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단편소설집 여섯 번째 이야기 : 용과 기사
여섯 번째 이야기 : 용과 기사
용이 공주를 납치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지난 월요일이었다. 왕국의 전령은 펑퍼짐한 옷을 입은 채로 마을마다 전단과 소음을 뿌리고 다녔다.
“공주님께서 납치당하셨답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주섬주섬 갑옷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용이 어디에 사는지는 온 왕국이 다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공주를 구출하는 영웅이 되기 위해선 남들보다 조금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는 길 내내 왕과 왕비께서 하사하실 황금과 작위에 대해서 공상하던 나는 너른 평야와 강가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동굴에 도착한 즉시 칼을 빼어 들고 소리쳤다.
“공주를 되찾으러 왔노라! 이 악룡! 모습을 보여라!”
그러자 동굴 안에서 달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이제야 오시는가! 내 곧 나갑네. 잠시만 기다리시게!”
그 친절한 화답이 얼마나 괴상한 지에 대해 당혹할 새도 없이 용은 곧 동굴 밖으로 그 끔찍한 자태를 드러내었다. 하늘도 가릴 것 같은 거대한 날개와 강물처럼 굵게 구불거리는 목덜미가 먼저 그 위용을 드러냈고, 성채만한 쿵쾅거리는 앞발과 그보다도 더 거대한 뒷다리가 곧 시야를 가득 메웠다. 용은 워낙에 거대한지라 동굴 밖으로 그 자태를 온전히 드러내는 데만 해도 긴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매초 거대해지는 것 같은 용의 무도한 자태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만 했다.
마침내 용이 그 모습을 전부 드러냈을 때, 나는 그것이 왕국에서 가장 높은 첨탑보다도 크고 왕궁의 건물을 모두 합쳐놓은 것보다도 넓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소리쳐도 용이 들을 수 있을지 조차 장담하기 어려운지라 나는 칼을 빼어 들고 악을 쓰기 시작해야만 했다.
“더.. 덤벼라! 이.. 이놈! 내가 네.. 네놈의 악행을 무.. 물리치고 공주를 구할 것이다!”
용은 까마득한 높이에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내 쪽으로 내렸다. 마치 세상을 먹는 뱀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나는 하마터면 눈을 찔끔 감을 뻔했지만 다행히 그전에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 뭐라고 그랬나? 저 위에선 잘 안 들려서 말일세.”
“이... 이 악적! 나는 공주를 데.. 데려갈 것이다!”
그 말에 용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 생각일세. 황금 삼천관이면 충분할 걸세.”
나는 잠시 그 말을 이해하느라 얼이 빠졌고 그 바람에 칼끝이 땅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황금이라니? 공주를 팔 생각이란 말인가?”
용은 더 이상 명쾌할 수 없다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치 여러 번 생각이라도 해본 마냥 침착한 모습이었다. 나는 용의 움직임에 깜짝 놀라 칼을 다시 들어 올렸지만, 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물론 그렇지. 공주로 내가 달리 할 일이 무어가 있단 말인가?”
“네놈 같은 악적이 공주님을 데리고 무얼 할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냐!”
“하긴 그도 그렇군. 나 역시 자네 같은 인간이 공주를 가지고 무얼 하고 싶을지 전혀 알 수가 없다네. 서로 알 수가 없는 부분은 질문한 셈이군. 내 사과하겠네.”
내가 멍하니 그를 쳐다보자 용은 친절하게도 자신의 기호를 알려주었다.
“서로 모르는 바를 알아가는 것은 기쁜 바이니 내 기꺼이 알려주겠네. 나는 썩 식성이 까다로운 편이라 유기농 제품이 아닌 이상 먹지 않는다네. 자네 공주는 적당히 건강해 보이기는 해도 유기농인 것 같지는 않더군. 먹을 수 없는 데다가 내겐 다른 종과 짝짓기 하는 불쾌하고 끔찍한 취미도 없으니 내가 공주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라네. 거처가 좁은 편이라 특별히 관리인을 둘 생각도 없고, 짧게나마 지켜보니 공주가 딱히 청소나 동굴 관리에 소질이 있어 보이지도 않더군. 결국 내게 최선은 공주를 제값 주고 파는 것이네. 대신 품질은 내 보장하지.”
