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에 꼭 그 옷 입고 가겠다고 난리야."
"유치원 할로윈 행사에 꼭 그 옷 입고 가겠다고 난리야"
점심 시간, 유치원 아이를 둔 차장님이 자조적인 가벼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꼭~~ 그 옷을 입겠다고 내내 준비한 것 있지. 그 날만 기다리고 있어 애가... 근데 코로나19 확진자가 지나갔다는 말이 있어서 그날 할로윈 옷을 입고갈지 못 갈지 모르겠네. 큰일이야 큰일"
한창 할로윈에 입고 갈 옷을 고르고, 입고 갈 날 만 기다리던 아이가 코로나 때문에 그 희망을 지켜낼 수 있을 지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어른이 된 지금도 기억나는 유치원생의 아픔이 있기에 더욱 안타깝다. 부디 원하는 바를 이루길
글쓰기 과제를 다하면 게임을 해주게 한다는 선생님말에 최선을 다했으나, 느린 손으로 다 쓰니까 집에 가야했다. 그게 그렇게 억울했는 지, 아직도 그 때 모습이 생생히 생각난다.
시대 흐름은 기술적인 변화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님이 느껴진다.
변화는 부모님들에게 의도치 않은 지출과 걱정(혹은 즐거움?)을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어릴때도 그렇게 할로윈을 신경썼었나?
무언가 꾸미고 즐거운 기억은 남지만, 그것이 할로윈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자라오며 본 할로윈에 비해 지금 커가는 아이들의 할로윈은 당연하고, 너무나 즐거운 기념일이 될 것이다.
마치 크리스마스처럼... 가족과 혹은 친구와 함께하는 좋은 추억이 되겠지.
반면, 조금씩 조용히 작아지고 사라지는 풍경도 있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겠지만, 갈수록 적어지는 아이들로 인해 운동회도 축소되고,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부모님들은 관객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봐야하고
누군가 반에 음식을 돌리거나, 음료를(설령 물이라도) 단체로 구입해서 돌려서는 안된다.
(반장이 주로 샀던 것 같은데, 이건 없어져서 좋은 것 같다. 돈 드는 반장이란 없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사람이 줄어드니
운동장 곁에서 불량식품 파던 아저씨도
병아리, 메추라기를 판던 할머니도 사라진 풍경이 되었다.
온 가족이 모여 시끌벅적 즐기는 운동회 분위기도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종종 2002년 월드컵의 시끌벅적한 즐거움과 환호를 그리워하곤 한다.
쉽게 다시돌아오기 힘든 거대한 열정의 그리움도 소중하지만,
초등학교 운동회의 시끌벅적함과 같은 분위기의 작은 그리움이 오늘 유난히 더욱 소중하게 떠오른다.
오늘 지나난 일상 사진
다시 돌아온 할로윈
문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나올 것 같다.
너네... 앞으로도 괜찮을까? 서로 다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