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9일
하루 종일 그녀를 걱정했다. 이른 아침부터 광교에 가야 한다는 말에 데려다주려 했고, 그녀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 했을 때는 안도했으며, 점심은 먹었는지, 저녁은 어땠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질문들은 걱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나의 바람이 섞여 있다는 것을. 함께 밥을 먹고 싶고, 근처에 머무르고 싶고, 나를 그녀의 하루 안에 두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게 움직였다. 괜찮다고 했고,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도 했다. “내 시간 방해하지 말고.” 그 한 문장은 짧았지만 깊었다. 그 말속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피로와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 애써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점점 무언의 벽이 느껴졌다. 그녀가 불편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마음을 꾹 눌러두지 못한 채 다시 질문하고, 확인하고, 다가갔다.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배려라는 말로 포장된 감정들이 사실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의 스케줄을 물었고, 점심은 언제 괜찮은지, 어디에 가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내 스케줄을 너무 묻지 말아 줄래.” 그 말은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고, 그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제야 조금 느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거리를 두고 싶어 할 때 그 거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감정은 밀고 당기는 것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일에 가깝다.
하루가 끝나갈 무렵, 나는 다시 말하고 있었다. “나 아직 하고 싶은 얘기 많아. 나누고 싶어.” 하지만 곧 그 말을 거둬들였다. 그녀는 하루 종일 바빴고, 새벽부터 움직였고, 누군가의 걱정마저도 부담이 될 만큼 지쳐 있었을 것이다. 그걸 알아차리는 데 하루가 걸렸다. 관심을 보이는 것과 조용히 기다리는 것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균형을 잘 잡지 못한다.
그날 밤 나는 스스로를 돌아봤다. 내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 방식이 서툴렀다. 나는 그녀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곁에 머무는 법을 익혀야 한다. 적당한 거리라는 건, 상대가 정한 선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가까이 가는 건 자유지만, 가까이 있게 허락하는 건 상대의 몫이다. 그 간극을 오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마음의 성숙이라는 걸 배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