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가을 편지
그렇게 잠에 마비된 채로 세월을 보내던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오전을 모조리 책상 위에 돌처럼 굳어진 채로 엎드려 잠을 잔 것도 모자라서 점심도 거르고 국어책 위에 엎어진 채로 보내던 하루였다. 교실의 시계는 고장 나 있었고 내 안의 시계도 고장 나 있어서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텅 빈 꿈들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꿈속은 언제나 그렇듯 회색빛 텅 빈 곳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꿈을 방해하는 그림자가 주변에 어른거렸다. 선잠 속에서 깰 듯 말 듯 몽롱하게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변을 맴돌던 인영은 머리맡에 무언가를 두고 갔다. 나중에 일어나서 읽어보니 그것은 작은 편지 한 통이었다. 공책을 편지지 삼아서 적힌 꼬깃꼬깃한 편지 위에는 바람이 불면 팔랑팔랑 부드럽게 날아갈 것 같은 나비 같은 글씨가 곱게 적혀있었다. 나는 그 살아있는 글씨체에 잠이 온통 다 달아났다. 그래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안녕 수호. 우습지만, 나는 네가 참 좋아. 헝클어진 머리카락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그 눈빛 뒤에도, 내가 담고 싶은 네가 있는 것 같아. 너는 좋은 사람일 거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잘하길 바라. 있는 그대로의 널 응원할게. -경』
짧고 힘찬 편지는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나를 햇살처럼 쿡쿡 찔렀다. 그 모습이 너무 살갑게 눈부셔서 한동안 제대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문득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텅 빈 교실에는 나 혼자 있었을 뿐이었다. 따뜻한 가을볕만이 바람을 불러와 커튼 그림자로 사람 행세를 하고 있었고, 맑은 하늘빛은 바람의 춤 사이로 편지에 스미어 들어와 고였다. 나는 오래도록 감고 있던 눈을 잠시 떴다. 약간이라도 좋으니 조금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있었다.
편지의 밑에는 ‘경’이라고 서명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쉽사리 알 수 없었다. 학교에는 ‘경’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사람이 수십 명은 있었고 그중 어느 누구도 내게 편지를 쓸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느 한자인지 알면 조금 추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한자에 약했기에 옥편을 찾아보아도 그중 어느 것일지 알 수가 없었다. 나비일까. 풍경일까. 책일까, 햇살일까 정중함일까.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실 누가 그 편지를 주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편지 안에는 내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어떤 바람이 들어있었다. 좋은 사람일 거라는 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응원한다는 말. 그 말들은 나를 날카롭게 찔러서 깊은 잠에서 깨웠다. 그것은 마비를 쫓아내는 선명한 감촉이었다. 이토록 외롭고 못난 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 나도 좋은 사람일 거라는 그 말이 내게는 희망을 향하는 타종소리가 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다음 주가 되어서야 결국 ‘경’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모두들 밥을 먹으러 간 고요한 저녁시간에, 그 아이는 창밖의 멈추어버린 세상을 감상하던 몽롱한 내 등 뒤로 다가와 알껍질을 톡톡 두드리듯 말을 걸었다.
“일어나 찰스. 잠에서 깰 시간이야.”
그 말에 나는 마치 잠자는 숲 속의 공주나 시간의 틈새로 빠진 엘리스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세상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니 장난기 가득한 반달 같은 눈웃음이 나를 반겼다. 작달막한 키에 허리에 당돌하게 올려준 두 손, 세상을 향해 한 치 물러섬도 없이 단정하게 뻗어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눈에 담겼다. 세상을 거부하는 듯이 반항적이고 오뚝한 콧날이 인상적인 소녀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아이가 내게 편지를 주고 간 장본인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논리와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관이었다. 경, 아니 성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또 저녁 안 먹었지 찰스?”
성희는 나를 언제나 찰스라고 불렀다. 나로서는 왜 그런 별명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성희는 별명이란 대체로 그렇게 이유 없이 입에 붙어버린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성희가 나를 찰스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찰스라고 불러댔고, 나는 조금도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이 아이가 그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성희의 질문에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러자 반달 같은 눈웃음이 잠시 성희의 눈매에 머물렀다.
