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소유와 욕망 4편

봄 단편소설집 네 번째 이야기 : 사진팔이 소녀

by 이원호


북해도 1부_201.jpg

네 번째 이야기 : 사진팔이 소녀




그녀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평생에 걸쳐 그토록 찾던 물건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 바로 그 순간 오스카 바르넋의 마지막 작품, 꿈의 카메라가 유리창 건너편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 축제가 한창인지라 가게 밖에서 구경만 할 날씨는 아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게의 문을 열었다. 아직까지 형체를 유지한 채로 남아있는 꿈의 카메라라면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할 것이 분명했다. 덕분에 그녀가 문을 열기 위해서 냈던 용기는 꽤 대단한 것이었다.

“계세요?”

밖에서 보기엔 어슴푸레하고 작았던 가게는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마술이라도 부린 듯 넓어졌다. 오래된 전구들의 빛과 그녀의 목소리가 넓은 공간을 치달리며 메아리가 되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탄성을 내지르곤 선반 위에 전시된 오래된 유물들의 역사를 감상했다. 선반과 장식장들 위에는 수집가들이 꿈에서라도 만나보고 싶어 할 장구한 역사의 물건들이 빼곡하니 쌓여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고래뼈로 만들어진 오래된 만년필들과 나침반, 아무도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낡은 스피커들과 괘종시계들 위에 잠시 머물렀다가 보석처럼 아름다운 사진기와 렌즈들 사이에 똬리를 틀었다. 바로 그곳에 그녀가 바라던 모든 것이 있었다. 꿈의 카메라가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차마 진열장을 열고 손을 대보지는 못하고 코를 붙이고 유리에 달라붙어 꿈의 사진기를 눈에 담았다. 그녀의 앞에 놓인 꿈의 카메라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라 심지어 몇 년 전 오스카 바르넋 유품 전시회에 진열되었던 제품보다도 상태가 좋아 보였다. 그녀는 세상에 총 열여덟 개의 오스카 바르넋의 카메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중에 반절 이상이 사라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총 열 개도 안 되는 꿈의 카메라 중의 하나가 이 외딴 상점에 조용히 숨어 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신비한 것이었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나타난 상점 주인은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녀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상점은 낡고 오래된 것이었지만 그는 세련되고 정중해 보였다. 그녀는 당장 패션잡지에 등장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의 단정한 모습에 적잖은 당황을 감추어야만 했다. 상점 주인은 수더분하고 말끔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조금 추운 날씨군요. 어떤 일로 들어오셨는지요?”

“혹시 저기 저것이 제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맞나요?”

애매한 대명사들로 점철된 그녀의 문장에도 불구하고 상점 주인은 당연히 ‘바로 그것’이 지칭할 수 있는 물건은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다는 단호한 태도로 대답하였다.

“네. 맞습니다. ‘바로 저것’이 현존하는 18개의 오스카 바르낙 중 열 번째 작품이지요. 희귀한 물건인데 알아보시다니, 안목이 보통이 아니시군요.”

“어떻게 이 귀한 물건이 이곳에 있는 거죠?”

“일전에 어느 노인분께서 팔고 가셨습니다. 바닷가에 떠밀려온 것을 손녀가 주웠다고 하시더군요. 덕분에 귀한 물건을 들여놓는 영광을 저희가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열장 속의 사진기는 누가 봐도 진품일 수밖에 없는 미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이렇게 진열되어있는 걸 보아서 도난품도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이런 위대한 보물을 바닷가에서 주운 노인에게 크나큰 질시와 실망을 느끼고 말았다. 세계와 바꾸어도 부족함이 없을 위대한 예술품을 고작 이런 작은 상점에 돈과 바꾸어 넘기다니! 그녀는 상점 주인에게 그 노인이 누구인지, 어느 바닷가에서 주웠는지 집요하게 캐물었지만 상점 주인은 직접적인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그저 ‘글쎄요, 저도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메뚜기 한 마리를 어깨에 얹고 다니시던 노인분이신 것만 기억이 나는군요.’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그녀 한숨과 함께 본론을 꺼내놓을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저 사진기는 얼마에 파시나요? 설마 마법이 깃들었다는 원본 필름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쉽게도 찍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그 마법의 필름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 남아있는 그 어떤 오스카 바르넋 카메라에도 마법의 필름만큼은 남아있지 않을 것 같군요. 그 누구도 그런 마법을 쓰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것일 테지요.”

