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트레이닝에서 어떤 큐잉을 많이 쓸까?

지극히 내 위주 "큐잉은 회원이 자기 몸을 믿게 만드는 언어다"


나는

주로 장애인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웨이트 트레이닝뿐만

아니라 필라테스, 기능성 운동을 함께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실 위 세 가지의 운동을 다 잘해야

하고, 다 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인 거다.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운동을 오래 해 본 사람이라면

'운동을 잘한다'의 기준이란 뭘까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체대 입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시간 동안 운동을 해 온 나도 운동을 계속 배운다. 기준이 어떻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웨이트 잘하는 사람이 러닝이나 기능성 운동 잘하기 힘들고, 보디빌더들도 필라테스 배우러 가서 덜덜 떠는 콘텐츠들이 나오는 세상에 난 나 스스로가 운동을 잘하면서도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의 모순적인 기록들 (TMI)

체대 입시 기준: 한체대 2분 싯업 만점, 제자리멀리뛰기 243cm, 유연성(좌전굴) 27~28, 달리기 만점 수준

현재 3대 운동 기록: 벤치 50kg, 스쿼트 95kg, 데드 110kg

러닝/기능성을 할 때의 심박수, 기록 이런 건 묻지 않길 바란다. 필라테스도 마찬가지다. 너무 힘들다. ㅋㅋ


운동 지도자라면,

내가 운동을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 또한 다르다는 것을 익히 잘 알 것이다.

체대 입시 강사, 유아 체육 강사 그리고 지금의 일을 포함해 5~6년이 되는 시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며 느낀 건 '말 한마디'가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가 지팡이를 놓게 할 수 있다?>

지도자는 수행자에게 하고자 하는 동작을

제대로 잘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동등하게 지도자의 말 한마디, 큐잉 한마디가 참 중요하다는 것 또한 너무 중요한 사실이다. 나의 큐잉 한마디에 수행자의 능력치가 확연히 차이 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심리적인 부분을 건드려서 수업 한 번 만에 지팡이 보행에서 독립 보행으로 만든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게 마법인가? 내가 신인가? 사실 그건 아니거든.


그렇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말만 잘해도 수행자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동작도 심리적 접근 하나로 가능해지는 걸 현장에서 너무 많이 봤다. 회원들이 '못한다'라고 말할 때, 그게 정말 신체적 한계인지 심리적 제약인지 구분하는 게 지도자의 핵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수행자가 살아온 몇 년, 몇십 년의 시간이 만든 체형과 패턴. 그 안에 갑자기 나타난 지도자가 무엇인가를 자극시켜 수행의 재미를 붙이고 성공으로 이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나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며 더더욱 느끼고 재미있다고 느끼고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일단 하세요, 넘어진 건 아니니까>

"생각을 많이 하지 마세요"

"일단 해"

"호흡 참지 말고"

"할 수 있어요"

"넘어질 것 같아서요? 그건 넘어질 것 같은 거지 넘어진 게 아니니까 제발 그냥 해봅시다. 그리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돼요."

내가 이런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요즘 혼자 '소마틱 관점'이라고 부르는 심리적 관점 때문이다. 결국 이분들은 진짜 하지 못해서, 근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해보지 않아서' 지시하는 동작들을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이론상으로는 그 사람이 힘들 순 있겠으나 힘이 들뿐 못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거나, 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거나, 어떻게 힘을 써야 하는지 모르거나. 크게 세 가지 중 하나의 원인으로 좁혀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단 해보자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큐잉들과 함께 그동안의 것들을 거스르는 동작 혹은 무게 중심만 다르게 해 보는 동작들을 제시해 성공 경험을 제공한다.




<확언 대신 '밝은 색의 물음표'를 주는 법>

"제가 여기가 힘이 없어서인 건가요?"

"저는 골반이 전방경사고요, 햄스트링이 짧고..."

회원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평가지표를 통해 우려를 이야기할 때면 나는 확언을 하지 않는다. 평가가 중요한 건 알지만 나만 알고 있거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힘이 없어서 그런가요?"라는 질문에는 근육이 없다고 단정 짓기보다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 근육의 스위치가 켜지지 않아서 쓰기 힘든 거다. 자꾸자꾸 해본다면 스위치가 켜지고 움직임이 편해질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평가하기 바빠 정의를 내리기보다 써보고 이야기하자고 한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일 순 있어도 적어도 나라는 사람은 그냥 터무니없어도 "그런가? 해보면 할 수 있으려나?" 하는 밝은 색의 물음표를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수업에 임하다 보면 나도 놀라운 순간들을 종종 관찰하게 된다. 내 수업에서 나도 자신감을 얻고, 회원도"아 결국은 움직여야 하는구나"를 깨닫고, 나 또한 내 몸에 대한 생각이 변해왔으니까.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진 않아도 우리끼리는 아니까 그거면 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열린 큐잉>

나는 선뜻 먼저 "옆구리 쓰여요? 등 쓰여요?"라고 묻기보단 어디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지를 묻는다.

내가 너무 열린 결말들의 큐잉들을 하기 때문에 "어디에 들어가는데 이게 잘못된 건가요?"와 같은 불안감 섞인 질문이 오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통증이 없다는 가정하에 그냥 몇 세트 더 시켜본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내 판단에 지속적으로 확실한 부정적 반응이라 생각되면 그때 조금씩 다른 방법들을 제시한다.

장애를 가진 회원님들이라서가 아니라 운동을 많이 안 해본 사람들은 "등 쓰이죠? 배 쓰이죠?"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그게 맞는 거구나 하고 들어가지도 않은 힘에 "네"라고 대답을 하거나, 사실은 올바른 반응인데도 지도자가 말한 부위가 아니기 때문에 부정적 반응이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적·외적 큐잉도 마찬가지다. "등이 더 쓰이게 해 봐요!" 보다는 당기는 거에 집중했을 때 등이 더 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주동근 활성도를 높이기 위해 그냥 버티라고 하거나 어느 지점을 더 찍어보라고 제시한다. 최대한 큐잉은 단순하게 수행자가 경험해 본 상황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큐잉들의 공통점은 내가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회원 스스로 답을 찾도록 최대한 유도한다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이 주제는 항상 어렵다. 다른 장애인 운동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큐잉은 회원이 자기 몸을 믿게 만드는 언어다. 그 신뢰가 쌓이면 몸이 달라진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움직임이 바뀌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과학적 증거가 없어도 현장에서 매일 증명된다. 큐잉의 힘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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