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피는 꽃 2화

2화 : 흰 바람벽

by 이원호


2화 : 흰 바람벽



여름 수련회에서의 사건 이후로 냉전 상태이던 선연이와 나는 5학년으로 올라가며 다시금 같은 반이 되었다. 참 기쁜 일이었지만, 어린 자존심 때문인지 쉽사리 기쁨을 내색하기는 어려웠다.

그 해 겨울, 아직 겨울의 냉기가 눈꽃처럼 남아있는 5학년의 개학식 날에 선연이는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뒤를 흘깃 돌아보며 매서운 눈길을 주는 선연이의 모습은 정말 예쁜 것이라, 나는 맹꽁이처럼 “잘 지내보자 선연아!”하는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콧방귀와 팩 토라져버린 옆얼굴만이었다. 그 모습에 괜히 머쓱해져서 입술을 비죽 내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선연이의 고운 머리카락만은 아른거리며 마음에 고이 담겨 갔다.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은 조금 특이한 분이셨다. 초등학교 때에는 담임선생님이 국어부터 미술까지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시곤 했고, 우리 담임선생님은 다른 어떤 과목보다도 미술수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덕분에 우리는 1학기 내내 12개의 미술 과제를 해야만 했다. 그중에서도 1학기 마지막에 주어진 조별과제는 선연이와 나 사이에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이 생기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번 과제는 우리 학교 새로 생긴 담장에 벽화를 그리는 거예요. 제가 특별히 교장선생님께 저희 반이 벽화를 그릴 것이라고 허락을 받았답니다! 3명이서 한 조를 짜드릴 테니 예쁜 벽화를 그려보아요!”

조를 짜서 벽화를 그려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모든 아이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몇 가지 특이한 조별과제를 겪기는 했지만 벽화 그리기는 그 어떤 아이도 선행학습을 해보지 못한 것은 물론,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우리의 초등학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초등학교였고 작년에서야 겨우 새로운 건물로 리모델링을 했었다. 유치하고 조야한 (혹은 초등학생 다운) 낙서들로 가득했던 학교 담장은 대공사 이후로 새하얗고 예쁘게 비어 있었는지라 담임선생님께서는 그 텅 빈 벽을 우리들의 감성이 예쁘게 채울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사실 문제는 벽화를 그리는 것보다는 조를 짜는 것에 있었다. 조는 우리의 의지가 아닌 선생님의 이해할 수 없는 추첨방식으로 선정되었고, 나는 같은 조 명단에서 선연이와 현진이의 이름을 읽으며 난감함을 느껴야만 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꺼려지는 사람이라는 것은 특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구박받을 일이 잔뜩 생긴 것만큼은 분명했다. 난관과 난전이 예상되는 가운데 그렇게 벽화 그리기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말았다.





우리 조가 받은 구역은 아이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흰 바람벽이라고 부르던 학교 후문 부근의 널찍한 벽이었다. 흰 바람벽이라는 건 별다른 이유 없이 붙여진 별명이기는 했어도 꽤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곳엔 늘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바람처럼 넘실거리곤 했다. 그건 참 이상한 느낌이었던 것이, 바람벽 근처는 등하굣길이었기 때문에 아침만 되면 사람들로 가득 차는, 즉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외로운 그곳에 우리는 마음을 채우는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사실 흰 바람벽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등교하는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보게 될 반영구적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었다. 공개적인 공간에 오래도록 남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12살의 어린 나이에는 꽤나 큰 부담이었고 이상하게도 외롭고 두려운 일이었다. 채 10년의 세월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렸기에 향후 수십 년을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함께 그림을 그릴 아이들이 나에 대해서 불만이 가득했는지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마음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의 선연이는 현진이와 참 친해져 있었다. 소녀들의 우정이란 남자아이들의 우정보다 훨씬 무섭고 정교한 면이 있었고, 그건 둘의 모습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정교함은 때때로 남자아이들에 대한 배타성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편이었다. 두 여자아이들은 나만 보면 눈을 흘기며 멀찌감치 거리를 벌리기 일쑤였고, 말을 걸려고 해도 마치 미생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와 그들 사이에 선을 그었다. 잘해보자는 내 말에 역시 여자아이들은 팔짱을 끼고 째려보았는지라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벽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에는 아무런 무리는 없었다. 아직 열두 살, 미워한다 해도 애정일 정도의 순수한 나이 밖에는 안되었던 탓이다.





