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0일
어젯밤 무안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었다. 혼자 먼 곳까지 와 있다는 사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낯선 환경,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취재. 머릿속이 복잡해질수록, 몸도 따라 무거워졌다.
그럴 때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오늘 오후 통화 버튼을 누르고, 짧은 신호음이 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야?”라는 짧은 질문. 그 말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풀어졌다.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오간 것도 아니다. 별 대단한 위로나 조언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선물 이야기, 무안이 생각보다 멀다는 이야기 같은 그런 사소한 말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평범한 대화들이 내 안에서 조용한 위로가 되었다.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안다. 어떤 말이든, 어떤 순간이든,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특별해진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말들이, 나에게는 오랜 시간 간직할 보물이 된다는 것을. 그게 덕질러다.
덕질이란 결국 ‘내가 선택한 위로의 방식’이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지금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순간 숨이 트이고 마음이 놓이는 것.
어쩌면 나는 오늘 이 전화를 평생 기억할 것이다. 무안에서, 낯선 오후에, 피곤한 몸을 눕히고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던 그 순간에, 그 짧았던 통화를. 대단한 말이 오간 것도 아닌데, 그저 “뭐 하고 있었어?” 같은 말 한마디가, 내겐 큰 위로가 되었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이 계속될 거라는 걸 안다. 나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지쳐 있을 것이고, 여전히 누군가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그 하루를 견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덕질이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해 주는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