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단편소설집 일곱 번째 이야기 : 만다라
일곱 번째 이야기 : 만다라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어느 청명한 봄,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던 중에 생긴 일이다.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Edinburgh)는 조용하고 예쁜 도시였지만 일주일쯤 머물러 있으니 더 이상 할 것이 없는 곳이기도 했다. 같은 곳을 돌아다니기도 3일째, 나는 지루함에 몸을 배배 꼬았고, 그 덕분에 모든 사건들이 시작되고 말았다.
에든버러에서 일주일이나 머문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에든버러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나는 스코틀랜드의 광활한 황야와 외로운 호수들을 홀로 헤맸고, 그 덕분에 사람들을, 특히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때마침 다행히 지인 중에 한 명이 잠시 일정이 맞아서 에든버러에 오기로 했고 나는 그를 만나기 위해서 일주일의 시간을 에든버러에서 기다렸다. 당시에 나는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짧은 시간이며, 그 정도면 도시를 탐험하고 알아가면서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일주일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애매한 시간이 되었다. 칠일은 그 도시를 주민처럼 살아보기엔 너무 짧고, 그렇다고 여행하기엔 너무 길다. 서울 같은 대도시마저도 하루 16시간씩 작정하고 돌아다니면 사나흘만에 여행이 끝나는데, 에든버러는 기실 첫날 열심히만 돌아다녀도 대부분의 명소들을 다 구경할 수 있는 크기였던 셈이다. 첫째 날에는 구시가지에 대한 탐험이 끝났고, 다음날 17시간의 강행군으로 신시가지의 모든 명소들을 다 방문했으며 그 뒤 5일 동안은 갈만한 새로운 곳을 찾지 못한 상태로 도시를 헤매게 된 나는 지루함과 익숙함에 약간 몸을 뒤틀어야만 했다.
할 일이 없어서 힘들어하던 내게 한줄기 희망이 비쳤던 것은 바로 숙소 1층의 시끌벅적한 술집(Bar)에서 일어난 일들 덕분이었다. 에든버러의 술집들에는 묘한 매력이 있는데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어떤 기묘한 인연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나이와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말만 통하면 친구가 될 수 있는 이 신묘한 장소는 그날 저녁에 특히 아름다운 통기타 소리로 물들어 있었다. 여행객으로서 저녁에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위스키 한잔과 음악을 곁들이려고 바에 내려갔다. 평소에 내가 술과 음악을 크게 즐기지 않는 경건한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건 확실히 독특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독특한 선택은 결국 독특한 결과로 이어졌는데, 마지막 남은 비어있는 테이블에 운 좋게 앉게 된 것은 물론 마침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맥주가 함께 나오는 행운을 겪을 수 있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은 유일하게 비어있던 그 테이블은 사실 직원들과 그들의 지인을 위해서 예약되어있던 테이블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날은 그곳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해나(Hannah)라는 여자아이의 생일이었는데, 해나는 마치 주인공처럼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나를 보고 말했다.
“안녕.”
“안녕?”
“여긴 내 테이블인데.”
나는 무척이나 당황해했고, 해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당황하는 걸 보니 내 친구는 아닌 모양이지?”
“아 미안. 나는 바텐더들이 테이블을 잡아놓는 줄 몰랐어. 지금 바로 비켜줄게.”
해나는 주섬주섬 일어나려는 내 어깨를 장난스럽게 눌러 다시 앉히곤 밝게 웃었다.
“사실 오늘 내 생일이라 잡아놓은 거야. 좀 있으면 근무 끝나서 이 자리로 퇴근할 건데, 이 테이블에 앉았으니 계속 눌러앉아 있다가 축하라도 해줘.”
해나의 말투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독특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해나의 지인들은 내가 테이블에 앉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락해주었다. 곧 술집의 분위기는 흥겨움과 춤으로 가득해졌고, 나는 모르는 현지인들과 즐거운 외지인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새벽녘까지 이어진 파티의 끝에서 해나의 친구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싶어!”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일동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대답했다.
“오 씨 그거 좋은 생각이네.”
“나도 해 뜬 거 본지 오래되어쏘.”
“우리 다 같이 해나 생일 선물로 해 보러 가자!”
