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직업의식(고시촌 복사집 사장님 이야기)

어느 자리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삶

by 오뚝이


고시촌에는 복사집이 정말 정말 많다. 다들 원룸에 사니 집에 프린터기가 없어서 문서 작업 한 것을 출력하러 가거나 강의자료를 복사하러 가거나 책을 분철하거나 스프링 제본을 하러 복사집을 찾는다. 그 많은 복사집 중에서 유독 학생들이 많이 가는 곳이 있다. 그곳의 비결은 무엇일까?


내가 고시촌에서 가장 좋아하는 복사집.

<스피드 복사집>



처음 그곳에 갔을 때 꽉 들어차있는 수험자료들을 일일이 연도별, 강사별로 모아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까지.. 복사집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장님 때문이다. 처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아버지뻘인 사장님께서 어서 오세요 하시며 구십 도로 인사를 하셔서 깜짝 놀라 나도 구십 도로 아 네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사장님께 스프링제본을 부탁드리니 그 자리에서 뚝딱뚝딱해 주셨다. 이름처럼 스피드~ 있게. 그리고 잘린 종이가루들이 책 안에 남지 않게 팍팍 털어주셨다. (팍팍 털지 않으면 책 안에 종이가루들이 남고 공부할 때 때 종이가루들이 옷에 붙는다.).



친절하신 사장님과 클래식과 팍팍 털어주시는 모습에 반해 그때부터 그곳에만 책을 맡겼다. 사장님의 목소리는 또 어찌나 soothing 한지… (한국어 표현이 뭐가 있을까요? 아무튼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목소리이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곳에 가서 수험표를 출력했다. 그리고 얼마예요?라고 물으니 수험표니까 그냥 해드릴게요. 그냥 가져가세요~라고 하셨다. 나는 시험 준비물 챙기기에서 만큼은 극 J여서 혹시나 못 찾거나 잃어버릴까 봐 수험표를 다섯 장이나 뽑아서 책가방에, 외투 주머니 등등에 넣는데 그걸 그냥 가져가라고 하신 거다. 합격해서 비타오백이라도 사들고 사장님께 인사드리러 가려고 했는데 올해는 글렀으니 내년엔 꼭 인사드리러 갈 것이다.


반면에, 내가 다니는 정신과 카운터 선생님들은….. 맨날 마음이 아픈 사람들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분들도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그중 한 분의 한숨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병원을 가득 채운 한숨 소리. 그것도 여러 번 병원이 떠나가라 들리는 한숨 소리. 대기실에 있는 시간 동안은 조금 우울하다. 카운터 선생님들의 다크에너지 때문이다. 그들에게 감정노동급의 친절함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그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극단적이게는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을 텐데 환자들을 조금은 배려해서 한숨은 안 쉬면 좋겠다. 그분의 한숨을 매번 듣고 나니 이제는 그냥 저분도 많이 힘든가 보다 한다. 세상에는 힘든 사람들이 참 많다. 그냥 사는 거 자체가 도전이고 힘든 거다.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인간이기에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정체 모를 부대낌 들은 항상 있다. 그분이 한숨 쉴 일 없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복사집 아저씨와 정신과 카운터 선생님을 보며 내가 나중에 변호사가 된다면 의뢰인들이 그 변호사 정말 일 잘했었어, 그 변호사한테 가면 마음 편하게 모든 말을 다 할 수 있어, 그 변호사는 내 말을 다 들어줬어라고 느낄 수 있게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변호사랍시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똥폼잡는 사람 말고..)


그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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