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 Feb 19. 2021

서울대학교 신장이식 수술, 1년이 지난 후기

1년 간의 돈, 생각, 감정, 몸상태, 고통 등 모든 것들 총정리

종종 신장이식 관련 키워드로 들어오시는 분이 있어서, 글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제가 그 당시에 수술을 앞두고 여러가지 검색해봤던 것처럼, 아마 다른 분들도 걱정, 두려움, 기대감 등 여러가지 이유로 검색해서 들어오셨던 거겠죠.


2021년 2월 12일이 지나며, 저는 수술 1년이 딱 지났습니다. 이차저차 시간은 흘러가네요. 그 당시, 병실에 누워서 1년 뒤면, 지금의 고통은 기억으로만 남아있고, 평범하게 살고 있겠지라고 상상했던 모습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까지의 기억을 공유해 드리려고합니다.

만약, 신장 이식 수술을 앞두고 계신 분이 보신다면,

걱정마세요. 잘 끝나고 건강하게 일상생활하실 거에요.


서울대병원 1인실 뷰! 좋긴 좋죠..?


신장이 나빠지게 된 과정

어렸을 때부터 신장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고열이 있었고,  그 당시 먹었던 많은 양의 약, 주사, 조금 더 커서는 한약 등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신장 역류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고, 지속적인 단백뇨로 인해 만성신장질환(신증후군)으로 판정받았습니다.


*병으로 판정받으시면, 신장에 좋다는 거 챙겨드시지 마세요! 대부분 더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오로지 선생님에서 먹으라는 약만 드세요!


학교 다닐 때 소변 검사할 때면, 늘 이상 소견을 보여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신장병이란 게 대부분 그렇듯이 완전히 망가지지 않는 이상 티가 안납니다. 더군다나 청소년 기의 단백뇨는 생기다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지켜보자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희망에 불과했고, 만성 신증후군을 진단 받은 이후는 늘 신장이 좋지 않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 병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았고, 대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완전히 망가지지 않는 이상, 몸에서 티가 안납니다. 이제와서 아무 소용이 없지만, 정말 남들처럼 평범한 20대를 보냈습니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합쳐서요. 보통의 대학생활처럼, 열심히 마시고 먹었으며 대부분의 대학생활처럼 즐겁게 살았습니다.


취업도 문제없이 이루어졌습니다. 딱히, 신체검사를 하지 않았으니 정말 일반인과 다를바 없는 취업이었죠. 그렇게 5년의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보통의 사회생활을요. 야근과 스트레스가 있는 보통의 근무환경, 회식과 음주가 있는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29살이 되었고, 어느 날 병원에서 그러더군요.

'이제는 투석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이식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있느냐, 사람이 있다면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 우리 병원에서 하려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크레아틴 수치의 변화

과거 병원 기록을 살펴보니, 대학생 때 이미 크레아틴 수치가 2.5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기에, 2.5가 높은지 괜찮은 건지 감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병원갈 때마다 항상 그러려니했죠.


이식 1년전만 해도 크레아틴 수치가 4점 대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번 수치도 이미 꽤 높았죠. 70 중반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서서히 끓는 물에 있는 개구리가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실질적으로 몸에서 받아들이는 심각성은 전무했습니다.

해외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다니고, 주말마다 풋살을 하며 지냈으니까요.


병원에서 제가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니까 약만 처방해줄 뿐이었습니다. 투석과 이식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죠.


제가 몸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건 이식 4개월 정도 전이었습니다.

크레아틴 수치가 5~6을 왔다갔다하고 번 수치는 100을 훌쩍 넘었습니다. 포타슘 수치도 걷잡을 수 없어서 약을 먹어도 답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죠. 종종 운동도 하고요. 이상한 점은 몸에 기운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점점 더 이상해졌습니다.

헛것을 보거나 가위 눌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거리에서 순간 소리가 안 들리기도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심한 오한에 시달립니다.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면 몸 안에 차가운 피가 흐르는 기분이었어요. 그 당시 신장환우 카페에 제가 남긴 글에 그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네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투석 이후 많은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쉽지 않은 날들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투석을 미루고 하기 싫어하실 거예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저런 상태에서도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어요.


응급카테터(가슴카테터) 시술

아버지에게 신장 이식을 받기로 했으나, 워낙 수치가 급속도로 나빠져 방법이 없었습니다. 수술 날까지 버틸 수 없어서 임시로 가슴카테터 시술을 받았습니다.