나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들고 용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럼 써먹을 구석도 없는 공주를 팔려고 훔쳤단 말이냐!”
용은 다분히 놀란 표정으로 나를 점잖게 꾸짖었다.
“이보게. 어찌 그렇게 무서운 말을 할 수가 있나. 공주가 무슨 물건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훔친다는 말은 가려서 써야 하는 것이라네. 나는 공주를 ‘데려온’ 걸세. 잠시 구류하여 가치를 높인 뒤 판매를 하는 것이지.”
나는 용의 점잖은 말투와 면상에다 대고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슬슬 깨닫기 시작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목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던지라 자세와 말투를 바꾸어 그를 바라보았다.
“음.. 그렇다면 공주는 물건이 아닌데 어찌 판매한다는 말이냐! 아니.. 말이오?”
“물건이 아니라도 당연히 판매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자네 역시 돈이 궁해지면 칼솜씨를 판매할 테지? 부유한 귀족이 결투 대리인을 서달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지. 그들이 청중 앞에서 마법을 보여주며 모자에 돈을 받는 것 역시 판매가 아닌가. 학자들은 학식을 돈을 받고 팔고 언론인은 글과 생각을 돈 받고 팔지 않나. 비물질적인 것들도 다 돈으로 거래가 가능한 것 같네만.”
거기까지 말한 뒤 용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머리를 내 쪽으로 들이밀며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 저번 주에 보니 자네 동네 상인들도 헐벗은 인간을 판매하려고 사슬에 묶어서 가던데, 자네는 대체 왜 인간은 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게 그렇게 말하는 저의가 따로 있는 건 아닌 게지? 내게 사기를 치려고 한다면 큰코다칠 걸세.”
“그건 그 천인공노할 인신매매범들이 천벌을 받아 마땅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지 사람을 사고파는 것이 괜찮은 것은 아니오! 그리고 사람 자체를 파는 것과 사람이 가진 바 능력을 자발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지 않소!”
용은 그 말에 대단히 감탄하며 내게 물어보았다.
“과연 그렇군!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까지가 팔아도 괜찮은 능력인지 내게 알려줄 수 있겠나?”
그 질문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인지라 나로선 머리에서 김이 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전 햇살을 받은 데다가 보온기능이 있어서 찜기구 비슷한 무언가로 변한 투구를 벗어 땅에다 내려놓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확실히 어디까지가 팔아도 괜찮은지는 어려운 질문일 수밖에 없었다. 저잣거리에서 외모나 지닌 성적 매력을 팔거나 장기를 판매하는 것도 능력에 포함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까지가 물건이며 어디까지가 능력인 걸까. 음악을 연주하는 손가락은 팔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도 사람의 일부이니 사람처럼 팔 수 없는 것일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 나는 아무 생각이나 용에게 집어던지고 말았다.
“사람의 능력은 주변 모두에게 나누어주어도 작아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 판매할 수 있소! 하지만 사람 그 자체는 나누면 작아지거나 손상을 입소. 때문에 판매할 수 없는 것이오.”
그러자 용은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머쓱해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지만, 용은 질타하는 말투로 내게 대답했다.
“자네 지금 사람은 자르면 손상을 입는 물질이라 팔 수 없고 능력은 잘라도 손상이 없기에 팔 수 있다고 하는 건가?”
“바로 그렇소!”
“거 참 물질은 팔 수 없고 능력은 팔 수 있다니 꽤 이상하게 들리는구먼. 그럼 당근이나 오징어 같은 것도 자르면 토막이 나니 팔 수 없겠구먼?”
“그.. 그렇소..”
