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0. 10. 10)
며칠 전 아주 신기한 자각몽을 경험해서 기록 겸 글을 적어둔다. 자각몽이란 쉽게 말해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인 줄 아는 것이다. 내 경우는 몇 번 경험을 해보았다. 운이 좋으면 꿈이라고 인지하는 것을 너머 의지대로 조종할 수도 있는데, 하늘을 나는 꿈이 바로 이런 꿈의 대표적인 예다. 내가 원할 때에 날 수 있고 방향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면 된다. 꿈 안에서는 내가 바로 신이다. 그래서 자각몽을 능숙하게 꾸기 위해 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극강의 리얼리티로 현실과 헷갈리는 꿈이 있는데 이건 말로만 들어보다가 딱 한 번 꾼 적이 있다. 잠든 기억이 있긴 한데 모든 것이 현실과 다를 바 없어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런 자각몽에서는 무엇을 하기 전에 일단 신중해야 한다. 꿈인 줄 알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알고 보니 현실이었다면? 자각몽을 전문으로 다루는 유튜브에서는 이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자기만의 표식을 만들어서 현실과 꿈을 구분한다고 했다. 그중 가장 간단한 방법이 손을 뒤로 젖혀서 손가락이 팔에 닿는지 확인해 보는 것인데 이 말이 퍼뜩 생각나서 따라 해 보니 정말로 손가락이 팔에 닿았다. 마치 고무로 된 재질처럼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내가 사실 생각보다 유연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았다. 하지만 이런 꿈들이 아무리 생생했어도 깨고 나면 꿈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꾼 꿈은 달랐다. 아니, 꿈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이것은 꿈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창 꿈을 꾸다가 깨 본 적이 있다면 현실로 넘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느낌,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오는 그 느낌을 안다면 내가 겪은 경험을 이해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었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올 때 느껴지는 그 느낌이 있었다. 의식이 현실로 확 돌아오는 그 느낌 말이다. 그런데 꿈에서 깬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낯선 건물의 계단에 서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침대 위에서 잠에 들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서 몸을 내려다보니 짙은 파란색에 단추가 달린 교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왼손을 펼쳐 쳐다보았고 오른손으로는 옆에 있는 벽을 짚어보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꿈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상황판단이 잘 되진 않았지만 원래 나라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이 세계에 영영 갇히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드는 순간 현실로 돌아왔고 이번에는 정말로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꿈에서 깼다고 하기에는 그것은 너무도 현실이었다. 지금 내가 책상에 앉아서 타이핑을 하는 것과 같이 나는 그 공간에 존재했다. 계단으로 들어오던 빛, 벽을 짚을 때 느껴지던 차가운 느낌. 글을 쓰는 지금도 잠시 왼손을 들어 쳐다본다. 완벽히 같다. 그곳에 아주 긴 시간 머문 것은 아니었다. 5초 남짓 되었을까? 자세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현실로 돌아왔는데 꿈에서 깼다는 느낌보다는 차원을 이동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 후로 많은 생각이 든다.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육신이 바뀌었어도 나를 나일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일까? 그 계단에 서서 잠시 나로 빙의되었던 존재는 과연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