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피는 꽃 4화

4화 : 깊은 잠

by 이원호

4화 : 깊은 잠





고등학교로의 진학은 끔찍한 것이었다. 그건 나에게도 그랬고 선연이에게도 그랬다. 힘들었던 중학교 생활이 끝나면 조금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3년간의 더 치열한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식이 끝난 즉시 선연이하고는 거의 연락이 끊겼다. 선연이는 미리 예습을 하지 않고서는 고등학교 내용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는 말을 남기곤 메신저도 탈퇴하고 핸드폰도 정지시켜버렸다. 그리고 내 상황도 그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특목고였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좋은 대학에 가려면 죽어라 경쟁해야 한다는 말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 선택한 것 치곤 그건 영 멍청한 일이기는 했다. 덜 치열할 줄 알았던 특목고에서의 생활은 더 지독한 경쟁의 시작이었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싸움이란 고드름 끝처럼 날카롭고 예리했고, 그 경쟁은 마음을 예리하게 도려내어 갔다. 매일 같이 신경을 곤두세운 심리전과 서로 친한 아이들끼리만 집단을 형성하는 파벌싸움이 지속되었다. 그것은 특히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3배 정도 많았기 때문에 더 도드라지는 현상이었다. 우리는 한 반에 남자 일곱 명에 여자 스무 명이라는 기형적인 인원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시험을 봐서 들어온다는 특목고의 특성상 여자아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은 살벌하기는 했지만 남자아이들이 많았기에 파벌싸움이 없었다. 남자아이들은 서로 더 친한 사람과 덜 친한 사람이야 있기 마련이었지만 축구 경기를 할 때면 덜 친하던 사람들과도 한마음이 되었다. 서로 욕하고 싸우는 날들도 있었지만 또 그러다가 화해를 하고 더 친해지는 순간들도 많았던 셈이다. 남자아이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의 날선 다툼은 자연스럽게 뒤에 묻히곤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차마 남자아이들처럼 치고받고 싸운 뒤에 화해하는 것은 영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여자아이들은 날 세운 신경전을 매일같이 펼쳤다.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적이었고,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도구였다. 자칫 잘못해서 이쪽 집단의 여자아이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저쪽 집단의 여자아이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다간 그 날카로운 기싸움에 휘말려 조각도 못 찾고 공중분해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아이들은 쥐죽은 듯 구석에서 숨어서 조용히 지내야했고, 나도 예외는 아닌지라 그 사이에 숨어야만 했다. 고등학교는 그렇게 참 무서운 곳이었다.

참 외로운 순간들이 다시금 도래했다. 친하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열었던 한 여자아이는 내 영어성적이 자신보다 잘나오자 나에 대한 험담을 온 학교에 퍼트렸다. 자기 딴에는 내가 나쁜 여자아이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는 등 처신을 잘못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고 변명을 했지만 내 성적표를 본 뒤 변하던 그 아이의 표정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친해질 뻔 했던 몇몇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아양을 떨기 바빴다. 여자아이들이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에 빌붙어서 간신배처럼 빌빌거리는 남자아이들의 모습은 큰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결국 나는 자연스럽게 모두와 멀어져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말았다.

안 그래도 마음속에 씨앗처럼 자리를 잡았던 외로움은 점점 더 심해져 가기 시작했다. 그 외로움은 균열처럼 번졌고, 누군가가 마음을 똑똑 두드릴 때면 균열은 온통 커져서 내 안의 모든 걸 다 잡아먹었다. 그럴 때면 생각이 멎어버리고 몸이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온통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석회석처럼 잿빛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키는 크지 않았다. 삶은 변하지 않았고 주변에는 언제나처럼 아무도 없었다. 가슴 어림께의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수업을 듣던 도중에도 저릿하게 고통이 번져와 표정이 굳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프다고 내색하고 싶었지만 그 고통이 찾아올 때면 표정도 혀도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비명을 지를 수도, 살려달라고 간청할 수도 없이 외로웠다.


