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붕어빵을 좋아했던 그 사람

고시생의 사랑. 그 비극.

by 오뚝이



이 이야기는 장르가 설렘에서 호러로 바뀐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그 사람. 재작년 8월 즈음에 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층이 아니면 딱히 마주칠 일이 없는 구조이기도 하고 내가 워낙 사람을 잘 안 보고 다녔어서 학원 개강 후 3개월이 지나서야 그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어쩌다 인사를 하게 됐고, 통성명을 하게 됐다.


첫눈에 반했다고 해야 하나? 나는 원래 개성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남자치고는 긴 부스스한 파마머리에 키가 아주 크고 회색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머리 스타일만 빼고 보면 고시생 몰골 그 자체였다(동네 백수 아저씨 같기도 하고..) 근데 그 모습에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그 사람이랑 나는 빨리 친해진 편이었다. (원래 고시생들끼리는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고 같이 고생하는 사이라 그런지 동질감을 갖기 쉽다. 그래서 바이브가 맞으면 금방 친해진다.) 대부분 공부 얘기만 했다. 책을 뭘 봐야 하는지, 그 사례는 답이 왜 그건지, 이 책의 해설이 이해가 안 가는데 설명해 줄 수 있는지 등..


그러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고 학원 근처에 붕어빵 리어카가 생겼다. 나는 붕어빵을 매우 좋아하므로 거의 맨날 사 먹다시피 했는데 그 사람도 붕어빵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내기를 해서 붕어빵 사주기를 하는 등 붕어빵 하나로 재밌게 지냈다.



날이 추워지고 시험이 다가오고 점점 예민해지면서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힘들었다. 무엇보다 내 뒷자리 사람이 항상 독한 향수를 뿌리고 와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스터디카페 정기권을 끊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항상 자기도 스터디카페에 오겠다고 해놓고 안 왔다.


어느 날 또 스터디카페에 오겠다고 해놓고 안 오길래 거짓말을 참 잘한다고 연락을 하니 내일 보자는 식으로 답이 와서 그런가 보다 하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새벽 1시, 비몽사몽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나타났다. 그때부터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날부터 자연스럽게 스터디카페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스터디카페에서 같이 공부하고 간식도 먹고 그랬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보니 그 사람이 있는 것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미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진 뒤였으므로 (당시에는 이번에 시험에 떨어지면 마포대교에 가겠다고 말하고 다녔었다.. 모지리..) 너무 절박했다. 친구들이 재수로 다 붙어 나가고 나 혼자 남아 공부를 했던 거여서 누군가를 좋아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어야 하는데 교통사고 당하듯, 내가 손쓸 새도 없이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좋으면서 동시에 너무 고통스러웠다.


비상사태임을 직감하고 어느 날 그 사람에게 남은 기간 동안은 학원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 사람은 알겠다고 했다. 나는 시험이 끝난 뒤에 같이 밥 먹자고 하며, 내 마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생각이었다(끝내 전해지지 못한 나의 진심.).


다음날 평소와 다름없이 연락을 하던 중 그 사람이 갑자기 공부에 방해되니 이제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서운했지만 이해했다. 그렇지만 좀 나이스하게 말해주지 싶었다. 그 이후로 만났을 때 그 사람은 평소와 다르게 아주 어색하게 나를 대했다. 굳이 그렇게 지낼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편지를 썼다. (쓰지 말았어야 했다. 갑자기 바뀐 그의 태도가 그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갔다. 그만큼 시험 스트레스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스터디카페 같이 다니면서 많이 의지되고 고마웠다고, 남은 기간 열심히 하라고, 너는 시험 꼭 붙을 거라고. 썼다. 편지를 준 이후로 별다른 말이 없길래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이틀 후, 학원 앞에서 그 사람을 만나서 밝게 인사했더니 그 사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따라오라고 했다. 그래서 따라가니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그 편지 뭐냐고, 왜 자기한테 그러는 거냐고, 이 상태에서 만일 시험에 떨어지면 내 탓이라고 했다. 나는 벙쪄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 일이 있은 당일에도, 그다음 날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부를 해야만 했다. 소화가 아예 안 돼서 소화제를 먹어가며 공부했다. 시험장에서 그 사람을 마주친 것이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거였다.


그때는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 나는 그 당시 굉장히 방어적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도 나한테 호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괜히 지레짐작해서 나중에 상처받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적인 이야기는 일체 안하고 정말 공부 얘기만 했기 때문에 그냥 나를 편한 동생으로 생각한다고 믿었다. (나는 말을 안하면 모른다. 확실한게 좋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니 갑자기 내가 자신에게 거리를 둔다고 생각해서 화가 났던 거 같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렇게 화를 냈어야 했을까. 무섭게…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도 극단적이고, 그도 극단적이었던거 같다.


그 사람은 합격했다. 그리고 나는 떨어졌다. 아무튼…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수험생이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이곳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합격을 못해서 창살 없는 감옥에 스스로 뛰어 들어왔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래서 더욱더 방어막을 치고 공부만 하는 거 같다. 학원에서는 원래 알던 친구들 외에는 그 누구와도 관계맺지 않고 말이다. (그러다 답답해서 브런치를 시작한 것이고..브런치를 시작한 후로 난 더이상 외롭지가 않고.. 사.랑.해.요.브.런.치.)


고시생에게 사랑은 말 그대로 사고고 불행이다. 절대 하면 안돼…차라리 연예인 덕질을 하도록… 지금 누군가가 멋있어 보인다? 응 아니야. 사회에 나가면 더 멋진 사람 만날 수 있어~ (아직 안 나갔지만 그렇다고 카더라.)


결론적으로 붕어빵이 잘못한 거 같다. 난 그 이후로 붕어빵을 잘 사 먹지 않는다. 굳이…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살다 보면 참 별일이 다 있다.. 불가항력적인 일들..


끝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랑 노래 하나 놓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충만하고 사랑이 넘치는 하루 되세요 :)


https://youtu.be/PEM0Vs8jf1w?si=YCuQ-IOef_F6yY0o

Golden hour - JVKE


(피아노 선율이 정말 아름답고 점점 고조되는 감정이 너무도 잘 느껴지는 음악입니다.)


Golden hour - JVKE


It was just two lovers

Sittin' in the car,

listening to Blonde,

fallin' for each other

Pink and orange skies,

feelin' super childish,

no Donald Glover

Missed call from my mother

Like, Where you at tonight

Got no alibi


I was all alone

with the love of my life

She's got glitter for skin

My radiant beam in the night

I don't need no light to see you


Shine

It's your golden hour Oh-oh-oh

You slow down time

In your golden hour Oh-oh-oh


We were just two lovers

Feet up on the dash,

drivin' nowhere fast,

burnin' through the summer

Radio on blast,

make the moment last,

she got solar power

Minutes feel like hours

She knew she was the baddest

Can you even imagine


fallin' like I did

For the love of my life

She's got glow on her face

A glorious look in her eyes

My angel of light


I was all alone

with the love of my life

She's got glitter for skin

My radiant beam in the night

I don't need no light to see you


Shine

It's your golden hour Oh-oh-oh

You slow down time

In your golden hour Oh-oh-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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