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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나씨 Jul 17. 2019

#02 그날 오렌지는 씨앗을 심었다.

그렇게 잘해줬는데 왜 자라지 못했니...


그리고 딸기에게서 처음으로 연락이 왔다.


풋풋했던 문자시절


나도 연애경험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그에 더해 솔로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차원 및 반성하는 차원에서 글로도 열심히 배웠다. 바로 답장을 보내는 실수 따위 하지 않는다. 

너무 기다린것처럼 보이잖아.


통화 괜찮으냐는 말에는 바로 답을 했다. 연속 텀을 두는 것은 뭔가 예의없어 보였기 때문. 나는 배울만큼 배운 지성인이다. 예의바르게 행동하도록 하자.

그리고 글에서 배운대로 '네.' 말고 '네네~~'를 보내도록 하자.

그러자 바로 전화가 왔다.



통화가 끝나고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개업한 세무사임은 명함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고 

전화통화 이후 알게 된 그에 대한 정보는 시간에 비례하여 꽤 많았다.



사실 이전까지는 어떻게 딸기 명함이 내게 전달되었는지까지의 그 세세한 이야기는 전해듣지 못했던터였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 같은단지 아파트 옆옆동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장 놀랐다.



 명함에 적힌 바로는 사업장 소재지가 경기도의 어디였기에, 그저 그 부근 어디 살겠거니.. 했었고, 딸기 역시 동네주민까지는 생각치 못했던 듯.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가 몇백미터 내외라고 하니 거리감이 많이 줄어든 느낌. 아 물론 저는 이사온지 꼴랑 2주도 못채우긴 했지만요.


그리고 딸기는 나의 직업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 그 이유인 즉슨 내 명함에 'ㅇㅇ연구소 선임연구원 오렌지'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임. 뭐 당시 연구소 소속이 맞긴 했는데, 뭔가 외부에서 생각하는 그런 연구원과는 조금 아주 많이 다른 연구원이다. 하 뭐라 설명하기 굉장히 힘들다. 넘어가자.

결론적으로 본인은 공대출신의 그런 연구원이 아니라 경영학부 졸업하고 울회사 채용시 2차 전공필기 시험 선택과목은 회계학이었던, 회계직으로 입사한 직원이었던 것.

특히 예산부서에서 8년을 넘게 근무했다는 소리에 놀랐고, 부가세 신고 어쩌고 하는 소리도 쉽게 알아듣는 내가 신기했던 모양.

사실 본인 예산부서에 오래있었어서 회계부서와는 친분이 있다. 주변에 회계사 세무사 선배동기후배많았던지라 왠지 직업자체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회계적 지식을 맘껏 뽐내니 안심하고 대화에 열중했던 딸기씨.


그리고 내가 딸기라는 사람에 대해 제일 관심이 갔던 것은, 딸기 무협소설을 출간한 작가였다는 것.

일단 남자가 글을 쓴다는 것이 멋있었고, 그것이 참 특이하게도 남들은 감히 손을 못대는 무협소설이라는 데에서 한번 더 놀라고 마지막으로 '아마 오렌지 너는 모를거야 고선지' 하는 말에는 비명을 질렀다.



주변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 오렌지는 대학시절 '실크로드와 동서문화의 교류'수업에서 A+를 맞은 경험이 있다. 고선지가 전투를 치뤘던, 그래서 중국의 종이가 서양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던 탈라스 전투를 알고 있다.


기억나지 않는 학번과 구비밀번호를 조합해가며 학교 홈피에 로그인하며 잠시 지난 추억에 젖었다



그러던 어느날 은퇴 후 실크로드 whole 루트를 따라 순례길에 오르는 로망 대신, 조각조각 구간구간 찢어서 '그때까지 기다리지말고 그래 바로 지금 홀로 실크로드에 서자!!' 결심했다. 내가 가본 사마르칸드 꽁냥꽁냥 실크로드 도시가 어쩌고 하니 실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들이라며 딸기씨가 엄청 반가워한다. 책을 한창 쓸때는 참고한다고 이것저것 공부했던 덕분에 익숙했던 지명들이지만 다 잊고 있었다며.