“그렇다면 마법이 사라졌으니 본래의 가격만큼 비싸지는 않겠군요.”

그녀는 과감하게 무리수를 던졌지만, 상점 주인의 표정이 북풍처럼 싸늘해지는 것을 보며 자신이 악수를 두었음을 직감했다. 상점 주인은 입가는 부드럽게 웃는 채로, 하지만 유리조각처럼 싸늘한 눈초리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아쉽게도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오스카 바르넋 카메라의 가치는 마법 필름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수집가들에게 마법이란 오스카 바르넋이 만들었다는 그 자체이지 소유의 마법 따위가 아니니까요. 식견이 있으신 분이라 당연히 아실 줄 알았습니다만.”

그녀는 여기서 더 흥정을 하려고 들었다간 본전도 못 찾고 쫓겨날 것임을 직감했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솔직함을 사용하는 것뿐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전력으로 부딪혀 보았다.

“현금으로 하면 혹시 얼마까지 되나요?”

상점 주인은 금액을 말했고 그녀는 내색치 않으려고 했음에도 헛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카메라의 가격은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사글셋방을 다섯 채는 살 수 있는 돈과 맞먹었고, 그녀가 십수 년을 기자로 일하면서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합쳤을 때야 꿈이라도 꿔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한없는 아쉬움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제가 감히 살 수는 없는 가격이군요. 다만 혹시 큰 실례가 안 된다면 손으로 한 번만 직접 잡아볼 수는 없을까요?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제 속으로 직접 잡아보고 싶은 카메라였거든요.”

주인은 말없는 미소와 함께 장식장을 열어 카메라를 꺼내어 주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받아 들며 원래부터 자신의 일부였던 것처럼 감겨오는 느낌을 받았다. 짜릿한 전율이 등뼈에서부터 시작되어 뇌리를 떨어 울렸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사진을 찍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필름을 감고, 조리개를 조이고, 셔터스피드 다이얼을 돌린 뒤 초점을 맞추자 현실을 담았으면서도 현실과는 다른 아름다운 색채의 평면세계가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 작은 사각형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은 단 한 가지 행동으로 모두 그녀의 것이 될 수 있었다. 살짝 손가락 끝에 힘을 주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정지해 화상으로 맺혔고, 그 네모난 세상은 그녀만의 것이 되었다. 그녀는 처음 셔터를 누를 때의 쾌감과 흥분을 떠올렸다. 그녀의 시선이 소유가 되던 그 마법 같은 힘은 중독성 있고 강렬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 힘을 다시 누리고 싶었다. 셔터를 누르고, 그 경쾌한 철컥임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집 다섯 채 가격의 카메라로 감히 무언가를 찍어보지는 못한 채 그녀는 카메라를 고이 내려놓았다. 감사한다는 말이 나와야 했지만 그녀는 차마 감사를 전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눈물이나 원망 둘 중에 한 가지는 반드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더 열심히 살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고, 돈이 부족한 채로 살아야 하는 삶 그 자체를 원망했다. 돈이 없어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삶이란 비참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하여 비참함을 느꼈다.

그녀의 모든 것을 지켜보던 가게 주인은 말했다.

“손님께서는 사진기를 아주 능숙하게 다루시는군요. 여기 오신 그 누구도 그렇게 편안히 구형 카메라를 다루시지는 못하셨는데, 사진 찍는 일을 오래 해오셨나 봅니다.”

“네. 제 평생이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예술에 삶을 귀의하신 분이라니, 제가 귀인을 몰라 뵈었군요.”

