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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 Dec 22. 2020

어쩌다보니 하는 어설픈 나이 이야기

"ㅋㅋ 달걀 한 판 선물로 보내 드릴게요."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A가 B에게 태연하게 한 마디 건넨다.

"아 맞다.  집 주소 불러. 달걀 한 판 집으로 보내줄게"

"아 됐어, 뭔 소리야... "


"아 그러지 말고, 주소 부르라니까 ㅋㅋ 보내준다구"

"ㅋㅋ아오 진짜..."


며칠 뒤 비슷한 상황에서 동료와 함께 퇴근 중 들려오는 소리.


"ㅋㅋ 달걀 한 판 선물로 보내 드릴게요."


2020년도 끝을 향해 간다. 덩달아 신나게 한 살 더 먹을 준비도 슬슬 할 때가 됐다!

주변에 유난히 30살이 되는 사람이 많아 심심치 않게 계란 한 판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 온다.

그리고 난 30살을 마무리하고 30대의 스타트라인을 지나 본격적으로 한발 짝 내딜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이 30살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위에서 썼다시피 이제 막 30살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기에,

먼저 앞서 가고 있는 분에겐 뒤돌아봐야만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웃음이 나올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내가 보고 겪은 30살의 위치는 같은 공간 여러 존재가 공존하는 비무장지대와 같았다.


20대 중후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면,

업무적으로 4~5년된 이제 좀 쓸만한 실무자라는 평가를 듣기 시작할 것이며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른 결혼도 늦은 결혼도 아닌 자연스러운 결혼 적령기로,

누군가에겐 이제 막 일을 시작해도 좋은 시작점이기도 하며

또는 열심히 살아온 20대의 휴식기이기도 하다.


10대에 생각했던 삶의 정답이 20대를 거치며 좀 더 다양한 답안이 나타나기도 하며,

학생 그리고 취준생의 입장에서 느꼈던 경쟁심을 넘어 함께 헤쳐 살아가는 동료애가 생겨난다.


여전히 꿈을 갖고 있지만, 현실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꿈의 크기를 조정해 나가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이 테두리를 '아직은...'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더 늘려보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도 모두가 순탄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좋은 대학, 취업이 목표였던 일상에서 벗어나

점점 자신 만의 이야기를 갖게 되며, 자신의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써 매 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쌓아간다.


위 이야기는 중고등학생 친구들의 모습으로부터 가져왔다. 

10대에 만난 친구들이 20대를 거쳐 30살에 도착해 다음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 지 마주하게 된다.


친구 A는 고등학생 때 그렇게 성적이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졸업하고 어느 지방의 대학을 입학했다가 경찰의 꿈을 꾸기 시작해 1학년 1학기를 마친 후 자퇴를 했다.

그러나 경찰 시험이 오죽 어렵던 가, 군 문제를 해결하고 수험 생활이 길어지다 30살에 합격하고 경찰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당직 근무를 서고 잇다.


친구 B는 성적이 그렇게 나쁜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B는 꿈이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어 정규 대학이 아닌 교육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20살을 시작한다. 어떤 바람이 들었을 까, 시나리오 작가의 꿈은 입학한 지 1학기 만에 끝이 났고, 다시 수능을 준비한다.


마찬가지로 군 문제를 우선 해결하고, 세 번의 수능을 더 보고나서 역사에 흥미가 있었던 B는 수도권 명문 대학교 사학과 입학했다. 입학 후 B의 꿈은 한 번 더 바뀐다. 법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1학기를 사학과에서 마친 후 바로 법학과로 전과하고, 4년내내 1, 2등을 다투다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리고 B는 현재 로스쿨 2학년에 재학중이다.


친구 C는 성적이 꽤 괜찮은 학생이었다. 서울의 명문 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C는 더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두 번의 수능을 더 봤지만, 성과가 좋지 못했고 현재 학교에 이어 다니게 된다. 그러던 중 회계사라는 꿈이 생겨, CPA 공부를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군 전역 이후 꾸준히 공부했으나, 영 성과가 좋지 못했다. 중간 회계사를 포기하고 공기업 입사를 노려봤으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C는 다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CPA 공부를 재개했고, 내년 2월 시험을 앞두고 있다.


친구 D는 처음부터 꿈이 명확했다. 자동차를 좋아해 자동차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고, 대학교도 관련 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던 중 사이클에 빠져 자동차에서 자전거로 전공 분야를 바꿨고, 자전거 엔지니어로 우리나라에서 이름있는 자전거 브랜드 회사에서 현재 재직 중이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먼저 결혼하고, 귀여운 딸이 2명이나 있다.


친구 E는 우리들 중 가장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다. E는 손꼽히는 대학 중 한 곳의 행정학과에 들어갔고, 그 곳에서도 학업에 집중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고(그것이 실제로 맞았고), 적성에도 맞다 생각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다. 중간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 좌절의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으로서 업무를 올해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도 또 다른 난관이 닥쳐왔다. 심장에 지병에 있던 그 친구는 현재 심장 시술 후 회복 중에 있다.


모두가 그렇게 각 자의 이야기 속 주연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 뿐이 아니다. 졸업하자 미용을 배운 친구는 송파에서 손 뽑히는 헤어 디자이너가 되었고, 다른 친구는 커텐 사업을 하는 사장이 될 준비를, 뒤에서 성적을 다투던 친구는 프리랜서 개발자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더 이상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회사를 가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 자신과의 경쟁 속에서 모두가 동료가 되어 버텨나가고 있다.


그렇게 각 자의 정답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곧 30대를 거쳐 40대를 향해가며 점점 더 다양한 삶의 답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

하나의 꿈이 있다면, 함께 이 삶의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했으면 좋겠다.


20대의 어느 날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기대되고 즐거웠다.

어서 30살이 되고 싶었고, 그 때의 내 모습이 기대되어, 더 하루를 열심히 살려 노력했었다.

막상, 지금의 30살이 지나고 나니 드는 생각은 이 시간이 좀 더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내가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이 싫어서가 아닌

지금 내가 함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나 자신도 유한한 삶을 사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되니,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다.


어제와 오늘은 함께한 좋은 이들과 내일도 좋은 시간을 만들어 나가길.

이 한 문장이 30살이 바라는 나의 31살 희망사항이다.




삼성 클라우드 데이터에서 발견된 사진전 사진들.

라이프 사진전에서 산 것들인 데, 가장 좋아하고 오래 기억나는 사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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