“뭔가 무척 이상한데 자네도 이상하다는 거 인정하지? 뭐 어쨌든 알겠네. 그렇다면 나는 자네의 입장을 받아들여 공주의 ‘생’을 판매하는 것으로 하지. 공주의 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해서 공주에게나 사람들에게 손상이 오지는 않을 것 같군. 자네에게도 공주의 ‘생’이 꽤 중요할 가치일 것이 아닌가. 사람들 역시 공주에게 생이 있는 편을 선호할 테고 말이야.”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그럼 내가 구매하지 않으면 공주의 생을 앗아가기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자네는 왜 또 그리 섬뜩한 말을 하고 그러나? 자네 말고도 구매자는 얼마든지 올 텐데 내가 왜 공주의 생을 빼앗는다는 말인가? 상인이 자기 물건 안 사주는 손님을 만날 때마다 가게를 부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나는 그저 이번 판매가 성사되지 않으면 다음 거래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 뿐이네. 그때까지 공주의 생에 대한 구류가 길어질 뿐이지.”
“그것은 비도덕적인 일이오. 어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삶을 강제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럼 자네는 공주를 뭘 어찌하려고 왔단 말인가? 자네가 데려가는 것 역시 욕심을 위한 구류가 아닌가? 자네 역시도 공주를 먹을 것도 아니고 보아하니 구혼하러 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네도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생각되네만?”
그 말에 나는 발끈하여 발을 거세게 굴렀다. 땅이 우르릉 진동하자 용은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성을 내며 용의 얼굴에 삿대질을 해댔다.
“나는 공주의 명예와 세상의 정의를 수복하기 위해서 온 것이오! 당신 같은 욕망의 기생충과 나를 똑같이 생각하지 마시오!”
일단 뱉어놓고 나니 기생충이라는 단어는 조금 너무 심하지 않았나 싶었지만 다행히 용은 모욕당했다고 느끼지는 않은 것 같았다. 대신 용은 우습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내 말을 반박했다.
“그것도 자네의 욕심이 아닌가. 공주가 구해달라고 한 것을 직접 들은 것도 아닐 텐데. 내 알기론 공주는 납치당한 이후로 구해달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네. 세상의 정의로움에 대해서도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고 말야. 내 생각엔 공주는 그런 생각들이 없는데 자네가 공주의 정의를 하나 만들어가진 것 같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 그렇지 않소. 공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이 정의로워지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고 계시오.”
“그건 자네의 추측이 아닌가? 추측이 아니라고 말할만한 근거는 있나?”
“없소.”
용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새로운 제안을 건네었다.
“뭐 그럼 이렇게 하세. 추측이든 아니든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겠다는 공주의 욕심이나 황금을 좀 받아서 동굴 보수공사를 하겠다는 내 욕심이나 크게 다를 바는 없는 것 같네. 그러니 우리 서로 도덕적인 평가는 그만두고 흥정을 해보는 것이 어떤가? 그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가격이 맞지 않으면 돌아가고 맞으면 공주를 사 가면 그만일세. 내 특별히 정의에 대한 공주의 욕망은 덤으로 내어주도록 하겠네."
용은 그 얘기를 하면서 협박조의 느낌이 나는 불꽃 연기를 코로 내뿜었고, 덕분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영 기사답지 못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얼마까지 되오?”
공주에 대한 흥정에 응해버린 나는 자괴감에 휩싸였지만 용은 희희낙락하며 단어를 골랐다.
“황금 삼천관이면 충분하겠지만 자네는 말이 통하는 인재 같으니 내 특별히 이천팔백 관 까지는 해주겠네.”
“그건 너무 비싸오. 내 갑옷과 장검을 다 턴다고 해도 황금 천관이 채 안된단 말이오.”
“돈도 없는데 공주는 어찌 구하러 왔나? 자네 보기보다 욕심이 많구만.”
그 말에 다시 발작하며 발을 구를 뻔 한 나는 그 순간 기막힌 생각을 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여기서 소리를 질러 거래를 파행시키는 것 보다는 백배 천배는 나은 계획이었다. 나는 허리춤에 당당히 손을 올리고 용을 향해서 외쳤다.
“잠깐, 그렇다면 이건 어떻소? 3천관이 아니라 4천관에 공주를 구매하겠소.”