그것은 술자리에서 잡힌 약속이라는 점에서 그리 좋은 약속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분위기에 휩쓸린 상태에선 거절할 방도가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정작 생일인 해나 본인은 그렇게 내켜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데 초를 치기는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에든버러 동쪽에는 도시 전체를 굽어보는 거대한 산이 하나 있었다. 아더왕의 왕좌(Authur’s Seat)이라고도 불리는 그 칼날 같은 산은 에든버러를 가로지르는 위대한 왕족의 길(Royal Mile)에서부터 1시간 정도의 격렬하고 짧은 산행을 통해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굉장한 명소였다. 그곳에서라면 해는 물론이고 온 세상이 아침에 잠기는 장관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두 발로 걸어서 1시간뿐인 부담 없는 거리였기에 큰 각오가 필요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사람들이 해돋이 산행을 결정한 시간은 이미 새벽 3시였고, 그들은 술을 더 마실 사람들은 더 마시고, 잠시라도 눈을 붙일 사람들은 숙소에 올라가 쉬다가 4시 반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며 잠시 작별인사를 말했다. 내 입장에선 아침 4시 반에 어두운 고도를 거닐어 아침을 맞이한다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이 도시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드디어 생긴 셈이었다. 나는 위층에 올라 설렘으로 잠시 몸을 뉘어 잠들었고,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다시 눈을 떠 술집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곤 남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주망태로 잠들어 있어서 해가 뜨는 것을 보기는커녕 대화 한마디도 나눌 수 없다는 씁쓸한 사실을 발견하고 말았다. 유일하게 깨어있는 사람이자 생일 당사자라는 두 개의 아이러니한 명예를 독차지하게 된 해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얘네 술 마시고 해 뜨러 간다고 헛소리한 게 한두 번이 아냐. 괜히 불쌍한 너만 또 낚인 셈이네. 아침까지 못 일어날 테니 너도 가서 자.”
나는 가벼운 실망감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숙소로 올라갔다. 깨어있는 사람이 단 둘 뿐이니 산에 오르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 될 것 같았다. 생일인 여자아이와 단 둘이 산을 오르는 것은 내게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해나 역시 고작 몇 시간 전에 알게 된 낯선 여행자와 어두운 산길을 오르는 것은 제정신으로 저지를만한 일로 여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해돋이 여행을 포기했다.
방으로 올라가기 전 어슴푸레한 술집 안을 언뜻 들여다보자 친구들을 깨우는 것을 포기한 듯한 해나의 모습이 유리창에 언뜻 비쳤다. 해나와 나는 복도의 불빛 속에서 눈이 잠시 마주쳤고, 해나는 마치 어디로 가는 것 마냥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것을 잘 자라는 인사 정도로 받아들이고 손을 마주 흔들었다. 해나가 자러 가라는 의미로 인사한 것이 아니었음을, 모두가 잠든 틈을 타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다음날 아침이나 되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조금 늦게 일어난 나는 아침식사를 자리에서 해나와 그녀의 친구들을 다시 마주칠 수 있었다. 고주망태가 되어서 일어나지도 못했던 아이들은 나와 해나에게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해나는 어쩐지 뿌듯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 나는 봤는걸.”
“봤다고? 해 뜨는 걸 말야?”
“응. 세상이 기지개를 켜는 것만 같은 장관이었어.”
“혼자 간 거야?”
“그렇지. 너네가 다 못 지킬 약속만 맨날 하고 같이 안 가주니까.”
“찰리하고라도 같이 가지 그랬어. 찰리는 일어났다며.”
해나는 내게 눈을 찡긋하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찰리. 하지만 가끔은 혼자서 걷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잖아? 내 생일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어. 이해해주길 바라.”
아침노을을 못 본 것이 내심 아쉽기는 했지만,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혼자 갔을 걸 알기에 내 대답은 편안한 것이었다.
“괜찮아. 해 뜨는 걸 볼 수 있었다니 다행이야”
해나는 미소를 지었다.
“응. 그건 정말 다행인 일이었어. 언젠가 너도 꼭 한번 보러 가! 혼자 가서 좋았지만, 혼자 가서 미안하기는 했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어.”
“걱정하지 마, 나야 여행객이잖아. 남아도는 게 허비할 수 있는 발걸음과 시간이지. 당장 내일 아침에라도 보러 가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이벤트도 아닌데 말야.”
해나는 그래도 조금 미안하기는 했는지 내게 특별한 제안을 하나 건네주었다.
“찰리, 혹시 에든버러의 지하감옥(Dungeon)에 대해서 들어보았어?”
“지하감옥? 아니? 그게 뭐야?”
해나는 에든버러 시내 어딘가에는 수백 년부터 살인자들을 감금해놓고 고문과 이단 심문의 악행을 저지르던 지하감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그 장소는 에든버러의 가장 유명한 귀신들이 출몰하는 장소이자, 이 아름다운 도시의 잔혹하고 어두운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해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지하감옥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찰리?”
“아니? 짐작도 안 가는데. 성 아래쪽에 있으려나?”
“아니야. 바로 여기에 있다구. 숙소에서 나가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지하감옥이야!”
“그.. 그래? 나는 여태까지 거기가 기차역인 줄로만 알았는데.”
해나는 깔깔 웃으며 지하감옥과 기차역 입구는 가까운 곳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에든버러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는 본래 거대하고 시커먼 호수가 있었고, 그 검푸른 호수는 몇 구의 시체를 삼켰을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결국 100년쯤 전에 호수의 악취와 악령들을 견딜 수 없었던 에든버러의 사람들은 호수를 메워서 기차역과 미술관으로 이용하기로 결정했고,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호수를 메우는 과정에서 도시전설로만 알려져 있던 지하감옥의 존재가 실제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도시의 여러 어두운 장소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비밀을 간직한 곳이 호수를 걷어내는 과정에서 그 음습한 입구를 드러내었던 것이다.
