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소유와 욕망 8화

봄 단편소설집 여덟 번째 이야기 : 겨울 하늘에서 피는 꽃

by 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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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이야기 : 겨울 하늘에서 피는 꽃





세상에는 간혹 아주 특별하지만 별 쓸모는 없는 능력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참 공교롭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겐 남들에게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독심술/투시능력이 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지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었고, 나는 오랜 기간 그 사실을 감춰야만 했다. 물론 내 독심술/투시능력은 그렇게 쓸모가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내게 투영되는 사람들의 마음속은 확실한 내용을 가지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피는 꽃의 형상을 보며 그 사람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그들의 마음속 꽃 형상이 어설픈 낙서처럼 그려졌다. 그들을 잘 모르는 만큼 마음도 흐릿한 색채와 미약한 향기를 품은 모양새로만 읽혔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마음속에 핀 꽃은 보다 선명한 형태를 갖추었다. 그 사람의 생일을 알면 꽃대가 선명해졌고, 그 사람의 가족관계를 알아 가면 색이 또렷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꽃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꽃잎의 색채, 잎사귀의 싱싱함, 꽃대의 꼿꼿함과 암술과 수술의 촉촉함. 이런 지표 하나하나가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전해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비록 완벽한 독심술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면의 꽃을 세심히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 감정, 기분 같은 것을 면밀히 파악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는 없었었음에도 나는 그렇게 꽃을 보며 사람을 읽곤 했던 것이다.

마음속 꽃이 보인 것은 내겐 기억보다도 이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장 이른 시기의 기억 속에서 조차도 나는 꽃을 보곤 했었다. 네다섯 살 밖에 안 되던 그 최초의 기억 속 나는 어머니의 가슴어림께에 피어난 꽃을 보며 왜 만져지지 않는 걸까- 하고 의아하곤 했다. 그때는 꽃의 이름도 몰랐고, 향기를 맡는 방법도 몰라서 그것을 그저 노랗고 예쁜 꽃이라고만 여겼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이 형상화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즈음해서는 사춘기가 찾아왔고, 그 꽃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달맞이꽃은 나와 함께 자라났었다.

어머니의 노란 꽃은 해마다 더 선명해졌고 송이송이 더 피어났다. 꽃잎은 가늘고 길어졌지만 봉오리는 매년 더 실하게 영글었고, 꽃대는 길고 하늘하늘해졌으며 잎사귀에는 생기가 돌았다. 비록 내가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 수능에 실패하거나 여자 친구에게 차여 몇 날 며칠을 술독에 빠져 지냈을 때마다- 그 달맞이꽃은 겨울을 맞듯 시름시름 앓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더욱 풍성하게 피어났던 셈이다. 힘들 때도 기쁠 때도 어머니의 표정도 표현도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의 꽃을 보며 어머니의 속내를 조금씩 읽어낼 수 있었다.

달맞이꽃을 보며 나는 사람을 보는 방법을 서서히 배워나갔다. 사람들에게 저마다 깃든 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색채와 향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뒤틀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 안에는 비틀린 꽃이 핀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이 청명한 사람들에게는 맑고 고운 꽃이 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썩어 문드러진 덩굴손을 키우는 사람은 지저분한 욕망에 사로잡혀 범죄를 저질렀고,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담쟁이 꽃을 피우던 사람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행복해졌다. 덩굴손과 담쟁이넝쿨은 언뜻 보기엔 비슷해 보였지만 그 색채나 향기에서 큰 차이가 났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읽어내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읽어나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사람을 평가하는 대신 그 안의 꽃을 보며 살아가는 방법을 서서히 깨달아 갔다. 한 송이였던 달맞이꽃이 스물여섯 송이가 되는 동안 나는 그처럼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새로 배웠던 것이다.

몇 가지 규칙들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다. 가령, 꽃잎이 큰 꽃을 품은 사람은 대개 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장미나 해바라기, 튤립 정도로 화려하고 큰 꽃잎을 가진 꽃이라면 백이면 백 선명하고 거대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특히 장미는 약간 도도하면서도 정열적인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났다. 감정이 큰 사람들은 그만큼 자기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실수를 저지르기도 쉬웠지만, 또 열렬히 사랑하고 열렬히 살아갔다.