“오! 자네의 흥정 방식에는 참으로 유별난 구석이 있구먼! 나는 당연히 대찬성일세!”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오. 황금 사천관을 지불하는 대신 지금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공주를 안전하게 데려간 뒤에 지불하겠소. 대왕 마마께서는 분명 공주의 몸값을 충분히 지불하실 거요. 그럼 내가 명예를 걸고 그 황금을 당신에게 전달할 것을 약속하오.”
내 머릿속에서는 공주를 데려가면 대왕 마마께서 하사하실 오천관의 황금과 왕비마마께서 남몰래 건네주실 천관의 황금이 아른거렸다. 그중에서 사천관을 용에게 준다고 해도 남은 금으로 항상 갖고 싶었던 별철 갑옷과 용비늘 장검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나는 별철 갑옷의 영롱한 자태와 용비늘 장검의 늘씬하고 날카로운 검신을 떠올리며 당차게 외쳤다.
“내 명예는 믿을 만 하오! 어떻소?”
용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거 참 고민이 많이 되는구먼. 자네 명예가 얼마만큼의 담보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황금 사천관어치는 안될 것 같기는 한데.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눈앞에서 별철 장검과 갑옷이 아른거려서 혼미해진 나는 악에 받친 채로 용을 설득하려 들었다.
“내가 공주만 데리고 가고 황금은 훔칠 멍청이로 보이는 거요? 그랬다간 산맥처럼 웅장한 당신과 원한관계가 생기는데 대체 세상천지의 어느 얼간이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그리고 속된 말로 당신은 언제든지 궁궐로 날아가서 공주를 다시 데려올 수 있지 않소? 그 누가 당신처럼 위엄찬 생명체에게 대항이라도 한단 말이오? 차라리 당신에게 정당한 값을 주고 공주를 후환 없이 데려오는 것이 나은 선택일 것이 분명한데 내가 왜 그런 현명한 선택을 내리지 않을 것이란 말이오. 나는 멍청이가 아니오.”
“거 말 되는군. 자네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네.”
“정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일주일 내로 돌아오지 못하면 왕궁이고 왕국이고 모조리 불태우셔도 좋소. 내 명예를 걸고 허락하오.”
“오! 자네는 정말 보기보다도 제정신이 아니구먼! 대체 어디서 그렇게 흉측하고 천벌 받을 소리들을 배웠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네. 악마가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하고 모실 지경인데 명함 같은 것은 없나? 어쨌든 내 알겠네. 황금 4천관 후지급으로 우리 합의를 보도록 하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용은 눈을 끔뻑끔뻑하다가 나에게 물었다.
“그럼 공주를 지금 데려가겠나? 그래도 물품 상태도 확인할 겸 지금 바로 꺼내 주는 게 자네에게는 좋겠지?”
공주를 냉동참치 정도로 취급하는 용의 모습은 썩 적절치는 못한 것이었지만 나는 거래가 성사된 것이 기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좋소! 지금 받아가도록 하겠소!”
용은 긴 몸을 구불구불 거려 동굴 안으로 들어갔고, 곧 손에 인간을 하나 들고 나왔다. 나는 용의 손에 들린 사람의 상태를 면밀히 살폈고, 결국 조금은 무례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저건 대체 뭐요?”
용은 손에 들려있는 인간과 눈을 마주치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건 뭐냐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 자가 공주가 아니란 말인가?”
용의 손에 들린 사람은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나는 공자요.”
백발이 성성한 꼬장꼬장해 보이는 남성은 용에 손에 들린 채로 푸념과 장탄식, 그리고 노기가 섞인 훈계를 읊었다.
“내 여기로 오는 내내 말하지 않았소. 나는 공주가 아니라 공자란 말이오. 공주랑은 아주 다른 존재요.”
용은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공자에게 물었다.
“허? 거 참. 나는 공주가 공자고 공자가 공주인 줄 알았는데 아니란 말인가? 나는 여지껏 그렇게 알았지 뭔가. 자네는 혹시 황금 사천관쯤 할 생각이 없는가?”