“과찬이십니다. 평생 원하던 것을 눈앞에 두고도 잡지 못하는 비루한 인생일 뿐이지요.”

주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손님 같은 유능한 사진사를 만나면 꼭 제안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혹시 손님께서 시간이 괜찮으시면 잠시 들어주시겠습니까?”

그녀는 상점 주인의 간곡하고도 조심스러운 태도에 호기심이 일었고, 주인을 따라 매장 한편에 놓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상점 주인은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어오며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얘기했고, 그녀는 커피로 물든 시간을 보내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가 커피를 거의 다 비웠을 때쯤 주인은 새로운 원목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그것이 또 다른 오스카 바르넋 카메라일까 봐 잠시 설렜지만, 그 상자에는 바르넋 특유의 은빛 별철 상감 무늬가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대신 그 상자는 어두우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표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팔을 가진 괴물이 정성스러운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것이 수라 나찰 같은 악귀나 서역국의 파괴신을 새겨놓은 것인 줄로만 알았지만, 조각상의 표정을 보곤 생각을 바꾸었다. 조각상의 표정은 마치 열반에 든 듯 편안해 보였고 천 개의 손에는 각각 현기 어린 수인이 맺혀있었다. 그녀는 먼 과거에 사진뿐만이 아니라 카메라 자체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곧 기억에 저편에서 전설적인 또 다른 카메라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천수관음! 이것은 천수관음의 카메라군요!”

상점 주인은 정답을 맞힌 그녀에게 빙그레 웃어주었다.

“역시 이 사진기도 아시는군요. 이 사진기는 저희 집안 대대손손 물려 내려온 보물입니다.”

“이 귀한 것도 가지고 계시다니... 제게 이것을 보여주시는 이유가 뭐죠?”


상점 주인은 한숨을 푹 내쉬고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 마법으로 명망 높은 바르넋 카메라와는 다르게 관음 카메라는 그 저주로 악명 높습니다. 특히 첫 소유주나 그의 직계 자손들이 스물네 장 짜리 필름 한 롤을 다 쓸 때까지 불노불사의 저주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불노불사의 저주라니, 그럼 죽지 않는 건가요?”

“아니요. 죽지 못하는 겁니다. 영원토록 안식이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죠. 몸은 굳어가고 정신은 멎어가지만 죽음은 찾아오질 않습니다.”

그녀는 투명한 색감과 광기 어린 예술혼과 소유욕을 불어넣기로 유명한 관음 카메라에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마도 시중에 유통되는 관음 카메라들은 모두 필름 한 롤을 써서 저주를 푼 뒤에 유통되는 것인 듯했다.

“그럼 후딱 아무거나 찍어서 필름 한 롤을 소비해버리시면 되는 것 아닌가요? 어떤 부분에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단순히 필름을 대충 써버리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스물네 장의 필름을 소비하는 동안 총 14장의 위대한 작품을 찍어내야지만 저주를 풀 수 있지요.”

“뭐라고요?”

“제 고조할아버지께서는 뛰어난 사진작가셨고, 위대한 작품들을 찍고 싶으시다는 욕망에 이 관음 카메라를 구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실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 계셔서 살아생전에 열 장의 놀라운 사진을 이 카메라로 찍으실 수 있으셨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물네 장의 필름 중 10장을 소비하셨습니다. 그분의 실력으로도 찍는 것마다 작품일 수는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상점 주인은 목이 타들어가는지 커피를 연거푸 들이켰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빛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조할아버지께서 노령에 더 이상 사진을 찍지 못하시게 되신 후 저희 가족 중에는 더 이상 사진작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무덤을 둘러보거나 관을 짤 필요도 없어졌지요. 제 선조들은 모두들 안방에 앉아서 숨만 쉬고 계시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선 누군가가 이 관음 카메라로 네 장의 명작을 찍어주셔야만 합니다. 그래야지만 저희는 저주를 풀고 천수를 누리다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면... 제가 그 사진을 찍어주셨으면 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상점 주인은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만약 손님께서 이 카메라로 네 장의 명작을 찍어서 저희 가족을 편안하게 해 주신다면, 그 가치는 천금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것인 만큼 오스카 바르넋의 유작을 그 대가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심장이 거세게 박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놀라운 기회였고, 그녀가 가장 원하던 것에 가까워지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녀의 예리한 정신은 제안의 허점과 위험성을 분석해보았다.

