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엄마, 아빠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살자.

영원한 내 편

by 오뚝이

5월 말이었다.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아빠가 3~4일 동안 기절을 6번을 했다고…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다고 했다고… 응급실에 다녀온 후에도 계속 기절을 했다고. 나에게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알고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뒤늦게 소식을 알리는 거라고.


사실 그때 완전 멘탈이 나가서 공부를 그만두려 했다(극단적인 편..).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효도다운 효도를 못해본 거 같은데 그리고 이 나이 먹도록 부모님 등골을 빼가며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미쳐버릴 거 같았다.


시험에 네 번을 떨어지면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슬프지는 않더라.. 그냥 다시 공부해야 된다는 사실에 막막할 뿐) 그날 누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어서 내가 의지하는 수녀님께 연락해서 통화를 하면서 엉엉 울어버렸다. 수녀님은 진정하고 지금 어차피 공부가 안될 테니 집에 며칠 다녀오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내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신부님, 수녀님, 친구들 기억나는 모두에게 연락해서 기도를 부탁했다.


아빠는 밖에서 기절하면서 넘어져서 말 그대로 눈탱이 밤탱이가 되어있었다. 왼쪽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아빠가 며칠 동안 집에만 있었다고 해서 나랑 같이 걸으러 나가자고 했다. 아빠는 눈에 멍든 게 창피해서 나가기 싫다고 했다. 그럼 선글라스를 쓰고 나가면 되고 남신경을 왜 쓰냐고 하며 억지로 끌고 나갔다. 아빠는 조금밖에 안 걸은 거 같은데 저기 있는 의자에 잠시 앉았다 가자고 했다. 마음이 무너지는 거 같았지만 그러자고 했다.


내가 다시 신림으로 돌아온 후에 아빠는 집중치료실에 들어가서 온갖 검사를 했다고 했다. 검사 결과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뇌로 피가 안 가서 기절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맥박과 혈압이 번갈아가며 너무 낮다고 했다. 그 후에 아빠는 심장에 기계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으셨다. 아빠에게 매일 전화해서 상태를 물으면 아빠는 그저 괜찮다고 허허 웃기만 했다.


그런데 엄마의 상태가 더 좋지 못했다. 아빠가 기절해서 눈이 뒤집히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떠는 모습을 엄마가 두 눈으로 직접 보았고, 아빠가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엄마가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만 하니 엄마에게 전화할 때마다 엄마의 목소리는 초죽음 상태였다. 내가 합격했으면 연차나 휴가를 내서라도 아빠를 모시고 병원을 다니며 케어했을 텐데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머리로는 이럴수록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꼭 합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너진 마음은 좀처럼 회복할 줄을 몰랐다.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졌다.


어제 부모님이 신림에 다녀가셨다. 아빠는 이제는 많이 회복해서 좋아하는 당구장에도 놀러 간다고 했다. 로스쿨에 입학한 후 부모님과 떨어져 살며 오랜만에 부모님을 볼 때마다 얼굴에는 주름이 늘고 아빠의 풍성했던 머리숱은 휑해져만 갔다.


엄마는 앞으로 20년을 더 살 거면서(70대니까 30년 더 사는게 맞겠네. 백세시대니까.) 나중에 요양원에 보내지 말고 간병인을 써달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간병인은 개뿔. 내가 같이 살 건데(엄마는 절대 싫다고 함. 가까이 살기도 싫다고 함.) 부모님은 자신들 걱정은 말고 내 걱정이나 하라고 했다. 그게 쉽냐고…


그렇지만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점점 더 나아질 것이고, 점점 더 잘하게 될 것이고 결국엔 합격할 것이다. 합격 소식을 전하는 순간. 엄마, 아빠는 뛸 듯이 기뻐하시겠지. 조금 울지도 모르지? 기뻐서 울어본 적은 딱히 없는 거 같은데 머지않았다. 기쁨에 날뛰며 울 그날이.



38년을 같이 살면 걷는 폼도 같아지나보다.


의도치 않았으나 커플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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