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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오시 Dec 15. 2023

아버지

밤 11시가 넘도록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빠가 내게 전화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마저도 갚지도 않을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뿐이었다. 그래서 집이 아닌 밖에서는 받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말이다. 그런데 울리는 핸드폰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이 시간에 전화를 한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일단 용건만 확인한 다음 금방 끊을 생각이었다.


“여보세요.”


평소보다 더 퉁명하게 들리기를 바라며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 너머에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ㅇㅇ씨 맞습니까? ㅁㅁ씨 하고는 어떤 관계되시나요?”


다급한 목소리로 본인을 구급대원이라고 소개를 한 사람에게 딸이라고 대답을 하자 아버님께서 현재 음주운전 사고로 의식이 없고 위독한 상태라고 했다. 다행히 고장 나지 않은 핸드폰에서 통화목록에 있던 내 이름을 보고 전화를 한 거였다. 그는 병원 위치를 알려주며 가능한 한 빨리 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너무 많은 생각들이 동시에 떠올라서 아무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한 아빠가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인 걸까. 아니면 음주 운전하던 차에 치인 것일까. 정말 오늘 아빠가 죽는 것일까. 큰 사고라고 했으니 운 좋게 목숨을 건져도 분명히 장애가 남을 것이다. 그렇다. 장애가 남을 것이다. 어떤 장애를 가지게 될까. 아빠는 앞으로도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내 표정이 좋지 않은걸 눈치채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얘기를 전해주니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다들 아빠는 괜찮을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주목받는 상황이 불편할 뿐이었다. 다들 내 표정을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슬프지 않은데 슬퍼해야 될 것만 같았다. 아빠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빠가 무사하길 바라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아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이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되진 않을까 고민하며 이런 고민을 하는 나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야, 아빠가 애매하게 살아서 식물인간이 되면 어떡하지? 그런 것 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나는 연기를 하기보단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따위의 말을 들으면 못된 자식으로 낙인찍힐지언정 마음은 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웬 사이코패스 같은 질문에 착한 친구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위로가 흐르던 공간에 적막이 흘렀다. 갑자기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도 모르던 내 인성의 바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슬퍼지려 해도 슬퍼할 추억이 없었다. 오히려 아빠가 죽는다면 그걸로 끝이겠지만 산다면 틀림없이 장애를 가지게 될 것이고 그나마 가족 중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만약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장애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병인을 쓰면 한 달에 얼마 정도가 들까. 힘들게 다니던 직장을 간신히 때려치웠는데. 최소한의 돈만 쓰면서 몇 달 정도 살 계획을 벌써 다 세워놨는데. 수술비는 얼마나 나올까. 큰돈이 필요할게 분명한데 다시 취직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런저런 걱정에 아빠가 죽는 게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병원에 가기 전 엄마에게 소식을 전할지도 고민했다. 내가 중학교 때 이혼한 엄마는 아빠 일이라면 사소한 것에도 치를 떨었다. 나는 자식이니까 그래도 임종은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엄마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다. 빠른 판단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모두가 후회를 덜 하는 선택은 어떤 것일까. 결국 엄마에게도 알 권리가 있으며 그녀의 선택을 내가 대신하는 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끝에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내 위치를 알려주며 같이 가고 싶으면 데리러 오라고 했다. 연신 ‘으이그, 으이그’만 하던 엄마는 예상과는 다르게 곧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그 후 동생에게도 전화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근데 어쩌라고’였다. 원래도 남처럼 지내기에 많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예상보다도 못한 대답을 들으니 헛헛했다. 그냥 알고나 있으라고 대답하고선 끊어버렸다.


엄마를 기다리며 앉아있자니 그제야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 불구가 된 부모를 돌보기 싫다는 이유로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자식과, 뭐가 됐든 관심도 없는 자식을 둔 사람의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가 지어낸 막장 집안 이야기 같았다. 만약 뉴스 기사로 접했다면 불효자식들이라는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근데 이건 건너 듣는 뉴스 따위가 아니다. 내 이야기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그들의 나의 부모였고 나는 그들의 자식이었다. 지나온 날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저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인생이라는 이야기에 휘말린 불쌍한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눈물이 나왔다. 내 옆에 있던 마음씨 좋은 친구가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가족에게 힘이 되어주라고 어깨를 토닥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어쨌든 당장은 눈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나는 이제 부모의 보호자니까.


곧 엄마가 왔고 차를 타고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데스크에서 병실의 위치를 물어보고 걸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환자실이 있는 층에 도착한다. 복도를 통과해 중환자실 입구가 있는 다른 복도로 돌아가려면 저 모퉁이를 반드시 돌아야 한다. 거기에는 가로등도, 안내판도, 미래를 암시하는 그 무엇도 없다. 그저 직접 마주해야 할 뿐이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걸음을 내딛는다. 이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모퉁이를 돌아 중환자실 문 앞에서 호출 버튼을 누르니 야간 근무를 하는 간호사가 나왔다. 아빠는 막 의식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다친 곳이 별로 없다고, 이 정도 규모의 사고에서 기적 같은 일이라고도 했다. 엑스레이도 찍었는데 부러진 곳도 하나 없고 가벼운 찰과상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밖으로 다친 곳이 없는 경우 안으로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하며 내일까지는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만 들어갔다.


