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부자가 될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어렸을 때는 이것이 마치 '어휴, 주제파악 좀 해라'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에 가깝게 느꼈었는데요.
요즘의 '너 자신을 알라'는 저에게 '내가 무엇을 원하고, 모르고, 알고에 대한 깨닳음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는 도대체 부자는 누가되는 것인지,
'부자'의 상태는 1이 되지 못하는 무한소수, 0.999...와 같은 형태는 아닌 지 의문을 품었었는데요.
https://brunch.co.kr/@fiveio27/157
그 답을 오늘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요즘 새롭게 살 집을 찾아가며, 도대체 돈이 무엇인지 집은 무엇인지 생각이 참 많았어요.
부동산 대표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투자도 좋고, 돈도 좋은 데, 증요한 것은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이다. 어떤 때에 가장 행복한 지, 어떤 상황에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 아는 것이 첫 번째다."
여기까지는 아마도 평상시에 한번쯤은 떠올려봤던 생각인지라, '그치..행복한 것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했을텐데,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더라고요.
"언제 내가 행복한지를 모르면, 끊임없이 행복을 남을 통해서 비교하고 찾게 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비교를 한다고 해서 그게 행복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내가 행복한지를 알아야, 그 행복에 즐거움을 누리며, 부자에 가까워질 수 있다. 부자는 돈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느낄 때 부자가 된다."
100억을 번다면, 남들은 쉽게 부자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돈을 버는 스스로가 여전히 1,000억, 5,000억 부자와 비교하면, 여전히 충족되지 못한 상태겠죠.
100억을 벌었을 때, 어떤 상태에서 행복한 지를 찾아낼 때, 스스로 자기의 삶에 만족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한 장소에서 TV를 보며, 웃고, 맛있는 치킨 한조각 먹을 때가 행복하다면,
그것을 '행복'이라는 스스로 정의한다면
늘 무한소수의 굴레에 빠져 되지못하는 부자를 추앙하는 삶과 비교했을 때,
이미 부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죠.
오히려, 부자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