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을 향해 빛나는 별 마지막화

마지막 화 : 천상

by 이원호

챕터 12 : 천상






기나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찰리와 명아는 탑의 끝이라고 알려진 200층을 넘어설 수 있었다. 중간의 신층부를 넘어서 하늘에 닿는다는 심층부까지 올라왔건만 탑은 여전히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세간에 알려져 있던 층들보다 적어도 100층은 더 위로 올라가야 탑의 끝이 있을 것만 같을 지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200층을 넘어서자 올라가는 길마저도 찾기 쉽지 않았다. 탑의 미공개된 지역에는 일반인들이 올라갈 수 없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찾기 쉬운 길 대신 미로만이 어지럽게 존재했다. 분명 탑의 기술자들만 이용한, 그리고 20년 전 한여름 여사가 이용했을 비밀의 문들이 곳곳에 있을 테지만 찰리와 명아는 그 문들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찾아낼 수가 없었다.
전망대로 쓰이던 탑의 200층은 모든 외벽이 창틀 하나 없이 통유리로 둘러싸여 있는 거대한 하얀 홀이었다. 비밀 통로를 찾고 싶어도 눈여겨 볼만한 기둥이나 벽 하나 없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햇살이 들이쳐 다이아몬드 궁전처럼 빛났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공간이기도 했다. 반짝이는 햇살을 손에 담으며 찰리와 명아는 서로에게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탑의 어마어마한 크기와 긴 시간 동안 탑을 올라왔다는 사실에 지친 마음은 서로의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로 조금 달래 졌다.

올라올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왔는지라 사방에는 감정에너지가 가득했다. 찰리는 비밀의 정원에서처럼 감정을 거의 맛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비밀의 정원보다 훨씬 농밀하고 끈적이는 것 같기도 했다. 명아는 꿈틀대다가 찰리를 불렀다.

“찰리, 주머니에서 뭐가 울려.”

찰리는 이미 핸드폰을 지하수로에서 잃어버렸었기 때문에 의아해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곤 꺼져있던 란이 다시 전원이 들어온 것을 알았다.

- 또 꺼트렸군.

- 그러게요. 중요할 때마다 꺼지는군요.

- 내가 한 게 아니다.

- 저도 아니에요.

- 알고 있다. 이제 보니 저 여자였군.


찰리는 란의 감정이 명아를 스윽 훑는 것을 느꼈다. 란은 다시 한번 메시지를 출력했다.


- 너와 함께 있는 여자는 너보다도 더 특수한 체질이다.

- 왜요?

- 저 여자는 너와 달리 감정을 흡수하고 압축시키지. 끌어당기는 능력은 너보다 훨씬 약한 것 같지만 그래도 지근거리에선 꽤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꺼진 게 분명하다. 저 정도로 흡수하고 압축시키는 능력이라면 마귀고 뭐고 통하지 않겠군.

찰리는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명아의 감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느낄 수 없었던 것도, 그리고 명아가 마귀들에게 공격당해도 무사했던 것도 다 명아의 특별한 감정 체질 덕분이었다. 감정을 끌어당기고 읽어버리는 찰리와는 달리 명아는 흡수하고 압축시켰던 것이다.

명아는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찰리는 명아에게도 란을 보여주었다.

“신기한 기계네. 자아가 있는 거야?”

“응. 너 때문에 자기가 꺼졌대.”

“그럼 지금은 어떻게 켜졌대?”

대답은 란 위에 자연스럽게 출력되었다.

- 감정탑 폭주 때문에 감정에너지의 밀도가 높아져서 다시 켜진 것 같군. 여자가 압축하는 것보다 더 높은 밀도의 에너지가 존재하니 켜진 모양이다. 그나저나 높이도 올라왔구나. 잘했다.

찰리는 약간의 억울함을 느꼈다.

“뭐야, 굳이 타자로 치지 않아도 말을 알아듣는 거면 여태까지 괜히 열심히 타자 쳤잖아.”

- 말로 하는 대화보다 글로 하는 대화가 의미가 있을 때도 있는 법이지.

찰리는 뭐라 반박하지는 못했지만 씩씩거리기는 했다. 명아는 찰 리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란에게 질문했다.

“달걀 씨”

- 란이다.