그에 비해 꽃잎의 색채는 그 사람의 마음의 깊이를 나타냈다. 같은 꽃을 품은 사람도 그 색채가 얼마나 진하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성격차이를 나타냈다. 선홍빛으로 짙고 무거운 장미를 품은 사람은 백색 장미를 품은 사람에 비해 배려심이 많고 진중했다. 반면 백색 장미는 오만하면서도 순진무구한 면이 많았다. 아무래도 색채가 무거울수록 낮게 깔려 세상과 통하고 가벼울수록 높게 떠올라 자기 자신에게 닿는 것 같았다.

하지만 꽃들의 이런저런 특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향기였다. 향기가 짙은 꽃은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마음속에서 온 방을 채우는 짙은 향기가 흘러나올 때면, 그 꽃 주위로 다른 모든 것들이 송이송이 모여들곤 했다. 그래서 짙은 향기를 품은 사람은 언제나 인기가 많았고, 사람들을 감읍시키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사로운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10명이 있는 방에서도 100만 명이 모인 광장에서도 향기가 짙은 사람은 어김없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향이 느껴지는 사람에게도, 향을 맡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 매력은 도드라지게 느껴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운명적인 사건 역시 향기로 시작되었었다. 지금도 코를 조금만 벌름거리면 되살아날 것만 같은 놀라운 향기 말이다.







그 날은 그 해의 첫 가을날이었다. 여름 내내 나는 선인장 꽃에게 찔려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사람에 대해서건 꽃에 대해서건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향기는 없는데 지독하리만큼 날카로운 꽃들을 사랑하곤 했었다. 선인장 전에는 찔레였고, 찔레 전에는 엉겅퀴꽃이었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톡톡 괴롭게 쏴대는 매력의 소유자였던 셈이다. 다시는 향 없는 꽃에 관심을 갖거나 찔려 아파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나는 그 학기 첫 수업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낯설고도 놀라운 향기를 처음 마주칠 수 있었다.

그것은 긴 세월 꽃을 바라보며 살아온 나로서도 처음 맡아보는 짙은 향기였다. 첫 느낌은 천일홍과도 닮아있었으나 더 진중했고, 중간에 배어 나오는 향은 물망초 같았지만 더 날카로웠다. 심지어 베이스 노트는 그 청초한 수선화를 닮아있으면서도 더 화려했으니 도대체 어디서 이런 향이 나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둘러보았음에도 교실에는 수선화와 물망초는커녕 천일홍 한 송이조차도 피어있지 않았다. 사람들로 가득 찬 교실은 꽃밭을 연상시켰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은 그 드넓은 꽃밭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활발하게 군대 얘기를 하는 남학생은 거짓말처럼 탐스러운 장미를 담고 있었지만 그 향기는 옅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들에게 환한 미소를 날리는 여학생은 진달래를 한 움큼 틔워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그날 그 교실에서 눈에 띌 만큼 특이한 점이라곤 30명 남짓한 교실에 패랭이꽃이 3송이나 피어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여태껏 보지 못한 천상화(天上花)를 발견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그 첫 수업이 끝날 때까지 무엇도 발견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 향기는 두 번째 수업에서도 똑같이 흘러나왔다. 아니, 되려 지난주 보다도 더 짙어진 상태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치 사루비아나 달래꽃의 향기마저도 섞여있는 것 같은 그 향기는 나를 온통 혼란 속에 빠트렸다. 살아오며 마주친 사람이 수만 명은 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향기와 색채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이 꽃향기가 무엇인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놀라움 속에서 나는 사람들의 꽃을 아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직 서로 잘 모르는 상태라 꽃을 발견하지 못한 것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새로운 꽃은 단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송이조차도 말이다. 나는 결국 길을 잃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 수업은 연극 수업이었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은 여러 극작품들을 분석해야 했고, 학기 말에는 직접 무대 위에서 자신의 분석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었다. 연기를 직접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수업이었기에 그곳에는 톡톡 튀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각양각색의 꽃들 사이에서 약간 길을 잃은 기분을 느낀 것이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향기가 어디서 배어 나오는지 찾지 못한 채 재능 있는 학생들 사이를 헤매야 했다. 그나마 자그마한 단서를 겨우 잡아내었던 것은 시간이 흘러 우리가 연극 조를 짜기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그건 조금 부당한 것 같습니다.”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교수는 조를 학생들이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하는 것이라고 말하던 중이었다. 심지어 역할을 임의로 바꾸는 것도 안 된다고 해서 학생들 사이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다른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배역을 정하는 기준이 뭔가요? 왜 강의계획서엔 나와 있지 않죠?”