“지금 지하 감옥은 신설 전시가 열려서 인기가 아주 많아. 작년 9월쯤에 여태껏 아무도 찾지 못했던 새로운 감방이 발견되었거든. 그 개인실에는 아마 흉측한 범죄자가 머물렀던 모양인데, 기묘한 구석들이 있어서 조사와 전시를 병행하고 있어.”
“와, 그럼 실제 지하감옥을 둘러볼 수 있는 거야?”
“그렇지. 그것도 잘 훈련된 가이드와 함께 말야.”
해나는 그 얘기를 하며 옆에 앉아있던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를 툭 쳤다. 오렌지주스를 마시던 그 아이는 사례가 들릴 뻔했지만, 곧 해나의 의도를 눈치채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찰리. 나는 인도라고 해. 지금은 에든버러 지하감옥에서 단기 알바를 하고 있지. 네가 원한다면 오늘 저녁에 공짜로 투어를 시켜줄 수 있는데 어때?”
“와! 반가워. 지하감옥 투어가이드라니 대단히 멋진걸. 근데 내가 공짜로 가도 되는 거야? 네가 안 불편하다면 나야 당연히 좋지만.”
“안 그래도 해나 생일선물로 투어 시켜주려고 했는데, 여러 명이서 가면 나한테도 더 편한 일이라서 말야. 둘이서 가면 좀 무섭거든.”
“감옥이? 해나가?”
“당연히 해나랑 둘이 가는 거지. 감옥은 주먹이 안 달려있어서 비교적 덜 폭력적이라구. 너도 알고 있지?”
해나는 깔깔 대고 웃으며 인도를 한 대 찰싹 때렸고, 인도는 뼈가 부러졌다는 듯이 고통스러운 척을 해댔다. 실소와 함께 나는 그들의 제안을 즐거운 마음으로 수락할 수 있었다.
“좋아. 오늘 특별히 할 것도 없었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제안이야. 내가 준비해야 할 건 없어?”
“무서운 거 좋아하지? 내 참, 이게 무슨 말이람. 당연히 무서운 걸 좋아하니까 해나랑 친구가 되었겠지. 그럼 딱히 준비할 건 없어.”
해나에게 얻어맞는 인도를 보며 나는 둘이 꽤 좋은 친구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유쾌한 친구들 사이에서 여행하는 것은 비록 고문기구와 모형 시체들 사이라고 해도 꽤 즐거운 일이 될 것이 분명한지라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밤 8시, 해가 진 뒤에 지하감옥 안에서 그들을 만나기로 약속할 수 있었다.
에든버러는 해가 느리게 지는 편이다. 아직 봄이라 청초함에도 불구하고 해는 한여름 마냥 8시쯤이 되어서야 천천히 서산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세상을 불 지르는 황혼을 타고 나는 서서히 지하감옥을 향해 걸었다.
하루 동안 지하감옥에 대해서 이것저것 조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이 짧은 투어는 꽤 기대가 되는 것이 되어 있었다. 갇힌 이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채로 호수와 도시 지하로 끝없는 뿌리를 뻗어나간 지하 감옥은 그 자체로 온갖 비극적이고 공포스러운 신화들의 원천이었다. 더군다나 이번에 새로 발견되었다는 밀실은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정자세로 앉은 상태를 유지하는 시체라니! 더군다나 그 시체는 생전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것인지 돌 침상 위에서 내려오지도 못할 만큼 짧게 여러 개의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고 했다. 밥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해서 죽었을 그 불쌍한 죄수는 그럼에도 단정한 자세로 수백 년을 그 자리에 앉아만 있었던 셈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죄수의 등 뒤에는 마치 미로 같기도 하고 암호 같기도 한 여러 울긋불긋한 도형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직까진 그 누구도 그 의미와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었다. 최초로 석실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의미의 도형들을 ‘만다라’라고 불렀고 그것은 결국 이 밀실과 투어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고 말았다.
만다라를 보러 간다는 사실은 내 발걸음을 들뜨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숙소를 출발한 지 30초 만에 지하감옥 앞에 도착하고 말았다. 해나가 말한 대로 숙소에서는 골목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지하감옥이었고 그 틈새에는 망설이거나 지체할 시간조차 없었다. 지하감옥에서는 하루의 마지막 관광객들이 웃고 떠들며 나오고 있었는지라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감옥 자체가 그렇게 무섭지는 않은 것 같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어쨌든 9살로 보이는 소녀가 웃으며 나올 수 있는 전시라면 내게도 끔찍하리만큼 공포스럽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물론 피로 쓴 것 같은 지하감옥의 간판은 나를 잠시 머뭇거리게 하기는 했지만, 나는 조금 용기를 내어 해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 나는 입구에 도착해있어. 안에 들어가 있을까?
