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소유와 욕망 9화

봄 단편소설집 아홉 번째 이야기 : 야간등

by 이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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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이야기 : 야간등






우리가 결혼을 한 뒤에 처음 산 것은 우습게도 야간등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밤에 너무 어두우면 잠을 잘 잘 수가 없다고 그랬다.

"좀 이상한 거 아냐? 어두울 때 자는 게 인간의 본성인데."

"나는 예민해서 너무 어두우면 깨요. 이해해줘요."

우리는 말없이 조명가게에 들어가 야간등을 골랐다. 지구본 모양의 아름다운 등이었지만 꽤 값이 비싸서 기분이 상했다. 이 상황에 대해 조금은 화가 나있는지라 입술을 꼬옥 닫았고, 그것이 내 유일한 항변이었다. 잘 때는 어두워야 한다. 고요하고 짙어야 한다. 잠들기 직전의 그 평온은 내가 사랑한 휴식이었다. 원치 않던 결혼만으로도 모자라 이젠 휴식까지 방해받다니 너무한 것 같아서 화가 조금 났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항변이라곤 입술을 꼬옥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밤이면 악몽을 꾸었다. 야간등을 켜놓더라도 그녀는 깊게 잠들지 못했다. 사소한 접촉에도, 자다가 이불 스치는 느낌에도 그녀는 예민하게 꿈으로 다 느끼는 것 같았다. 괜찮다며 쓰다듬어주거나 안아주려고 해도 꿈속에서마저 몸을 피하는 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럴 때면 그녀는 어느새 등을 돌리고 벽을 향해 잠들어 있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가운데 그녀의 뒷모습만이 침대 저편에서 꿈틀거렸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마음을 가득 메웠다.

"되려 밝아서 더 잘 못 자는 거 아니야? 불을 꺼보는 건 어때?"

"그런 거 아니에요. 당신이 이해해줘요."

"뭐라도 해봐. 당신 악몽에 나까지 예민해지는 걸."

"알겠어요. 심란하게 해서 미안해요."

그 미안하다는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무언가를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도 잠들지 못해 얼마나 힘들까. 꿈속에서마저 자꾸 도망쳐서 얼마나 미안할까. 그럼에도 화가 나고 다시 무기력감이 온몸을 메웠다.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소중하기는 한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소중한데 왜 내게 등을 돌려? 꿈에서마저 내가 싫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던 것이 분명하다.

그 날 저녁은 일이 일찍 끝났음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일단은 도망쳐버리고 싶었다.

"오늘은 좀 늦어. 먼저 자."

"많이 늦어요? 기다릴게요."

"야근 있어서 그래. 등 켜놓고 자고 있으면 금방 들어갈게."

"와서 등 꺼줘요. 당신이 불편해하니 이제 끄고 자볼게요."

"그럴 필요 없는데. 기다리지 말고 잘 자고 있어."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 놈은 맥주를 거하게 마시며 주접스럽게 얘기했다.

"니 녀석이 잠자리에서 만족을 못 시켜주는 거 아냐? 그러니까 제수씨가 편히 못 자지."

"야야. 내가 그럴 사람이냐. 작작해 인마."

"들어봐 자식아. 편안한 숙면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들기 전 만족스러운 섹스라구. 좀 잘해봐. 내 마누라는 얼마나 편하게 쿨쿨 자는데. 난 좀 덜 잘 잤으면 좋겠다."

"아이고 잘나셨어요. 그런 게 아니라고 인마."

곰곰이 생각해봐도 잠자리나 속궁합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잠을 잘 자지 못했던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결혼하고 콩깍지가 벗겨지니 이제야 미운 점들이 보이는 걸지도 모르지. 정신 똑바로 차려 인마. 그래도 제수씨 같은 사람이 어딨냐. 여자는 네가 만족시켜줘야 하는 거야."

"아 그런 것도 아니라도 그러네. 왜 그러냐 너는 정말."

대화를 해봐도 미칠 것 같은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도무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았고, 그녀가 왜 그러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한 잔만 더 하자는 친구 놈의 만류를 뿌리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돌아갈 곳은 집뿐이었다. 그 갈 곳 없는 일방향성이 숨 막혀서 가는 길에도 몇 번이고 택시를 세우고만 싶었다. 그럼에도 바퀴는 구르고 택시는 집 앞에 내뱉듯이 나를 내려놓았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라고는 계단을 올라 그녀가 기다리는 방으로 향하는 것뿐이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씩 그렇게 문이 살짝 열린 방으로 새어 들어갔다.

방에 들어오니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방은 고요한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환한 불빛도, 잔잔한 노래도 그날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은 듯 고요한 시간 속에 덜컥 겁이 났다. 이상하리만큼 평온한 분위기에 되려 마음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그것도 아이처럼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결혼 한 뒤로 처음 보는 평온하게 잠든 모습이었다. 꿈마저도 없는지 뒤척임도, 찡그림도 없는 깊은 잠이었다. 그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신비로운 것이라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다 흠칫 멈추었다. 무언가 평소보다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덜컥 생각이 멈추었다.

그녀의 몸에선 빛이 나고 있었다. 은은하고 상서로운, 옅은 빛. 우리가 켜 두었던 자그마한 야간등보다 은은하고 촛불보다도 향기로운 부드러운 빛이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빚어진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숨결이 가빠지고, 느려졌다.

살짝 열린 창문에서는 별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별빛을 한껏 머금고 평온하게 잠들었던 것 이 분명했다. 마치 별을 머금는 우물처럼 그렇게 한껏 아름다움을 삼키며 침묵의 잠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제야 기억 한 톨이 생각 저편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랐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를 별이라고 불렀었다. 세상 무엇보다도 찬란한 별이라고, 나만의 우주에 너라는 별을 뚝딱뚝딱 새기겠다고 말이다. 오랜 연애와 결혼을 겪으며 나도 그녀도 그 사실을 잊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나의 별, 내 밤을 밝히는 등이었는데 우리는 세월 속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별이었다. 별빛을 머금은 그녀는 세상처럼 빛났다. 행여나 내가 움직여 그 그림자 별빛을 가릴 손치면 그녀는 다시 악몽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환한 빛은 사라지고, 그녀는 꿈틀거리며 벽가로 도망쳤다. 나는 창문을 조금 더 활짝 열었다. 더 많은 빛을 받은 그녀는 성경 속의 천사 마냥 환한 광휘로 빛났다. 나는 그 모습에 괜히 마음이 북받쳐 올라 잠든 그녀의 손을 잡고 엉엉 울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잘 잤어?"

"응. 잘 잤어요. 이상하리만큼 개운해요. 늦게 왔어요?"

"아니. 너무 늦게 오지는 않았어."

"뭐해요? 아침 일찍부터?"

"지붕을 좀 고쳐보려고."

"지붕은 왜요?"

"그냥, 창을 하나 내려고."

"창을요?"

"별빛이 보이면 조금 더 잘 잘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야."

그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녀의 얼굴에는 내가 익히 사랑한 별꽃 같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나무에 못을 박는 내 입가에도 그녀와 같은 미소가 서서히 걸려가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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