“그게 달걀이지 뭐예요. 어쨌든 여기는 200층인데 더 이상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안 보여요. 감정 밀도는 높지만 당신들이 말한 세계의 심장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고요. 어떻게 더 올라가죠?”

란은 다시 화면 위에 지도를 출력했다. 그들이 서있는 하얀 전망대의 도면이 세밀하게 출력되었다.

- 인간에게 오픈되어있는 마지막 층인 200층을 넘어가면 그 뒤부터는 천상이라고도 불리는 극비층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듯, 인간이 온갖 생명과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는 곳이지. 감정 에너지가 이토록 높다면 이다음 층부터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넘어가도록.

찰리와 명아는 108번째 유리창을 밀었다. 투명하고 깨끗하게 하늘을 보여주던 그 유리창은 정확한 위치에서 밀자 정교한 스크린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스크린이 꺼진 위치에서는 하늘을 통과하는 것 같은 가파른 통로가 나타났다. 찰리는 이제 선택의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한 손에는 란을 꽉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명아의 손을 잡은 채로 찰리는 천상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그들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천상을 헤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감정들은 모든 것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은 함께 이곳에 있었고, 때때로 각자의 미래 속에 던져졌으며,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과거로 쓰러지기도 했다.

한 때는 연구실이었을 심층부는 감정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기묘하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해있었다. 실험체였을 것이 분명했던 동물들은 환상수로 변해서 감각의 저편을 뛰어다녔고, 감정과 인간은 하나로 얽혀 들어가 악마와 천사의 중간 단계를 이뤘다. 모든 것은 끝없이 평온하고 넘실대는 무한의 단계에 다가서 있었다.

그 평온의 세계에서 찰리는 수많은 밤을 명아의 곁에서 잠들었고 셀 수 없는 아침을 그녀의 곁에서 맞이했다. 동시에 그것은 찰나의 움직임이어서 단 몇 시간뿐인 것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둘은 이 여정의 끝이 어딘가에 놓여있을 것을 알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둘 모두에게 위협이 될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끝나지 않을 긴 꿈들과 꿈보다 더 기묘한 현실들이 찾아왔다. 찰리는 어느새 기억의 저편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현실의 이면에서 보이는 환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찰리의 꿈에서 은하 누나는 물어보았다.

“글세 찰리,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사랑하지 않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 사랑을 한다는 것이 뭔데?”

"누나가 정말로 사랑을 해본지는 잘 모르겠어. 어느 정도로 짙은 감정을 가졌는지도 알 수 없지. 하지만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사랑에 빠진다는 건 다른 것이 모두 다 사소해지게 만드는 일이야.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아. 그 사람의 과거도, 조금은 모나고 이상할 성격도, 화려하지 않은 외모도,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도 다 상관없이 마냥 좋아지지. 누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너의 예쁜 장점들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야. 너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은하 누나는 이슬이 맺히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런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네가 말한 정도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고, 또 내가 그런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이 몇이나 될까?”

“인정해. 쉽지 않겠지. 너 말대로 그런 사람은 쉽게 찾아지지 않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지. 그리고 난, 언젠가 네가 마주치리라 믿어.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불구하고, 네가 마냥 좋아져 버렸다는 그런 사람을.


은하 누나는 씨익 웃더니 하나의 질문을 남겼고, 맥주 탓인지 찰리의 얼굴은 새빨갛게 부끄러워지고 말았다.


"명아를 좋아하는구나?"

"왜 다들 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지?

"좋겠네. 그 아이는."

"뭐래 진짜."

"그냥, 네 감정이 변화하는 걸 보니 신기하다. 어른이네 드디어.”

찰리는 그 순간 반쯤 꿈에서 깨었다. 그는 명아와 함께 하얀 천상을 거닐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은하 누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기도 했다. 찰리는 그것이 과거 은하 누나와 나눈 대화인지, 아니면 이 탑 위에서만 존재하는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은하 누나는 그에게 말했다. 동시에 그것은 명아가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 질지 모르는 별.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마지막 순간인지도 모르지. 너는 세상을 위한 내 마지막 유산이야.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유일한 의미. 내가 사랑하여 못다 바꾼 세상을, 내가 미워하여 못다 이룬 이야기를 네가 바꿔주렴. 내가 닿고 싶었던 모든 별에 너는 닿을 걸 알고 있어. 그러니까 살아. 살아야 해. 살아갈 수 있는 만큼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의미야. 그러니까, 그럼에도, 그렇기에 살아야 해. 네가 내 별이야.”

