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0. 04. 28. 이 전에 적어둔 글을 옮기는 중입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벌써 5월이다. 3월 말 서머타임이 도입되고 나서부터는 해가 많이 길어졌고 날씨도 많이 풀렸다. 작년 5월 중순에 이곳에 도착했으니 벌써 1년이란 시간이 흐른 셈이다. 해외에서 취직이 되면 혹시 나와 같은 목표를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포스팅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다 이제야 글을 적어본다.
4월 28일 오늘, 5월 5일까지였던 lockdown이 2주 미뤄졌다고 발표가 났다. 집에서 반경 2km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급한 용무가 있다거나 일 때문에 필수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허용해주고 있다. 버스 등 교통편은 정상적으로 운행을 하고 있다. 마트, 약국, 세탁소등은 정상적인 영업을 해왔고 레스토랑은 테이크아웃이나 배달만 가능하다. 초반에 잠깐 발생했던 사재기 현상은 이제 거의 볼 수 없고 가장 걱정했던 인종차별도 겪지 않았다. 다만 Dunnes Store(던스 스토어)는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타이밍을 잘 맞춰서 가지 않으면 거의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 Spar(스파) 같은 편의점, 혹은 Lidl(리들)이나 Aldi(알디)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이라 20분 이상 기다려 본 적이 없다. 줄이 많이 길면 장보기를 포기하고 다음날 오전 일찍 가면 되니 큰 걱정은 없다. 마트가 문을 여는 오전 9시쯤에는 주말에도 사람이 없는 편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을 것이다.
우리 회사는 3월 16일부터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코로나 판데믹이 짧은 시일 내에 끝나지 않을게 확실해지자 회사의 매니저가 직접 직원들의 모니터와 키보드 같은 사무기기를 집으로 배달해 주었다. 내가 사는 작은 스튜디오에는 큰 모니터를 둘 만한 책상도 없어서 맥북만 사용하는데 이제 이 모니터 사이즈에도 적응이 돼서 불편하지는 않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우려가 있었지만 내가 느끼기엔 근무 환경을 전환하는 데에 전혀 부하가 걸리지 않았다. 회의도 많이 하고 팀원들과 의논도 많이 해야 하는 일이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을까 봐 걱정했지만 그것도 기우였다. 미팅은 Zoom(줌)을 통해 하고 있으며 의외로 사무실에서 미팅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장점이 있다면 화상채팅의 오디오를 겹치지 않기 위해 서로 더욱 배려하면서 말을 하게 되면서 영어가 부족한 나는 오히려 대화 흐름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Slack(슬랙)으로 소통하거나 Zoom미팅을 할 수 있고, 스크린공유 같은 기능을 통해 화면을 공유해서 볼 수도 있어서 미팅 효율도 좋아졌다. 또한 재택근무로 출퇴근 시간이 없어져서 하루 시간을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고용주 입장에서든 근로자 입장에서든 재택근무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시간 운용일 것이다. 하지만 재택근무라고 해서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사무실 근무때와 변함없이 미팅스케줄이 잡혀있고, 때문에 이 시간을 제외하면 실 근무시간은 업무량에 대비해서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 와서 많이 들은 얘기가 유럽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드론도 날리고, 농땡이치고 그런다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 어쨌거나 모두가 어려운 이런 시기에 집에서라도 하던 일을 변함없이 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행운이다. 사무실 근무 때는 일이란 그저 매일 해치워야 하는 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재택근무를 하고 보니 매일 따르는 규칙적인 근무 환경이 실제로는 나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더블린팀이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미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회사의 전 지부가 모두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회사적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 중 한 명이 자발적으로 Mindfulness 세션을 열고 사람들을 초대했다. 한국에서는 '마음 챙김'이 조금 낯선 단어였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고 또 실제로 이와 관련된 오프라인 세션도 많다. 그러니 아마 Lockdown이 시작되고 코로나에 대한 우려감과 공포감이 번지자마자 Mindfulness 세션이 시작된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의 근무환경을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과연 한국의 회사 중 코로나 판데믹이 시작되고 '마음 챙김'의 주제로 정기적인 세션을 가진 곳이 얼마나 될까?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가지는 매니저와의 1:1 미팅 시간도 '마음 챙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일하는 건 어떤지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무 주제로 대화를 한다. 회사나 팀에 불만사항이 있으면 건의를 할 수도 있다. 최근에 가진 1:1 미팅에서 이런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멘탈관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 사실은 이 질문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워서 지금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질문이 너무 낯설어서 적절한 대답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질문은 정신병원에서나 들을 법한 질문이 아니던가.
한국은 아직 마음이나 정신적인 부분에서 몹시 가혹한 곳인 것 같다. 며칠 전 아일랜드에 있는 한국인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에 누군가가 코로나 상황의 불안감을 토로하던 상황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의 문장이 중구난방이라 상태가 염려되는 메시지였는데, 그에게 돌아간 답변은 ‘너만 힘든 게 아니다. 모두가 모여있는 공간에 자꾸 불안감 조성하며 남들 기운 빠지게 힘든 소리 하지 마라’는 내용이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위로는 여유에서 나온다. 상대방의 안부를 물어볼 수 있는 능력은 본인의 안부가 안녕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힘들다고 말하는 것조차 남을 힘들게 만드는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막상 ‘괜찮냐’는 물음이 왔을 때 나의 힘듦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부끄럽게도 나 또한 스스로 여유가 없다 보니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네가 지금 괜찮은 상태인지, 나에게는 무척 깊고도 사적으로 느껴지는 이 질문을 여기 와서는 공적인 자리에서 꽤 자주 듣고 있다. 회사의 매니저나 컨설턴트 혹은 가까운 동료로부터. 아무래도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 ‘아니 괜찮지 않다’고 솔직하게 대답해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또 아직은 영어가 부족해서 이런 질문이 얼마만큼의 깊이로 다가오는지 잘 느껴지진 않는다. 어쨌거나 이런 질문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된다. 회사가 주기적으로 나의 안부를 묻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정말로 괜찮기 때문에 늘 괜찮다고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