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내 꿈은 락스타(였다.)

대학교 밴드부 보컬 (feat. 자우림 사랑해요)

by 오뚝이

나는 명창 아기였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4살 때 가요톱텐에 나오는 장현철의 '걸어서 하늘까지'를 완창 하는 것을 보고 음악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중학생 때 나는 노래방 죽순이었다. 특히 중3 때 노래방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되어 그 친구들과 항상 학교가 파하면 노래방으로 달려가서 세네 시간을 내리 노래를 불렀었다. 음악 시간에는 장나라의 '아마도 사랑이겠죠'를 불러 에이뿔을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면 밴드부에 들어가는 것이 로망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오디션을 봐서 밴드부 보컬이 되었다. 합격한 날 너무 기뻐 날뛰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녔던 대학교에는 중앙 동아리로 밴드부가 세 개가 있었다(그중 한 개는 헤비메탈만 하는 밴드였음.). 나의 첫 공연은 2학년 선배들의 메인 무대의 오프닝 무대였다. 그때 홍대에 있는 작은 공연장(이름은 기억이 안 남. 유명한 공연장은 아니었다.에서 총 3곡을 불렀었다. 그리고 2학년 1학기 때는 홍대에 있는 조금 더 큰 공연장에서 6곡 정도를 불렀던 거 같다. 학교에 따로 밴드 연습실이 없었기 때문에 홍대에 있는 연습실에 가서 연습을 했었다. 정말 행복했다. 사실 무대에 서는 것보다 연습실에서 합주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했다. 주로 여성보컬이 있는 밴드 하면 누구나 알법한 자우림, 뷰렛, 에이브릴 라빈의 노래를 불렀다. 왁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도 불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회장 놈이 나를 불렀다.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나와 같은 기수로 들어온 기타 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말했다. 내가 노래를 너무 못해서 뒤에서 기타를 치기도 싫다는 것이다. 보컬 학원을 다니던지 하라는 거다. 나는 솔직히 내가 무대를 두 번 다 망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관객들의 반응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건 관객들이 다 친구들이었어서 그랬던 거고 나는 두 번 다 너무 긴장해서 삑사리도 나고 음정도 불안정하고 아무튼 최악이었다. 그 친구의 독한 말에 나는 울음을 참으며 그럼 그냥 내가 동아리를 나가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 상처받았고, 쪽팔렸다. 그 친구와 헤어진 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펑펑 울었다.


나는 왜 그때 받아치지 못했을까? 나는 오디션까지 보고 들어왔고 네가 뭔데 나한테 노래를 못 부른다고 하냐. 선배들도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나한테 난리냐!! 그럼 너는 기타를 잘 치면 얼마나 잘 치냐!! 너네들 수준에 맞춰서 곡을 골라야 해서 내가 부르고 싶은 거 못 부를 때도 있었잖아!!라고 못했을까. 선배들한테 그런 말을 들었으면 납득을 했을 거 같다. 근데 나는 나랑 같은 기수인 아이가 그렇게 말을 하니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 아이는 사실 욕심이 있는 아이였다. 우리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해서 가요제에 나가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모 대학교에서 하는 가요제 예선에 참가했던 적도 있다. 예선은 보컬만 참가하는 거여서 나는 음원을 틀어놓고 혼자 노래를 불렀다. 어이가 없는 것은 그날 동아리에서 아무도 함께 가주지 않았다. 나. 혼. 자. 갔다. 나는 동아리에서 혼자 겉도는 느낌이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나 혼자 인문대이고 대부분이 공대였어서 그런가... 그냥 나는 뭔가 그들과 항상 주파수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무튼 그 아이에게 독설을 들은 이후로 단 한 번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노래방도 가지 않았다. 그 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노래방에 갔을 때 예전처럼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10년 동안이나 노래를 부르지 않아서 성대가 굳은 것인지 아니면 그때 트라우마가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노래를 해볼걸. 그때 학원을 다녀볼걸. 그때 동아리를 나가지 말걸... 20대로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별로 후회되는 일도 없지만 딱 하나. 밴드부를 좀 더 제대로 해볼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사실 그때 나보다 5학번이나 많은 (지금이야 5살 차이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때는 하늘 같은 선배님이었다.) 선배가 나를 붙잡았었다. 그 선배는 나중에 네가 휴학을 하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 몸담고 있던 동아리가 있으면 돌아갈 곳이 생기는 거라 좋아.라고 했다. 그때는 내가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동아리 사람들을 계속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상처받았고 너무 고집스러웠다.


