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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원 Mar 26. 2018

상류층 서비스를 평준화하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다 함께 무난하게 잘 사는 것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 고성장 시대에 빨리 돈 벌어 더 잘 사는 것에 온 국민이 집중했다면, 저성장 시대를 맞아 덜 쓰고 적당히 잘 사는 것에 대한 니즈가 커졌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은 자유 중심에서 평등 중심으로 무게추를 옮기는 중이다. 그 균형점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기술이다. 기술은 누구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평등을 향하는 길을 열어 준다.



10만 원만 맡겨도 자산 관리해 드립니다


서민이 부자 되고 싶은 욕망보다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 부자들은 돈의 맛과 돈의 힘을 잘 알기에 돈 관리도 철저하게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자들에게는 늘 자신을 더 부자로 만들어줄 자산 관리인들이 있었다. 일대일로 고객 자산을 고객 성향에 맞게 맞춤 관리해 주기 위해서는 유능한 전문가의 지식, 경험, 시간이 많이 투자된다. 그래서 수십억대 자산가들에게 높은 수수료를 받으며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봇이 자산 관리해주는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서면서 자산 관리 시장도 평준화될 조짐이 보인다. 미국 최대 로보 어드바이저(Robo Advisory) 기업 베터먼트(Betterment)는 30여 명의 직원이 10만여 고객의 자산을 관리한다. 서비스받기 위한 최소 투자 금액 기준이 없고, 투자 자산의 0.15~0.35%를 수수료로 받는다. 미국 일반적인 자산 관리 수수료가 0.7~1.0%인 것에 비해 월등히 낮다.


나이, 소득, 투자 성향에 맞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미국 베터먼트


로보 어드바이저란 로봇과 자산 관리 전문가의 합성어이다.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으로 고객 투자 성향, 목표 수익률, 자금 성격, 현재 시장 상황을 분석해 최적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관리해 준다. 각종 빅데이터로 사람보다 신속하게 포트폴리오를 모니터링 하고, 상황 변화에 따라 자산 배분 비율을 주기적으로 바꾼다. 펀드 매니저들은 기업 대차대조표를 일일이 살펴보며 어떤 종목에 투자할지 검토하지만, 인공지능은 CCTV로 매장 앞 유동 인구를 분석해 주식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Goldman Sachs)가 투자한 AI 투자 전문회사 켄쇼(Kensho)가 만든 AI ‘워런(Warren)’은 애널리스트 15명이 4주 동안 해야 하는 분석 업무를 5분 만에 처리한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효율성 덕분에 서민들도 저렴한 비용으로 자산 관리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국내에서도 로보 어드바이리 서비스가 시작됐다. 2016년 11월에 은행권 최초로 신한은행이 엠폴리오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어 우리은행의 우리 로보-알파, KEB 하나은행의 하이 로보, KB 국민은행의 케이봇 쌤 등 4대 은행이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두 10만 원부터 투자 가능하고, 10만원을 쪼개 여러 펀드에 가입할 수 있다. 자산 규모가 적고 모바일 투자가 익숙한 20~30대 중심으로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 하나은행의 하이 로보는 8개월 만에 3만7000명의 가입자를 모았고, 가입 상품 금액은 4700억 원을 넘었다. 신한은행 로보 어드바이저 가입자 중 44%가 금융자산이 1000만 원 이하 고객들이다.



서민 고객에게도 자상한 변호사


돈 없는 사람도 법의 보호를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인공지능이 진화하고 있다.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가 결합해 만들어진 리걸 테크(Legal Tech)가 바로 그것. 아직은 문서 작성을 간편히 하는 정도이지만 다방면으로 빠르게 진화 중이다.


