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제품은 가능하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와우’하며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들 상품을 개발할 수 있을까? 김춘수는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인기가 시들해진 상품도 우리가 제대로 매만지면 사랑받는 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 문자/전화용으로만 사용하던 핸드폰이 스티브 잡스를 만나 아이폰으로 재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상품을 혁신해야 할지 막막할 때 생각의 길을 활짝 열어주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고객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라
소비자 지갑을 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타민’이 아니라 ‘진통제’를 파는 것이라 했다. 비타민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지만, 두통 치통 생리통으로 고통 받을 때 진통제를 안 먹을 도리가 없다. 소비자가 지금 무엇에 고통받고 있는지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것이 혁신 상품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혼자 사는 샐러리맨, 바쁜 맞벌이 부부는 무엇에 고통받을까? 수없이 많겠지만 그중 하나는 와이셔츠다. OECD 국가 중에 가장 긴 시간을 일하는 한국 직장인은 와이셔츠를 빨고 다릴 시간과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하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에 세탁소를 오갈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다림질 안 한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자니 사회생활에 체면이 서지 않는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위클리셔츠(http://wsclub.io)는 깔끔하게 다림질한 셔츠를 배달해 준다. 매주 한 번 지정한 날에 한 주 동안 입을 셔츠를 문 앞에 걸어 주고, 문 앞에 걸어 둔 지난주 셔츠는 수거해 간다. 결제 한 번이면 내 스타일과 사이즈에 맞는 셔츠가 정기적으로 배달되니 직장인은 셔츠 걱정 하나만큼은 시원하게 덜었다. 2016년 10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위클리셔츠는 사업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2017년 4월에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에게 5천만원을 투자 받고, 이어 8월에 케이큐브벤처스 등 벤처캐피털에서 5억원을 투자 받았다.
일본 보험회사는 고객의 고통을 철저하게 조사해 보험 상품을 개발한다. 일본은 노령화로 인해 어려움이 많다. 간병비가 부담돼 부모님 간병을 위해 퇴사하는 ‘간병 퇴사’ 인구가 연간 10만명이다. 핵심 인력인 40-50대의 잦은 퇴사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자, 일본 보험회사 미쓰이스미토모 해상화재보험과 아이오이닛세이도와 손해보험은 2017년 10월부터 기업 단체 특약 상품으로 ‘부모님 간병 보험’을 내놨다. 부모님 간병이 필요할 때 보험사가 500만엔(약 4900만원) 한도에서 간병비를 일시 지급해 퇴사를 방지한다.
통념을 깨라
한 제품이 소비자 일상에 뿌리내리면 고정관념도 같이 자리 잡는다. 그 고정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좋은 혁신 방법이다. 와인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고급 잔에 담아 마셔야 하는 것일까? 영국에서는 플라스틱에 담은 인스턴트 와인이 야구장에서 인기다. 맛집은 왜 배달을 안 해줄까? 푸드플라이(http://www.foodfly.co.kr)는 맛집 음식을 퀵서비스로 배달해 주는데 2012년 서비스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가입자 30만 명을 돌파했다.
벤처캐피털에 다니던 마이클 프레이스먼은 50달러에 파는 티셔츠 원가가 7.5달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소비자에게 원가를 공개하지 않는 패션업계 관행을 철저히 깨부수고, 원가를 100% 공개하는 의류회사 에버레인(https://www.everlane.com)을 창업했다. 에버레인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모든 옷의 원가를 볼 수 있다. 제품이 생산되는 공장은 어디이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도 알려 준다. 에버레인이 실천한 투명 경영은 고객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다. 2010년 창업 이후, 매출이 2012년 1200만 달러에서 2016년 1억 달러로 오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캐시미어 원가 = 재료 $26.65 + 장비 $1.60 + 인건비 #12.00 + 관세 $1.61% + 운송 $0.60 = $42
에버레인 판매가 = $100 (2~3배 가격 책정)
타업체 판매가 = $210 (5~6배 가격 책정)
메가 트렌드에 올라 타라
성공은 확률 싸움이다. 메가 트렌드를 거스르고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메가 트렌드를 올라타면 성공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1인 가구, 반려인 인구가 급속하게 늘면서 간편식 시장과 반려동물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다. 간편식 시장은 2015년 1조6,720억원에서 2016년 2조2,542억원으로 1년 사이 34.8% 성장했다. 반려 동물 시장 역시 2015년 1.8조에서 2016년 2.3조원으로 1년 사이 27.8% 성장했다. 어떻게 하면 내 제품과 서비스를 1인 가구에 맞게, 반려인의 요구에 맞게 혁신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예컨대 펫보험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펫보험 가입률이 영국은 20%, 미국은 10%인데 반해 한국은 0.2% 밖에 되지 않는다. 반려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펫보험 상품이 출시된다면 반려 인구 증가 트렌드를 타고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기술은 거대 메가 트렌드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로봇 등은 조만간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올 것이다. 2016년 한해 동안 구글 사내벤처로 시작한 나이안틱랩스가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기술을 이용해 출시한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에 전세계인이 열광했다. 현실 세계를 다니며 스마트폰으로 가상의 포켓몬을 잡는 게임은 실제 만화 주인공처럼 탐험하며 포켓몬을 잡는 경험을 선물했다. 포켓몬고 어플리케이션은 150개 국가에서 다운로드 돼 출시 후 1년 동안 12억 달러(약 1조 3,500억원)의 수익을 냈다. 앞으로 현실과 디지털을 접목한 증강현실은 우리 생활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우리 회사 제품에 증강현실,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기술을 붙여 보자. 당장은 낯설지만 고객이 열광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내꺼 아닌 내꺼 같은 것들과 융합하라
좋은 파트너를 만나면 성장하는 것처럼 상품도 마찬가지다. 나와는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내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상품들이 결합해 대성공한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문화권 출신으로 식탁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밥과 버거가 만나 탄생한 밥버거, 잘 어울리는 친구였던 연필과 지우개가 합쳐 만들어진 지우개 달린 연필처럼 말이다.
1906년에 시작한 럭셔리 만년필의 대명사 몽블랑은 자칫 잘못하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쇠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몽블랑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각각의 매력을 융합하는 고단수의 혁신을 시작했다. 2016년 종이에 기록하면 디지털 기기로 내용이 그대로 전송되는 필기구 세트 ‘어그멘티드 페이퍼(Augmented Paper)’를 선보였다. 이 혁신 제품으로 몽블랑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를 이으며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명품 기업임을 입증했다. 2014년 한국에 직진출한 몽블랑코리아는 높은 브랜드 가치에 힘입어 3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품은 가능하다
안주하는 순간 혁신 기회는 사라진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을 때, 더 나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댈 때 혁신이 시작된다. 시작이 막막하다면 고객의 고통에 같이 아파해 보라. 제품을 둘러싸고 형성된 통념을 깨보라. 메가 트렌드와 접목해 보라. 나와 이질적인 것들과 융합해 보라. ‘아하’ 하고 무릎 치는 혁신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이다.
『끌리는 것들의 비밀』 책 출간 안내
'CEO들의 비즈니스 코치'이자 기업 교육을 설계하는 '혁신 전문가'
윤정원 joan0823@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