수업이 일찍 끝난 어느 조용한 수요일 오후, 우리는 텅 빈 교실에 모였다. 오른쪽부터 선연이, 현진이 그리고 나의 순서로 앉아있었다. 현진이는 나를 째려보고 있었고, 나는 질 수 없다는 태도로 현진이를 마주 보았다.

조용한 교실에는 마른바람이 기웃거리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멀리서 폭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폭염의 무게는 아주 멀리서부터 느껴졌다. 시간을 삼키고 봄의 향기를 먹으며 온통 무거워진 그 열기는 벌써부터 피부에 끈적거리며 와 닿고 있었다. 그 후덥지근함 속에서 잠시 긴장하여 숨을 멈추었다. 그 열기가 여름으로 농익기 전에 흰 바람벽에 그림을 완성시켜야만 했다. 약간의 초조함이 혀 끝에 맴돌았다.

물끄러미 현진이와의 눈싸움을 바라보고 있던 선연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얼 그려야 할까 얘들아?”

초저녁의 햇살이 선연이의 길고 곧은 머리카락을 물들이며 깃털 같은 속눈썹 위에 내려앉았다. 선연이의 연한 귀밑머리는 바람결에 살랑거렸고, 창가로부터 멀어지는 쪽의 뺨은 옅은 음영으로 살짝 가려져 있었다. 석양이 채 되지 못한 햇살이 장난스러운 태도로 봉긋해진 가슴과 잘록하게 길어진 허리를 간지럽히다가 사라져 갔고, 한 그루 늘씬한 버드나무처럼 선연이는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경이로운 모습에 압도되어 현진이도 나도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침묵을 걷어내며 선연이는 천천히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햇살 속의 그 움직임은 마치 최초의 여자가 걸었을 신을 향한 발걸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지고 아련한 긴장감이 느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그 어떤 경탄도 선연이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만들지는 못했던 것인지, 그녀는 어느새 곁에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무얼 그려야 할지 생각해 봤냐니까 왜 말이 없어.”

그제야 현진이와 나는 으르렁거리며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었다.

“사자는 어때. 우렁차게 포효하는 걸 그리는 거야.”

“뜬금없이 뭔 사자야. 말이 되는 걸 그려야지.”

“그럼 100주년 된 학교니까 100년 먹은 거북이를 그리자.”

“차라리 그럴 바에야 목련 백송이를 그리는 게 낫겠어. 목련은 교화 이기라도 하잖아.”

“백송이 같은 소리 하네. 백송이 그리면 팔 빠져.”

“얘들아 우리 조금 예쁘고 희망찬 스토리가 담겨있는 그림을 그리면 안 되겠니?”

“우주탐험대! 우주탐험대를 그리자!”

“선연아, 쟤 빼고 하면 안 돼? 헛소리만 해. 머리 아파.”

우리는 1시간도 넘게 아웅다웅거렸고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내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현진이와 선연이의 얼굴에 황당한 표정을 선사할만한 것들이었고, 현진이의 생각들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현실 초월적이라 벽에 그려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에겐 탑 속에 갇힌 열두 살 공주님의 백만 가닥 머리카락을 그려낼 능력이 없었다. 선연이의 생각은 듣기에는 좋았지만 아직 채 구체화되지 못한 모호한 느낌에 더 가까웠고 결국 우리 셋 중 어느 누구의 아이디어도 흰 바람벽에 그리기엔 무리인 것들이었다. 흰 바람벽은 그냥 흰 바람벽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곳엔 어쩌면 텅 빈 외로움이 더 잘 어울리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교정을 티격태격하며 걸어 나왔을 때, 학교 옥상에는 눈부신 석양이 걸려있었다. 그 아찔한 황금빛이 아름다워서 잠시 몽롱해졌다. 집으로 가는 내내 흰 바람벽과 벽에 그릴 그림을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자꾸만 그 아름다운 석양과 그 석양 속을 노닐며 집으로 향하는 두 소녀의 뒷모습만이 떠올랐을 뿐이다. 황금빛 골목길을 노래하며 걷는 두 소녀의 모습은 그만큼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다음 날 아침, 꿈같던 석양 속의 그 장면을 그림에 담아낼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내게 두 소녀는 선전포고를 하듯 의기양양하게 다가왔다. 허리춤에 손을 짚은 그 모습이 위풍당당하여 나는 잠시 긴장을 해버리고 말았다. 현진이는 손에 들고 온 스케치북을 당당하게 펼쳤다.

