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이라는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을 해왔고 그 고민들을 글로 풀어내고 싶은 때가 많았었는데 시도할 때마다 잘 정리가 되지 않아서 초안을 적었다가도 삭제하기를 반복했다. 딴엔 진지하게 적은 것 같았는데도 다 적고 나면 하찮고 우습게 느껴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분명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직 생각의 전개가 미숙하더라도 적어두려고 한다.
우선, 음모론이란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먼저 확인해 보자.
음모론: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있다고 여기며 유포되는 소문
(출처: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음모론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코로나19와 백신, 지구평평설, 베리칩, 911 테러 자작극설 등이 있다. 반대로 이런 예들이 음모론 취급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즉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혹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매우 힘든 일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 거짓이 없는 사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사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진실이란 무엇인가? 쉬운 질문처럼 보여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실을 검색하니 사실이라는 단어로 정의되어 사실의 의미도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사실이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쓰이고 목격자가 사라지는 순간 그 기록만 남는다. 그리고 후대들은 그 기록을 진실한 것으로 학습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오래된 역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닌 최첨단 기술로 무장된 현대 사회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세월호 사건 때 만 해도 사고 직후 전원 구출이 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었고 모두가 그것을 믿었다. 오보가 아닐 수 없는 사건이었기에 모두가 그것이 가짜 뉴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많은 사건들이 지금도 왜곡되어 전해진다.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가 아닌 이상 전달된 정보의 거짓과 참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들은 결국 매체를 통해 알 수밖에 없으므로 작든 크든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물며 내가 직접 경험한 사건이라고 해도 정보의 왜곡은 발생한다. 정보가 뇌에 입력되는 순간이 그렇고, 또한 사건 후 뇌에 저장된 정보에 접근할 때마다 역시 조금씩 왜곡이 발생한다. 때문에 동일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고, 같은 질문을 같은 사람에게 던져도 시간과 횟수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개별 정보를 교차시켜 보는 것이다. 어떤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일치하는 정보를 갖고 있다. 이런 경우 그 정보는 매우 높은 확률로 진실된 사실일 것이다. 반면 어떤 사건은 정보가 일치하는 교집합이 적을뿐더러 의견이 매우 극단으로 나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명확한 증거물이 없는 이상 진실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나는 사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로 여겨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떤 것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과 ‘사실로 여겨진다’고 받아들이는 것의 간극은 크다. 일종의 깨달음의 계기가 없다면 이 간극을 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보는 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갈릴레오가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할 때 그것은 참이었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었기에 그의 발언은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어 종교재판을 받았다. 그것이 1600년대의 일임을 알고 나면 생각보다 그리 먼 과거는 아니라는 것에 놀랄 것이다. 즉, 내가 400년 전에 태어났고 갈릴레오만큼 똑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구가 평평한 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았을 것이다. 대중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 보다도 한참 후이니, 우주 과학이 발전하기 전인 불과 100-200년 전까지만 해도 권력이 강한 집단이 천동설을 강력히 주장했다면 그저 따르고 믿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렇듯, 다수가 수용한 정보라고 해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경우, 진실이 아님을 밝히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기억을 공유하는 현상을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라고 부르기도 하니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시라.
진실은 무엇이고 사실은 무엇인지 그 정의에 매달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은, 외부 정보에서 오는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개인의 힘으로 판단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정보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수용된 정보일 때 그 정보를 접하는 개인 역시 자신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쉽게 받아들인 후 그것을 체화시킨다. 그 정보가 옳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음모론을 접하게 된 이후 이 믿음, 즉 신념이 얼마나 무섭고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세상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약간 과장을 덧붙여 표현하면 개인의 세계는 그 개인이 받아들인 외부 정보와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 구성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음모론이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전에는 나를 둘러싼 단단한 세계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3년 전쯤 지구 평평설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내가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를 의심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구 평평설 덕분에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고 또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을 거친 지금의 나는 음모론이라는 단어를 시중에 유통되는 정보가 틀릴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 사전적 정의에서도 보았듯, 음모론을 이야기할 때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는 만약 유통되는 정보가 거짓이라면 목적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고스러운 일을 하려면 웬만큼의 강한 권력과 재력을 가지지 않으면 실행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린 정의에 부합하는 단어가 있다면 기꺼이 사용을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음모론이라는 단어보다 그 의미면에서 가까운 단어를 찾지 못했기에 나 역시 스스로를 음모론자로 지칭하지만, 이 단어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유통되는 정보가 틀릴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과, 틀릴 가능성의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 주장을 신뢰하고 추종하는 것에는 아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나는 저 세 가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음모론자로 지칭하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 각각에 대한 용어가 따로 존재한다면 좋겠다. 때문에 음모론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그것을 주도하는 숨겨진 배후 세력보다 주어진 정보에 의심을 가진 상태에 초점을 둔다면 좋겠다.
누구나 객관적인 팩트를 기반으로 한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내가 틀렸다고 열어둔 가능성들이 틀렸기를 바라기도 하며 이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상태가 바로 이 글의 타이틀, ‘음모론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만약 당신이 내가 내린 음모론자 정의에 부합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실상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은 그 의심을 하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되는 것도 흔하지 않을뿐더러, 막상 그러한 계기가 와도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 이유는 개인의 성격이나 기호의 영향도 있겠지만 힘들고 바쁜 일상에서 이런 의심 자체가 정신적 사치처럼 여겨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작성일: 2020.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