그 학생의 꽃잎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고, 그로 미루어 짐작컨대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교수는 애써 “각 팀마다 연출을 한 명씩 배정해 줄 것입니다.. 에... 그러니까.. 연출은 제가 잘 선출할 테니 연출의 지시에 잘 따르시면 아마 될 겁니다..”라는 식으로 학생들을 달래려 했지만, 그건 되려 그들의 분노를 키울 뿐이었다.

그때, 세 번째 학생이 손을 들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확실한 손동작이었다. 그리고 그 미려한 손동작이 허공을 수놓는 그 순간, 교실에 향기가 가득 퍼졌다. 그때서야 나는 저 사람이야말로 향기의 주인이라는 것을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난처한 어조로 그 사람은 말했다.

“하지만 연출은 무슨 기준으로 정하나요? 그리고 연출은 무대에도 안 올라가고 대사도 안 외워도 되니 불공평하지 않나요? 그럴 바에야 연출 없이 다 같이 배역을 맡으면 공정할 것 같은데요.”

그 말에는 분노와 공정함이 약간씩 묻어 나왔고, 널뛰는 감정이나 날이 선 속상함 없이 차분한 눈길로 전달되었다. 그 독특한 감정은 내가 몇 주 동안 헤매게 만든 향기의 주 요인인 것이 분명했다.

그 학생은 교수와 몇 차례 옥신각신 했고 나는 그동안 그녀를 면밀히 관찰했다. 긴 갈색 머리, 조용한 눈매, 불만스러운 듯 뾰로통한 입술을 머릿속으로 메모해두던 나는 곧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로선 태어나서 처음으로 꽃의 외양이 아닌 사람의 외모를 기억에 새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 이유는 자명했다. 꽃이 보였다면야 꽃을 읽었겠지만, 그 사람은 희한하게도 꽃이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늘 봐오던 꽃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음은 자연스럽게 외모를 읽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꽤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꽃이 흐릿하거나 희미한 사람은 본 적이 있었어도 꽃이 아예 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간혹 아주 어린아이들에게서 씨앗만 보이는 현상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자아가 생겨나기도 전 3~4살의 유아들에게나 간혹 있는 일이었다. 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때때로 있기는 했지만 그런 사람들마저도 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꽃은 시야에 잡힌다기보다는 심상에 맺히는 것에 가까웠다. 즉 굳이 안경을 끼거나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 보이는 만큼 보이는 종류의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예쁘장한 학생에게선 도무지 꽃의 존재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마음으로 더듬어보아도 그녀의 자리에는 공간 그 자체만이 느껴질 뿐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연극수업 날만 되면 그 사람을 열심히 관찰했다. 나로선 품어야 하는 의문이 수없이 많았다. 어떻게 꽃이 없는 채로 저렇게 놀라운 향기를 품을 수 있는지 궁금했고, 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이어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을 피워낼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결국 나는 한 송이의 놀라운 꽃을 찾기 위한 여정을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셈이다.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한 가지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그 사람은 참 예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외모를 눈여겨본 적이 없었는지라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여태껏 내 눈에는 향이 짙어 인기가 많은 사람들은 많이 포착되었지만, 외모가 예쁜 사람이라곤 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꽃의 그림자에 가려져 외모는 눈에 들어오질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꽃이 없는 그 사람에게서 내가 즉각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라곤 외부적 요소뿐이었고, 외부적 요인 중에서도 그 사람의 외모는 놀라운 것이었다.

물론 그 외모와는 완전히 별개로 이 사람은 그 향기에 걸맞게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의 다채로운 표정과 매력을 보며 설령 아무런 향기가 없었거나 심지어 외모가 눈부시지 않았다고 해도 이 사람에게는 구애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매력은 독특한 그 사람만의 특징들로 매 순간 강화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처음 봤을 때 마치 겨울 같았다. 싸늘하고 도도한, 손끝 닿는 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의 평원을 닮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차가워 보이던 감정은 교수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순간 하얀 불꽃이 되며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백색 섬광을 보여주었다. 그때 그곳엔 여름 백야만이 가질 수 있는 하얀 열기가 녹아있었다. 하지만 그 뜨거움 역시 차분한 하얀색 안에 숨겨져 있었기에 언뜻 보는 이들은 그것이 여름인지 겨울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장난을 칠 때에는 장난스럽고 화사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듯했지만, 또 외모만 보고 작업을 거는 불한당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가을 낙엽 같은 단호함이 섞여있었다. 따스하게 남을 배려하는 모습과 화사하게 타인을 끌어당기는 모습, 그러면서도 벽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내치는 모습이 다 내재되어 있었기에 그 사람은 마치 사계절 같은 선명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 놀라운 매력을 관찰하며 꽤 머리가 아팠다. 이 놀라운 감정, 이 모순적인 특별함이 대체 무슨 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관찰, 그리고 또 관찰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는 혼란이 가중될 뿐이었다.

