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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오시 Dec 16. 2023

CSEP 비자가 1년 남았다

아일랜드에서 개발자로 일하기

(작성일: 2020. 11. 01)



요즘 한국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리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거주 증명을 하는 IRP 카드의 유효기간이 이제 1년 남았다. 이 말은 2년짜리 CSEP(Critical Skills Employment Permit) 비자 중 절반을 무사히 살아냈다는 뜻이다. 연고도 없는 이곳에 훌쩍 와서 직장도 구하고, 코로나 판데믹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으니 참 기특하다.


이곳에 살면서 수많은 나라 중 왜 아일랜드로 왔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나로서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라를 가리지 않고 그저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발 미세먼지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아직도 여전한 것 같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깨끗한 자연환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몸소 체감하고 있다. 자연환경뿐 아니라 근무환경 또한 좋아서 한국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해왔는지 깨닫는 순간이 많다. 미래를 생각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나이가 드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이가 드는 것을 생각하면 훨씬 마음이 평화롭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비자에 발이 묶이고 싶지 않아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쉬울 것 없이 언제든 한국에 돌아갈 것이라 생각을 해왔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막막하다.


눈을 감아봐 뭐가 보여?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그게 네 미래다


아일랜드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이다. 열 필요도 없는 큰 창문에 블라인드만 젖히면 중국발 미세먼지 걱정 없는 푸른 하늘을 언제나 볼 수 있다. 한국보다 치안이 좋다고 할 순 없지만 반대로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사는 지역마다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벌레도 본 적이 없다. 현재 사는 곳에 거미, 좀벌레, 벼룩이 나오긴 하지만 한국의 저렴한 월세/전세방에서 바퀴벌레, 돈벌레, 곱등이를 클리어한 내게 이 녀석들은 귀여워 보이는 수준이다. 그러고 보니 여름에 모기도 없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서 태어나자마자 어디론가 다 날려가 버리는 건 아닐까.


현재 사는 스튜디오는 낡고 좁은 대신 위치가 정말 좋다. 직장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고, 자전거로 20분을 달리면 바다(Dublin Bay)도 볼 수 있고 유럽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는 피닉스 파크(Phoenix Park)도 갈 수 있다. 날씨가 좋을 땐 정말이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태평스레 잔디에 누워 책을 읽거나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재잘대는 걸 보면 있으면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이런 풍경을 그저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이 부러워서 그들 역시도 풍경인 것 마냥 한참을 쳐다본다. 이런 날엔 구름 뒤에 천사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이곳 라스마인(Rathmines)은 마트, 도서관, 쇼핑몰, 영화관, 세탁소, 수영장이 있는 헬스장, 우체국, 유치원, 초중고등학교와 심지어 대학교가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어 살기에 참 좋다. 그리고 공원이 참 많다. 조그만 놀이터 같은 게 아니라 잘 정비된 예쁘고 넓고 언제나 적당한 정도의 사람만 있는 한적한 그런 공원. 지금 당장 생각해 봐도 걸어서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공원이 다섯 개나 된다. 그리고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공원이 더 있을 수도 있다. 공원뿐 아니라 더블린 남부를 관통하는 강이 있어서 산책과 조깅을 하기에도 아주 좋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백조, 여우, 학, 갈매기, 까마귀, 까치, 이름 모를 새 등등 동물들도 쉽게 볼 수 있다.