“벽에 그릴 그림 우리가 정해왔어!”

눈을 부릅뜨고 말하는 것이 결정에 따르라는 압박을 주는 것 같아서 조금 속상해졌다. 그림 속에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다. 안개꽃이 아름다운 잔영을 드리우고 있는 그 풍경은 내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고, 마음속에서 싹을 틔우던 속상함을 가만히 잠재우는 풍경이었다. 그곳은 1년 전, 나 때문에 웅덩이에 빠졌던 선연이가 몸을 씻었던 바로 그 연못이었다. 선연이는 아직도 그때의 소문이 퍼졌다는 이유로 뾰로통해 있었고, 그 뾰로통함은 새어 나오려던 내 불만에게는 자장가가 되곤 했다. 현진이는 눈을 번뜩이며 물어보았다.

“어때? 이 그림으로 그리면 되겠지?”

뭐라고 잘못 대답하면 곧장 예전의 일을 추궁하며 구박할 것이라는 건 짐작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림 자체는 참 예뻤다. 그때 그 순간에 눈과 마음에 담았었던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그림 속에는 생생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조금 허전하다는 느낌만큼은 지울 수가 없었다. 연못은 아름다웠지만 왠지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한 마디를 덧붙이고 말았다.

“뭔가 조금 허전해 보이는 것 같아.”

말이 끝나자마자 현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선연이를 바라보았다.

“들었지 선연아? 뭔가 허전해 보인대. 뭐가 허전해 보이는 걸까?”

선연이는 빙그레 웃으며 내 팔에 가느다란 섬섬옥수를 올렸다.

“글쎄? 뭐가 허전할까? 나는 잘 모르겠는데. 너에게만큼은 뭔가 조금 허전하다는 거지?”
“으.. 응. 아주 조금 그런 게 느껴져.”

“응. 그래. 아마 뭔가 조금 더 그려 넣어야 좀 괜찮아질 거야. 그렇지?”

나는 조금 더 우겨볼까 하다가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어서 꼬리를 내렸다.

“아.. 아냐.. 다시 보니까 고칠 부분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하하하.”

선연이는 내 변명을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아냐. 네 말이 맞아. 뭔가 비어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비어있는 장면에는 아마 너 때문에 진흙에 담긴 생쥐 꼴이 되어서 연못에 들어갔던 내가 그려져 있어야 할 거야. 그렇지?”

“사.. 살려줘! 으아아악!”

선연이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팔을 있는 힘을 다해 꼬집었고, 내 선명한 비명은 한참 동안 교실을 메아리칠 수 있었다.





팔뚝의 새빨간 자국은 닷새도 넘게 그 자리에 도장을 판 마냥 눈에 띄게 남아 있었고, 그 기간 동안은 선연이를 볼 때마다 내 입술도 닷자도 넘게 튀어나왔다. 아이들은 그 자국을 볼 때마다 깔깔거리고 놀려대었고 그때마다 내 입술도 한 자씩 더 늘어나곤 했다. 하지만 그 놀림에 뾰로통해하면서도 엄마가 팔목의 자국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았을 때는 차마 선연이가 꼬집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대답하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배신하는 것은 그 어린 나이에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별 수 없이 뛰어놀다가 돌에 찧었다는 대답을 만들어내었고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남자아이들은 원래 그런 거냐고, 오늘도 조심해서 나가서 놀라고 그랬다. 결국 나는 그날 당일에는 뛰어놀 계획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뛰어놀러 나가야만 했다.

집 뒤에 있는 공원으로 어기적어기적 발걸음을 옮기며 팔뚝의 자국을 호호 불자 바람결에 쓰라림이 조금 날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일주일에도 두세 번씩은 찾아가곤 하던 공원은 모든 아이들의 마음의 안식처인지라 모든 아이들이 심심하거나 마음이 적적할 때면 공원을 찾았다. 놀이터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고,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놀이가 한 개쯤은 숨겨져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모여서 얼음땡이나 술래잡기를 하기도 했고, 숨바꼭질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들을 하기도 했다. 때때로 여자아이들은 따로 모여서 고무줄놀이를 하며 놀았고 남자아이들은 그 모습을 머뭇거리며 지켜보거나 농구 혹은 축구를 하러 사라졌다. 서로 짓궂게 놀려대며 뛰어다닐 때도 많았고, 겨울이면 눈싸움, 여름이면 물총놀이를 할 때도 있었으며, 아무 말 없이 벤치에 기대앉아 풀벌레 소리를 듣고 햇살을 마시던 날들도 있었다. 약속이 없어도 우리는 곧잘 그렇게 어울리곤 했다. 그곳은 핸드폰 없이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마지막 세대의 광장이었던 셈이다.