해나에게서는 답장이 조금 천천히 왔고, 그동안 나는 땅거미가 내려앉아 온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완전한 어둠이 세상에 자리 잡기 직전, 해나에게서 답장이 왔다.
- 미안. 나 조금 늦을 것 같아! 안에 들어가면 인도가 있을 거야. 먼저 만나고 있으면 곧 합류할게!
나는 조금 더 망설였다. 그 망설임은 아마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와도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관광객들이 모두 가신 골목길은 고대에 이곳이 어떤 위협적인 장소였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괴로움 속에 스러져간 원혼들이 사라진 호수의 비명소리와 함께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거리에서 홀로 서있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멀리서 무언가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져 나는 덜컥 지하감옥의 문을 열었다. 공포와 환청에 시달리며 밖에 서있는 것보다는 어쩌면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그리 옳은 것은 아니었다.
지하감옥의 안은 여러 조잡한 장식물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원래의 석조 건축물만으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누가 봐도 가짜인 쥐와, 누가 봐도 플라스틱인 해골들이 곳곳에 누워있었다. 나는 영국/스코틀랜드식 싸구려 관광지 느낌이 나는 그 치장물들이 공포스럽기보다는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실제 같은 지하감옥 탐방일 것이지 돈 내고 들어오는 아이들 유원지 같은 장소는 아닐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덜 무서운 것은 좋았으나, 약간의 실망스러움을 느낄 수밖에는 없었다.
카운터에 계시던 코에 거대한 사마귀가 잡힌 마녀 분께서는 내가 다가오자 마녀모자와 사마귀 코를 벗어던지시곤 앳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서 와. 네가 찰리인 모양이네. 인도가 아까 너랑 해나가 올 거라고 미리 귀띔해줬어.”
“안녕. 해나는 좀 늦는대서. 인도는 아직 일하나 보네?”
“아마 너희 투어 해주면서 뭐 서프라이즈 한다고 안에서 준비하는 중일걸? 아까부터 뭐 이상하게 바쁘던데. 나는 일 시간이 끝나서 바로 퇴근할 건데, 한번 네가 안에 들어가서 찾아볼래?”
나는 짐짓 으스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자서 지하감옥을 탐험해보라니, 귀신이 나올 땐 어떻게 해야 해?”
마녀분은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귀신이 나오면 아마 그건 인도일걸. 너무 열심히 일하면 지박령이 될 수 있다고 전해주면 돼. 아마 들어가면 바로 보일 거야 그 귀신.”
“알겠어. 일하느라 고생했고 들여보내 줘서 고마워! 또 보자.”
“너도 좋은 시간 보내!”
마녀 분은 대화가 끝났다는 태도로 짐을 주섬주섬 챙기시기 시작했고, 나에게 역시 이미 끝난 대화에 머물러있는 것은 유치한 지하감옥 따위에 들어서는 것 따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일인지라 후딱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주 육중한 나무문은 삐걱대고 열리며 어두운 감옥 길 사이로 나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마녀 분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인도는 문을 열고 들어온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몇 번 소리를 내어 그를 불렀지만, 석재 감옥 안에서 내 목소리만 외로이 메아리치는 것은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큰 소리가 귀신을 부를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조용히 인도를 찾아서 헤매었다. 흉악한 살인자들과 억울한 악령들이 노니는 그 복도 사이에서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만난 지 6시간 된 예쁘장한 아이를 찾아다니고 있었고, 그건 즐겁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험이었다.
나는 “인도야? 거기 있니?” 하고 피에 젖은 궤짝을 열어보았고, 그 안에서 가짜 해골 손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며 기겁했다. 분명 사람들과 투어 중이었다면 우스꽝스러울법한 그 장치는 혼자서 지하를 헤맬 때는 그렇게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점점 더 지하로 내려갈수록 조명은 붉고 어슴푸레해졌다. 마치 피로된 안개가 낀 것 같은 시야는 구석에서 흔들거리는 그림자마저도 귀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감옥 곳곳에는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는 건지 낄낄거리고 웃는 소리와, 여인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무언가가 헐떡대며 쫓아오는 것 같은 소리가 번갈아가면서 들려왔다. 처음에야 롯데월드 유령의 집 들어온 것 마냥 유치했지만 감옥으로 들어가는 길이 깊어가면 깊어갈수록 그것은 마냥 웃길 수만은 없는 일이 되고 있었다. 나는 스피커를 찾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어찌나 잘 감춰둔 것인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소리는 벽면에 메아리치며 울렸고, 어디가 근원지인지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이 모든 것이 조잡한 기계장치가 아니라 실제로 들려오는 소리, 실제로 쫓아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스러운 상상을 머릿속에 들여놓게 되고 말았다. 조금 다급해진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지만, 지하인지라 당연히 아무런 전파도 잡히지 않았고, 공포만 가중되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다못해 넘어져서 다리라도 접질린다고 해도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이 안에 만약에라도 진짜 살인마가 숨어있다면? 해나와 인도가 사실은 내게 해를 끼치기 위해 나를 초대한 거라면? 모든 공포영화가 그렇게 시작되지는 않던가? 모르는 사람의 친절한 초대가 어떤 피에 젖은 결말을 맞이하지? 그럴 때 주인공은 어떻게 해야 하더라? 그래, 나는 멍청한 공포영화 주인공은 아니야. 이상한 기분이 들 때면 바로 나가버리면 되지. 누가 비웃든 말든 객기보다는 생존이 먼저야. 하지만 밖으로 나가기 위해 뒤돌아선 나는 끔찍한 문제 한 가지를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느 쪽이 내가 왔던 길인지 이 순간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던 것이다.