그 사람은 수업에 일찍 오곤 했다. 이 수업 자체가 월요일의 첫 번째 수업이었으니 무척이나 성실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나 역시 일찍 수업에 나와 그 사람의 모습을 관찰했는데, (다행히 일찍 오는 사람들이 몇 더 있어서 변태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왠지 그 사람은 일찍 오기는 했지만 성실하기 위해서 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성실한 시간대에 나타나기는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행동에서 받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서 딱히 핸드폰을 가지고 놀지도 않았고, 엎드려 졸지도 않았다. 도리어 교재를 펴서 편안히 훑어보고 있었으니 참 본받을만한 학생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책을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선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의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마치 봄날의 나비나 오후의 고양이처럼 나른하고 자유롭게 수업 그 너머를 겨냥하고 있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성적에 목을 매거나 수업을 잘 들어야 한다는 우스꽝스러운 관념들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에게선 결코 나올 수 없는 모순적 여유였다. 나는 그 아찔한 모순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방탕하거나 책임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에 꽉 막혀 답답한 것도 아니기에 한없이 자유로운 매력이 느껴졌던 것이다. 확실히 그 사람은 성실한 시간대에 속해있기는 해도 책을 읽어야 한다거나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운 것 같았다. 친구들이 오면 신나게 수다를 떨었고, 잠시 공상에 잠겨서 멍하니 있는 시간도 많았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은 수업에 일찍 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일찍 온 것 같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일찍 오게 되었으니 일찍 온 것뿐’이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목적과 행동이 일치하는 그 모습에는 자연스럽게 묘한 자유로움이 깃들었다. 모순에서부터 비롯되는 그 황홀한 자유는 ‘사랑하는 것을 두 팔 벌려 끌어안을 수 있는 힘’과 더불어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사뿐히 놓아버린 채 날아다닐 힘’을 동시에 선사하는 유일한 힘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겐 그것이 있었다.

하지만 드물다고는 하나, 세상에 그렇게 모순적이고 자유로운 힘을 지닌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을 동경하며 많은 것을 배워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개 연꽃이나 보리수 꽃을 틔운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순투성이의 아가씨는 무언가 달라도 크게 다른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이 얼음과 불꽃이 섞여 핀 것 같은 아가씨에게는 연꽃도 보리수도 조금도 보이지를 않았던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가을은 낙엽처럼 져서 어느새 겨울을 드리웠다. 우리가 무대에 올라야 하는 시간은 점점 가까워졌고, 마침내 기말고사를 며칠 남기지 않고 연극 팀이 고정되었다. 전혀 예기치 못하게 연출의 역할은 나에게 떠넘겨졌는지라 약간의 난감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럴 바에야 연출 없이 가는 것이 낫지 않냐-‘고 불길을 토해내던 그 사람의 기억이 난감함에 조금 무게를 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사람과 같은 팀을 하면 꽤 재미있을 것이라는 상상도 같이 찾아왔다. 몇 시간 뒤 확정된 조에서 그 어설픈 상상은 현실이 되었고, 나는 난처함과 즐거움, 그리고 연출 대본을 함께 집어 들고 수업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내 앞에 앉은 그 사람은 부드러운 미소로 팀원들을 한 명씩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에 큰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그런 동시에 타인에게 불편함을 끼칠까 염려하는 작은 소심함이 동시에 전해져 왔다. 역시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통성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같은 팀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형형색색 빛나는 꽃들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꽤 진중하게 맡은 역할들에 대해서 논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무대에 오를 배우들의 여러 면모들을 연출자의 입장으로서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그동안 먼발치서 흥미롭다 생각하며 바라보기만 했던 무화(無花)의 아가씨를 가까이서 보고 대화 나눌 수 있는 것은 즐겁고 유익한 일이었다. 그 반짝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곳엔 분명히 꽃이 있었다. 여전히 눈에도 마음에도 포착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말투에 녹아나는 긍정, 그리고 자기 부정과 자신감 결핍 속에서 가늘게 떨려 나오는 목소리는 그곳에 분명히 꽃이 있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졌고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그 매혹적인 웃음, 그리고 다채로운 감정이 숨겨져 있는 신비한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 안에서 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넌지시 농담처럼 말했다.

