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운동쟁이가 바로 잡아주는 상식을 다시 쓴다 2탄
숙변이 쌓이면 독소가 발생한다'
'우리는 가공식품으로 독소를 섭취한다'
'자연식품을 통해 독소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말, 어딘가에서 보신 적 있지 않나요? 어느 정도 건강에 관심을 갖고 사는 분들이라면 '독소'가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대체 그 독소가 어떤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쁘다니까 해결해야만 할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독소라는 놈, 과연 정체가 뭘까요?
우리 말로 하면 전부 독(毒)이지만, 영어에서는 독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뱀이나 벌처럼 피부를 뚫고 직접 주입하는 독은 베놈(venom, 동물독), 복어의 테트로도톡신이나 곰팡이의 보툴리눔 톡신 같은 건 톡신(toxin, 생물독)이라고 하며, 이외에 신체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는 물질 전반을 포이즌(poison, 독성물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한자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그 차이가 희석된 측면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강산업에서 말하는 독소의 해결은 해독(detox)이라고 합니다. 바꿔 말해 생물독인 톡신을 제거한다는 말이죠. 엄밀히 말해 자연과학에서의 해독(detoxification)의 개념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독극물이나 심한 의존성을 보이는 알콜 등의 물질에 중독된 사람을 체내의 화학반응을 비롯한 복합작용을 통하여 무독화(無毒化)하는 과정입니다. 목적과 대상이 명확했던 이 단어는 다이어트 산업을 만나면서 엉뚱하게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쇼닥터, 그리고 디톡스 주스
뭔가 ‘좋지 못한’ 것들이 몸 안에 쌓이면서 건강을 해친다는 믿음 자체는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관측 장비의 발달에 힘입어 좀 더 미시적인 것들을 보고, 몸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밝혀내게 된 역사는 인류 전체에서 보면 길지 않습니다. 가령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쁜 피'를 뽑아내어 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한 믿음은 오래 지속되어 왔고, 서양에서는 르네상스 이후에 하비의 순환계 발견으로 그 믿음이 사라졌지만, 동아시아권에서는 아직까지도 그 믿음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병의 원인과 면역의 기전이 밝혀져 있고, 고등학교까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아 온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믿지는 않습니다. 적혈구증가증이나 체내에 철분이 과다하게 축적되는 혈색소침착증처럼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더는 사용하지도 않고, 사용해서도 안 되는 방법입니다.
마찬가지로 '해독'이라는 개념은 좀 더 대상과 상황을 가려 명확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음에도, 마치 의학과 관련이 있는듯 쇼닥터들을 앞세운 마케팅을 펼쳐 마치 의학인 것처럼 위장한 채 사람들에게 침투하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TV나 광고에 흰 가운을 입은 그럴듯한 외모의 의사가 해독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강조하고 있으니 믿게 되는 겁니다. 그 이론에 실제 어떤 근거가 있는지는 뒤로 하고 말입니다.
끝도 없이 갱신되고 있는 '슈퍼푸드'들 중 일부
이런 경우에 비하면 몸에 좋다는 채소나 슈퍼 푸드를 앞세운 믿음들은 차라리 건전한 편에 속합니다. 근래 들어 가장 핫한 디톡스 식품은 과일 스무디의 형태를 띠고 판매되는 모 스무디 입니다. 유명 아나운서와 셰프를 전면에 내새워 광고를 하며,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그렇다 치고 이런 상품에 셰프가 왜 나와야 하는지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일단 넘어갑시다.
이런 클렌즈, 혹은 디톡스 제품들은 현대인의 몸이 오염된 상태라는 가정을 전제로 깔고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 넘쳐나는 패스트 푸드 탓에 건강한 식생활을 잃은 지 오래며, 좋지 못한 독소들이 몸에 누적되어 배출되지 않아 몸의 총체적인 건강을 흐트러트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톡스를 해 줘야 하며, 몸 안에 있는 독소들을 제거하고 덤으로 체중 감소 효과까지 얻자고 하고 있죠. 자, 우리 함께 몸을 정화해 봅시다!