감옥의 돌길들은 모두가 비슷해 보였다. 길은 사람을 닮고 사람은 서로 닮는 법이기에 서로에 얽혀 미로가 되었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나는 마치 열 시간은 넘게 감옥을 헤맨 것 같은 피로감을 느꼈다. 카운터의 마녀 분께서 퇴근하시면서 스피커를 끄셨는지 더 이상 비명이나 호곡성이 들려오지는 않았지만, 대신 구석에서 쥐들이 찍찍대는 것 같은 불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이 퇴근하며 지하의 조명까지도 꺼버리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붉은 피 같은 조명이라고 해도 빛이 있는 것과 완전한 어둠 속에 갇히는 것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둠과 공포에 쫓기던 내가 마침내 무언가 발견한 것은 두려움에 울먹거림이 터져 나오기 직전이 되었을 때 즈음이었다.
표지판은 피에 젖은 화살표로 ‘만다라, 이 방향’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이 넓고 혼란스러운 감옥 속에서 유일한 이정표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만다라가 감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마지막에 발견된 석실이라고 그랬고,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때 화살표의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어쩌면 인도가 만다라의 석실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해나와 나를 그쪽으로 안내해줄 것이기에 그 안에서 무언가를 준비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그것은 조악한 희망이었지만, 내겐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만다라의 석실 앞으로 걸었고, 수백 년은 된 것 같은 오래된 석실 문을 열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인도, 안에 있니 혹시?”
그리 넓지 않은 석실 안은 조명이 꺼져 있었고, 잘 보이지를 않았다.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나는 안에 사람 형체 비스무리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도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석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처럼 문이 내 등 뒤로 닫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두드렸다.
“뭐야! 살려줘! 누구 없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그리고 비명을 지른 즉시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큰 소리는 귀신을 부른다. 그리고 석실 안에는 분명 사람 같은 형체가 있었다. 공포로 온 몸이 굳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문을 두드리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어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은 나를 마주 쏘아보았다.
석실 안은 어두워도 너무 어두워서 무엇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빛의 원천인 바깥이 문이 닫히며 차단된 덕분에 더더욱 농밀해진 어둠은 마치 물컹거리듯 움직이며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숨도 못 쉬고 우두커니 서서 눈이 어둠에 적응될 때까지 기다렸다. 어둠 속의 형체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와 해나를 깜짝 놀래켜주려고 숨어서 기다리던 인도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건 이미 죽어버린 희망의 잔재일 뿐이었다. 흐느낌이 새어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나는 어둠을 기다렸다.
수억 초 같은 수십 초가 지나자 나는 비로소 어둠 속의 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공포 속에서 잊었던 것이지만, 이 석실에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석실의 주인이었다. 오래된 시체는 가부좌를 틀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었다. 손에는 의해할 수 없는 삼각형의 수결을 맺고 허리는 꼿꼿하게 펴져있는 상태였다. 만다라의 괴인은 내 침입에도 불구하고 그의 끝나지 않는 참선을 거듭하고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오늘 낮에 읽었던 정보들을 떠올렸지만, 그 어디에도 이 석실에 남겨진 것이 처음 발견될 당시의 시체 그대로인지, 아니면 그 모습을 본뜬 모형인지 적혀있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보기에 그곳에 정좌한 것은 실제 시신인 것만 같았고, 나는 감히 그 가까이에 가서 진위를 확인할 용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좌한 그의 팔다리는 굵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그가 갑작스럽게 수행을 끝내기로 마음먹고 인간 심장이나 뇌 같은 별식을 먹고 싶어 한다고 해도 일단 쇠사슬이 풀리기 전까지는 안전할 것 같았다. 죽은 지 몇 백 년은 된 시체를 앞두고, 심지어 그것이 진짜인지 전시용 모형 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그것이 살아날까 봐 걱정부터 하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죽은 것은 왜 두려울까. 언젠가 돌아올까 봐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내게도 그 죽음이 찾아올까 봐 두려운 것일까. 모두가 한 번쯤은 죽는데 왜 그 필연적인 것이 무서운 것일까. 나는 내 앞에 앉아있는 그가 죽어 있어서 두려웠고, 죽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아있어서 두려웠고,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석실의 문은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았고, 나는 결국 정좌한 시신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서있기에는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았고, 더군다나 방주인께서 저렇게 경건히 앉아계신데 내가 서서 내려다보는 것은 예의 바른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예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은 할아버지에게 혼날만한 일이었고, 지금 내 앞의 참선자는 세상 누구에게라도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만한 인물이었다. 나는 최대한 안전하게 거리를 둔 채로, 그를 닮은 자세로 경건히 자리에 주저앉아 고민에 빠졌다.