I ♥️ Rathmines.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맑은 공기, 안전한 주거공간, 편의시설, 산책하기 좋은 공원. 더 바랄게 뭐가 있을까. 내가 아일랜드에 태어나서 비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배달이나 택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아니, 애초에 아이리쉬였다면 비전을 가지고 전문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진 않았을까. 지금 일을 하고 있는 회사는 성차별도 인종차별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마음만 먹고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그에 따른 보상과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회사에서 노력을 하는 것이 보인다. 직원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꾸준히 소통하려고 한다. 처음엔 보여주기 정도의 허례허식적 절차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점에서 꽤 놀랐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당연한 모습인 것 같은데 한국에서 이런 문화를 가진 곳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있어도 꽁꽁 숨어있거나 경쟁률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회사에는 소위말하는 좋은 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들만 있는 폐쇄적인 회사일 것이다. 나는 서류에서 탈락하거나 면접에서 어쨌든 걸러졌을 것이다. 일단 일을 맡겨만 주신다면 제 몸 하나 불사르겠다는 그런 멋모르는 신입에서나 볼 수 있는 패기도 없을뿐더러, 이젠 경력과 실력이 있어서 연봉은 높지만 그렇다고 그에 걸맞은 야망은 찾아볼 수 없는. 관심 있는 다른 분야를 새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신입이 되기엔 나이에서 걸릴 것이다. 불행히도 이미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면접 후 탈락 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직업상으로는 장기적인 비전 없이 일을 해왔다. 언제든 잘리거나 그만둬도 아쉬울 것이 없도록 일찌감치 적은 일, 적은 스트레스, 적은 돈이 모토인 나는 직장에 야망 따위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데에는 욕심이 별로 없는 타고난 성격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한국의 사회 구조와 분위기가 미치는 영향도 컸다.


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가 되어도 내 한 몸 건사하며 살려면 어떤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청소부나 편의점, 빵집 같은 아르바이트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몸이 건강하다는 가정에서만. 이런 직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가능하다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싶다. 여러 업종을 경험하며 다양한 색깔로 내 삶을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정규직 또한 그러한데 비정규직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직업으로 사람 급 나누고 차별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싫다. 나만 정직하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란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나를 위한 미래는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살은 빠져선 안될 필수 옵션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이 비관으로 쉽게 빠지는 성격 탓이거나 인생이 원래 이런 것이라 여겨왔는데 아일랜드에서 1년간 일을 하면서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개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돈 있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자식들을 해외로 내보내는 이유를 이제야 진정으로 알 것 같다. 한국에서 형성된 생의 가치관이 쉽게 변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조금씩이라도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 이제는 꿈이 생기는 것조차 두렵다. 한국에서는 다시는 개발자로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살아왔던 대로 살아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어찌 되었든 먹고는 살아질 것이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버텨낼 자신이 없다. 그냥 지금처럼 맑은 공기, 안전한 주거공간, 산책하기 좋은 곳이 있는 적은 인구수의 깔끔한 동네에서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적은 액수여도 밀리지 않는 월급을 받으며 남는 시간에는 지금처럼 피아노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수학문제도 풀고 책도 읽으면서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나의 이 소소한 바람을 이루기엔 한국에서는 걸림돌이 너무도 많다.


작은 평화를 누리는 것조차 불가능 한 곳. 어딜 가든 몰래카메라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이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조차 모르고 살았다. 또 모국어가 한국어이기에 어쩔 수 없이 들리는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소음들. 본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없는 억압된 사회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발 미세먼지. 내가 보기엔 적어도 10년은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와 오염물질로 피해를 입을 것이며 통계상으로는 알 수 없을 사망률도 늘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구를 반대로 돌리는 것 말고는 개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창문을 열지 못한 어느 겨울 다짐한 것이다. 한국을 떠나는 수 밖에는 답이 없다고. 한국과 가까운 나라들도 선택지에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학생 신분으로도 합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비자를 주는 아일랜드로 오게 된 것이다.


2019.03.05 대한민국 실시간 대기 질 지수 지도.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내가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외국인 노동자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억울할 때가 있다. 나고 자란 국가를 떠나 외국 타지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자를 연장해서 계속 이곳에서 살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될 자신이 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지금 행복하기 때문에.


현재 발급받은 비자가 1년 남았으니 슬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판데믹이 시작되면서 불안은 더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돌아갈 곳도, 갈 수 있는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상황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행복한 날들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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