듣기엔 매우 그럴듯합니다. 말만 들어도 내 몸에 쌓여 있는 독소를 당장이라도 제거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그 독소란 뭘 말하는 걸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디톡스 제품 판매자들은 오히려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대두되기 시작한 중금속(수은, 카드뮴 등), 식품 첨가물, 글루텐, 최근 들어서는 GMO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념들을 펼쳐 놓는 것은 판매 당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구매자들입니다. 판매자들은 실체조차 모호한 ‘독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고 사람들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지만, 그 독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판만 대강 깔아 놓으면 그 빈 칸은 구매자들이나 소매상들이 알아서 채워 넣으니 그럴 필요가 없겠죠.
종편채널의 건강 관련 프로그램들은 이런 미신을 조장하는 주범입니다.
만약 자신의 제품이 몸 속에 축적되어 있는 수은, 납, 카드뮴을 흡착하여 배출시켜준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판매자가 있다면,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매우 혹독한 증명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특정 성분이나 질환이 실제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의약품으로서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배경, 동물실험, 1~3차에 걸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고, 그마저도 실제 현장에서 효과가 없으면 철회되곤 합니다. 하지만 증명을 할 수 있을리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 독소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아무 효과가 없기 때문에 의약품이 아니라 음식으로서 판매할 수 있는 것이죠.
현대의 약학과 과학은 자연 상태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수많은 성분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해 왔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며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던 많은 약초들은 과학을 만나며 실험실에서 더욱 더 높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분리, 정제되었습니다. 우리 몸을 오염시키며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독소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출처와 작용 기전도 불분명한 디톡스 주스 따위가 아니라 의학의 영역에서 제거 방법이 연구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매우 애석하게도, 현대 의학은 그 독소가 무엇인지조차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없던 것을 무슨 수로 찾아내겠습니까.
일주일, 혹은 2주일 동안 디톡스 제품만을 섭취하는 다이어트를 하면 건강한 감량이 된다는 주장 역시도 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체중이 줄어든 것은 독소가 제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몸을 기아 상태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디톡스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좀 더 깊게 다가가 보겠습니다. 이들은 간, 그리고 신장이 독소를 거르는 필터의 역할을 하며, 이 필터를 오랫동안 리프레싱 해 주지 않고 사용하면 해독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디톡스를 통해서 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독소의 개념에 그나마 가까운 것은 알코올이니, 알코올의 대사를 예로 들겠습니다.
간은 두 단계를 거쳐 알코올(에탄올)을 분해합니다. 에탄올이 몸에 들어오면 뇌는 알코올 탈수소효소 (ADH : Alcohol dehydrogenase)를 분비하도록 간에 명령하며, 에탄올은 이 효소에 의하여 분해되어 물과 탄산가스, 그리고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됩니다. 아세트알데히드는 강한 독성을 가진 물질로서, 이것을 다시 분해하기 위해 아세트알데히드 탈분해효소(ALDH : ALdehyde DeHydrogenase)를 분비합니다. 이 두 단계를 거친 알코올은 최종적으로 아세트산이 되는데, 아세트산은 에너지원으로 이용되어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되거나, 지방산이 되어 지방 합성에 쓰이게 됩니다. 아세트 알데히드는 체내에 잔존할 경우 자율신경을 자극하여 얼굴을 붉어지게 하고,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들고 두통이나 구토감 등의 증상을 유발하죠. 그렇습니다. 숙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는 아세트 알데히드가 체내에 남지 못하도록 효소를 분비하여 최종적으로 모두 제거합니다.
