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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오시 Dec 17. 2023

너만 설레는 게 아냐

아... 더 헝클어지고 싶다


요즘 배우 이유하에게 빠져있다. 나이가 좀 들고선 좋아하는 배우나 가수가 생겨도 이내 시들해지곤 했는데 이번 관심은 생각보다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이 배우를 발견한 건 나만 설레는 건가요(Am I the only one with butterflies)라는 짧은 여성퀴어 웹드라마에서였다. 내용도 아주 간단하다. 갓 마케팅 팀에 입사한 신입 사원이 대리님에게 반한다. 대리님도 나를 잘 챙겨주시긴 하는데, 나만 그녀에게 설레는 걸까. 이런 내용이다. 현재 시즌 2까지밖에 공개되지 않았고 추후 제작 여부도 알려지지 않았다. 한 시즌의 총 러닝타임이 20–25분 정도인 이 짧은 웹드라마가 뭐라고 이다지도 푹 빠져버렸는지.




나는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들을 잘 따르고 좋아했다. 또래 친구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나보다 성숙한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이 감정은 내가 느낄 수 있는 최상의 감정이다. 이를 그저 사랑으로만 부른다면 정말 중요한 것이 빠진 것만 같다. 사랑보다 강렬한 이 감정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다가 경외심(敬畏心), 공경(恭敬)처럼 경(敬) 자가 들어간 단어를 발견하고 이거구나 싶었다. 종교는 없지만 아마도 신을 따르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 본다.


흔히 접할 수 있는 남녀 로맨스 드라마는 등장인물에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아서 즐겨보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 퀴어 웹드라마에는 신입 주인공에게 감응이 되었다. 그녀가 대리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눈빛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서. 그리고 대리님역을 맡은 배우가 그 대상을 정말 잘 살렸다. 예쁜 얼굴에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 캐스팅 누가 했는지 정말 백 번 칭찬한다. 정말 오랜만에 느낀 설렘에 거의 한 두 달을 달떠있다 이제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너무 속상한 게 사람들이 이래서 드라마를 보는 거구나, 이성애자들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새삼 부러웠다. 나는 이십 분짜리 유튜브 영상을 몇 번씩 돌려보는 것뿐인데. 아마도 이 콘텐츠가 종이책이었다면 이미 너덜너덜 해 졌을 것이다.


정아와 대리님(극 중 이름은 지원이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너무 좋아 몇 번이고 돌려 본다. 볼 때마다 설레는 건 정아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원은 어떤 마음으로 정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의 눈에 비친 정아는 어떤 모습일까? 자기보다 어리고 여러모로 미숙한 존재를 생각하는 그 마음은 분명 연민일 것이다. 단순한 귀여움일 것이다. 그 눈에 비친 정아는 자신의 몇 년 전 모습일 것이다. 정아의 그것 만큼 강렬하진 않을 것이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짐작을 해보려 하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니즈팀은 빨리 다음 시즌을 내야 한다. 아니, 내주세요...! 둘이서 맥주를 마시며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대리님은 정아에게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



그게 나도 궁금해요


이유하 배우를 더 많은 곳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눈이 정말 예쁜 배우다. 표정도 참 다양하다. 배역을 벗은 그녀는 실제로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좋아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로구나. 하지만 모든 정보를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어쩌면 이 충족되지 않는 호기심 덕분에 관심이 지속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 배우를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또 정말 그렇지 만은 않지만 진짜 그런 건 또 아닌 참 그런… 뭐 그렇다는 그런 것!



(작성일: 2020.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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