“하지만 어떤 사진이 명작인지는 어떻게 알지요?”

“그 기준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집 한 채보다도 비싼 가격에 팔린다면 명작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할아버지께 전해 들었습니다. 또한 위대한 미술관들에 전시가 되면 그것 역시 명작일 테지요.”

“사용 도중에 카메라가 고장 나면 어떻게 되지요?”

“카메라가 고장 나면 저주도 함께 풀린다고 들었습니다. 저주만 풀린다면야 저희 가족은 기쁠 테지요. 하지만 관음 카메라는 부술 수 있는 물건이 아닌지라 저절로 고장 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기다림이 3대째를 넘어가니 저희도 버거워지더군요.”

“만약 제가 한 장이라도 명작을 찍지 못한다면 영원토록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실 텐데,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그 부분은 저희 가족이 생각해 둔 바가 있으니 걱정치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저는 제 안목을 믿을 뿐입니다.”

“그 말인즉슨 제가 카메라를 들고 설령 사라지거나 카메라가 도난을 당하더라도 대책이 있으시다는 말씀이시군요.”

상점 주인은 부드럽게 웃었지만 그녀는 그 웃음 사이에서 잠시 무섭고 잔인한 표정을 언뜻 엿본 것만 같았다.

“그 부분 역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그 누구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는 않을 것 같군요. 그 카메라는 누가 부수거나 도둑질 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아 방안에 머금어져 있던 커피 향이 다 사라질 때까지 곰곰이 생각해 본 뒤에 대답했다.

“좋습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제가 한번 그 카메라의 저주를 벗겨내어 보겠습니다.”

상점 주인은 고양이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한 가지 단서를 덧붙였다.

“단, 기간은 3년 이내여야 합니다. 저희 가족도 사정이 있어서 그 이상 기다려드릴 수는 없군요. 삼 년 이내에 네 장의 명작을 찍어오시면 꿈의 카메라를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촉박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을 믿었다. 그래서 그녀는 당당하게 계약서에 자신의 지장을 찍었다. 핏빛으로 붉은 지장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서를 닮은 종이 위에 엄숙히 찍힘으로써 그들의 거래는 성사되었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기회는 단 네 번뿐이었고, 네 번 모두 성공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녀는 천수관음 카메라를 쉽게 사용하지는 못했다. 대신, 첫 해 가을이 오기까지 그녀는 원래 사용하던 카메라를 세계 각국의 오지와 신비를 찾았다. 소금사막의 별들과 세상의 끝자락의 얼음과 불의 섬까지, 여왕의 제국과 신황의 궁궐, 광인들의 불도시마저도 다 그녀의 발걸음과 시선에 담기고 찍혔다. 그녀가 본 것은 곧 그녀의 작품이 되었고 곧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녀가 찍는 풍경들이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신의 수채화 같다고 칭송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젊은 오스카 바르넋의 재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꿈과 아름다움을 담은 그녀의 풍경사진들은 마침내 천수관음으로 찍은 첫 번째 작품, ‘열반’에서 그 정점을 맺었다. 삼라만상의 의미와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를 표현해낸 그 사진을 보며 대중은 찬사와 경탄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곧 ‘사라진 예술을 부활시킨 자’ 혹은 ‘위대한 스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일부 지방에서는 그녀를 예술의 제신으로 칭송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그녀의 사진들은 인정받고 사랑받았다.