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는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신이 나서 발걸음이 급해졌고, 그것이 사건을 불러들였다.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미끄럼틀을 지나던 중, “타알 추울!” 하는 소리 높은 외침과 함께 무언가가 미끄럼틀 위로부터 폭풍처럼 미끄러져 내려왔다. 채 정신을 차리거나 피할 새도 없이 그 무언가는 앙증맞은 운동화로 내 어깨를 거세게 걷어찼다. 세상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저만치 나가떨어지며 나무둥치에 머리를 호되게 부딪치자 세상이 깜깜 해지며 눈앞의 별들이 폭발했다. 5분 뒤, 가까스로 눈앞에 떠돌아다니는 별들을 수습하고 앉아보니 머리에는 작은 솔방울만 한 혹이 나있었다.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혹을 문지르고 있자 선연이는 그네에 앉아서 흔들거리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현진이는 기절할 뻔한 내 앞에 서서 영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삐돌아 삐치지 마. 내가 미안해.”

“꼬집고.. 발로 차고.. 그다음엔 뭐가 기다릴지 걱정돼.”

“야! 꼬집은 건 선연이잖아!”

“발로 찬 건 너고!”

“탈출 놀이하다가 못 본거야! 미안하다고 했어 안 했어! 소갈머리 밴댕아!”

선연이는 쿡쿡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됐어.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지금은 안 죽고 혹만 났으니까 괜찮아. 공원에는 왜 온 거야?”

선연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연못을 한 번 더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같이 왔어. 근데 와보니까 그네가 타고 싶더라고.”

“연못? 거기까지 가보려고?”

“응. 너도 같이 갈래?”

“응! 같이 가보고 싶어!”

우리는 다시 한번 나란히 걸으며 울창하고 아름다운 우리들만의 수풀을 함께 헤매어보기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못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공원을 온통 헤집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때는 쉽게 찾았던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개울가를 헤매다 보면 자꾸만 이상하게 공원 중앙에 난 큰 산책길로 돌아오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네 번가량이나 개울가를 헤맨 뒤에 우리는 지쳐서 앉아 쉬며 의아함을 나누었다.

“이상하네. 공원이 변한 건가?”

“그동안 비가 안 와서 우리가 그때 따라갔던 개울이 땅 밑으로 숨어버렸을 수도 있어.”

“아니면 공원에서 저쪽 철책으로 막아놓은 부분 뒤였을지도 몰라. 예전엔 저런 울타리가 없었던 것 같은걸.”

“아쉽네.”

“아쉽다.”

“아쉽군.”

초여름 사이로 일렁이는 밀림을 뒤로한 채 그네에 앉아서 흔들거리자 나무 그늘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찬란하게 빛났다. 선연이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말했다.

“뭐. 지금 있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할지도.”

우리는 그렇다고 동의했고, 그다음 주 토요일 날 현진이네 집에 모여서 그림을 그려보기로 약속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왠지 모를 즐거움이 깃들고 있었다.







1주일은 금세 흘렀고, 그 사이에는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 선연이 와도 현진이 와도 성당에서 마주쳤지만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새 조차 없이 각자 바쁜 일들로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학교에서도, 길을 걷다 마주쳐도, 확인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임전을 앞둔 병사처럼 토요일 오후를 위해 긴장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가방에 크레파스니 색연필이니 하는 미술도구들을 한가득 챙겨서 현진이네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벨을 띵똥 누르니 현진이네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다소곳하고 예의 바른 척하며 집에 들어서는 우리에게 현진이 어머니께서는 오렌지 주스와 과자를 가져다주셨고, 여자아이들에게만 눈을 찡끗하셨다.

“방에 있을 테니까 얌전히 좋은 시간 보내렴. 수호가 못살게 굴면 바로 소리 지르고.”

