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3일
용인에 가고 싶다고 말한 건, 어쩌면 그냥 해본 말이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안 된다는 대답을 들을 걸 알면서도. 그런데 누나가 “오늘 약속이 취소돼서 가자”고 했다. 순간,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감격스럽다는 감정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누나 집 근처에서 만나 내 차를 타고 용인으로 향했다. 누나는 처음엔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납치당했다"는 내 어리광에 못 이겨 따라와 주었다. 밖은 어둑 컴컴했고, 도로 위로 가로등 불빛이 길게 번졌다. 나는 창문을 살짝 내리고 바람을 맞으며, 이 시간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랐다. 하지만 모든 순간은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까, 오늘 하루를 천천히 곱씹으며 기억에 새겨 넣기로 했다.
가는 길에 밥을 먹기로 했다. 누나는 태국 음식을 좋아하니까, 수원 영통 신동의 한 태국 음식점에서 팟타이를 주문했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려 한입, 두 입. 따뜻하고 살짝 달콤한 소스 맛이 입 안에 퍼졌다. 대화를 나눴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누나가 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 함께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용인에 도착해 카페에 갔다. 커피를 마시며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 의미 없음이 좋았다. 그게 큰 불편함은 아니라는 증거니까.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내게 팬클럽이 있었던 이야기, 누나의 어린 시절, 나의 어린 시절. 누나는 24살 무렵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나는 멍하니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때 정말 예뻤네." 하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여전히 예쁘지만, 그때는 확실히 빛이 나는 얼굴이었다. 청춘이라는 건, 그 자체로 빛을 머금고 있으니까.
누나는 그저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졌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스스로 고를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오늘을, 이 시간을, 이 기분을 꼭 기억하고 싶었다.
누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강한 사람 같기도 하고, 무척이나 귀여운 사람 같기도 하다. 어쩌면, 강해 보이는 걸 선택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쉽게 기대지 않고,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늘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감당해야만 하는 것들을 분리하는 사람. 그래서인지 누나가 가끔 마음을 열어줄 때, 그 순간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대화 내용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꿈같은 시간이었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감정이 벅찼다.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손끝에 닿은 따뜻한 온기 같았다. 예전보다는 가까워진 것 같아서 좋았고, 여전히 제자리걸음 같지만 미세하게나마 나아간 것 같았다. 누나가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아서, 그게 감격스러웠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다림이 고통이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기다림이 없다면, 이렇게 감격스러운 순간도 없을 테니까. 그저 그런 하루가, 나에게는 기적 같은 하루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누나는 통화를 해주었다. 그것도 고마웠다.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냥,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날들이. 오늘이 그랬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하지만 나에겐 소중한 하루. 그리고 나는, 그런 날들을 위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