하지만 네 장의 명작 중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찍었음에도 그녀는 무언가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의 불안을 타고 대중의 관심사 역시 풍경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멋진 밤하늘과 부서지는 해변가의 사진들은 한 번 찍어 깊은 인상을 남길 수는 있어도, 같은 곳을 두 번 세 번 찍어 감동을 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과감히 풍경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를, 영원불멸하고 영구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가 사람을 찍기 시작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두 번째 시도는 처음보다도 더 위대해졌다. 풍경과 교류하며 얻은 깨달음으로 그녀는 사람과 감정의 조화를 평면 위에 구현해내었다. 그녀는 마치 새나 석양을 찍듯 미소, 눈맞춤, 손잡음을 찍어내었다. 미세한 감정의 흔들림마저도 그녀에게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원천이 되었다. 그녀는 피사체를 소비하는 대신 그들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사진들을 찍었고, 그를 통해 대중에게 다시 한번 자신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인 ‘온기’는 어느 이국의 왕세자에게 집 두 채의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그 왕세자는 개인 소유의 인류화합 박물관에 그림을 걸어놓을 것이라고 떠들썩하게 인터뷰를 해댔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공이 그녀에게 찾아왔던 셈이다.

약속했던 3년의 시간 중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는 어느새 두 장의 명작을 찍어낸 성공한 작가였다. 실력 그 이상으로 명망이 쌓인 만큼, 앞으로 남은 두 장은 되려 더 쉬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라는 불안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른 모두에게는 역사를 뒤흔들 두 장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고작 두 장이었다. 뼈를 깎는 고통과 수명을 단축하는 노력을 거듭해가며 찍었건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작 두 장의 사진뿐이었다. 명성과 명망은 멋진 것이기는 했지만 그녀가 추구하는 진실한 가치, 오스카 바르넋의 꿈의 카메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아직 그녀의 꿈이 잡혀있지 않았다.

명성은 사라지지만 물질은 그 자리에 머물러 언제든 원하면 만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구름처럼 휘영청 사라질 명망보다는 두 손에 꿈으로 빚어진 물질 그 자체를 갖고 싶었다. 작품은 수십 장 완성될 수 있어도 그녀 자신이 완성되기 위해선 바로 그 카메라가 필요했다.


딱 2년째가 되던 날,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다시 한번 몰래 상점을 찾았다. 그녀는 상점 유리창 너머로 그 자리에 그대로 전시되어있는 오스카 바르넋 카메라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곤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반드시 이 카메라여야만 했다. 이 카메라가 있어야지만 시선이 권력이 될 수 있고 그녀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명예도 돈도 그 의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금 미친 듯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명성이나 깨달음, 사랑 같은 위태로운 것들을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라 물질을 소유하기 위한 사진이었다. 그녀는 보는 것에 힘을 실어 갖기 위해 사진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찍었다. 동의를 구할 여유조차도 더 이상 그녀에게는 없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제지하려고 들거나 불쾌감을 드러내면 그녀는 작가로서의 권위와 기자로서의 면책특권을 휘둘러 그들을 짓이겼다. 그러면 그럴수록 악명으로 물들어간 그녀의 명성은 뾰족하게 드높아졌다.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것이 곧 권력이 되는 시기였다. 그녀의 악행은 악명을 낳았고, 그녀의 권위는 사람들에게 선망과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 그녀의 힘이 되었다. 온 세계 사람들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의 새로운 사진들에 환호했다. 모든 것이 그녀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진을 더 찍었다. 이제 그녀는 찍은 것은 무엇이든 자기 것이 된다는 소유의 비밀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휘두를 때면 남성적인 쾌감을 느꼈고, 셔터를 눌러서 타인의 것을 훔칠 때면 예술이 완성되는 것 같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녀는 위대한 예술가였다. 그 무엇도 그녀의 시선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더 자극적이고 더 위대한 것들이 필요했다. 주제를 사냥 나온 그녀는 어느 날 이름 모를 남녀의 육체적인 쾌락의 장면을 포착해내는 데 성공했다. 곧 누구에게도 공유되어서는 안 될 그 비밀스러운 시간들이 그녀에 의해서 통제되고 폭로되고 흩뿌려졌다. 대중은 비난과 열광을 동시에 건네었고, 그녀는 그것마저도 자신의 권위 삼았다. 도촬 당한 피해자들의 비명은 끔찍했지만, 그녀는 그 비명마저도 예술과 명성의 권위로 짓이길 수 있었다. 그녀의 사진들이 고통으로 가득해질수록 그녀의 힘은 커져만 갔다.