“아버지, 나 왔어요.”


아빠는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기관지에 호흡을 돕는 호스를 꼽고 있어서 말은 하지 못했지만 눈을 깜빡이고 고개도 흔들거나 손가락도 움직일 수 있었다. 목과 팔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긴 했지만 진짜 부상 때문이 아니라 불편해서였다. 안심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는 피투성이가 된 아빠를 상상했다. 어마어마한 수술비를 걱정했다. 앞으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아빠를 누가 어떻게 돌볼지 걱정했다. 그런 것만 생각했다. 이토록 무사한 아빠를 바란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같이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던 엄마도 잠시 들어와 살폈다. 엄마와 아빠가 같이 있는 걸 보는 게 오랜만이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비교적 괜찮은 상태인걸 확인하고 나와서 경찰관을 만나 자세한 사고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얘기를 들으니 아빠가 가해자였다. 맙소사. 내가 우리 아빠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음주운전 사고라는 말만 듣고 피해자 쪽일 줄 지레 짐작하고 있던 내게 또 다른 충격이었다. 정지 신호에서 불법 좌회전을 하다가 제 신호를 받고 직진으로 달려오는 차와 충돌했다. 차는 폐차될 정도로 부서졌고 충돌할 때 충격으로 몸이 튀어 오르며 머리가 앞유리를 세게 박아서 박살이 났다. 다만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서 튕겨나가지는 않았다. 병원에 올 때까지만 해도 사고 규모가 크고 의식이 없어서 위독하다고 판단한 구급대원이 내게 연락을 했다. 아빠에게서 나는 술냄새를 의심한 구급대원이 이미 피검사를 하기 위해 혈액 샘플을 채취했고, 곧 결과가 나올 것이다. 같이 부딪힌 차주는 심하게 다치진 않았다고 했다. 아빠가 가해자란 사실을 알고부터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가 죄인인 것 마냥 거듭 죄송하다고 했다. 오히려 크게 다친 쪽이 상대편이 아니라서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내게 경찰관이 한 마디 해주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많이 안 다치셔서 다행이에요. 사고가 커서 저희도 걱정했거든요. 놀라셨죠?”


그러고선 아빠 상태가 나아질 때쯤 연락을 하겠다고 명함을 건네주고 돌아갔다. 이상하다. 경찰이 가해자한테 왜 이렇게 친절하지. 차라리 꾸중이라도 들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그들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에 마음이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리고 놀랐냐는 라는 말을 들으니 그제야 내가 놀랐었다는 걸 깨달았다.


경찰관의 명함을 받고 간호사의 설명도 적극적으로 들었다. 아빠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될 줄 알고 엄마와 같이 왔지만 어쨌든 사건을 수습해야 될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혼 후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아빠를 보는 거였다. 내게는 엄마와 아빠지만 서로는 남이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자기를 무시하고 앞에 나서서 설친다고 성질이었다. 결국 오는 길에 엄마와 크게 싸웠다.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빠랑 같이 있으면 이유 없이 화가 나 있었다. 본인에게는 이유가 있을지언정 내가 봤을 땐 마치 히스테리 버튼이란 게 있어서 아빠와 같이 있을 땐 그 버튼에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혼 후에 엄마는 아빠와 관련된 일체의 이야기를 듣는 걸 싫어했지만 좋든 싫든 가끔씩 아빠를 만나는 나를 통해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못마땅해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빠와 엮이는 일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이렇든 저렇든 엄마는 내게 화를 냈다.


거의 아침이 다 되어 집에 돌아와 그날 밤 짧은 시간에 일어난 많은 사건들을 떠올려보았다. 구조대원에게 전화를 받은 후 아빠의 상황보다 내 상황이 더 걱정되었던 것. 아빠의 죽음이 슬프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막상 너무도 멀쩡한 아빠를 보자 미안했던 것. 오랜만에 보는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있는 장면. 누워있는 아빠에게 자식에게 피해될 짓은 하지 마라고 핀잔을 주던 엄마의 모습.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입에 끼워진 불편한 호흡 호스를 빼달라고 눈물까지 흘리며 아이처럼 떼를 쓰던 아빠. 그런 아빠가 알고 보니 가해자였던 것. 이것저것 수습하려던 내게 나댄다며 화를 내던 엄마. 아빠 사고를 남 일 보다 더 남처럼 여긴 동생.


가족이란 건 무엇일까. 위로를 받은 건 혼이 날까 봐 걱정하고 있던 경찰에게서였고, 엄마에게 동생에게 힘이 되어 주라고 용기를 준 건 친구들이었다. 구급대원이 통화목록을 보고 내게 전화를 했다던데 나는 아빠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작성일: 2020.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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