선연이와 현진이는 신나서 “네에!” “꼭 소리 지를게요!” 하고 대답했고, 나는 울상이 되었다. 내가 괴롭힘 당할 때는 누구에게 소리를 질러야 할지, 혹시 매일매일 괴롭힘 당하고 있으니 1분마다 소리를 질러도 되는 것인지 조금 고민에 빠지며 그림이 시작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단순히 공책에 그려놓은 것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큰 도화지를 마주하니 잘 풀려나가지 않았다. 세심한 스케치들은 크게 옮겨놓으면 어색했고 큰 구도는 도화지 위에선 왠지 모르게 유치해 보였다. 공책 위에선 참 괜찮았던 그림은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그림을 처음부터 그려야만 했다.

다섯 번째 스케치를 마악 다 지워버린 참이었다. 선연이는 이번에는 차라리 색칠까지 해서 마무리해보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어느 누구도 하늘색 색연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 색연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잠시 집에 들러서 색연필을 가져오기로 하며 현진이네 집을 떠났다.

현진이네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가 걸렸다. 거리상으로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 사이에 미로 같은 골목길과 공원이 있었다. 해가 떠있을 때야 뛰어갔다 오면 금방인 곳이었지만 해가 진 뒤의 동네는 길을 찾을 수 없는 혼란스러움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 미로에서 긴 시간을 헤매 본 뒤로는 밤에 그 골목길을 헤매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어둠이 내려오는 모습에 발걸음이 괜히 조금씩 다급해지고 말았다.

공원길에는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고 있었다. 어둠이 점차 내려앉고 있는 그 모습은 어린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놓았다. 공포에 쫓기며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달려서야 겨우 공원을 통과하여 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때마침 선연이는 딱 시간 맞춰 전화를 걸어 놓았었다.

“여보세요.”

“응 나야. 스케치는 다했어. 그런데 물감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를 빼놓고 스케치를 다 마무리해버린 것도 속상한데 물감까지 가져오라는 그 말에 잠시 서운함을 삼켜야만 했다.

“우리 집엔 물감이 없는데.”

“학교 앞에 있는 문방구 7시까지 열잖아. 아직 시간 많을 거야.”

우물쭈물하다가 눈을 딱 감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해가 지는걸.”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당황한 침묵이 흘렀다. 수화기 옆에서 현진이가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 혹시……. 어두운 거 무서워하니? 아니면 귀신이나 고양이 이런 게 나올까 봐?”

“아냐! 어두우면 길을 잘 못 찾아서 그래!”

선연이는 한숨을 푹 쉬며 공원을 동문으로 들어와 서문으로 나오는 길에 대해 말해주었다. 미로길을 통과하려면 일단 계단이 보일 때마다 내려와서 가장 아래쪽에 도달 한 뒤 파출소를 찾아가면 된다고도 상세하게 덧붙여주었다. 사실 들으면서도 무슨 소리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서 머엉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더 머뭇거리면 더 심하게 놀릴 것 같아서 일단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고 일단 출발을 했다. 잘 찾아오라는 선연이의 당부의 말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과연 잘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들끓기 시작했지만 일단 색연필을 움켜쥐고 문방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해는 문방구를 딱 나서는 순간 서산 뒤로 넘어가버렸다. 마치 누군가가 세상의 전원 스위치를 내려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로등은 아직 깜빡이며 완전히 켜지지도 않았는데 세상에 남아있던 모든 빛은 갑작스레 사라져 버렸다. 거리에선 사람들이 스르르 빠져나갔고 그 유령 같은 발걸음 뒤에는 음산한 적막만이 남겨져 있었다. 한 손에는 색연필을 들고 한 손에는 방금 산 물감을 든 채로 나는 어둠이 깃든 거리의 공포를 마주하며 두려움을 곱씹었다.