2001년 출범한 미국 최대 온라인 법률 자문사 리걸줌(Legal Zoom)은 리걸 테크의 선구자로 중소기업 및 개인 업무를 주력으로 한다. 변호사 비용을 낮추려면 변호사가 쓰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리걸줌은 인공지능으로 복잡한 법률 서식 작성을 의뢰인이 직접 할 수 있도록 했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만나 관련 질문을 던지고 문서를 작성하던 과정을 자동화한 것이다. 변호사 대신에 인공지능이 질문을 던지고, 의뢰인이 답을 작성하면 그 답에 맞게 또 다른 질문을 던져 서식을 완성할 수 있게 한다. 작성된 서식을 바탕으로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받기 때문에 비용이 절감된다. 리걸줌은 2016년 유료 누적 이용자 수가 400만 명에 달하는 미국 중소기업 분야 최대 법률 자문 회사로 성장했다.


리걸줌에서 제공하는 저렴한 유언장 작성 서비스


리걸줌 네트워크에 가입한 변호사들은 상담 후 고객에게 평가받는다. 고객 리뷰가 쌓일수록, 변호사가 필요한 고객들은 어떤 변호사가 자신에게 최적의 변호사인지 판단할 기준이 생긴다. 또 변호사 역시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자연히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리걸줌은 변호사가 갑이던 세상을 서민 고객도 갑인 세상으로 바꾼다.



지식 민주화를 이끄는 온라인 대학


4차 산업으로 인공지능, 블록체인, 로봇 등 신기술이 전 산업에 흡수되면서 관련 일자리가 쏟아지는데, 당장에 역량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 그 때문에 기업들은 어디에서 교육받았느냐 보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실질적인 역량 중심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기술에 대한 이해와 활용 역량이 있으면 당장에 고액 연봉으로 취업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라 전문가 찾기도 어려운데,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인공지능으로 내 일자리가 위협받게 된 직장인들은 어디서 배워 이직 준비를 해야 할까? 그 대안으로 무료 전문 지식을 배우고 저렴하게 인증서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했다. 2010년에 시작된 온라인 대중 공개 강의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가 그것. 코세라(Coursera), 유다시티(Udacity), 에덱스(edx) 등 무크 플랫폼에서는 하버드, MIT, 스탠퍼드 등 미국 명문 대학 강의를 온라인으로 무료 수강할 수 있다. 2012년에 뉴욕타임스는 무크가 고등교육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라며 그해를 ‘무크의 해’로 정했다.


코세라에서 강의를 제공하는 대학 중 일부


무크의 대표주자인 코세라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앤드류 응(Andrew NG) 교수와 다프네 콜러(Daphne Koller) 교수가 2012년에 열었다. 코세라의 목표는 최고 대학에서 최고 교수들이 하는 최고 강의를 모아 전 세계 사람들이 무료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 세계 149개 대학에서 2000개 이상 강의를 제공하며 2500만여 명이 배운다. 아프리카, 인도에 사는 학생들도 존스홉킨스대학의 데이터 과학 전문가 강의를 듣고 취업에 성공한다. 미국에서도 돈은 교육 기회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이다. 1985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대학 등록금은 무려 559%나 올랐고, 이 때문에 원하는 전문 교육을 받지 못했던 사람도 코세라에서 무료로 교육받고 취업할 수 있다.


20~30대는 앞으로 평균 13번 직장을 옮길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직업으로 무난히 안착하려면 재교육이 필수이지만, 취업난이 극심한 요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것을 배워 도전하기에는 기회비용과 리스크가 크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연마해야 하는 요즘, 최고 대학에서 최고 교수들이 하는 최고 강의를 모아 무료로 제공하는 무크 플랫폼은 교육 기회 평등, 일자리 기회 평등을 실현해 준다. 좁은 한국에서 스카이 대학 가려고 아웅다웅하던 세상에서, 하버드, MIT, 스탠퍼드대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전 세계 학생들과 스터디 하는 세상이 이미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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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들의 비즈니스 코치'이자 기업 교육을 설계하는 '혁신 전문가'

한양대학교 경영교육원(FIT) 센터장

윤정원 joan0823@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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