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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놓는다는 것, 거리를 둔다는 것

2025년 1월 29일

by 양동생

말을 놓고 싶다는 것은, 단순한 언어적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의 형태를 바꾸고 싶다는 선언이자, 더 가깝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낮에 들은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말을 놓는 건 절대 안 된다."


이 한마디가 무겁게 가슴에 남아 있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망, 서운함, 좌절, 혹은 단순한 호기심. X현은 되는데 나는 안 된다는 건, 결국 누나가 나를 같은 위치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말을 놓는다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관계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호칭을 바꾸고 말을 편하게 한다. 말이 편해지면, 관계도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반대로 존댓말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존댓말에는 예의와 존중이 담기지만, 때로는 벽이 되기도 한다.


누나는 X현이에게는 말을 놓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대 놓지 못하게 한다. 이유는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누나는 나를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말을 놓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친밀함의 정도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본질적인 성향 때문일까?


X현은 선하다. 그런 느낌이 있다.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누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 경계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겐 거리를 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는? 나는 선하지 않은가? 나는 경계해야 하는 대상인가?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말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일종의 장치다. 누나는 나에게 거리를 두고 싶다. 그러므로 존댓말을 유지한다. 말을 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변화를 넘어, 관계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을 놓는다는 것은 가까워지고 싶다는 선언이고, 말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것이 아무리 가슴 아프더라도, 인정해야 할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 더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여전히 덕질을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관계의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는 말을 놓고 싶고, 관계를 가깝게 만들고 싶지만, 누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관계는 결국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들을 안고,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관계의 거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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