"꼭 잡은 그 손 놓지 않으면, 그 어느 별에라도 닿을 수 있어 찰리. 죽음은 가장 큰 이별이 아니야. 네 완성을 향해가렴 찰리. 너는 분명 찬란할 거야. “

찰리는 애도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별이 아니면 어떡하죠?"

애도는 깊게 빛나며 대답했다.

"어차피 별은 스스로가 별인지몰라. 하지만 가장 어두운 밤에 그 빛을 눈에 담은 사람만큼은 알겠지."

찰리는 다시 물었다.

“괴로움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닌 용기 있는 선택을 내린다는 것은 뭘까요.”

애도는 찰리를 마주 보며 슬프고 기쁜 눈으로 대답했다.

“너 자신을 마주 보는 일이란다.”

찰리는 그날 밤이 그들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감정과 현실의 경계에 걸쳐있는 명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찰리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천년의 세월이 지나고 단 1초도 눈을 감지 못했던 그 마지막 밤에 그는 결코 그녀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찰리는 하얗게 빛나는 천상의 문 앞에 섰다. 그제야 그는 이것이 천 번도 넘게 내린 선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억겁의 세월 동안 그는 반복해서 이 자리에 섰었다. 그는 1살짜리 꼬마였을 때에도, 서툴게 눈물 흘리는 13살 소년이었을 때도, 어설프고 젊은 24살의 청년으로서도,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은 37살의 가장이자 삶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45살의 남성으로도 그 자리에 서보았다. 그때마다 그는 선택을 내렸고, 그 선택은 그렇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찰리는 사랑을 해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삶을 살아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모든 것이 언제 갑작스럽게 끝나더라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일이었다.

명아는 그의 오른편에 서서 조용히 물어보았다.

“찰리, 내가 대신 가면 안될까. 나도 갈 수 있어. 꼭 너여야 하는 것은 아니야.”

찰리는 그처럼 명아도 수천번 이 선택 앞에 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는 명아는 어린 소녀였고 성숙한 아가씨였고 너른 평원 같은 어머니이자 최후의 지혜로 빛나는 할머니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명아가 내린 선택 역시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찰리는 기나긴 세월 동안 명아의 마음에 담겨있던 거대한 크기의 감정을 그제야 읽을 수 있었다. 명아가 삼켜온 감정들은 거대한 천상의 날개처럼 명아를 감싸 안고 있었고, 찰리는 명아의 상처와 기쁨을 세월을 넘어선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찰리는 기쁨의 미소를 남겼다.

찰리가 명아에게 끌렸던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명아는 찰리가 잃어버린 스스로의 반쪽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고, 찰리가 영원토록 찾아 헤매던 트라우마와 종말 이기도했다. 명아가 감정탑의 핵심에 들어간다면 찰리의 반쪽짜리 영혼이 하고 있던 일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찰리만큼 뛰어난 감정 압축자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찰리는 대신 죽어주겠다는 말을 담담하게 하는 명아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어떤 대답도 필요하지는 않았다. 찰리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순간에 명아의 마음에 답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미소로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찰리는 그의 왼편에 서있는 애도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모두 끝나가는 이제야 그는 애도가 한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여태까지 이끌어온 것이 누구였는지도 알았다.

애도는 말없이 찰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역시 찰리가 수천번 내린 선택들을 긍정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섰었다는 것을 이제 찰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애도는 찰리 본인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해 감정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무모한 소년이었다. 죽음을 꿈꿨던 외로운 소년은 감정 속에서 그가 사랑해온 모든 것들을 영원히 지켜보게 되었던 것이다. 분명 애도가 내린 선택들은 찰리와는 다른 것일 테지만, 동시에 찰리가 내린 모든 선택과 다를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찰리는 감정의 일부를 열고 받아들이며 천상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너무 하얘서 캄캄한 빛과 너무 어두워 투명한 빛이 새어 나왔다. 찰리는 빛에 자신이 잠겨 드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명아를 보았다. 명아는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기쁨으로 찰리의 선택을 지켜보았다.