찬찬히 둘러보았건만 빠져나갈 구석이나 방법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감옥에서 빠져나갈 구석이 쉽게 보인다면 그것 역시 이상한 일일 것이다. 다만 환기는 되는 것인지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다. 물론 얼마만큼의 돌을 뚫어야 바깥이 나올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답답하고 퀴퀴한 지하의 공기가 아닌 약간이나마 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완전한 어둠뿐이라고 생각했던 석실 안에는 그래도 나름의 빛이 있었다. 나는 어둠에 익숙해진 시선이 어슴푸레한 감옥 안을 투과할 빛을 어딘가에서 얻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고, 곧 괴인이 등지고 있는 벽에 그려진 수많은 도형들이 어둠 속에서 은은한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빛은 색의 온도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오묘한 것이었다. 그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검은색과 닮아있었지만, 석실 안을 조금이나마 빛으로 물들인다는 점에서는 흰색과 비슷했다. 가끔은 붉고 은은하게 석양처럼 느껴지는가 하면, 때로는 푸르고 청명한 별빛이 새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마치 다른 세상을 잇는 실금과도 닮아있어서 벽을 뜯어내면 그 도형들을 닮은 우주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신비로운 빛으로 짓쳐들어오는 공포를 약간 억누를 수 있었다.
빛과 바람이 있으면 생명에 있기 마련이건만, 다행히도 석실에는 인간과 인간이었던 것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 - 이를테면 바퀴벌레나 쥐 -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빛과 바람 속에서는 무엇이든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괴인이 살아날까 봐 조금 두려워지고 말았다. 생명이 의당 있어야 하는 곳에 없다면 밤이 깊으면 생겨날지도 모르는 셈이다. 나는 조금 더 긴장한 채로 죽은 지 오래인 괴인을 쏘아보았다. 적어도 그가 영면에서 깨지만 않으면 다음날 아침까지 조용히 기다려서 탈출할 수 있는 방인 셈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다.
다음날까지만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꼬인 건지는 몰라도, 아침이 되면 이 유명한 관광지에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지금이 정확히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밤이 깊은 것은 분명했고, 따라서 고작 몇 시간 정도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다 보면 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을 것이 분명한 것이다. 이미 이보다도 더한 수많은 삶의 감옥들 – 학교와 군대, 관계의 책임감과 할부의 늪 –을 긴 시간 동안 견뎌온 입장에서 고작 몇 시간쯤 기다리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참선을 하는 입장이 되어 자세와 마음을 가다듬었다. 마음을 단정히 가다듬고, 허리를 쭉 피고 앉은 채로 심호흡을 하는 것은 삶의 모든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서 이미 수도 없이 취해온 일들이다. 나는 익숙함 속에서 평온을 찾았고, 곧 이 기묘한 석실 안에는 오랜 기간 동안 한 명뿐이었던 참선자가 두 명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참선은 그다지 길지는 못했다.
생각이 심유해지려던 그 찰나에 나는 내일이 부활절 휴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이라면 이 전시관은 며칠 동안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음날까지 그저 기다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물도 빛도 없이 3일 동안 감금되어 있다 보면 제정신으로 살아있을 수 있을지 자체가 의문이었다. 나는 조금 더 절박하고 비참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이 아닌 행동이고, 문을 열어주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뿐이었던 셈이다. 흐느끼고 울고 포기하고 싶은 절망을 가득 느끼며 나는 문을 발로 쾅 찼다. 석실은 이 과도한 폭력에 거세게 몸을 떨며 항변했지만, 나가는 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내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문을 두드리고 자물쇠를 돌려보려고 애썼는지는 나 자신조차도 짐작할 수 없었다. 손톱이 갈라져서 피가 나고 목소리가 온통 쉬게 되었을 즈음에야 나는 지쳐서 탈출을 포기할 수 있었다. 광란에 가까운 삶의 애착이 표현된 뒤에는 차분함이 찾아들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했다면 그 뒤에는 다가올 일들을 맞이하는 수밖에는 없는 셈이다.