공원 앞까지는 그래도 걸어갈 만했다. 하지만 공원 정문 앞에 서서 들여다본 그 어두운 산길은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자신감을 다 가져가 버렸다. 공원 입구에 세워진 3미터 높이의 거대한 비석은 묘비 같은 거대한 공포로 빛나고 있었고, 드높게 자란 나무 그늘 사이로 허여멀건 달빛이 음산히 웃어대고 있었다. 그 무서운 빛깔은 숲에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놓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두려움에 압도당해서 얼굴이 달빛보다도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첫 발걸음을 어둠 속으로 들여놓자 아찔함이 척추를 타고 치달았다. 아득한 공포가 사이렌의 노래처럼 암흑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스산한 귀뚜라미 소리는 장송곡처럼 텅 빈 밤에 메아리쳤다. 공포에 홀린 채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손이 두려움으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마음을 다잡은 것인지 정신을 잃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걸어 들어가면 걸어 들어갈수록 어두운 숲의 노래는 점점 더 짙어졌다. 잔잔한 나뭇잎의 부딪히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숲 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감과 색연필을 꼬옥 끌어안고 숲 속을 헤매는 내 모습이 꼭 빨간 모자 같다고 상상했다. 멀리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집어삼키겠다며 들려오는 것 같았다. 빨간 모자가 숲의 어둠에 매료된 채로 멍하니 악몽과 두려움의 결 사이를 걸었듯 나도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어둠 사이를 걸었다. 등 뒤에서 그 어떤 공포가 따라왔다고 한들,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갔었기에 아마 몰랐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절망이 언젠가는 끝을 맞이하듯 어둠도 어느 순간 갑작스레 끝이 났다. 숲의 끝에서 촛불처럼 일렁이는 세상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천천히 공원 출구를 향해서 걸어 나갔다.

공원의 끝에 다다르자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졌다. 풍부한 빛이 대기 중에 떠다니고 있었고, 마침내 어깨를 펴고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수백 년 동안 머물러있었던 것만 같던 긴장이 그제야 조금 가벼워졌다. 마음을 가뿐히 하며 고개를 든 순간,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선연이와 현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놀라면서도 기쁜 마음에 손나 팔을 만들어 아이들을 불렀다.

“뭐야. 너네 왜 여기 있어!”

“너 길 잃어버릴 것 같아서 마중 나왔지!”

나는 가슴이 뭉클하도록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환한 미소와 함께 물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보였다.

“여기 물감 잘 사 왔어!”

그 순간, 세 가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비닐봉지가 뜯어지며 물감이 바닥에 어지럽게 떨어졌다. 아마도 너무 꽉 쥐어서 비닐봉지가 늘어난 탓인 것 같았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초록불로 바뀌었고, 현진이는 내 곤경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다. 하지만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비탈길로부터 앞을 잘 보지 않는 택시가 횡단보도를 향해 돌진했다. 물감을 줍던 내가 비명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횡단보도 위에서는 날카로운 경적소리와 눈이 멀어버릴 듯한 헤드라이트, 그리고 현진이의 비명소리가 얽혀 들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현진이는 정신을 잃고 일어나지 못했다. 택시 아저씨는 당황한 채로 거대한 핸드폰의 응급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앰뷸런스와 경찰이 오고 현진이네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의 그 모든 시간은 온통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침착하려고 애썼지만 손은 온통 떨려댔고 목소리는 이상한 하이톤이 되어서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현진이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멀어져 갈 때 까지도 일어난 일들이 전혀 믿기지 않았을 뿐이다.




그날 밤에는 잠이 찾아오지 않았다. 기억은 선명한 조각이 되어 밤새 아프게 찔러댔다. 눈만 감으면 횡단보도의 불빛과 소리 높은 비명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길바닥에는 항상 물감이 떨어져 있었다. 물감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이면 비명은 다시 처음처럼 어지럽게 머릿속을 수놓았다. 물감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린 속도로 아스팔트 위로 서서히 번져갔다. 깨어난 뒤에도 그 공포감도 마음속에서 같은 속도로 번져가고 있었다.

현진이는 다행히도 큰 상처는 없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나도 선연이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선연이는 학교가 끝난 뒤에는 병원에 찾아가서 잠든 듯 조용한 현진이 곁을 몇 시간이고 침묵으로 지켜주었다. 그 진심이 현진이를 하루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해 줄 것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하루빨리 현진이가 깨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있었다.

그 사이 벽화 프로젝트는 어느덧 막바지 단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다른 조 아이들은 어느덧 도화지에 초안을 완성하고 벽에 붓질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손길을 따라 흰 바람벽에 꽃이 피어나고 밤하늘이 돋아났다. 선연이와 나는 현진이가 돌아올 때까지 그림을 일단 멈추어 놓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스케치는 거의 완성되어 있었지만 누가 보기에도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선연이도 이번에는 꼬집지 않고 그 허전함에 동의해 주었다. 우리는 그 허전함이 현진이가 돌아와야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기도 속에서 현진이를 기다렸다.

