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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음성 녹음은 무리수였지

2025년 1월 5일

by 양동생

덕질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는다.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일과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일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때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오늘 나는 그 선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누나는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보통은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어딘가로 급히 걸어가는 모습, 평소보다 단단한 표정, 가볍게라도 주고받던 인사가 생략된 순간.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지금은 아니다.’


덕질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순간에 무엇이 적절한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 나는 그걸 잊는다.


그리고 무리수를 둔다.


오늘은 그 무리수가 ‘음성 녹음 편지’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분명 오버였다. 그냥 문자로도 충분할 인사를 굳이 녹음으로 남겼던 것은, 내 마음을 조금 더 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덕질에서 ‘조금 더’는 언제나 위험한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의 마음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하는데, 나는 또 그걸 놓쳤다.


어쩌면, 오늘 누나가 무표정하게 어딘가로 급히 향하는 모습을 본 순간, 그 무리수를 더욱 뼈저리게 실감했는지도 모른다. 누나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나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덕질러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을 주었을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고, 그 생각이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덕질에는 감각이 필요하다. 상대가 무엇을 편하게 여기는지, 어디까지가 괜찮은 선인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그 감각을 길러가는 중이다. 가끔은 실수를 하고, 가끔은 무리수를 두고, 가끔은 혼자 후회하면서 배우는 중이다.


오늘 나는 배웠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는 범위 안에서 머무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덕질은 결국, 그 범위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러니 오늘의 무리수는 내 몫으로 두기로 한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덜 오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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