비용

이식 전 검사와 카테터 시술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지금보니 53만원 정도 나왔네요. 입원 기간은 5일 정도 되었습니다. 함께 진행해서 조금 길어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고통

기본적으로 마취주사가 들어가기 때문에, 아프다는 느낌보다 불편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힘으로 관을 밀어넣다보니, 이물감이 좀 있습니다. 수술 시간은 대략 30분~40분 정도 걸렸습니다. 병실로 돌아오는 데 1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아이에 고통이 0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마취주사가 가장 아프고 마취 이후에는 참을 만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시술 수 올라와서 

마취가 풀리면, 굉장히 뻐근합니다. 움직일 때마다 좀 아프고요. 그치만 움직일 일 없으니 가만히 누워있으면 됩니다. 이 아픔은 그래도 하루 지나면 많이 괜찮아져요.


아주 작은 소소한 장점

이식 수술 이후 별도의 응급 카테터를 삽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맥에 연결해야해서 목에 한다던데.. 차라리 가슴에 있는 카테터가 나은 것 같아요. 그냥 카테터에 바로 약물 주사 꼿으면 끝이거든요.


첫 투석

시술 이후 투석은 병원에서 바로 진행합니다. 2회 정도 병원에서 투석을 받고, 동네 병원으로 옮겨서 투석을 이어하죠. 저는 서울대 병원에서 시술을 받았으니, 서울대 투석실에서 첫 투석을 받았습니다.


고통

아픈 건 전혀 없습니다. 카테터에 연결해서 투석을 하면 되기 때문에, 굉장히 편리합니다. 누워서 한숨 자면 돼요. 움직임은 크게 움직일 수는 없지만, 막 꼼짝없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오로지 힘든 점은 시간인데, 첫 투석은 몸의 적응을 위해 2시간 정도로 짧게 끝났지만, 앞으로는 4시간씩 진행해야 하니, 지루함이 커요. 이 때 넷플릭스를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버틸만하더라고요!


가장 힘든 건, 물을 못 마신다는 거였어요.

건체중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물을 거의 끊듯이 했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투석 후 주의할 점

첫 투석 후 몸에 큰 이상이 없어, 조심스럽게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크게 다른 점은 못 느껴지더라고요. 문제는 두 번째 였습니다. 혼자서 투석실로 가서 투석을 받고, 큰 이상 없길래 걸어서 계단을(?) 올라서 병실로 들어올 때 어지러움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마중나와 있어서 망정이지, 아버지를 보자마자 아버지를 안은 채로 기절했습니다.


순식간에 눈 앞이 깜깜해지고, 속이 안좋아지며 버텨야지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그 생각이 사라지고 꿈을 꿉니다. 그러다 간호사 샘이 ' 눈 뜨세요! 눈 뜨셔야해요!' 하는 소리에 번쩍 눈이 띄이고 여기가 어딘지 싶더라고요.


순식간에 혈압이 떨어져서 그랬던 것이었어요. 진짜... 조심해야 합니다.

투석이 끝나도 충분히 휴식 후.. 특히 첫 투석이면 보호자랑 같이 움직이세요.


이후 투석실 생활

저는 홍대에 있는 서교의원에서 투석을 받았습니다. 다들 너무 친절하시고, 의사 선생님도 걱정말라고 다 잘될거라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힘이 됐어요. 보통 불친절하거나 이런 걸로 고민하는 분들고 있는 데,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투석실에서도 이슈는 종종 발생합니다.


투석 후 변화

가장 좋은 점은 확실히 몸이 가벼워집니다. 머리도 맑아지고, 몸 컨디션도 좋아지고 투석 후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 같아요. 그제서야 아! 이전의 몸이 진짜 안 좋았던 거구나 알게 되더라고요.

3주차에 이런 글을 남겼었네요.



안 좋은점은 역시 시간의 고통입니다. 매주 3일 4시간씩 누워있어야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카테터가 있다보니, 제대로 샤워를 할 수 없다는 것도 힘들고요. 2번 정도 투석 후 혈압이 떨여저서 기절했었습니다. 어? 하는 순간 꿈꾸고 있는... 일어나라 그러면 순식간에 꺠고요.ㅋㅋ..


그렇게 3개월가까이 투석을 받다가 이식을 위해 입원하게 됩니다.


투석 비용

투석 비용은 월마다 결제를 했는 데, 투석 외에 필요한 주사, 처치가 들어가서 월 30만원 정도를 냈었습니다. :)


드디어, 수술...!

수술 2일전 미리 입원합니다. 입원해서 몇 가지 검사를 더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글을 썼었네요.


수술 준비 처치

몇 가지 검사를 더 진행했습니다. 당연히 피는 매일 뽑아 가시고... 소변역류검사 이런 것도 하고, X-Ray도 찍었습니다. 수술 부위 제모도 하고, 당연히 관장도 하고... 준비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수술날을 기다립니다.


공여자는 아버지는 다음 날에 입원했습니다. 수술 전에 괜히 마주하면 기분이 찡...

그리고 그렇게 수술을 시작합니다.


