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트 오너가 하는 일, 마케터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오랜만입니다. 마지막 글 이후로 무려 두 달만이네요. 3개월 전 이직을 한 이후, 무사히(?) 수습 기간을 마쳤습니다. 벌써, 새로운 곳에서도 100일이 지났네요. 더 시간이 가기 전에 100일간의 PO 생활을 글로 정리해 보려 합니다.
저는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마케팅 대행사에서 업무를 시작해 퍼포먼스 마케터, 컨설팅 회사의 마케팅 컨설턴트 그리고 다시 마케터로 브랜딩과 마케팅, 광고 업무를 하다 PM으로 업무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업개발 매니저이자, PO로 근무 중입니다. 스페셜리스트는 아니지만, 점점 제네럴 리스트가 되어가는 기분입니다. 조금은 잡다한 이력 속에서 밥벌이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오늘은 잡무로 성장한 제네럴리스트 마케터가 어떻게 프로덕트오너로서 밥벌이를 하는 지,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물론, 늘 그렇듯 소소한 경험 이야기입니다.
마케터로 일을 하며, 근본적인 벽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프로덕트(서비스)의 문제로 마케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죠. 마케팅의 시작은 좋은 제품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이 좋아야 마케팅의 힘을 받아 좋은 상품이 되는 것이죠.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를 잃는 순간부터 마케팅을 고독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우리 제품이 타사에 비해 ‘더 좋은’ 무언가가 있다면, 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유리한 무기를 갖고 싸울 수 있지만, 타사와 비슷한 제품과 특장점으로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기보다 힘에 의지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큰 돈의 광고, 굉장한 콘텐츠와 카피라이팅 등 제품 자체보다 외부 요소로 가짜 차이를 만들어 내죠. 이 방법이 틀린 것도 아니고 마케터의 일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케터로서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고객이 우리 서비스를 좋아하는 것이 핵심이라면, 좋은 서비스에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꼭 완전히 다른 일도 아니었고요. 저는 여전히 마케팅의 핵심 전략은 4P에 의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Place), 제품을(Product), 얼마에(Price), 잘 팔 것(Promotion)인 가를 고민할 때, 제품을 더욱 잘 만들고 싶을 뿐이었죠.
다른 한편으로, 마케팅의 스페셜리스트로서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콘텐츠, 브랜드, 퍼포먼스 등 모든 분야의 경험은 있지만, 콘텐츠 마케터로서는 운영한 채널의 숫자가 적었고, 브랜드 마케터로서는 브랜딩 레퍼런스가, 퍼포먼스 마케터로서는 광고 운영비가 적었습니다.
단, 마케터로서 고민했던 ‘어떤 모습을 고객이 좋아할까?’, ‘고객이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어디에 가야 우리가 찾는 고객을 만날 수 있을까?’와 같은 경험은 갖고 제품을 고민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 직무가 바로 프로덕트 오너(PO)와 가까웠죠.
설로인이라는 회사에서 온라인 한우 도매 플랫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굉장히 생소하고 일반인은 살면서 거의 접할 일이 없는 분야이죠.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한우는 정육점에서, 밖에서 사 먹는다면, 고깃집에서 만날 뿐이니까요. 온라인 한우 도매 플랫폼은 그 앞 단계에서 한우를 정육점과 고깃집에 가져오는 분이 사용하는 서비스입니다. (본대로라는 서비스입니다. https://www.bondaero.kr/ )
워낙 PM/PO에 대한 정의가 많고, 회사마다 조금씩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원티드나 로켓펀치에 들어가 스타트업 PO/PM 채용 공고를 보면 혼용되어 있기도 하고요. 토스에서는 다음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제가 속한 플랫폼팀은 조금 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사업개발매니저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보니, 더욱 광범위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팀 내 PO의 정의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하는 사람’입니다. 조금 더 살을 붙이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잘 정의하고, 우선순위에 맞게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PO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에 기반해 수행업무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서비스 기획의 시작점입니다. 현재 시장에서 갖고 있는 문제점을 정의하고,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합니다. 현재 만들고 있는 본대로라는 서비스를 예로 들어 볼까요?
한우 도매 시장은 오프라인에서 주로 이루어집니다. 흔히 알고 있는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고기를 가져오기도 하고, 육가공업체를 통해 가져오기도 하죠. 고깃집/정육님과 업체 간의 거래가 시작됩니다. 사장님과 영업사원 간의 거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고기는 생물이다 보니, 기성품처럼 스펙이 정해져 있지 않아, ‘어떤 형태의 고기를 원한다.’라고 요구를 하면 영업사원이 그걸 반영해 원하는 스펙의 부분육을 제공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서서히 둘의 합의점을 찾아 가게 됩니다 좋은 고기가 들어오면 영업 사원이 먼저 연락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문제 있는 고기가 들어와도 사장님이 이해를 해주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서로의 관계로 거래가 이루어집니다.
