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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만든 인식

2025년 1월 28일

by 양동생

설날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명절 인사는 너무 형식적이 되어버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말들이 사람들 사이를 떠돌고, 나는 그 말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틀린 말은 아닌데, 왠지 부족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덕질러라면 설 인사도 좀 특별해야 하지 않을까.


며칠 전, 용인에 갔을 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회사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이유를 설 인삿말로 하려고요.” 그때 누나는 별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아예 기억도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유를 말하려고 한다.


나는 어떤 장소를 떠올릴 때,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함께 떠오르는 편이다.


중국을 생각하면 X현이와 X성이가 떠오르고, 전 직장을 떠올리면 한 대리님이 스쳐 지나간다. 체코 프라하를 생각하면 그곳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 누나가 떠오른다. 기억이란 묘한 것이다. 장소는 변하지 않지만, 그곳을 빛내는 사람에 따라 기억의 색깔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회사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누나다.


덕분에 이곳도 내게 꽤 멋진 장소가 되었다. 당연히 회사의 모든 면이 다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7월부터 이곳은 점점 더 나에게 괜찮은 곳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누나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어딜 가든 결국 다 비슷해.” 나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틀리다고 생각한다. 장소는 결국 사람에 의해 달라진다. 같은 길도 누구와 걷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내 주변을 보면, 회사에 이런 마음을 품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누나 덕분에 이곳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만들고 있다.


‘누나가 있는 멋진 곳.’


그렇게 생각하면, 회사가 조금 더 괜찮은 곳이 된다. 나는 회사에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설날. 누나는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제법 기분이 좋을 예정인데, 그 행복을 조금 나눠드릴 수도 있다.


아, 그리고… 오늘 송편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한다. 설에 송편이 정답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하지만 누나는 떡을 좋아한다고 했다. 제대로 만들어서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뭐든 할 수 있는, 빵 굽는 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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