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나의 그녀

내가 사랑하는 사람

by 오뚝이



나의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모집한 캄보디아 봉사단 첫 모임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모임 후에 친목을 다질 겸 우리는 다 같이 학교 근처 술집으로 갔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술 좋아해요~”


그 당시 내 나이 스무 살.

정신은 아직 고등학생이었으므로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가 조금은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술.. 술을 좋아하시는구나.. 우와…“


그녀는 당시 뮤지컬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녀는 누구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캄보디아 봉사 일정은 총 한 달이었는데 하루 일정이 끝나면 다 같이 둘러앉아 (멤버는 총 14명이었다.) 그날 하루가 자신에게 어땠는지 얘기하는 이른바 ‘나눔’이라는 것을 매일 밤 하였다.


사실 나눔 시간에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녀가 거의 매일 말하다가 울었던 것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오늘 저는 …….. 하다가………. 그러다가 흐…흐흐흑……흐흐 흐흑 훌쩍”


우리는 생각했다.

‘쟤 또 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눈물이 많은 여린 사람이었다.


캄보디아. 아기 개코.



대학교 마지막 학기.

나는 4년 내내 먼 거리를 통학하였는데 그 때문에 공부를 할 시간이 없다고 하며 오랜 시간의 투쟁 끝에 부모님으로부터 자취를 허락받았다. 야호. (당시에 나는 학점을 올려야했다. 대학교 내내 놀았으므로 막학기였음에도 불구하고 18학점을 꽉 채워 들어야했다. (보통 막학기에는 3~6학점을 들으며 취업준비를 한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게 나중에 로스쿨 입학시 도움이 될줄은 몰랐지...당시 나는 내가 로스쿨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녀와 나는 같은 오피스텔에서 층만 다른 층에서 살았다. 나는 15층 꼭대기, 그녀는 13층. 사실 말이 좋아서 오피스텔이지 그때 그 방은 지금 내가 고시촌에서 살고 있는 방보다 훨씬 좁았다. 그렇게 비좁은 방이었음에도 우리는 서로의 방을 오가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당시 그녀는 뮤지컬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으로의 석사 과정을 준비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방으로 놀러 갈 때면 그녀는 항상 입학 원서를 쓰고 있거나, 원서 접수 시 함께 제출해야 하는 뮤지컬 대본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졸업 후 캄보디아에 있는 NGO에서 활동가로 일하기로 이미 확정이 되어있었으므로 그녀가 열심히 석사 입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 옆에서 수다나 부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나를 귀찮아하지 않았다.


하루는 호기롭게 미역국을 끓인 날이었다. 맛을 봤는데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SOS를 쳤다. 그녀는 한달음에 내 방으로 와서 미역국을 심폐소생 시켜주며 말했다.


“앞으로 그냥 사 먹어…이런 맛이 나는 미역국은 생전 처음 먹어봐. “


“알겠어… 그럴게…”


캄보디아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나를 보러 왔다. 우리는 시내에 있는 작고 예쁜 방을 잡아서 밤새도록 밀린 수다를 떨었다.


그녀의 캐리어는 자신의 짐은 몇 없고 전부 나에게 줄 한국라면들과 책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감동…



우리는 함께 캄보디아를 여행했다.



20대 전부를 석사와 박사를 하며 공부에 바친 그녀가 드디어 뮤지컬 작가로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돼서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공연들은 취소되고 그녀는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의 힘든 시기를 버티던 그녀.


지금은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극본상을 받으며 인정받는 뮤지컬 작가가 되었다.


그녀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는지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그녀는 말기암 판정을 받고 투병을 하였다. 그것도 이 세상에 환자가 100여 명 밖에 없는 희귀 암…


그녀는 오랜 시간 투병을 하였고 결국 살아냈고 지금도 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살고 있다. 요즘도 컨디션이 나쁠 때가 종종 있으나 그녀는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당연시하지 않고 아주 잘 살아내고 있다.


나의 그녀는 바로 브런치 작가 ‘아스토리아’이다.

나에게 종종 오만 원이라는 큰돈으로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바로 그녀다.


그녀에게 꼭 보답하겠다고 말하니 그녀가 말했다.


“이 힘든 거를 잘 버티는 거 자체가 보답이야. 용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맛난 거 사먹어. 먹는 거로라도 스트레스 풀어야지. “


멋… 멋있다… 미치도록 멋있다…


그녀는 비록 지금 이 시간을 잘 버티는 것이 보답이라고 하나 나는 반드시 합격을 해서 내 삶을 그녀처럼 멋지게 사는 것으로 보답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줘.

나의 친애하는 언니, 나의 대모.

‘아스토리아’ 작가님!





커피소년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괜찮다 말해줄게

다 잘 될거라고 넌 빛날거라고

넌 나에게 소중하다고

모두 끝난 것 같은 날에

내 목소릴 기억해

괜찮아 다 잘 될거야

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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