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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무말

‘공감한다’, ‘이해한다’는 말의 가벼움

글쓰기와 말하기

by 오뚝이


속초, 문우당서림



‘잘 극복해서 합격하라’는 말이 왜 그렇게 나를 건드렸을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내게 ‘압박감’을 줘서 그런 거 같다. ‘극복’, ‘합격’ 분명히 좋은 단어들의 나열인데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준다. 둘 다 내겐 너무나 큰 산처럼 느껴지는,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단어들이니까. 그리고 ‘잘 극복해서 합격하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처럼 쓰여서 그런 거 같다. 마치 나쁜 선생님이 학생에게 ‘넌 이 쉬운 걸 왜 못하니’라고 말하는 거처럼.


‘공감한다’는 ‘말’은 참 가볍다.

내가 온전히 타인을 공감할 수 있을까. 그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 사람만이 보낸 시간, 그 사람만이 느낀 감정들은 온전히 그 사람 것이니까.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상대의 경험이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한 번 정제된 채 전달되는 거니까. 그래서 점점 더 ‘내가 너를 이해한다.’, ‘내가 너의 말에 공감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게 되는 거 같다.


그동안 나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며 나도 누군가가 힘들었던 시간, 아팠던 시간을 내게 나눠줬을 때 ‘공감한다.’, ‘이해한다.’는 말을 가볍게 써서 혹여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냥 들어주고 가만히 손을 잡아줬어야 했는데 괜히 한없이 가벼운 ‘말’을 덧붙여 상대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글’과 ‘말’이 넘치는 세상.

나도 이곳에 글을 쓰고 있지만 가끔은 피곤해진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치유하는 글, 타인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서 나의 생각을 확장시키는 글의 힘을 믿는다. 결국 다 같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완전히 옳고, 완전히 그른 것은 없으니까.



속초, 문우당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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