그외 기타등등 대화들을 요약하면

(누가 한말인지는 대충 알아서 판단요망)


"네? 절 구경을 가고 싶으시다고요? 저 여행다니면 유적지 중심으로 다녀서 절들도 많이가요."

"뭐야 전공이 회계학이 아니예요? 하기사 저도 사학과 아닙니다." 

"뚜쉬 나도 사회학과 가고 싶었는데 심지어 나 딸기님 교 썼다가 물먹었네요."

"아 글쓰는거 나도 쨩좋아하는데.. 책은 어떻게 내나요? 주변에 작가가 없어서 넘나 싱기"

"청소년 육상선수 출신입니다."

"앱 개발? 그거 어렵지 않나요? 나도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 아아 기획이라고요."

"맞아요. 박물관 너무 재밌죠. 정말 시간가는줄 몰라요."

"온천경험을 되살려 대동탕지도를 기획하고 있어요."

"네? 사무실에서 그림을 그리신다고요? 저는 요새 집에서 플룻부는데."



기본적으로 오렌지씨와 딸기씨는 서로 특이한 사람들임에 동의했다.

과거에 했던 것도 많고 지금 하는 것도 많고 앞으로 하고 싶은것도 많은 사람들임에 동의했다.


"아직 퇴근 전이라고 했는데... 일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딸기씨 저 때문에 퇴근이 늦겠네요."

"네네 끊어야되는데 오렌지님 목소리가 너무 좋네요."
"오렌지는 대학 밴드에서 보컬과 키보드를 담당했습니다."

블라블라 그때의 경험담 블라블라




"딸기씨 근데 왜 우리 안 끊나요?"

"오렌지님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딸기씨 근데 우리 언제 만나나요?"

"네네 오렌지님 저도 모르겠습니다. 부가세 신고가 너무 바빠...."

"...콱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곳에서라도 보면 될껄 먼소리 하심? 오늘 당장 봐도 되겠구만."

"앗... 네네..."


결국 3일 뒤인 7월 15일 일요일에 재활용 수거장이 아닌 그냥 일반 아파트 길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지하철역 한 구간정도를 걸어가 설빙에 가서 여름한정 오렌지의 초강력 풰이버릿 최애템 흑임자빙수를 먹자고 제안. 수락한 딸기씨.




그리고 7월 15일 일요일


서로의 바람대로 약속대로 츄리닝바람은 아니었으나 나름 집 앞에 나온다는 심정으로 편하게 입고 만났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설빙까지 걸어가는 것은 포기했고, 대신 우리집 현관 기준 도보 3분 내외에 위치한 이디야에 가자길래 설득 당하였다.  전화할때와 마찬가지로 순조로운 대화가 진행되었고 분위기가 좋았고 참으로 즐거웠다.  끊임없는 수다가 이어졌다. 


허나 앞에 놓인 음료가 동이 나자 

할말도 할것도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밝게 웃으며 안녕, 

아까 만났던 바로 자리에서, 

그는 왼쪽으로 나는 오른쪽으로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과장을 좀 섞어 전화통화 시간보다 짧았던 만남이 끝났다. 


그 후 애프터는?

없었음

이런 반전 있을거라는거 

다들 예상한거 아님?

새삼스럽긴..

괜히 쪽팔리게...



오렌지는 그날 땀을 뻘뻘 흘리며

다이소에서 업어온 꽃씨를 심었다.

(대문사진)


이게 싹이나면 그와 나와의 결실이 있을... 뭐 그런 헛생각을 하며..

4개중 2개에 싹이 돋아나긴 했으나


말라 죽어서 뽑아버렸다고 한다.



꾸잉꾸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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