디톡스를 통하여 ‘필터’를 깨끗하게 해 줘야 한다는 주장을 믿게 되는 것은, 단어를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발생한 오류라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간은 독성 물질을 걸러내지 않습니다. 그 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를 준비하여, 무해한 성분으로 분해할 뿐입니다. 플라시보 이상의 그 어떤 효과도 보이지 못하는, 대체의학조차 될 수 없는 유사과학에 그만 매달리고, 간과 신장을 디톡스 한답시고 뒤집어 엎어놓는 것도 이제는 그만 두고, 몸이 보내는 응급 신호들을 명현현상이랍시고 기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명현현상이란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디톡스 상품에 매달리는 것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잘못된 식습관 및 생활 패턴으로 인하여 생겨난 문제가 단지 조금 특이한 음식을 먹음으로서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건강은 그렇게 얻을 수 없습니다. 영양학적으로 균형 맞는 식단, 충분한 휴식, 수면, 술과 담배를 줄이는 것이 기본이죠. 애초에 기본 전제부터가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는데, 가끔 한 번씩 몸을 ‘정화하는’ 행위가 몸을 건강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건전하기 짝이 없는 발상입니다. 적당히,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되 과식하지 않는 것 이상의 해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곤한 건 간과 신장의 기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당신의 생활 습관 전반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기본을 교정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단순히 한 두 가지의 솔루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믿음은 이성과 합리가 아니라 맹목적 신앙에 가까운 것입니다. 신앙심은 그 어떤 논리조차도 단번에 뛰어넘어 진리로 도달하는 매개가 됩니다. 그런 식으로, 논리를 생략하고 도달한 진리가 과연 참인지는 제쳐두고서 말이죠.
이런 디톡스 제품이 '가공'이나 '공학'에 독소가 있고 '자연'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근본부터 잘못된 명제입니다. 애초에 자연은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1,2차 세계대전과 대학살을 거치며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독도 LD50(반수치사량, 투여시 실험군의 절반이 죽는 투여량)으로 따지면 보툴리눔 톡신(보톡스)과 테트로도톡신(복어 독)보다 훨씬 약한 수준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즐기는 카페인과 캡사이신도 독의 일종입니다. 생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독을 만들어 내고, 인류 문명의 역사는 그러한 자연의 무서운 독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투쟁의 역사나 다름없습니다. 이것을 연구해온 학문이 식품공학입니다.
물론 과학이 만능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보건의료계 종사자나 생물학 전공자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을 탈리도마이드 얘기가 그렇고, 최근에 전국민의 공분을 산 가습기 살균제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나요?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수많은 기형아 출산을 야기한 탈리도마이드가 미국에서 크게 문제 되지 않았던 건 매뉴얼을 사수한 프란시스 켈시 여사의 공이었고, 가습기 살균제 또한 에어로졸(aerosol) 형태로 분사했을 때의 문제를 무시하고 승인을 해 준 공무원의 비전문적 태도가 빚어낸 참사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먹고 있는 가공식품은, 비록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어떤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고 쳐도, 매뉴얼을 지켜서 생산되는 한 자연상태의 음식보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뛰어납니다. 보존제, 방부제 들어 있지 않느냐고요? 건강에 문제 되는 것은 정부에서 허가해주지 않습니다. 한국은 생각보다 식품/의약품에 대한 규제가 강력한 나라입니다. 소비자들이 정말 민감하기도 하지만, 전문가의 전문성보다는 대충 규제를 때려박으면 된다는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 덕분에 규제천국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불안감이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불확실한 안전성이 확실한 위험성과 동의어는 아닙니다. 애초에 완전한 안전성이라는 건 세상에 있을 수도 없는, 플라톤의 이데아 같은 개념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위험-이익(risk-benefit)이 존재합니다. 의학에서는 이것을 고려하여 약품을 처방합니다. 가령 페니실린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나필락시스의 위험성이 있으니 페니실린을 투여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특정 질환에 페니실린을 투여하는 것처럼요. 우리가 먹는 식품에도 마찬가지로 위험과 이득이 섞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공식품의 안전성은 애써 무시하고 위험성과 독성만 강조하며 '안전한' 디톡스 제품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장사꾼들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겁니다.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에 돈을 쓰는 것 까지는 자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면,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체 얼마나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어야, 디톡스라는 것이 허망하기 짝이 없는 농담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셈입니까.
-생각하는 운동쟁이, 피톨로지 블로그 칼럼 中
http://www.fitolog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