그 저릿한 외로움 속에서 우울이 고개를 들고 깨어났다. 우울은 벌레처럼 내면을 꾸물거리며 채웠다. 언제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파란(破卵)의 고통을 겪어야지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선연이가 편지에 적었던 헤르만 헤세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의 한 구절이 그 시절의 마음을 참 아프게 때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선 아마도 내 세상을 파괴하고 신을 향해 날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는 아직 그 힘이 없었다. 알을 깨고나오지 못하고 그 아픈 천장에 머리를 박아 대는 어린 새일 뿐이었다.

절망은 반타작도 못하는 성적과 자괴감을 받아먹으며 계속해서 안에 알을 낳고 또 낳았다. 아픔은 날카로운 턱으로 마음을 할퀴고 삶을 갉아먹었다. 그렇게 생겨난 상처들은 자꾸만 안에서 곪아갔다. 아프고 괴롭다고 이야기하고 싶어도 이야기 할 사람 하나 없었다. 마음속 고름을 받아먹으며 마음속 우울은 괴물로 커갔다. 그리고 그 괴물은 강아지새끼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다.

마음속 욕망들은 어둡고 불건전한 쪽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것은 프로이트 심리학적으로 따지면 강렬한 타나토스적인 의지였고, 니체 식으로 표현하자면 초인이 되지 못하고 꺾인 실패한 힘으로의 의지였다. 멈춰서 굳어버리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나는 땅에 뿌리내리고 움직이지 못했다.

괴물이 미쳐 날뛰며 자살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넣었던 적도 있었다. 가슴이 굳어버리는 그 뭉툭한 느낌을 벗어나기 위해서 예리한 커터칼로 손목을 가로로 그으니 새빨간 피가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이러다보면 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속에 묘한 쾌감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손목을 그렇게 그어댄들 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손목에는 잔뼈와 잔 근육이 많아서 커터칼 따위로 죽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힘이 들어가는 부위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서 손목을 그었을 뿐이었다. 손목에는 보기 싫은 흉터만이 남았고 흉터를 가리기 위해 묵주 팔찌를 다시 찰 까도 생각했지만,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예전에는 행복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행복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가끔 누군가 곁에 있어준다면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원하고 갈망한다고 해도 누군가가 그 아픔의 자리를 채울 수는 없었다. 손을 잡은 그 순간에는 누군가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잠시 느낄지 몰라도 그것은 손을 놓으면 덧없이 사라지는 따스함이었다. 외로움은 언제나 굶주린 천사처럼 내게 다가와 숨그네를 뛰었다. 들숨과 날숨 사이를 널뛰며 외로움은 언제나 다가오고 있었다. 목마른 자 그 갈증을 바다를 마신대서 채울 수 있을까. 외로움도 아무리 사랑받고 행복하다고 한들 채워질 수 없었다. 아파할 뿐 그 뿐이었다.

밀려오는 절망과 아픔에 나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했다. 점점 굳어져가는 몸과의 싸움을 포기했고 행복해지려는 시도들도 포기했다. 절망이 마음을 누르면 저항하지 않고 그 비릿한 마비에 몸을 맡겼다. 그 마비는 꿈은 없지만 현실이 잔상들이 무한하게 남는 회색빛 세계로 나를 데려갔다. 그렇게 학교에서 잠만 자는 일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라고 한들, 시험을 보라고 한들 그저 무거운 마비에 몸을 맡긴 채 잠들었다. 자면 잘수록 몸은 더 피곤해졌다. 10시간씩 자던 잠은 12시간 씩, 14시간씩으로 늘어났고 자고 일어나면 몸은 물먹은 마냥 더 늘어지고 힘들었다. 내게는 절망과 싸울 힘이 없었기에 잠들지 않고선 견딜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 그랬다. 수면과 희망은 절망의 지친 인간에게 신이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희망은 내게 건네지지 않은 듯 했다. 그래서 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이 굳어지는 느낌이 정말로 잠을 자는 것인지는 모호할 뿐이었다.




5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