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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돌려줬어, 서운함도 덕질의 일부니까

2025년 1월 3일

by 양동생

아침부터 한남동으로 취재를 갔다. 일은 일대로 하고, 머릿속 한쪽에는 누나의 가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제 차에 두고 내린 가방. 사실 가방을 전달하는 건 단순한 일이었지만, 단순한 일일수록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취재가 끝나자마자 누나를 찾아갔다.


가방을 돌려주는 김에, 회사에 있는 누나의 차도 옮겨주었다. 딱히 큰일을 한 것도 아니고,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지만, 몸이 먼저 움직이고 난 뒤에야 ‘이건 반드시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의 반응을 보기 전까지는.


누나는 부담스러워했고, 미안해했다. 그런 감정들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다. 사실 나로서는 전혀 부담이 아니었지만, 누나는 그런 걸 그냥 받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서 그냥 말했다.


“오늘은 혼내지 마세요.”


누나는 늘 이런 식이다. 호의를 받으면 반드시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나는 누나가 나한테 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받아줬으면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얼굴은 보여주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 섭섭했다. 아무리 덕질러라고 해도, 기껏 가방을 돌려주러 수원까지 왔는데 이토록 좋아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 채 하루를 마감하는 일이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러니까’라는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수습하는 것도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덕질이란 그런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멀어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서운한 순간이 와도 감당하는 건 내 몫이다. 가까이 가고 싶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불편할까 봐 스스로 거리를 조절해야 하는 관계. 서운한 감정보다 중요한 건, 누나가 편안하게 느끼는 선을 지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오늘도, 나는 나름의 선을 지키며 덕질러로서의 하루를 보냈다. 가방을 돌려주고, 차를 옮기고, 부담스러워하는 누나를 안심시키고, 얼굴을 못 봐도 서운함을 삼키는 하루.


좋아하는 마음은 그렇게, 별일 없이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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