"굉장히 매력적이시네요."

그 사람은 발그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알아요. 제가 좀 그렇죠."

나는 이 흥미로운 반응에 이채를 느끼곤 좀 더 짓궂은 질문을 했다.

“그렇게 매력적이시라면, 일주일에 열 번쯤은 고백받으시지요?”

그 사람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열 번은 너무 많네요. 일곱 번쯤? 일요일엔 쉬는 게 좋으니 여섯 번 어때요?”

그때, 나는 잠시 그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꽃이라 하기엔 너무도 모호한, 둥근 형태의 무언가였다. 씨앗? 열매? 알? 아직은 규정할 수 없었고, 제대로 보이지 조차도 않았다. 그것을 다시 잠시라도 포착하기 위해 수차례 다른 괴상한 질문들을 던져보았지만, 그 날이 끝날 때 까지도 그것은 흐릿한 형체만 보일 뿐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이 그래도 알보다는 열매를 닮았다 생각하여 없는 꽃의 열매-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곤 혹여 알이라 만약 병아리 같은 것이 깨고 나온다면 놀랄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두며 하루를 보냈다. 그만큼 그건 무엇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놀라운 마음이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극에 몰입해나갔다. 그 사람은 놀랍게도 주변 모든 사람들의 장점을 흡수하며 어마무사한 속도로 자신의 연기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건 일찍이 나로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가슴 벅찬 재능이었다.

그 무렵 즈음의 나는 그녀에 대해서 스스로도 당혹시킬 만큼의 관심을 품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관심도 옅은 것은 아니었으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약간 잔잔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즈음에서의 관심은 어느새 그 사람 그 자체에 대해 선망 같은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이성에 대한 선망이나 사랑 따위의 쉽게 찾아들고 쉽게 가시는 관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그 놀라운 재능에 반해 이 사람이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던 것이고, 이 놀라운 무화의 아이가 어떤 꽃을 틔울지 구경하고 싶은 것이었다. 연기를 할 때 그 사람의 모습은 놀라운 것이라 시시각각 바뀌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내 연출적인 요구들을 순식간에 소화해내곤 했다. 심지어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해버리기까지 했으니 연극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려야 했던 내 입장으로선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런 모습에 선망을 품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고, 이러한 동경에 사랑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고 해도 역시 거짓말일 것이다. 꽃만 보던 내게 인간의 모습이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래서 나는 선명하게 변화하는 그녀를 세심히 마음과 시선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세계를 빨아들여 무대 위에 올리려는 것 같았다. 세상은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명멸하며 온갖 빛과 향기를 뿌려대었지만, 그녀는 찰나로 그 모든 것을 잡아당겨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빛은 마치 세상이 만들어질 때의 광휘와도 같아서 나는 참 애틋한 마음으로 그 빛을 담고 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제야 사람들이 꽃을 보듯이 내가 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긴 시간 동안 나는 사람을 대해야 하는 방식으로 꽃을 대했고, 이제는 꽃을 대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마치 한 송이 장미 겨울에 피어나는 모습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싶듯, 나는 이 무화가 꽃으로 화하는 장면을 응원하고 지켜봐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마치 그 애달픈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마지막 날의 무대 위에서 그 화려한 재능으로 폭발하듯 꽃을 틔웠다.

그녀가 선 무대 위에는 여름과 겨울이 함께 있었다. 흐름과 맺음이 있었고, 변화와 멎음이 있었다. 연출자로서 객석에 앉은 나는 어느새 관객이 되어 손끝에서 펼쳐지는 우주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연출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감히 저런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말했던 모든 것이 하나의 점으로 모여들어 언어를 넘어 완벽해졌다. 그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빚어낸 놀라운 세계였고, 자유롭게 태어나는 새로운 우주였다. 추위와 더위를 오고 가며 사계절을 아우르고 세상을 삼켜 소화해내어 대사로 만드는 과정 속에서 그 사람은 우주 그 자체가 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보이지 않는 꽃이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얼음과 불꽃 사이에서 우주가 핀다. 삼라만상의 노래가 꽃이 되어 맺힌다. 그곳에는 꽃이 있었다. 아직 채 한 번도 눈에 담지 못했던 꽃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만개하는 그 꽃의 향기는 놀라운 것이라 무대를 채우고, 객석을 채우고, 극장을 채워서 종국에는 눈에 보이는 하얀 겨울을 모두 다 덮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한 송이 꽃의 이름을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연극이 모두 끝난 뒤에 우리는 뒤풀이를 가졌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어울려 그간 답답했고 즐거웠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약간은 괴상하다고 할 수 있었을 법한 이 수업에서 함께 고생했던 우리는 어느새 꽤 친밀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우연(그리고 교수의 독선)이 뭉쳐 짜인 팀이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무대 위에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겨울은 꽤 의미가 깊었다.