삶을 잃은 듯 조금 차분해진 뒤에야 나는 내 발광의 순간 내내 만다라의 주인이 나를 그저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처음 그를 발견한 자세 그대로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쏘아봄도 질책도 아니었고, 진중한 위로나 격려 역시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나를 보았고, 그런 그의 등 뒤에선 마치 만다라가 지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가 죽어있어서 슬프다고 생각했다.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우리는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그에게 길을 묻고 의미를 묻고 삶과 죽음을 물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처럼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지 않을까 – 하는 삶의 희망이 나의 아쉬움을 불태웠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지쳐있던 나는 그 역시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이곳에서 나가려고 했을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긴 기간이었고, 얼마나 괴롭고 외로웠을까. 그도 나처럼 온몸을 다 던져가며 삶으로 되돌아가려고 발광을 했던 걸까. 그리고 그 뒤에 체념하여 저토록 경건하게 앉았던 걸까. 그 역시 참선과 고뇌와 지랄발광을 무한히 반복하며 삶과 죽음의 순환고리를 끊임없이 그려내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가 저지른 죄와 그를 살게 만들었던 욕망들에 대해서 유추해보았다. 어쩌면 그는 사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나쁜 짓을 해야만 했던 걸지도 모르지. 이를테면 꿈의 카메라! 같은 것을 사기 위해서 되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거야.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할부로 샀고, 결국 갚을 수가 없어서 스스로 감옥에 들어온 거지. 욕망이 그를 옥죄여 가두어놓았구나. 그의 뒤에 비친 만다라는 그의 욕망의 그림자였어. 원하고 또 원하여 살았고, 살았기에 고통스럽고 외로웠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얼굴은 마침내 고통스러운 삶과 욕망을 벗어난 현자의 것과 닮아 보였다. 그의 만다라는 빛을 빨아들이는 어둠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영원한 어둠과 평온의 그의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만다라가 그리는 어둠의 물결을 넘어서 계속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꿈을 이뤄서 행복했을 수도 있어. 욕망이 그를 행복으로 이끈 것이지. 비록 감당할 수 없는 카메라를 사서 경제적 파멸로 이끌렸지만 그는 만족할만한 사진들을 찍었을 거야. 햇살처럼 찬란하고 구름처럼 아름다운 꿈들을 사진 속에 담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사진기가 아닐 수도 있어. 만년필이었을지도 모르지. 위대한 고래집의 만년필들, 셰익스피어와 오르페우스의 만년필을 갖고 싶어서 그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을지도 모르지. 모든 사람이 읽어줄 역작을 글로 쓸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는 갇혔던 것은 아닐까. 영혼을 팔았기에 저토록 굵은 쇠사슬과 영원한 참선 속에 갇혀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얼굴은 삶에서 환희와 행복을 이뤄낸 현명한 이들과 닮아 보였다. 살아서 많은 것을 이뤘기에 미련 없이 떠나갈 수 있었던 자라면 만다라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끝이 끝이 아니고 죽음이 덧없음이 아니기에 삶을 즐길 수 있었던 자의 광휘가 만다라가 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만다라는 찬란한 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그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삶을 벗어난 현자이기만 할 수도 없었고, 삶을 이뤄낸 찬란하기만 한 사람일 수도 없었다. 그는 그 자체로 무언가 다른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알아야지만 이 석실을 나가는 지도를 찾을 수 있었다. 모두가 짐작한 대로 그의 만다라는 지도였다. 이 무문의 관을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의 만다라를 읽는 것이 그가 걸은 길을 읽는 것임을 알았지만, 그가 선택하지 않은 길들을 나 홀로 그릴 수는 없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한 길들이자 내가 선택한 길들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지도를 보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를 보는 것이 나를 보는 것임을 자각하자, 만다라는 빙글빙글 돌아가며 삼라만상의 지혜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 산다는 것은 당연히 그런 일이었다. 그는 분명 찬란한 삶 속에서 행복하고 위대했다. 산다는 것은 당연히 그런 일이었다. 그가 그린 어둡고 고통스러운 삶의 그림자들이 빛을 삼키는 만다라를 그렸고, 그가 그린 반짝거리고 환희에 찬 삶의 그림자들이 어둠을 삼키는 만다라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한 군데 어우러져 마치 별처럼 그가 살아온 삶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나처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만다라를 그리고 있었다. 살아온 모든 것들과 죽어갈 모든 것들이 그려내는 무문관의 유일한 출입구를 그는 천천히 별빛을 닮은 선들로 그려내었다. 그것은 유일한 출입문이었고, 이 창문 없는 방에 별빛이 머무르는 유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알았고, 그런 그를 가둘 수 있는 감옥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만다라가 삼라만상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괴인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만다라의 주인의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문을 박차고 들어올 해나에게 인사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문은 느닷없이, 하지만 예견된 그대로 열렸다.
“찰리! 여기서 대체 뭐 하고 있어!”
“안녕. 찾아내 줘서 고마워. 길을 잃었지 뭐야.”
“한참 찾았잖아! 핸드폰은 왜 꺼놨어!”
“여기 들어오니까 꺼지던걸. 으스스하지?”
“이그. 10분만 더 찾아보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다고.”
“몇 분 동안이나 찾았는지 물어봐도 돼? 핸드폰이 꺼져서 시간관념이 없어서.”