자, 그럼 여기서 무엇이 문제일까요?
중요한 고기 상품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익숙한 거래 방식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사장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인 고기, 특히 한우는 고객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품입니다. 눈으로 잘 보고 사야만 하는 것이죠. 이해 관계 속에서 가격 투명성이 가려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이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본대로의 시작입니다.
서비스 오픈 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제 정의를 하다보면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타납니다. 위 글에서도 육가공업체, 영업사원, 고깃집 사장님, 정육점 사장님 등이 등장하죠. 육가공업체, 영업사원이 판매자로, 고깃집 사장님과 정육점 사장님을 구매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들을 중개해주는 본대로가 관리자가 되겠죠.
등장인물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라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심각한 지, 혹은 정말 문제가 맞는 지 그리고 때로는 이들은 어떤 해결을 필요로 하는 지 등을 자세히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구통계학적으로는 등장인물의 연령대와 행동패턴 등을 알아볼 수 있고, 업장의 매출과 고기 구매 방식 등까지도 알아 볼 수 보며, 등장 인물을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등장 인물과 이 들의 환경을 이해하면, 다음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을 수립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부분육을 구매하는 사람은 100평 규모의 한우 전문점, 강남, 송파 지역의 정육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높은 수요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가설은 늘 새롭게 세워지며, 채택과 기각을 반복합니다. 서비스 수요에 대한 가설뿐 아니라 마케팅과 광고, 브랜딩 적으로도 함께 고민합니다. PO는 결국 고객이 고민하는 문제를 프로덕트로서 해결해주는 사람이니까요.
본격적으로 고민이 서비스에 녹아내는 과정입니다. 어떤 방향성을 갖고 서비스를 완성할 지 초기 와이어프레임을 제작합니다. 결국은 고객을 만나는 것은 서비스이므로, 더욱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UX/UI 적인 고민은 내부 UX/UI 디자이너가 문제를 풀어주고 있습니다.
아직 본 서비스는 아니지만, 테스트 서비스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만든 서비스에서 유저가 어떻게 행동하는 지 보고, 반복해서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본 서비스가 오픈한다면, 더욱 집중해서 빠르게 개선해 나가지 않을지 싶네요!
뚜렷하게 ‘이래서 좋다.’라는 건 없습니다. 마케터가 별로고, PO가 좋다 이런 것도 아닙니다. 최근 직무 전환을 생각하는 분이 많아 남겨보려고 합니다. 사실 큰 방향의 고민은 크지 않습니다.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필요로 할 지 고민하는 거니까요.
마케터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지 않은가요?
고객 이해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다가가서 설득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결국 마케터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목적은 비슷합니다. 수단의 차이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은 ‘어떻게 하면 우리 서비스가 고객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까?’도 중요하지만 PO는 ‘어떤 서비스가 있어야, 고객들이 우리 서비스를 좋아할까?’를 더 고민하는 사람 같더라고요.
이러나 저러나 스토리를 잘 짜는 사람이 중요했습니다. 어떤 고객이 우리 서비스에 들어와서 어떤 지점에서 만족하고, 좋아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써내려가죠. 그 이야기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길 시작합니다.
마케터도 비슷하잖아요?
어디에 가면 우리 고객이 있고, 어떻게 이야기하면 우리 서비스를 좋아해 줄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시작하죠.
이야기의 배경이 다르다고 할까요?
한 쪽이 고객을 데려오면, 다른 한 쪽은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해 만족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의 해피엔딩을 향해, 노력하는 것도 똑같죠.
돌고 돌아 마지막도 고객이네요. 그 만큼 고객 중심으로 일을 한다는 건 똑 같은 것 같습니다. 단지, 그 방법을 콘텐츠로서 고객을 찾아갈 건지, 광고로서 알릴 건지 아니면 들어 온 고객을 위해 서비스로 설득할 건지 차이이죠.
PO/PM 직군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더 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관심사에 있으니, 눈에 자주 띄는 것도 같지만, 신입으로 시작하기 보다 주로 커리어 전환을 통해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좀 미지의 직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주변을 보면, 보통 기획자 혹은 디자이너가 PO로 직무 전환을 많이 하더라고요. 간혹 마케터도 있긴 하지만요. 제가 느낀 마케터의 PO 도전은 생각과 고민의 폭이 더욱 넓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기획자보다 화면을 더 잘 그릴 수는 없고, 디자이너보다 더 화면을 예쁘게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마케터는 고객에 더욱 익숙한 고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차이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고객을 데려오는 것과 들어 온 고객을 서비스 안에서 행복하게 하는 건 다르니까요. 여러 직무의 사람들과 엮여야 하는 일도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더 많은 내,외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야죠.
100일 간의 PO 생활을 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PO는 무슨 일을 하나요?'라고 하면 사실, 회사마다 여전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단지, 업무 범위가 다를 뿐!
서비스 오픈 이후 다음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