찰리는 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너머에는 해를 삼킨 거대한 검은 까마귀와 오랫동안 잃어버린 찰리의 반쪽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아는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눈으로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세상과 세상이 손을 맞잡으며 빛에 휘감기고 있었다.




















에필로그 : 별







명아는 탑을 내려와 수많은 질문들을 받았다. 탑이 왜 진동을 멈추었는지, 사라진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간 것인지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명아는 잘 대답할 자신이 없었고, 글을 써서 알려주겠다고 그랬다.

감정탑 대참사 이후 3개월의 시간 동안 명아는 비원에 들어가 글을 썼다. 한여름 여사는 명아에게 감정을 다루는 방법과 그녀 안에 내재된 무한한 감정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들을 알려주었다. 명아는 단풍이 하얗게 질 때까지 그곳에서 글을 썼다.

은행잎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가을날, 명아는 그날의 일기에 마지막 마침표를 새겨 넣었다. 그제야 마음 한편에 그득했던 그리움이 너울너울 날개를 펴는 것 같았다.

그날, 탑의 꼭대기에서 그녀는 마침내 찰리가 먼 곳의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본래의 하나가 된 찰리는 가을의 하늘처럼 밝게 빛났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죽음을 선택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사라지며 찰리는 미소로 말했었다. 찰리라는 이름은 별명이라고 말이다. 명아는 찰리의 본명을 듣지 못했지만 듣지 않아도 이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의 찰리의 목소리가 여전히 바로 곁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제 질지 모르는 별.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마지막 순간인지도 모르지. 너는 세상을 위한 내 마지막 유산이야. 내가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유일한 의미. 내가 사랑하여 못다 바꾼 세상을, 내가 미워하여 못다 이룬 이야기를 네가 바꿔주렴. 내가 닿고 싶었던 모든 별에 너는 닿을 걸 알고 있어. 그러니까 살아. 명아야. 살아야 해. 살아갈 수 있는 만큼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의미야. 그러니까, 그럼에도, 그렇기에 살아야 해. 네가 내 별이야.”

명아는 마침표를 찍은 일기를 덮었다. 어느덧 손때가 묻은 그 공책의 표지에는 그녀가 수천 번 고심하고 그리워하며 새겨 넣은 문구가 빛났다.


가을밤에게
너의 별이.



명 여사는 그녀의 오랜 일기장을 덮었다. 하얗게 세어버린 머릿결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세월을 잊고 그 이야기 속에서 그날로 돌아갔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탑 안에는 그때 그들이 함께 있었던 흔적이 가득했다. 춤추듯 감정에너지로 빛나는 전등과, 힘찬 노래가 되어 흐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명 여사는 찰리의 모습이 멀리 밤하늘 틈새에서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짙은 가을의 밤 사이로 개밥바라기별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찰리가 속삭였다.

‘아직도 여기에만 서면 애틋해진다니, 바보야 넌 참.’

명아는 대답했다.

‘괜찮아. 차라리 바보인 걸로 할게 난.’


명 여사는 사람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연단을 내려왔다. 탑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거주하거나, 상업시설이 안치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사라진 이들에 대한 끝없는 위령비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럼에도 탑은 70년 전의 그날처럼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감정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인간을 세상을 이해하는 다음 단계로 데려다줄 것이다. 명 여사는 반드시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녀의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 계속해서 웅웅거렸다. 축하해주고 인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치며 명 여사는 미소로 메시지를 적어 넣었다.

너무 그렇게 보채지 마 란아. 이제 멀지 않았잖아.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는 않아야지.

그리고 그제야 그녀의 주머니에서 반짝이던 것은 조용히 잦아들었다.

명 여사는 밤 결 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그때 그날처럼 가을이었다. 그들이 영원토록 살아갈 가을이었다. 멀리서 반짝이는 세월의 별들 사이로 명 여사는 70년 동안 한결 같이 그래 온 것처럼 편지를 새겼다.

꼭 들여다보고 있지 않아도 보여. 꼭 다 말해주지 않아도 들려. 네가 조금씩 더 보여. 언젠가 먼 미래의 감정이 그랬어. 너는 내가 기다릴 영원보다도 큰 소중함이라고. 어쩌면 넌 정말 그런걸지도 몰라.


그녀는 남겨진 이야기의 문을 닫았다. 그녀의 머리 위에선 가을밤의 가장 아름다운 별이 빛나고 있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