“10분쯤? 카운터 보던 메이가 너도 방금 전에 들어왔다고 하던데.”
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지만, 또 동시에 사실이기도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기묘할 수밖에 없는 일을 겪었던 것은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들어간 석실이란 그런 곳일 수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해나를 보면서 말했다.
“찾아줘서 고마워. 평생 갇혀 있을 뻔했지 뭐야.”
해나는 문에는 자물쇠가 없다며 제 발로 나오지 그랬냐고 핀잔을 주었고, 나는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던 모양이라고 얘기했다. 어쨌든 제 발로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우리는 다시 빛과 어둠의 세계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갈 수 있었다.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금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기묘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기분도 들었다. 어둠에 잠기고 빛으로 물들기를 반복하는 것은 세상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도, 사람의 마음도,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로 물들고 씻겼다. 나는 어제 보지 못한 해가 뜨는 모습 대신, 해가 지는 모습을 보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둘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가 지는 것을 보러 가겠다는 내 말에 해나는 잘 다녀오라고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멀어지는 과정에 우리는 잠시 가로등 불빛 속에서 눈이 잠시 마주쳤고, 해나는 마치 다 안다는 것처럼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그것이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아더왕의 왕좌(Authur’s Seat)로 가는 길은 처음에는 평탄하게 시작되었다. 과거에는 왕족과 선택받은 자들만이 걸을 수 있었다는 로열 마일은 오래된 건물들과 마차 바퀴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울퉁불퉁한 돌바닥이 인상 깊은 1마일 (1.7km) 가량의 길이었고, 걸어서 가로지르는 데는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낮에는 이 로열 마일에 수십 번쯤 왔었지만, 또 어두워지기 시작한 뒤의 거리를 본 것은 또 처음이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답게 로열 마일은 밤에도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며 마주친 몇몇 두려운 거리들은 어둠이 내리면 사악이 숨 쉬고 고통이 악취를 내뿜곤 했다. 들어갔다간 어떤 비명횡사를 당할지 알 수 없는 괴로움과 공포의 거리들 앞에서 나는 무척 많은 고민들을 하곤 했었다. 그 길을 지나야지만 나타나는 모든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해서 어둠을 뚫고 걸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행객은 어둠을 뚫고 걸을 것인지 말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 곳은 로열 마일이었다. 안전하고 밝은, 빛으로 가득한 길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빛의 거리 위에는 안전한 어둠이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로열 마일의 끝자락에서 아더의 왕좌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산길은 황금 같은 노란색 가시꽃이 가득 피어있는 길으로, 밤에는 꽃들이 야생별처럼 빛났다. 천연 암석들로 이루어진 계단들은 가파르고 날카로웠지만, 오랜 여행으로 단련된 내 다리에 지나친 무리는 주지 못했고, 어둠은 짙었지만 내 마음을 가리지는 않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곳, 도시의 불빛과 별빛만을 인도자 삼아 걸어야 하는 어슴푸레한 곳이었지만 그곳에는 그 어떠한 공포와 절망도 깃들 수가 없었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횃불처럼 길을 덥히고 있었다.
멀리서 동이 터오는 것처럼 석양이 번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삶처럼 짧은 인간의 축복이었다. 그 찰나가 끝나면 불타는 눈동자는 땅 아래로 숨어버리고 세상은 별빛과 달빛으로 비추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그 위대한 찰나가 머지않아서 나는 그 안에 이미 머물러 있었다. 나는 신의 재림을 기다리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강인한 대지를 밟았다. 밟고 또 밟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 숭고한 곳에는 악령도 악마도 깃들 수 없었다.
황금빛으로 가득한 협곡을 돌아서 천상으로 오르는 끝없는 돌계단들을 거닐자, 마침내 드넓은 세상이 내 앞에 터져 나왔다. 햇살의 종말은 아직 채 도래하지 않았는지라 멀리서 이글거리는 태양은 마치 삶의 불씨를 머금은 아궁이처럼 지평의 너머를 덥혀대고 있었다. 도시는 아직 추레했고, 술과 음악 속에서 잠들고 있었다. 깜빡거리는 도시의 눈꺼풀들과 느릿한 기지개 소리를 들으며 나는 마침내 삶이 잠드는 순간을 목도할 수 있었다.
마지막 햇살은 화살처럼 터져 나왔다. 눈을 감아도 눈가를 비집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주황색이었다. 터져 나오기 시작한 햇살은 36개의 방위를 한꺼번에 찌르며 온 세상을 삼엄하게 물들였다. 찰나의 차이로 세상은 푸르고 어두웠던 곳에서 따스하고 상서로운 장소로 탈바꿈해댔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그 찰나의 상서로움을 마지막으로 햇살은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새 죽음이, 새 밤이, 새 꿈이 시작되고 있었다. 빛으로 물들어 어둠이 빚어지는 그곳에, 만다라가 그려지고 있었다. 온 세상의 꿈을 나지막이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날 아침, 해나는 물어보았다.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대답했다.
응.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