수술 시작

공여자인 아버지가 오전에 일찍 먼저 수술실로 향합니다. 드디어 시작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또 다른 삶을 살게 되겠죠. 삶의 연장입니다. 2월 13일이 제 생일인데, 2월 12일에 수술을 하게 되었네요.


이것저것 수술 관련 검색을 하다보면, 좋은 케이스와 나쁜 케이스 둘 다 보게됩니다. 이식 수술이 실패해서 다시 투석을 하게 되는 분, 더 어린 나이에 수술을 하는 분들, 한편으로는 이식 수술 후 40년 넘게 유지하는 분들... 많은 사연을 접하게 돼죠.


나는 어떤 사연을 남기게 될까 걱정이 앞섭니다. 처음 하는 수술이니 더 두렵지만, 나 혼자 하는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하며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수술실 밖에서 가족들과 금방 오겠다고 걱정말라고 이야기하고 혼자 들어갑니다.


약간은 차갑고, 시원한 수술실, 영화, 드라마에서만 보는 것들을 하게 됩니다. 이름 체크하고, 머리 가리는 거 쓰고, 여러가지 선 연결하고 입 마개(?)도 하고, 할 거 다하면서 의사선생님들이 걱정하지말라고, 떨지말라고 이야기해줍니다.


분명, 아직 마취하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했는데

그 기억을 끝으로 잠들었습니다.


수술 끝!

정신 차리니 회복실입니다. 몸에 주렁주렁 뭔가 매달려있고,

처치해주시는 선생님이 눈뜨세요~ 잠들면 안돼요~ 잘 끝났어요~ 이렇게 이야기 해주세요.


아직 아픈 느낌은 없습니다. 마취가 덜 깼는 지, 멍하게 아 끝났네, 아빠는 괜찮은가? 아프진 않네... 별의 별 생각이 다 듭니다. 근데 그러고 병실로 어떻게 올라왔는 지 기억이 잘 없어요.


정신을 좀 차리니까 병실에 누워있고, 간호사 선생님이 너무 참기 힘들면 누르라면서 한 손에 무통주사버튼을 쥐어줍니다. 버튼 누르면 자동으로 진통제가 들어가요.


*주의: 무통주사는 마약성 진통제로 한 통밖에 안줍니다! 아껴쓰세요!



수술하고 이거 주는 데, 열심히 불어야 해요. 안하면 혼남..☆


이제 고통이 오는건가!

병실에 누워있으면, 이제 두려움의 시간이 옵니다.

마취가 풀리겠지? 아프겠지? 하아... 진통제만 믿는다.


제 기억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오히려 수술 후 통증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에 안 아프다하면 거짓이구요...)

단, 가만히만 있으면요.


고통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잖아요. 어딘가에 베인 아픔, 멍이 든 아픔, 주사맞는것처럼 찌르는 듯한 아픔 등등 있지만, 이식 수술 고통은 엄청 큰 멍이 든 아픔 같았어요.


조금만 움직여도, 거대한 멍자국을 누르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안움직이면 참을 만해요. 정말 죽겠구나 하는 아픔은 아니었습니다.

기침이나 웃음 나오면 엄청 아픕니다! 그것만 조심하세요!!

웃긴거 보지 마시고, 기침은...참..으세요..


이식 수술 코디네이터말로는 출산 고통에 비하면 훨 안 아프고, 공여자가 더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수혜자인 저보다 공여자인 아버지가 더 아프게 있다고 생각하면, 참아야죠 ㅎㅎ..


제 생각엔 조금이라도 아플 때마다 무통주사 마구 눌러서 고통이 줄었던 것 같아요.

그걸로 한 그래도 3~4일 정도 버틴 것 같아요.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아껴쓰세요! 오래 버텨야해요!


수술 후 회복

수술 수 가스도 차고, 붓기도 부어서 몸무게가 평소보다 10kg 정도 더 나갔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들어 퇴원할 때 70으로 퇴원했습니다.


수술 후 4일차에 소변줄 제거하고, 스스로 일어섰습니다. 투석으로 인해 방광이 줄어든 와중에 이식 후에는 물을 최대한 많이 먹으라 그래서 화장실을 굉장히 자주갔어요. 자연스럽게 잠도 잘 못자고, 속도 더부룩하고 환장하겠더라고요.


화장실 자주가는 건 4,5 개월정도 그랬던 것 같아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요.



조직검사 그리고 카테터 제거!

수술 후 10일 정도가 되면, 조직검사를 하고 퇴원합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고 힘든 검사에요.


아픈 것도 아픈데, 검사 이후 지혈할 동안 제대로 화장실을 갈 수가 없어서 참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카테터로 투석을 했기 떄문에, 이제는 필요없는 카테터 제거도 합니다.

남들은 금방 시원하게 금방 뺸다고 했는 데, 저는 깊숙히 박혀있고 지혈이 안되어서 시간도 오래걸리고 피부지지고 난리였습니다. 그치만 수술 했는 데, 이게 뭐 대수인가요. 점점 주사와 칼에 무감각해집니다.

