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역 별천지
정신과 가는 날이라 학원을 박차고 나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림역으로 향했다. 병원이 신림역에 있는데 신림역에는 고시촌에 없는 것들이 많다. 쉑쉑버거, 공차, 스타벅스, 백화점, 영화관, 서점 등등. 고시생인 나에게 신림역은 최대 번화가, 별천지 그 자체.
정신과 의사 선생님한테 2주간 쌓아둔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선생님은 약을 새로 추가한 후로 상태가 많이 좋아진 거 같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추가한 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약이라고 했다. 끄덕끄덕. 그렇군요.. 그 작은 알약 하나가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을 살리고 있군요..
2021년에 처음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부작용이 없었다.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던데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인 거 같다. 처음에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잠이 너무 많이 와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자는 것이 기본이었다. 나는 그때 로 3이었기 때문에 내가 전국에서 잠을 제일 많이 자는 로 3이었을 거 같다. 당시 선생님에게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거 같다고 말씀드리니 그만큼의 수면을 내 몸이 필요로 하고 있는 거라고, 원래 인간의 적정 수면 시간이 7~9시간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공부보다 내 건강을 먼저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잠이 많이 오면 오는 대로 잘 잤다. 보통 자신에게 잘 맞는 약은 3~4주 정도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던데, 나의 경우 정확히 3주 정도쯤에 반추하는 것이 사라지고 온갖 잡념, 죽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나를 잠식하던 생각들이 사라지니 정말 살 거 같았다.
선생님에게 물었다. 우울증이 아닌 사람들은 그럼 평소에 지금 저의 상태와 같은 상태로 계속 살아왔던 건가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지속적으로 든다면 꼭 병원을 찾아가시라. 우울증은 단순한 컨디션이 아니라 질병이다. 병원의 도움을 꼭 필요로 한다. 그리고 약과 선생님을 믿으시라. 그러면 더 치료 효과가 좋은거 같다. 만일 선생님과 주파수가 안 맞아 마음을 열기 힘들다면 자신을 탓하지 말고 다른 병원을 알아보시라. 우리나라에 정신과는 정말 많고 그 중에 자신과 맞는 선생님은 분명히 있다.
병원에 갔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뭘 먹을까 신중하게 고민하다가 가라아케 카레를 먹기로 했다. 가라아케 카레가 패스트푸드였던가? 거의 주문하자마자 식사가 나왔다. 냠냠.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남녀 한쌍이 앉았다. 남성분은 신이 나서 말했다. 여기가 자신의 최애 카레맛집이라고. (오호. 우연히 걸어 들어간 곳이었는데 누군가의 최애 맛집이었다니. 개이득.) 어느새 옆자리의 대화소리에 귀 기울이게 됐다. 자리가 너무 붙어있어서 안 듣고 싶어도 들렸다. 본의 아니게 대화 내용을 듣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둘은 썸 타고 있는 사이인 거 같았다. 아직은 남성분이 여성분을 더 좋아하는 상태인 거 같았다. 남성분은 음~~ 하며 밥을 먹었다(정말로 음~ 하셨다.) 나는 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을 좋아해서 남성분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성분은 여성분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여성분의 대답들이 영 시원치 않았다. 대부분 단답형이었다(괜히 내 마음이 아파왔다..). 식사 후반부 정도 되니 여성분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초반에는 예민해진 상태였나보다(그래, 그럴 수 있지).
밥을 다 먹고 서점에 가서 구경하는데 그분들을 또 마주쳤다. 밥 먹고 서점이라… 전형적인 데이트 코스 아닌가? 난 저 둘이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꽤 잘 어울리는데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주책맞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너무 오래 한 거 같다. 아무래도 정말 공부를 그만할 때가 된 거 같다! 이번주는 헌법 주간이다. 헌법 최신판례 인강을 듣고 객관식을 열심히 할 것이다. 달리자!
(시내에 나간 김에 그립톡을 샀다. 저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