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입니다만.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

by 오뚝이


로스쿨 3학년 때,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러다 정말 내가 나를 죽일 것만 같은 공포감이 들어서 동네 정신과를 찾았다. 나는 원래 힘들면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녔고, 주변에 정신과를 다니는 지인들도 꽤 있어서 정신과를 가는 것에 대해서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된 것은 의사 선생님이 나의 상태를 보고 이건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겪는 일이니 열심히 운동하고 밥 잘 먹고 잠 잘자면 된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하면 어떡하지?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 전문가의 도움을 요하는 우울과 스트레스 수치가 나와서 그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을 먹고 있다.


최근 몸 상태가 정말 좋지 않음을 느꼈다. 무기력하고,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아무 것도 하기 싫고(못하겠고), 평소 잘 느끼지 않았던 감정들이 올라왔고, 관성처럼 쉽게 하던 일들을 큰맘 먹고 해야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다 힘들었다. 그래. 나 지금 괜찮지 않구나. 싶어 다니던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 현재 나의 상태를 말씀드리니 그동안 괜찮아서 특별히 검사를 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검사를 다시 해야겠다며 검사하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검사는 별건 아니고 태블릿 PC상으로 지금 나의 상태를 묻는 질문에 1부터 5 중 그 정도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20문항 정도의 물음에 답을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말했다. 지금 00 씨는 일반적인 우울증 환자분보다 높은 중증의 우울증 상태라고 하셨다. 이러면 공부하기 너무 힘들 텐데.. 하시며 걱정하셨다. 우울, 스트레스, 무기력, 불안, 초조함을 모두 타격하는 알약을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고, 잠도 잘 자게 하는 약을 더 효과 좋은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약을 잘 챙겨 먹고 선생님 말을 잘 들으면 나아질 수 있다는 거니까. 내가 나약하고 의지박약이고 정신을 못 차려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게 아니고 내가 좀 아픈 거니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나에게 대접하기로 했다. 맨날 샌드위치나 덮밥류를 먹었는데 오늘은 반찬과 국이 있는 한 상을 먹기로 했다.




작년에 친구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그 친구도 정신과를 다니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의 의사 선생님이 그랬다는 것이다. 00 씨가 이번에 합격하면 병원 앞에 플래카드 걸 거예요. 그동안 회계사 시험 준비생, 의대 다니는 학생, 변리사 시험 준비생 등등 시험 준비하던 환자분들이 다 합격했거든요? 이번에 00 씨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시험을 준비하는 환자분들을 그 종류를 불문하고 전부 다 합격시킨 의사가 되는 거거든요~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정말 웃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공부 때문에 정신과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구나. 비단 공부뿐만이 아니겠지.


나는 이제 지금보다 괜찮아지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