어느덧 시간이 늦어 무화의 소녀가 집에 가야 한다고 일어섰을 때 나는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주겠다며 함께 나왔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는 겨울 별들이 한창 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시끄러운 연말의 도심과 한적한 겨울의 하늘이 어우러져 멋진 빛을 자아냈다. 그 길을 걸으며 나는 그 누구에게도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마다 꽃이라면 어떨까요? 저 사람은 어떤 꽃이 필까, 저 사람은 왜 저런 꽃일까 궁금하지 않겠어요?”

그 사람은 빙긋 웃으며 ‘그렇겠네요.’ 하고 대답을 했다.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을까 봐 약간 긴장했던 나는 그 미소에 조금 안도하며 더 정신 나간 말들을 건네고 말았다.

“가끔 세상엔 그런 사람이 있더라구요. 굉장한 재능을 가졌는데 아직 다 꽃피지 않아서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 그래서 다 피면 어느 꽃일지 궁금하게 만드는 사람 말이에요.”

“맞아요. 저도 가끔 그런 사람들을 봐요. 그리곤 조금 부러운 기분도 들죠.”

“그런가요?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을 얘기하고 있는 건데.”

“저요? 정말요?”

“네. 무대 위에서 보여준 모습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어요! 그렇게 모든 걸 하나로 녹여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에이, 아직도 너무 엉망으로 해서 공연 동영상 쳐다도 못 보고 있는걸요.”

“그래서 말인데요, 괜찮다면, 친구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건 그날 밤 내가 했던 가장 솔직하고 한심하고 부끄러운 말은 아니었다. 당황하는 그 사람에게 나는 기나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말했듯, 사람마다 꽃이 있다면 어떤 꽃이 필지 보고 싶어요. 아직 다 피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 재능이라면, 분명 다 피면 엄청날 거예요. 나는 그 꽃의 이름을 알고 싶고, 그래서 친구가 되고 싶어요.”

놀라운 일이지만, 그 사람은 배시시 웃으며 -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도 않은 채 - 알겠다고 대답해주었다.

버스를 타러 총총 사라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토록 바보같이 솔직해져 버린 스스로에 대한 책망과, 미친 사람 취급당하지 않은 기쁨 사이에서 약간 갈등을 해야만 했다.







그 해 겨울,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이름 모를 꽃을 찾는 여정을 계속해나갈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답례로 그 사람은 소소하고 중요한 이십 대의 고민거리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있는 힘껏 그 질문들에 대답해주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도 몇 가지 더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떻게 지내냐는 내 질문에 그 사람은 방학을 잉여롭게 보내고 있다고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잉여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나름대로 담담한 대답을 건넬 수 있었다.

"잉여로움은 좋은 거예요. 번데기가 되어야 나비도 되니까."

그리고 나는 그 조언을 해준지 오 분 만에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번데기라고 표현해버린 순간 평온했던 잉여로움은 무언가 더 멋진 순간에 대한 '기다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완성되지 않은, 불편한 상태로 설명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뒹굴 거리며 쉬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는, 완성된 행동이었다. 꽃이 아직 채 피지 않았다 하여 미완성이 아니라는 건 겨울 내내 무대 위의 그 사람을 보면서 몇 번이고 실감한 일이었다. 꽃이 있건 없건, 혹은 그 꽃의 이름을 내가 알건 모르건 그 사람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사람은 고치이자 나비이고 머무름이자 나아감이었던 것이다. 잉여로움은 인고의 시간이 아니고 성장을 위한 발판도 아니다. 잉여로운 그대로 이미 우리는 나비 그 자체였다.

나는 번데기 어쩌고 한 것을 후회하며 다시 정정하여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타이밍을 영 놓쳐버린지라 덧붙이는 건 어색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되려 딴 말을 건네었다.

