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내가 꼭 합격해야 하는 이유

by 오뚝이


고시촌에 들어와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모두와 연락을 끊다시피 하고 지냈었다.


인스타그램은 로스쿨 1학년 때 계정을 폭파했고, 페이스북도 당연히 끊고, 카톡도 부모님을 제외한 1~2명의 친구들하고만 드문드문 생존신고 수준의 연락을 주고받곤 했었다.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세상과 단절한 채 공부를 해야만 합격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나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잊혀진 줄 알았다. 나에게 딱히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메시지를 바로 확인하고 답장을 할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 친구들이 놀러 가서 찍은 사진, 결혼한 사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진 등이 보였다. 그 사진들을 보면 나의 시간만 멈춰있는 것 같아서 일부러 다 숨김처리를 했다. 아예 눈에 보이지 않게...


마지막 변호사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어쩌면 예전보다 훨씬 더 공부에만 몰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삶의 활력이 생겼고, 나중에 이 시간들을 돌아보며 추억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았다.


나의 브런치 글을 '완독'한 호주에 살고 있는 언니가 말했다.


"브런치 글 다 읽었어!!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뎌왔는지 이제야 알게 돼서 정말 미안하네.

'ㅋㅋㅋ' 거리면서 카톡 하긴 했어도 그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고 마음 쓰지 못한 게 계속 걸렸어. 글이 술술 읽히기는 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와 아픔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거 잘 알고 있어. 이제라도 네 이야기를 알게 돼서 고맙고, 앞으로도 열혈 독자로 귀 기울이고 있을게! 완주할 때까지 절대적으로 네 편에서 응원하겠어!"


(언니 정말 고맙고, 사랑해!)




네 번째 변호사 시험을 보고 나는 무작정 캄보디아에 갔다.


로스쿨 3년, 고시촌에서 3년 총 6년의 시간 동안 아무런 성과 없는 공부를 하면서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캄보디아에 꼭 가고 싶었다. 아니, 가야만 했다.


캄보디아에서 일했던 곳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수회 신부님들이 머무시는 공간에 머물 수 있게 해 주셔서 그곳에서 지내며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모두 만났다. 한 명, 한 명과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거의 9년 만에 만난 것인데도 모두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 전혀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음에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예수회 센터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예수회 센터


캄보디아 직원 언니의 집에 초대받아 언니가 직접 차려준 캄보디아 현지 음식을 먹기도 했고, 언니가 나를 오토바이를 태워서 다른 직원의 집들을 방문하며 인사를 나눌 수 있게 해 줬다. 모두 나를 잊지 않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공부하며 나는 정말이지 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 나를 너무나 벅차게 했다.





캄보디아에서 남편과 함께 정착해 살고 있는 대학 후배도 만났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캄보디아에 자원활동을 하러 갔을 때 나를 친동생처럼 챙겨줬던 언니도 만났다. 그때 내 나이 22살이었다. 언니는 싱가포르 사람이고 나보다 6개월 먼저 캄보디아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언니 역시 캄보디아에 정착해서 자신의 샵을 오픈해서 일하며 살고 있다. 언니는 말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네가 로스쿨에 들어가고 일을 하게 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놀랐다. 언니는 워낙 털털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런 스윗한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나 그리워했다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음과 동시에 나는 연락도 잘 못하고 했던 것이 미안했다. 언니에게 말했다.


“내가 꼭 합격해서 다시 놀러 올게! 이제는 우리가 더 자주 뭉칠 수 있을 거야!”



대학 졸업 후 일했던 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캄보디아 동생도 만났다. 그 동생은 어느새 삼십 대가 되어있었고 스스로 운전도 하고 일도 잘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차에우’라는 캄보디아 음식과 ‘벙아엠’이라고 하는 달달한 디저트를 사줬다. 이제 돈을 번다고 자기가 다 사더라.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프놈펜에서 버스로 7~8시간 떨어진 시소폰이라는 지역에 있는 예수회 학교(Xavier Jesuit School Cambodia)에도 갔다. 그곳에서 활동가들과 신부님들을 만났고 내가 그곳에서 오일 간 머물 수 있게 해 주셨다. 그것도 에어컨이 빵빵 나오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호텔급 방에서 머물게 해 주셨다. 그곳에서 지내며 활동가들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홍콩에서 오신 영어선생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나의 합격을 진심으로 기원해 주셔서 참 감사했다. 시소폰 공동체 사람들 모두 나의 합격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었다..



내가 합격해야 할 이유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응원해 주는 너무나 많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 때문이다. 이들의 응원과 기도에 보답하고자 남은 기간 정말 후회 없이 열심히 해볼 것이다. 난 정말 이 모든 이들에게 합격 소식을 꼭 전하고 싶다..






저의 글에서 캄보디아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봉사단 소속으로 처음 간 것이 인연이 되어 여러 번 캄보디아를 오가며 지냈습니다. 혹시라도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실까 싶어서 제가 일했던 곳의 영상과 시소폰 예수회 학교의 영상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대학 졸업 후 일했던 곳입니다. 이름은 '반티에이 쁘리업' 우리말로 하면 비둘기 센터 입니다.



네 번째 시험을 마치고 올해 2월에 방문한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 영상입니다.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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