아픔은 역시 마취를 하고 하기 때문에, 삽입할 떄와 비슷합니다. 불편한 아픔이에요.


무슨 문제가 생겨도 병원에서 살려주시겠지라는 믿음도 생겨요.


비용

처음에 수술+입원 비용은 1500만원 정도 잡아야한다고 했는 데, 생각보다는 덜 나왓습니다.

혈장교환술을 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지만, 퇴원할 때 600만원 정도 결제했습니다.


이것도 사람마다 다른 가 보더라고요.



면역억제제는 이제 죽을 때까지 먹는 거!


퇴원! 집으로!

어? 나 이 몸으로 퇴원해도 되는 건가 싶지만, 일단 집으로 가고 싶으니 그리운 집으로 갑니다.

공여자는 수술 5일 이 지난 후 이미 퇴원했고요, 수혜자인 저는 대략 10일 정도 걸렸습니다.


여전히 거동은 불편하고, 복부에 고통이 남아있어 복대를 차고 생활해야합니다.

마스크도 상시끼고 있고요.


외출은 3개월간 금지됩니다. 병원 외래를 갈 땐 제외하고요.

그치만 코로나가 터져서, 이건 저 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마찬가지였죠.


처음 외래는 1주일마다 갔지만, 점점 늘어서 지금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가고 있습니다. 몸의 상태도 시간이 흐르면서 아주 천천히 좋아집니다. 3개월 정도는 쉽지 않을거에요. 여전히 화장실도 자주가고, 움직임도 싶지 않습니다.


6개월 정도 되면, 이제 조금 살만합니다. 걷기 운동도 종종 하고, 컨디션도 한결 좋아집니다.

시간이 약이에요. 천천히 좋아질거란 믿음을 갖고, 약 잘 챙겨먹고 밥 조심히 식사하시면서, 보내야합니다.



번외: 거대세포바이러스

대부분의 이식 환자가 겪는 코스 같습니다. 면역억제제를 먹으면서 몸 안에 있던 바이러스가 나온다고 해요. 저는 열과 설사가 심해져서 병원을 가니, 거대세포가 꽤 나왔다고해서 입원했었습니다. 수술 한지 3개월을 채 넘겼을 때였어요.


병원 가는게 얼마나 싫던지요. 피 검사 하면서, 하루 종일 주사약 치료를 받습니다. 한 4,5 일 정도 지나서 거대세포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퇴원합니다.



이식 후 8개월 다시 직장생활

8개월이 지난 후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근무 여건이 최대한 스트레스 덜 받고 적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찾았습니다. 아직은 좀 두렵더라고요. 그러고 지금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몸 상태는 평범한 일반인 같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글이 매우 길어졌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힘든 건 정신이었어요.


한창 바짝 일하고, 사회생활해야하는 나이인데, 한 순간에 환자가 되었으니까요.

투석 기간도 지치고, 이식 수술도 이후의 삶도 여전히 힘든 건 정신이에요.


내가 다시 뭘할 수 있을까,

이게 삶인가,


자연스럽게 주변에 징징될 수 밖에 없고, 좌절과 우울에 빠질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이었어요.


괜찮다, 잘 될거다, 나중에 더 건강할거다, 내가 기도할게, 수술 잘 될거야


이런 식으로 계속 말을 해주니, 덩달아 힘내게 되더라고요.

만약, 주변에 이런 일을 앞두고 먼저 힘들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징징 거린다고 피하지 말고, 좋은 말 한 마디 해주세요.


그거 진짜 쉽지 않은 날을 버티고 있는 거거든요. 정말 힘들어서 그러는 걸거에요.

본인도 알아요.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 듣고 위안삼고 싶은거에요.


지금도 전 가장 고마운 사람들이

그 때 저에게 말해준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만약 이식 수술을 앞두고 들어오신 분이 계신다면,

수술도 끝이 아닌 것 알고 계실거에요.

저는 여전히 겁나고 무섭거든요.


다시 저 과정을 겪게 될까봐,

아니, 저 과정을 언젠가 다시 겪을텐데

그 때 내가 무너질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요. 자신이 안 생겨요


그러다보니, 일상 생활의 생각도 많이 바뀌어요.

감정이 쉬워져요.

쉽게 슬프고, 우울감에 빠져요.

슬픔, 우울감역린을 더 많기 갖게 돼요.


그러다보니, 쉽게 들뜨거나 기쁘기도 쉽지 않아요.

어느 날은 아무 이유 없이 좋다가도, 이런 생각을 하면 금방 바뀌죠.


우리에게 닥칠 미래가 더 복잡하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같이 잘 버텨나갑시다.


오래 살아요. 우리,



매거진의 이전글 2월 리뷰 -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간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