- 저녁이나 먹을래요? 잠시 취미로 잉여로움을 벗어나 보죠.

그리고 그 사람은 고맙게도 알겠다고 대답해주었다.

다시 만난 우리는 가벼운 식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이 되고 싶느냐는 내 질문에 그 사람은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그랬다. ‘예술가가 뭔데요?’라는 내 질문에 대답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예술가를 하고 싶다는 확고한 방향성은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건 예술가를 꿈꾸고 결국 가닿는 모든 이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결국 예술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된다. 하지만 신기루일 뿐일지라도 그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무지개를 좇는 소년처럼 그것을 추구하게 되고 만다. 마찬가지의 길을 걸어 보았던 나는 과감하게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무언가를 직접 시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게 중요해요.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구요.”

"시도요?”

"네. 가령, 맛있고 저렴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집 주변에 그런 커피집이 없다고 해보죠. 그러면 '까짓 거 내가 직접 만들어보지 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실제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재료를 막 불태워서 다 날려먹어도 상관없죠.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과 그 용기를 낼 수 없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을 만나야 된다는 거죠?”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보면 고기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많아요. 고기 먹는 거 좋아하시죠?"

"당연하죠!”

"근데 사실 세상에는 고기를 먹는 건 좋아하는데 고기 굽는 방법은 모르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전 고기도 잘 구워요!”

"그래요... 그렇다고 해두죠.... 근데 방금은 거의 태워먹었잖아요... 못 굽는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농담이니까 너무 그렇게 샐쭉하게 째려보지는 말아줘요. 자 그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는 고기를 고르는 것과 손질, 요리까지 다 안다고 생각해봐요. 그런 사람에 대해서 어떤 느낌이 들어요?”

"멋있겠네요. 좋아하는 걸 잘하는 거니까.”

"맞아요. 멋있죠. 그리고 더 나아가 멋진 걸 넘어서 그런 사람은 좀 더 폭넓고 유연한 선택을 할 수가 있어요. 맛있는 고기가 먹고 싶으면 지금 우리처럼 한심하게 1인분에 18000원 하는 고깃집에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고기를 떼와서 손질하고 요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그 사람은 '까짓 거, 직접 하지 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거예요.”

"오. 근데 그게 뭐가 좋아요?"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보다 풍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거든요. 집에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를 생각해봐요. '까짓 거 내가 직접 고치지 뭐!'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컴퓨터를 뜯어보고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거나 수리하러 용산에 발품을 팔게 되겠죠. 그 과정에서 사기를 당할 수도 있고,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길을 헤맬 수도 있겠지만, 결국 용기를 냈기 때문에 경험을 얻게 되어요. 그리고 그 경험은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죠. 결국 그 사람은 경험을 통해 다음번에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자신감을 얻게 될 거구요."

"그치만 그냥 AS기사를 부르면 편하잖아요."

"편하죠. 어쩌면 직접 하는 것보다 시간도 덜 들고 가격도 저렴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 순간부터 당신은 컴퓨터에 한해서만큼은 AS기사에게 의존적이 된 거예요. 다시 고장 나도 AS기사를 부를 수밖에 없겠죠?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버린 것이 느껴지나요? 그리고 그 제한은 무언가에 얽매여버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우리 삶은 특이한 구석이 있어서 얽매이는 것이 많아질수록 무거워져 버리는데, 그건 사람들을 아주 지치게 만들곤 하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AS기사를 부르는 것 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면 무기력함이 들 수밖에 없잖아요? '직접 해볼 수 있어!'라는 생각이 가져다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자유고, 자유는 무기력함에서 도망치게 해주는 힘이랍니다."

"오 그건 좀 멋있는 말이네요!"

"그쵸? 제가 생각해도 멋있네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짧은 삶 대충 사랑하며 낭비하기엔 아깝잖아요."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는 사람인 거네요."

"네 맞아요. 읽을 만한 책이 없으면 읽을 만한 책을 써버리고, 들을만한 음악이 없으면 들을만한 음악을 만들고, 사랑할만한 사람이 없으면 사랑받을만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놀라운 사람. 그런 사람을 나는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되는 그 첫 번째 단계는 없는 것을 세상에 만드는 자유를 배우는 거예요. 무엇이든지 다 해볼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요.”