“그렇게 자꾸 안 먹으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서 냉큼 죽어버린다 돼지똥꼬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돼지똥꼬가 된 나는 다시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성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너 혹시 내 이름은 아니?”
“응. 류성희.”
“다행이네. 너 아직도 같은 반인 애들 이름도 다 못 외운다며. 내 이름은 기억해줘서 고마워!”
다시금 생글생글한 눈웃음이 성희의 눈가에 머물렀다. 아이들의 이름을 못 외운 게 아니라 부른 적 없을 뿐이라고 변명을 꺼내놓고 싶기도 했지만 확실히 변명으로 들릴 것을 알기에 침묵했다.
사실 성희에 대해서는 이름보다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등교 코스가 같았고, 매일 우연찮게 마주치는 사이였다. 우리 고등학교는 까마득한 산꼭대기에 지어져 있었는지라 등교하기 위해선 백계단이라는 난관을 거쳐야만 하는 곳이었다. 말이 좋아서 백계단이지 실제로는 이백 개도 넘었을 그 가파른 계단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세면서 걸으면 전교 일등을 못해서 자살한 귀신이 나타나서 등을 밀어버린다는 둥, 자정이 지나면 계단이 일곱 칸이 더 늘어난다는 둥의 유치한 학교괴담이 살아 숨 쉬는 장소였다. 그만큼 그 높이와 가파름이 인상적이었거나 공포스러웠던 장소였던 셈이다.
매일 아침 아주 일찍, 또는 아주 늦게 그 계단을 타고 어기적어기적 학교로 등교하다 보면 참 많은 것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어떤 것들은 나와는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또 어떤 일들은 시간에 붙박여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같은 시간대에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성희는 그 같은 시간과 속도를 공유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쯤은 그 길에서 성희를 마주쳤다. 등교 중일 때도 있었고 하교 중일 때도 있었으며 때로는 야간 자율학습을 도망치는 도중이기도 했다. 비록 같은 길 위이기는 했어도 걷는 속도가 비슷한 우리들은 어느 한 지점에서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다. 때로는 성희가 앞에서 걸었고 가끔은 내가 앞에서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의 거리는 좁혀지거나 멀어지지는 않고 그렇게 같은 등굣길 위에서 함께 여행을 했다. 그런 성희를 내가 모를 수는 없었다.
하루의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서있는 성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확신을 갖고 말했다.
“편지 고마워. 네가 ‘경’이지?”
성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어떻게 알았어? 처음부터 나인걸 알았던 거야?”
“아니.”
성희는 눈을 샐쭉하게 떴다.
“그럼 그냥 떠본 건가 보네?”
“아냐. 방금 알았어.”
성희는 이내 웃음을 지었다. 곁으로 다가와 함께 석양을 내다보는 성희의 모습을 침묵으로 지켜보았다. 문득, 조금 궁금해졌다. 내가 왜 찰스인지 만큼 궁금한 질문이었다. 왜 이 아이는 ‘경’이었을까.
“왜 ‘경’이야? 네 이름에는 경자가 들어가지 않는데.”
“필명이야. 나비 경자를 썼어.”
확실히 그 편지에는 여름 하늘의 나비 같은 힘이 담겨있었다. 그 산들산들한 날갯짓이 콧등에 내려앉았기에 나는 깊은 잠에서 깰 수 있었다. 문득 조금 고마워졌고, 그 말을 할까 말까 머뭇거리는 사이에 성희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답장 기대할게! 어디에 써서 주든 좋아.”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성희는 가을비 같은 발자국 소리를 남기며 총총 교실을 떠나갔다. 나로선 참 예기치 못한 초대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희는 그 뒤로 자주 찾아왔다. 저녁 시간만 되면 석양빛과 함께 코가 오뚝한 소녀가 문을 경쾌하게 열며 교실로 들어왔다.
“찰스! 밥 먹으러 가자! 이리 온!”
