴 문제를 해결하는 거고.”
“그렇지.”
“근데 나는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들은 적이 없어.”
“음... 그렇네.”
“그럼 그 많은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남자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그 어떤 어른도 대답할 수 없는, 아이의 문제였을 것이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