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죄송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by 오뚝이


동기 4명이 모여 스터디를 하기로 했다.

스터디는 민법 사례 문제집 한 권을 1 회독하는 것을 목표로 매일 한 명이 문제를 만들어오면 다 같이 시간을 재서 푸는 것이었다.



스터디 시간은 저녁 7시였다.

저녁을 먹고 양치를 하고 열람실 내 자리에 앉아서 민법 사례집을 보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 전화를 받으니 함께 스터디를 하는 혜리였다.



“양유진! 왜 안 와? 지금 7시 10분이야.”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다.

허겁지겁 짐을 챙겨 스터디실로 달려갔다.

미안한 마음에 스터디실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 4캔을 뽑아서 가져갔다.



스터디실의 문을 여니 잔뜩 굳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는 눈들이 내 심장에 꽂혔다.



동기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수진언니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이 몇 시야? 우리는 뭐 시간이 남아돌아서 일찍 와서 기다리는 줄 알아?”


“죄송합니다…”


“커피 사 올 시간에 그냥 빨리 오지 그랬어. “


“죄송합니다… 다시는 늦는 일 없을 거예요. “


“얼른 시작하자.”



내 인생에서 지각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것도 1분 1초가 아까운 로스쿨에서 지각을 하다니.

심한 자책과 함께 나를 향해 꽂히던 싸늘한 눈빛들, 수진언니의 날 선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신 차리자. 양유진. 제발 정신 좀 차려.’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고 수시로 쪽지시험을 봤다.

민법, 형법, 헌법.

행정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상법.

방대한 공부량으로 말 그대로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매일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지만 하루에 10 페이지도 읽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기본서를 보며 이해하고 암기한 것을 가지고 문제집을 조금 보다 보면 어느새 밤 12시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죽어라 공부를 해도 1학년, 2학년 내내 성적은 항상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내가 멍청한가?

내 공부 방법이 잘못됐나?

다른 책을 봤어야 했나?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공부 시간을 더 늘려야 하나?

애초에 나는 로스쿨에 입학하지 말아야 했을까?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은 점점 빠져갔고 몸은 점점 말라갔다.



‘양유진 학생. 2시까지 내 교수실로.’



지도 교수님의 메시지였다.

기말고사 성적표가 나온 당일이었다.



‘아… 성적 가지고 뭐라고 하시려고 하나… 죽고 싶다…‘



교수실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탁자 위에는 나의 형법 기말고사 답안지가 놓여 있었고 온통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교수님은 천천히 입을 뗐다.



“유진.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성적이 엉망이야. 이러다가 내년에 졸업시험도 통과 못하겠어.”


“아… 네… ”


“정신 차리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 내가 점수를 잘 주려고 해도 이건 뭐… 기본기가 너무 부족하네.”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지. 방학 때 어디 학원을 가든 인강을 듣든 해서 내년 6월 모의고사를 본시험이다 생각하고 미친 듯이 해봐.”


“네… 알겠습니다…”



로스쿨에서 성적이 낮은 나 같은 사람은 죄인이었다. 학교의 합격률을 낮추는 원흉 같은 존재.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여기서 뭘 더 해야 할까.



매일 불안감에 시달리며 악몽을 꿨다.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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