그 모습이 마치 강아지를 밥 먹이러 가는 것 같다며 반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었었다. 애당초 반항을 한다고 해서 포기할 것 같은 아이가 아니었기에 나는 가만히 그 뒤를 따라가곤 했다.
성희는 단 한 번도 답장을 보채지 않았고, 사실 그렇게 말이 많은 편 조차도 아니었다. 밥을 같이 먹을 때나 같이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있을 때도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는 침묵 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들이 더 많았다. 한없이 당돌하고 당차면서도 이 아이는 꼭 필요한 문장이 아닌 경우에는 침묵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알았고, 덕분에 처음에는 쭈뼛쭈뼛하고 어색하기만 했던 그 침묵의 시간이 점차 편안함으로 바뀌어 갔다. 버스를 기다리며 밤하늘을 볼 때에는 함께 전래동화를 듣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복도에 서서 창밖을 함께 바라볼 때에는 말없이도 한없이 긴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우리는 밤하늘의 별들을 반짝이는 두 눈으로 읽어내거나, 펜을 입에 문 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또랑또랑한 이야기를 함께 듣곤 했다. 풀벌레의 오케스트라도, 먹구름과 번개의 앙상블도 침묵 속에서는 다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고요와 침묵의 사이에는 고요히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 묵묵함은 마치 어머니의 양수 안에 돌아온 것 마냥 나를 부드럽게 흔들었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다시금 스스로의 존재를 더듬으며 새로이 태어나고 있었다.
성희는 그렇듯 말을 아낄 줄 알았지만, 글에 있어서는 놀랍도록 많은 걸 써 내려가는 아이였다. 성희는 내가 어렵사리 쓴 첫 답장을 받은 이후로 내게 참 많은 편지들을 주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글씨로 세공된 편지가 내 손에 쥐어졌고, 그 편지 안에는 쉽사리 담기 어려웠을 진솔한 고백과 자기성찰들이 담겨서 내게 아찔한 충격들을 선사했다. 성희의 아름다운 생각들은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내게 큰 변화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그 편지들을 닮고 싶었고 그것이 글을 쓰는 노력들로 이어졌던 것이다. 하루에 열 번씩 편지를 지우고 다시 쓰면서. 문장과 단어와 생각을 다듬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절망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마음을 짓누르던 절망이 옅어지자 오랫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씩 되돌아왔다. 나는 조금씩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연습을 시작했고, 결국 어느 날에는 선연이에게도 아주 긴 세월만에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선연이네 집 주소를 적을 때는 여러 번 해왔던 일을 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익숙함이 손끝에 머물렀다. 그동안 메신저나 핸드폰이 없으니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하며 서로 멀어져 있었지만 편지로는 연락할 수 있었다. 나는 예전에 선연이가 그랬듯 답장을 기대하지 않은 채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우울은 마음을 완전하게 떠나지는 않았고 그것은 때로는 집착으로, 때로는 절망으로 나를 채웠다. 하지만 그 감정들마저도 편지에 담기면서 조금씩 부드러워져 갔다. 편지를 쓰는 것은 그리움이라는 망망대해에 점을 찍는 일이다. 그 점은 처음엔 보잘것없지만 결국 소중한 부표가 되어 폭풍으로부터 배를 건진다. 그리고 나는 그곳으로부터 그리움이 시작되고 그리움이 멎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움이 달래 지면 절망도, 집착도, 우울도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건 참 답이 없는 사랑이었고 어찌 보면 이기적이고 일방적인 마음이었지만 그때는 어렸기에 그렇게밖에 사랑할 줄 몰랐다. 주변의 그 누구도 그게 옳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을 정도로 깊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거나, 무엇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을 만큼 깊게 사랑할 줄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의 한심한 실수들 속에서야 비로소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선연이에게서는 가끔 답장이 왔다. 내 유치한 편지들하고는 달리 마음을 울리는 편지들이었다. 그런 작은 삶의 조각들에 희망이 담겼고 그것은 나를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이 열려가자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중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그동안 곁에 있는 줄 몰랐던 좋은 사람들과 새로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즈음하여 만난 사람들 중에는 형동이와 은정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것은 참 질기고도 웃긴 관계의 시작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