20대의 나는 왜 그렇게 남 눈치를 보고 살았을까? 왜 그렇게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렸을까? 왜 그렇게 주눅 들어 있었을까?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청소년기에 겪어야 했던 사춘기가 대학생 때 온 거 같기도 했다. 그냥 자꾸만 나 자신 안으로 파고들기만 했고 자의식만 비대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게 된 지금도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주로 20대 때 들었던 음악들을 듣는다. 새로운 노래들보다 옛날에 즐겨 들었던 음악들이 훨씬 더 좋게 느껴진다. 노래는 잘 부르지 못하지만 목청은 여전히 커서 고시촌에서 친구랑 떠들다가 내가 웃으면 주위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이다...(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못 다 이룬 꿈을 시험에 합격하면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 그때는 보컬이 아니어도 그냥 밴드를 다시 하고 싶다. 서로 합을 맞춰 하나가 되는 그 느낌. 짜릿한 그 느낌. 악기를 배우던지 해서 직장인 밴드부에 들어가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그때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거니깐. 공부가 마냥 하기 싫지는 않으나 시험으로서의 공부, 게다가 이번엔 꼭 합격을 해야만 하니 힘들지만 미래에 무대 위 내 모습을 그려보며 오늘을 살자! 그리고 한 번 사는 인생 남얘기에 흔들리지 말고, 남 눈치 보며 살지 말자! 내 인생을 살자!


20대의 김윤아


https://youtu.be/2j-reji102k?si=KIhs6hqQ80jJ3Zzl


제가 사랑하는 자우림의 무대를 공유합니다. (말 그대로 작두탄 김윤아를 볼 수 있습니다. 흑 언니 사랑해.)

오늘도 하루 잘 마무리하세요!!


자우림 - 이카루스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여름과 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줄 알았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사소한 비밀 얘기 하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봐도

보이는 건, 보이는 건...


난 내가 어른이 되면

빛나는 별들과 같이

높은 곳에서 반짝이는 줄 알았고

난 나의 젊은 날은

뜨거운 열기로 꽉 찬

축제와 같이 벅차오를 줄 알았어.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숨을 죽인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자, 힘차게 땅을 박차고 달려 보자,

저 먼 곳까지, 세상 끝까지.

자, 힘차게 날개를 펴고 날아 보자,

하늘 끝까지, 태양 끝까지.


난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어...


자우림 - 피터의 노래


어느 새 우리들의 모험은 끝이 나 버렸네.

어디라도 갈 수 있었지, 자유로운 새처럼.

시간은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었네.

세상 따위, 언제라도 버릴 수 있다 생각했네.


라라라라 라라라라 어린 날의 치기와

라라라라 라라라라 살아 갈 많은 날들.


때로는 살아가는 것이 죽기보다 힘들고

지켜내야 할 많은 것이 이 어깨를 눌러도

시간이 우리들에게 무언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는 아이인 채 세상을 비웃고만 있겠지.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행복의 파랑새와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우리가 버린 것들.


때로는 나를 버리려 했고

때로는 세상을 버리려 했고

때로 나 혼자만 그런 줄 알았고.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는 채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는 채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줄 모른 채.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어린 나의 치기와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살아갈 많은 날들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행복의 파랑새야

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제발 머물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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