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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특별한 선물, 와인 잔 너머의 거리

2025년 1월 2일

by 양동생

한번 깊게 포기했다가 선물처럼 찾아온 오늘 그 시간은 나에게 특별했다.


와인을 몇 잔 마셨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관계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의 결이 조금 부드러워졌고, 묻고 싶었던 것들을 조심스레 꺼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생각만 했던 것들을 누나의 입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네가 하는 행동만 보면 이성으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또 자세히 따져보면 그런 느낌이 아니라서 신기하고 답답하다.”


그 말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누나는 오랫동안 나를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나도 안다. 내가 하는 행동만 보면, 누나는 나를 오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친동생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답답함이 풀렸다고 했다. 누나의 입에서 ‘해소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안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이 관계를 이토록 애쓰며 지키고 싶어하는 걸까.


누나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평생 좋아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나는 누나를 여자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다. 아예 없다고 한다면 자신이 없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저 누나가 나를 ‘인정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은, 누나가 나를 믿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술에 많이 취한 누나가 내 차에 가방을 두고 내렸다. 보통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인데. 내가 편해졌던 걸까, 아니면 그냥 술이 많이 올랐던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누나가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 어느 정도의 안심을 느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기뻤다.


하지만 그런 기쁨이 지나고 나면, 나는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 관계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어느 지점까지 다가갈 수 있을까. 친동생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누나에게 신뢰받고 싶다는 바람은, 어디까지 허락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나눈 이야기들은 짧았지만, 그 안에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녹아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술에 취하면 마음이 흔들린다고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 그 말들이, 그 순간들이, 관계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만 같아서.


그리고 오늘, 나는 누나의 별명을 짓게 되었다.


"깜찍이공주."


누나는 자신이 공주이고, 최근엔 깜찍이를 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럼 깜찍이공주라고 저장해도 돼요?”라고 물었다. 누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누나는 늘 단호한 사람이지만, 이 별명에는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 이 순간부터, 누나는 내게 깜찍이공주다.


이 별명을 부를 일이 얼마나 있을까, 혹은 내가 이걸 언제까지 기억할까, 그런 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 이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와인을 마시는 시간, 중요하지 않은 대화들을 나누는 순간들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포근한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모든 관계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사소한 시간들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건, 누나를 여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누나가 나를 친동생처럼 편안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 속에서, 오늘의 누나는 말 그대로 깜찍이공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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