“나는 단지 왕에게 조언을 해주는 글쟁이일 뿐이라 그 누구도 황금을 지불하려고 하지 않을 거요. 그리고 대관절 상품에게 가격을 측정해도 좋은지 물어보는 상인이 어디에 있단 말이오. 물어봤으니 대답은 하겠소만 나는 황금 두 관쯤 할 용의 정도 밖에는 없소.”
나는 용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명재상이자 왕국민들의 스승으로 유명한 바로 그 공자라면 방금의 말이 지나친 겸양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공자가 강연을 한다고만 하면 전 왕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도 했고, 지금도 왕국 앞에는 유수의 학자들이 그의 제자를 자처하며 움막 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어찌 보면 무지개색 잠옷만 입는 덜떨어진 공주보다도 왕국에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용과 공자의 대화를 들어야만 했다.
용은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말했다.
“허 그렇다면 이거 참 낭패로구만. 자네를 팔 수 없다면 나는 대체 어디서 황금 사천관을 구한단 말인가?”
공자는 용의 손아귀에 잡힌 사람치곤 지나치게 지루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게 사람을 납치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더 좋은 계획이 있소. 한 번 들어보시겠소?”
“아니 그런 게 있단 말인가? 내 당연히 경청하겠네. 그 계획이란 것이 무언가?”
“아까 당신들이 말했듯 본질을 팔 수는 없어도 능력을 팔 수는 있소. 본질과 달리 능력은 부수적인 것이고, 설령 나눈다고 해도 크기가 달라지지는 않소. 그리고 당신에게는 꽤 많은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오.”
용은 그 말에 헤벌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네 눈에는 내가 능력이 있는 용으로 보인다는 말이지? 거 어떤 능력이 보였는지 혹시 알려줄 수 있는가?”
“내가 동굴 안에 잡혀있을 때 본 바로는 당신에게는 집을 단정히 꾸미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 보였소. 솔직히 저 좁은 동굴을 저토록 꼼꼼히 꾸며 안식처 삼은 것만 보아도 그 재능은 이미 증명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요.”
“지금 나보고 집을 꾸미는 사업을 하라는 것인가?”
“그렇소. 집을 저렇게 잘 꾸몄다는 것은 예술적 감각이 특출 나다는 뜻이오. 물론 생각이 깊지는 않아서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저지르는 저돌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에게는 꼭 필요한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법이오. 만약 침착한 사람을 조수로 붙여 그 저돌성이 위기가 되지 않게 보완만 해준다면 아주 앞날이 창창한 사업가가 될 것이라고 장담하오. 그 편이 공주와 나조차도 구분을 못하는 눈으로 납치 사업에 종사하는 것보다는 수익성이 좋을 것이고 말이오.”
“자네 정말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공자는 용의 손아귀 안에서도 어찌 옷매무새를 잘 가다듬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용에게 말했다.
“만약 그쪽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내 직접 일거리를 주선해줄 것을 약속하겠소. 마침 발아래에 조수로 쓸만한 침착한 인재도 한 명 있으니 이 얼마나 순리에 맞는 일이란 말이오.”
용은 나를 힐끔 바라보았고, 졸지에 용이하는 사업의 조수가 되게 생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용은 나를 꼼꼼히 훑어보곤 말했다.
“그렇지? 나도 아까 대화를 나눠보니 요즘 찾아오는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소리도 덜 지르고 아주 침착하더라고.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으니 내 한 번 해 보겠네!”
그러자 공자는 내게도 하문하였다.
“자네도 어울리지도 않는 갑옷을 입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보다는 용을 따라 성실히 일해보는 것이 나을 걸세. 노동 없이 생기는 돈은 화를 키울 뿐이네. 하지만 성실히 일할 수만 있다면 십 년이면 자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내 장담하지.”
나는 공자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세이경청하기는 했다. 뭐가 어찌 되었건 공자님께서 하신 말씀이었고, 경우에 따라선 대대손손 대를 이어가며 가훈 삼아도 부족하지 않은 말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용은 나를 내려다보면서 씨익 웃곤, 공자를 들고 있지 않은 나머지 한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 부탁하네. 나는 용일세.”
그렇게 용과 나의 기묘한 동업이 시작되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