그 말은 내가 무대 위의 그녀를 보면서, 그리고 그날 그곳에서 세상을 가득 채우던 꽃을 보면서 느꼈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었다. 스무 살의 그 사람은 아직 채 자유롭지 못해서 세상을 다 담아낼 힘을 가지고도 꽃을 피우지 못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유로워진다면 그 꽃은 얼굴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자유를 향하는 길을 자아냈고, 대화를 발걸음 삼아 그녀는 그 오솔길 위를 걸었다. 그리고 자유를 향하는 그 길과 또각거리는 발걸음들 속에서 꽃은 마침내 두 번째로 얼굴을 드러내었다. 나는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기분으로 그 놀라운 개화를 지켜보았다. 열매처럼 둥근 공은 마음속에서 천천히 포개어지며 한 송이 가느다랗고 긴 꽃으로 합쳐졌다. 그것은 여태까지 본 어떤 꽃과도 달랐고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웠다. 마치 이 사람처럼 그 꽃 안에는 여름과 겨울이, 바다와 하늘이, 별과 노래가 다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억겁의 시간을 꽃들을 보며 자라왔건만, 나는 바라보는 그 순간에 마저도 꽃의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그 향도 여운도 그 해가 끝날 때까지 오래도록 남았지만, 나는 마음속에 맺히는 그 꽃을 그릴 수는 있어도 이름을 부를 수는 없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한참을 그 꽃을 검색하며 헤맸다. 그릴 수 있으니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인터넷과 식물도감을 전전긍긍했지만, 그 꽃은커녕 비슷하게 닮은 꽃마저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토록 특이하고 향이 짙은 꽃이라면 분명 어딘가에는 기술되어 있을 법도 한데 아무리 뒤져봐도 그 꽃만큼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사소한 특징들을 기억해가며 검색의 범위를 넓혀 보았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 사람과는 달리 홀로 피는 꽃 중에선 그렇게 청초한 꽃이 없었고, 자유로움 속에서 양분을 얻는 것치곤 야생화 도감에 수록된 그 어떤 야생화도 그와 닮지 않았었다. 결국 꽃을 찾는 내 방황은 계속해서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렇게 꽃의 이름을 찾아 헤매며 겨울을 보내던 중,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저예요.”

그 사람의 목소리는 언뜻 듣기에도 약간의 슬픔을 감추고 있었다. 그 사람은 한없이 산뜻하고 긍정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때때로 무거운 구름과 된서리 맞은 날씨가 마음을 짓눌러올 때가 있었던 셈이다. 그건 누구에게나 그렇다. 홀로 잘 설 줄 아는 사람도, 주변에 사랑해주는 이가 많은 이도, 언젠가는 한 없이 외롭고 무겁다. 어떤 꽃이던 겨울을 결국에는 맞이하는 법이다. 그래야지만 봄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의 시간은 너무 길고 지혜는 너무 무겁다.

조금의 위로라도 건네고 싶어서 걱정으로 그 사람을 만났을 때, 하얀 하늘 위에선 별처럼 하얀 눈송이가 반짝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머뭇거리다가 하얀 질문으로 밤을 물들였다.

"문득 외로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잠시 하늘로 흩어지는 입김을 쫓다가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고, 그 사람은 한 송이의 입김을 심야 속으로 더 불어넣었다.

"혼자 있는 것이 괜찮은 사람조차도 문득 외로워질 때는 있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밤하늘 위로 흩어지는 그 사람의 숨결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는 그럴 때 별을 봅니다."

"왜요?"

"별은 서로 한없이 멀어도 결국 같은 우주에서 빛나잖아요. 사람의 외로움도 그렇다고 믿어요. 멀고도 가까운, 한없이 자유로운 마음이기에 외로움이겠죠."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별이요."

"네. 별이요."

그 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는 한숨으로 가득한 구름과 영원할 것 같은 별이 빛났다. 그 별빛은 그녀의 입술에 닿아 미소가 되었다.

미소 속에서 다시 한번, 그 사람의 안에 맺혀있던 열매가 살포시 포개어지며 꽃으로 피어났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물들이는 꽃. 삼라만상을 담은 아름다운 꽃. 나는 그 꽃을 본 적이 없었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비로소 우주를 담은 그 꽃의 이름이 무엇일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우담화. 당신은 우담화였군요. 우주를 담은 꽃이었어요.

하지만 그 말은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한 참 동안이고 그 자리에 서서 꽃이 된 채로 별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하늘 바깥의 한 송이 꽃(天外一花)을 한없이 두 눈에 담는 것뿐이었다. 그 날, 그곳에서는 한없는 우주가 꽃이 되어 피어나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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