약속했던 삼 년이 되기 딱 3개월 전, 그녀는 마침내 세 번째 사진을 찍었다. 그녀 자신의 몸과 연인의 몸이 뱀처럼 얽힌 전라노출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그 사진에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타인의 몸을 상품화했던 만큼 자신의 몸도, 자신의 연인도 상품화될 수 있다는 시선을 담은 그녀의 사진은 어마어마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모든 파장이 긍정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연인은 자신도 모르게 찍혔던 둘의 사진이 온 세상에 뿌려지는 것을 보곤 수치심에 자살했다. 그녀에 대한 원망을 가득 담은 유서를 흰 벽에 새겨놓은 뒤였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찍힌 관계의 시간이 세상 모두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그는 견딜 수가 없었고, 그 폭로로 인해 세상은 다시 급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예술은 이제 사악하고 잔인한 범죄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당했던 힘없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다시 주목받았고, 결국 그녀는 쫓기기 시작했다.


그녀는 도망쳤다. 끝없이 세상 속으로 도망쳤다. 마침내 약속했던 삼 년이 다 되는 그날, 그녀는 도망의 끝을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장소 앞에서 맞이했다. 3년 전 그날처럼 연말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눈 내리는 밤이었다.

꿈의 카메라는 삼 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 그대로에서 그녀에게 영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자기만 손에 넣으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그 매혹적인 느낌은 그녀에게 끔찍한 자괴감을 선사했다. 원하던 모든 것이 바로 코앞에 있었건만, 그녀는 고작 한 발자국 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었다. 성자에서 범죄자로, 추앙받는 예술가에서 백안시당하는 악한으로 떨어져 내린 그 추락은 검은빛으로 물들어 거대하고 비참한 자국을 그녀의 마음에 새기었다.

그녀는 싸라기눈이 내리는 그 길 위에서 오열했다. 돈도, 명성도, 사람들이 건네는 애정마저도 사라진 그녀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천 개의 팔이 그려진 부처가 새겨진 고귀한 카메라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카메라에는 아직도 한 장의 필름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그마저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녀의 가슴은 먹먹해졌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 남은 한 장의 필름과 한 개의 카메라는 눈물 너머에서도 영롱하게 빛났다. 그녀는 눈물이 얼어붙어 고통스러운 자신의 얼굴을 한번 쓱 닦았다. 그러자 초췌해 보이고 비루한 자신의 얼굴이 장식장 유리에 반사되어 비쳤다. 그녀는 눈물을 조금 더 훔치고 웃음을 지었다. 그제야 세상도, 유리창 건너편의 자신도 조금 볼만한 모습이 되었다. 쓸만해진 그녀의 모습 너머로 오스카 바르넋의 마지막 작품이 혜성처럼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어린 소녀의 운명처럼 반짝거리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마침내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말았다.

그녀는 관음의 카메라를 들었다. 그녀가 꿈꾸고 소망한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그녀가 사진을 찍는 이유이자 모든 소유와 욕망이 그녀의 앞에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마지막 한 장의 필름을 감은 뒤, 숨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그녀의 세상이 네모에 담겨 그녀의 것이 되었다. 그녀는 가장 사랑했던 것을 담은 채로 세상처럼 웃음을 머금었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은 유리창 앞에서 싸늘하게 얼어붙은 그녀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여러 장의 빛바랜 사진이 떨어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찍은 카메라는 결코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에 마지막까지 걸려있던 미소가 왜 그리도 따스해 보였는지 영영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The en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