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뭍과 물

영월 힐링 인 더 포레스트

by 한별


지퍼를 열고 얼굴을 빼꼼 내민다. 텐트 바깥에 세워둔 쿨러 위에 얇게 얼음이 서려있다.

아, 초겨울이 되었구나!



아직 군데군데 붉은 낙엽이 떨어진 흔적이 남아있지만 산과 나무, 공기, 한낮에도 외투를 한 번 더 입게 되는 날씨. 크리스마스로 한가득 장식해 둔 나무를 보니 새라가 특히 사랑하는 겨울이 온 게 분명하다.



요즈음엔 캠핑을 나오는 일이 더 이보다 즐거울 수 없다. 신변잡기가 편안해진 덕분이기도 하다.



요즘 캠핑이 뭘까? 계속 생각한다. 생각거리가 있을 때 어린아이가 풍선을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계속해서 ‘통-‘하고 하늘로 쳐올리며 노는 것처럼 생각들을 이리저리 굴려보는 일을 좋아한다.(가끔은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 지겨울 정도로)



요즘은 이것이 고래의 호흡같이 느껴진다. 고래는 폐로 호흡하기에 물속 생활을 보내려면 일정 주기로 바다 표면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잔뜩 몸 안에 담는다. 공기만 담을 뿐 아니라 따개비나 여러 기생충들을 떼어내기도, 햇볕 그 자체를 여유롭게 즐기기도 한다. 이런 시간들을 가진 후에 잔뜩 들이마신 숨을 가지고 다시 깊숙한 바닷속으로 힘차게 꼬리를 움직인다.



고래에게 어둔 바닷속이 먹먹할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바다 속이나 바다 밖 둘 중 하나는 일상이고 다른 하나는 탈출구라고 여기고 싶었다. 그래야 고래에 빗댄 나의 이 생각거리에도 의미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우연히 고래에겐 이 공간 전환에 심리적으로 큰 변화가 없단 걸 들었다.



수면 밖 호흡 시간을 해방처럼 여기는 관점에는 필연적으로 심연의 막연한 두려움이 따른다. 숨이 차 수면에 비추는 태양 그림자를 향하며 ‘아! 일주일간 이 시간만을 기다렸어, 저 수면 위야말로 내가 기다리는 시간이야!’라고 희열 하지 않았다. 그는 뭍도 물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하루로 여기고 살 고 있을 터이다.



내게도 물이나 뭍, 그중 하나가 캠핑이었으면 한다. 에너지를 너무 쓰거나, 혹은 너무 받거나 하지 않고 그저 즐거운 하루인 그런 시간으로 들살이를 보내고 싶다. 혼자, 둘이서 그리고 때로는 ‘우엉-‘(고래의 초음파 울음소리를 말이다) 하고 울음소리를 내어 모인 누군가와의 시간에서도.




겨울의 시작을 함께 맞이한 ‘오늘’과 ‘내일’과의 시간은, 물론 깊은 산속이었지만. 그저 아무 일도 없는 자연스런 고래의 하루였다. 서로의 물과 뭍의 안부를 물으며 겨울 풍경과 날씨와 훌륭한 음식들을 곁들인, 너무 힘을 쓰지 않고 또 너무 건조하지도 않은 그런 시간 말이다. 나름 화술이 능한 사람들이 모여있음에도 붕 뜨지 않는 것은 나의 이야기만큼 너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이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시린 코 끝을 화롯불로 녹여낸다. 모든 캠핑이 오늘만 같았으면 한다. 이번 주의 뭍 생활은, 편안한 물 생활로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그날의 모습은,

https://youtu.be/qfLDP-UHm0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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