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개론
대학시절 아주 잠시 기자가 되고 싶었다.
캄보디아를 만나 ngo 활동가로 장래희망이 바뀌기 전까지는..
기자가 멋있어 보였다.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일, 누군가의 삶 속에 들어가서 인터뷰하는 일, 사회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일 등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쓸데없는 정의감이 넘쳤었다.
정의감이 항상 좋게 작용되지는 않았다..
중학생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내 친구가 말했다. 사실 자신이 괴롭힘을 당했었다고. 가해학생들은 소위 일진이었다(지금의 일진에 비하면 매우 순한 맛이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결코 순하지 않다.). 내 친구는 내게 그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친구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말한 친구는 공교롭게도 그 일진과 경쟁구도(?)에 있는 친구였다. 어느 날 두 일진이 대결(?)을 하는데 나의 친구였던 일진이 말했다고 한다.
“너 옛날에 00이 괴롭혔었다며?”
1교시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한 무리의 일진들이 내 친구를 둘러쌓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들에게로 가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총동원하여 말했다. 사실 나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몹시 떨리는 목소리로 최대한의 용기를 끌어모아 욕을 퍼부었다.
"너가 옛날에 00이 괴롭혔었잖아!!!!!!!"
이내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한 무리의 일진들은 사라졌다. 나는 그 당시 교탁이랑 마주 보는 맨 앞자리였는데 씩씩 거리며 얼굴이 시뻘게져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무슨 일이냐고 했었던 거 같다.
얼마 후 교무실로 불려 갔다.
나의 죄목은 친구가 말하지 말라는 말을 전달한 죄였다. 그때 나는 억울했다. 어찌 됐든 그 일로 일진들은 과거의 행실이 드러나게 되어 더 이상 내 친구를 괴롭히지 못하게 됐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싶었다.
그때 내가 받은 벌은 일주일 동안 복도와 계단을 청소하라는 거였다. 일진들은 나보다 더 큰 벌을 받은 거 같았다. 당시에는 체벌이 허용됐으므로 손바닥을 맞고 청소를 하라는 벌을 받았던 거 같다.
그런데 나는 나름 정의를 실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던 내 친구는 내게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친구의 어두운 기억, 내게 힘들게 털어놓은 비밀을 너무 가볍게 발설해 버린 것이었다. 나는 결국 그 친구에게 상처를 준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어 중학교 졸업 이후 그 친구를 본 적 없다. 어딘가에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좋겠다. 그 친구가 가끔 생각난다.
정말 황당한 것은 그 일진 무리 중 대장이었던 아이가 훗날 기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지금은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을 상처를 준 사람이 쪽방촌 어르신과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자기가 학원을 오고 있는데 00 오빠가 자기를 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00이 오늘 예쁜데. 너 때문에 남자애들이 공부 못하겠는데~”
그 친구는 그날 원피스를 입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이성을 잃었다.
심지어 그놈은 같은 로스쿨 사람이었다.
그건 명백한 성희롱이라고.
너보다 10살이나 많은 놈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그놈이 그 정도로 저급한 놈인지 몰랐다고. 학원 원장님한테 말해야 될 일인 거 같다고 했다.
친구는 자기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친구가 그 말을 한 남자보다 훨씬 나이가 어리니 따지지 못할까 봐 대신 따져주려고 했었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하며 되려 몹시 화가 난 나를 보고 당황스러워하는 친구를 보고 생각했다.
’아.. 여성이라고 모두 다 성인지감수성이 있는 건 아니구나…‘
내가 한참 열이 받아 있을 때 다른 친구가 말했다.
“언니는 기자가 어울려.”
갑자기…?
내가 캄보디아를 만나지 않았다면 정말 기자가 됐을까. 당시 학교에 언론고시반이 있었는데 언론고시반에 들어가는 거 자체가 경쟁이 세서 어려웠다.
언론고시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시험을 쳤으면, 그래서 기자가 됐으면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