그 주 일요일, 성당에 일찍 도착해보니 선연이가 먼저 와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선연이는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곧 다시 기도로 돌아갔다. 그 간절한 기도가 누구를 향하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곁에서 같이 기도해줄까 하다가 영 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아서 성당 안을 천천히 걸어 다녀보기 시작했다. 예배당 안에는 기도하는 소녀와 방황하는 소년뿐, 고요한 침묵만이 머물러있었다.

성당 벽에는 예수님의 12 수난기가 걸려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까지 가장 힘들었을 12개의 순간들을 따라 걷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에 깃들었다. 참 많이 괴로웠을 순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의 예수님은 이상할 만큼 평온해 보이셨다. 그 내면의 행복이 어디서 샘솟는 것인지 궁금해하며 나는 수난기를 따라서 걸었다. 그 수난의 길은 내가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것이었고, 나는 그 길의 끝자락에서 비밀스러운 문을 하나 마주칠 수 있었다. 벌써 꽤 긴 시간을 성당을 다녔음에도 한 번도 열고 들어가 보지 못했던, 12번째 고난의 장면 뒤에 숨겨진 작은 문이었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그 문 뒤에 내가 찾는 것이 있을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문을 천천히 밀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따스한 양탄자 깔린 복도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마도 신부님과 복사들이 미사에 들어올 때 사용하는 통로인 것 같았다. 발걸음이 울리지 않는 그 고요한 복도를 거닐자 내 마음에도 평온이 깃드는 것만 같았다.

복도의 끝에는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었고, 나는 그 그림에 홀린 듯 다가섰다. 그것은 우리가 그렸던 것과 비슷한, 한 아름다운 연못의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연못은 마치 찰랑거릴 듯 생생했고 수면 위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와 꽃잎 사이로 잔잔한 기도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참을 서서 진솔한 소망이 담긴 그 그림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멈칫거리며 말이 되지 못한 기분이 잠시 그림에 걸려 넘어졌다. 어렴풋하게 무언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속마음을 간지럽혔다. 이 그림이라면, 어쩌면, 벽화를 완성시켜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느낌이었다. 나 혼자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연이를 찾아 나섰다.

우리는 미사가 끝난 뒤에 다시 한번 같은 그림 앞에, 이번에는 함께 섰다. 선연이는 한참 동안 그림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말로서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느낌을 다듬어주었다.

“우리 벽화에 뭐가 부족한지 알 것 같아.”

“뭔데?”

“소망. 간절한.”

그림 속에는 맑은 연못에 발목까지 몸을 담근 채 평온한 표정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야 말로 그 그림은 물론, 우리의 벽화를 완성시켜주는 것이었다. 선연이가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희망이 되었다.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은 구도나 형체가 아닌 마음이었다. 우리는 마음으로 그림을 채우기 위해서 서둘러 그림을 향해 달려갔다.

연못 안에 기도하는 소녀를 담자 마치 퍼즐의 잃어버린 조각을 채워 넣은 마냥 그림이 완전해졌다. 소녀는 연한 미소를 띤 채로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고, 그 기도 안에는 친구를 향한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 마음은 꽃이 되어 하늘을 향해 피어났다. 희망이 그 꽃의 웃음소리에 담겨 부드러운 안개처럼 세상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었다.


선연이와 함께 완성된 그림을 병원으로 가져간 그 날 현진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하다고, 좀 괜찮냐고 말하는 내게 현진이는 곱게 웃어주었다. 그림이 잘 완성되어서 다행이라고, 같이 잘 마무리해보자고 현진이는 우리를 다독여주었다. 우리는 마침내 함께 흰 바람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림은 한 부분씩 외로웠던 바람벽을 채워나갔다. 조용한 계곡과 푸른 하늘이 먼저 외로움을 채웠고 부드러운 버드나무 가지와 새하얀 안개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서글픔을 메워나갔다. 그림 속 소녀의 두 손은 간절하고 애틋한 소망으로 하늘을 향해 모아져 있었다. 그 마음은 다른 수많은 그림 사이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다.

현진이는 벽화가 완성되기 바로 전날 학교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림 아래 다 같이 모여 이름의 첫 글자를 새길 수 있었다. 그림 속의 소녀는 그런 우리를 향해 구름처럼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닮은 미소가 우리의 입가에도 오래도록 걸려 있었다. 그 미소는 아마 연못에 얽혀서 함께 자라는 안개꽃 세 송이를 닮아있었을 것이다.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